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 - 젊은 의사가 고백하는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박정아 옮김 / 알마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영등포 쪽방촌 골목에 위치한 요셉의원 원장인 고 선우경식 선생이 사망한 뉴스가 보도되어 우리에게 훈훈한 감동을 선사한 적이 있다. 환자들과 눈높이를 같이 하며 평생을 살다 간 고 선우경식 원장은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않고 환자들을 보살펴 더욱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진정한 마음으로 환자들을 치료한 그의 모습은 요즘 같은 현실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

지금 우리의 의료계는 어떤 모습일까? 한 마디로 국민들은 의사를 불신하고 의료 시스템에 대한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과 질병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되도록 의사로부터 많은 것을 듣고 싶어하고 의사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를 원한다. 그런데 현실은 특별한 수술을 제외하고는 고작 몇 분 안에 모든 진료가 끝나 버린다. 환자들은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지은이는 환자의 입장에서 의사들을 접하면서 경험했던 이야기들과 자신이 의사 수련 과정 중에 겪었던 의료계 내부에 대한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들려 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일방향적인 것이 아니어서 좀 더 사실적이고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다. 지은이는 독일인이고 지은이가 들려 주고 있는 이야기도 독일 의료계에 대한 것임에도 소개된 내용은 우리 의료계의 현실과 많이 닮아 있어 우리 의료계를 되돌아 보게 한다.

서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환자를 떠넘기거나 환자를 받지 않는 의사, 환자가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15분 정도를 기대리게 하는 의사, 사보험 환자와 공보험 환자를 구별화하여 환자들을 서열화하는 병원과 의사, 죽어가는 모습이 보기 싫어 환자를 다용도실에 방치해 버린 의사, 자신의 연구 대상으로 삼기 위해 환자들 치료하지 않는 의사 등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일들이 의사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위와 같은 의사들의 위압적이고 고압적인 행태 이외에 책임지지 않는 의료사고도 문제다. 마치 경기라도 하듯이 제왕절개수술을 하여 과다출혈로 임산부를 사망하게 한 의사, 동료 의사들의 의견은 듣지 않고 자신의 시술을 과신하는 의사, 각 과 사이에 서로 협진이 되지 않아 환자를 사망으로 몰고가는 병원 시스템과 의사. 대다수의 의사들은 이러한 의료사고를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약점을 까발리고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오히려 의사의 발전을 저해하거나 위축시키고, 환자와의 관계를 악화시킬 뿐이다.

위와 같은 일들은 모두 환자를 인간이 아닌 하나의 증상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이 일어나는 일들이 아닐까. 젊은 시절의 혈기 왕성하게 외치던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무색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지금 이 시점에서 의사는 무엇을 해야할까. 그 해답은 의사들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다. 그래서 다른 직업에 비해 높은 직업 윤리와 직업 정신을 요구한다. 환자가 의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의사는 환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환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항상 고민해야 하고, 환자가 고통스럽기만한 입원 생활을 견뎌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지은이는 의사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환자를 이해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내려 노력해야 하고(본서 제231쪽 참조), 의학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을 중심에 세워야 하며, 또한 환자를 단지 신체적인 결함이 있는 존재로만 생각해서는 안되고, 신체적인 문제 이외에도 정신적인 문제와 사회적인 문제까지 아우르는 하나의 개체로 보아야 한다(본서 236쪽 참조)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와 의료 시스템이 다른 독일이지만 지은이의 이야기는 우리 의료계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무엇보다 의사들이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 살아 숨쉬는 의학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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