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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 - 고전시가로 만나는 조선의 풍경
김용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음악이라고 하면 지금 현재 우리가 듣고 있는 대중가요, 서구의 팝음악, 클래식 음악, 그리고 판소리 등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 선조들이 향유했던 시조는 노래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고전문학으로 분석과 해석의 대상이 된 것이 전부였고, 학교를 떠난 이후에는 좀처럼 접하기도 힘들어서인지, 시조를 두고 음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교육덕(?)에 조선시대 시조는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지은이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들에게 고정관념으로 자리해 버린 이런 생각에 대해 환기를 시키며 조선시대 시조도 노래라는 점을 강조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노래를 들으면서 기뻐하고 슬퍼하거나 아니면 외로움을 달래듯이, 당시 사람들도 시조를 통해 울고 웃고 슬퍼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과거이지만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는 현재였던 것으로, 그래서 우리는 시조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작자들이 대부분 사대부들이어서인지 시조의 주제는 나라에 대한 충절, 훈탁한 세상을 등지고 자연과 함께 지내며 풍류를 즐기는 이야기, 당대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 등이 담겨진 것들이 많다. 어쩌면 요즘 지식인들에 비해 당시의 지식인들이 좀 더 현실적이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지 않았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은 아닐거라고 본다.
하지만 조선시대 사설시조에서는 사대부들이 보여준 것과는 다른 직설적인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작품들이 많다. 요즘 유행하는 가요들이 직설적인 표현이 많듯이 당시 평민들이 지은 작자미상의 사설시조에는 정치적인 면보다는 보다 현실적인 생활의 모습이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 오히려 더 정감이 간다.
산중에 책력이 없어 절 가는 줄 모를로다
꽃 피면 봄이요 잎 지면 가을이로다
아이들 헌 옷 찾으니 겨울인가 하노라.(본서 제302쪽 참조)
이 시조에서는 격한 감정이나 아니면 은유적인 감정을 찾아 보기는 힘들다. 지은이의 솔직 담백한 마음을 그대로 담아 내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연을 벗하면 자연의 순리에 맞추어 살아가는 평민들의 삶이 그 어떠한 미사여구가 붙어 있는 시조보다도 더 없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울 뿐이다.
나무도 돌도 바히 없는 뫼에 매게 쫒긴 까투리 안과
대천 바다 한 가운데 일천석 실은 대중강이 노도 잃고
닻도 잃고 돛대도 꺾고 용총도 끊고 키도 빠지고 바람 불어 물결치고
안개 뒤섞여 잦아진 날에 갈 길은 천리만리 남고 사면이 검어
어둑 천지적막 까치노을 떴는데 수적 만난 도사공의 안과
엊그제 님 여윈 안이야 엇다가 가을하리오.(본서 제189쪽 참조)
수박 같이 두렷한 님아 참외 같은 단 말씀 마소
가지가지 하시는 말이 말마다 왼 말이로다
구시월 동안 씨동아 샅이 속 성긴 말 말으시소.(본서 제357쪽 참조)
위 두 시조에서는 은유와 과장된 듯한 표현을 사용하여 그리움과 이별의 아픔을 달래고 있다. 평민들이라고 하여 사대부들처럼 고사성어나 어려운 말을 섞은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네들이 전하고자 하는 마음은 오히려 더 강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이처럼 당시 우리 선조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담은 시조를 통해 개인적인 감정을 읊조리기도 하고, 사회적인 현실을 비판하는 면을 보여주기도 하였던 것이다.
지은이는 충절, 우정, 사랑, 부부, 이별, 그리움, 풍류, 늙음을 탄식하는 노래 등 20여개의 주제를 선정하여 각 주제마다 5-6편의 시조를 실어 두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각 주제마다 관련된 그림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시조를 읊으며 보는 그림은 그야말로 오감을 자극하는 그 자체였다. 특히 황진이가 지은 시조와 함께 실어둔 신윤복의 ‘기다림’이라는 그림은 황진이의 시조를 통해서 느끼는 감정 그 이상을 전해주었다.
당대를 이해하는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요즘은 주로 왕조 중심으로 아니면 인물사 중심으로 하여 그 시대를 읽으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인데 비해, 이처럼 시조라는 것을 통해 옛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것도 새로운 문화적인 체험인 것 같다. 학창시절 이후 좀처럼 접할 수 없었던 시조들을 읊으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나의 학창시절도 떠올리고 우리 선조들의 숨결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