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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이 있는 풍경
이상엽 사진.글 / 산책자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잿빛 하늘을 배경으로 피사체가 모두 검은 톤으로 나온 책표지의 레닌 동상 사진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쓸쓸함을 넘어 황량하기 그지 없다. 자본주의 물결이 휩쓸고 지나간 러시아. 20세기 혁명을 주도하였던 레닌. 하지만 레닌이 건설한 소비에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동상도 이제는 큰 관심거리가 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넘실대는 러시아 사회 속에서 레닌의 동상은 여전히 러시아 시민들과 함께 하고 있다. 그런만큼 러시아 사회의 변화된 모습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지은이는 그 많은 디지털 카메라를 마다하고 러시아 산 구형 카메라로 러시아의 어제와 오늘을 담고 있다. 단순히 러시아의 모습만을 담은 것은 아니다.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살아남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을 담았다. 그래서 사진은 더욱 정감이 간다. 지은이가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여서인지 사진은 전부 예술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뛰어나 보인다. 사진만으로도 본전(?)을 뽑을 것 같은 책이다.
지은이는 러시아의 서쪽 끝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 노보시비르스크, 이르쿠츠크, 하바로프스크를 거쳐 동쪽 끝 사할린까지 총 9,938킬로미터를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변화하는 러시아와 혁명의 추억이 담긴 러시아를 관통하고 있다. 원래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의 여행이었지만 글의 흐름을 고려하여 단번에 여행한 것처럼 구성했다고 한다.
우리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동토의 땅. 우리 선조들이 까레이스키라 불리며 아직도 살아가고 있는 곳. 영화 ‘닥터지바고’가 떠오르는 곳. 4자 회담이든 6자 회담이든 언제나 우리 뉴스를 타고 흐르는 곳. 그 곳이 지금 우리 눈앞에 레닌이라는 인물을 통해 다시 한 번 다가오고 있다.
사진을 통해 느낄 수 있지만 레닌 동상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대부분 어두운 느낌이다. 그에 비해 현재를 살아가는 러시아인들의 모습은 밝다. 지은이가 의도적으로 그와 같은 대조적인 표현을 사용하였는지는 모르지만, 그와 같은 사진 구도로 인해서인지 러시아의 미래는 무척이나 밝고 활기차게 느껴진다.
지은이는 긴 시간의 여행에서 오는 지루함을 이길 수 있는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책 중간 중간에 소개하고 있는 여행을 하면서 읽을 만한 책들에 대한 정보가 무척 알찬 것 같다.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 올랜드 파이지스의 ‘나타샤 댄스’ 등.
그리고 물론 아주 중요한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법에 대해서도 설명해 놓고 있으며, 마지막 부분에서는 소비에트 산 구형 카메라까지 소개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지은이의 사진과 글을 따라가다 보면 언제 그 먼거리를 달려 왔나 싶을 정도로, 어느새 우리나라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지은이가 직접 러시아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오지 못하는 현실이 못내 아쉬웠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직접 이용할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와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