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부의 삶 - 옛 편지를 통해 들여다보는 남자의 뜻, 남자의 인생
임유경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지금은 인터넷의 발달로 손수 종이에 정성스레 편지를 쓰던 것도 추억으로 남겨지고, 이메일이 그 자리를 대신해 가고 있다.하지만 누구나가 한 번쯤은 하얀 여백에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본 일이 있을 것이고, 편지가 주는 매력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쓰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찢어버리고 또 쓰고. 그렇게 해서 편지를 보내기는 했지만 왠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편지는 개인의 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정성이 담겨져 있다. 안부를 묻는 편지에서 연애편지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그래서인지 편지를 들여다보면 편지를 주고 받는 사람들의 모습뿐 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상을 볼 수 있는 하나의 자료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편지의 내용을 통해 우리 조상들, 특히 조선 시대 선비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유교 문화가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었던 조선 시대, 대장부라고 부르며 자신들의 생활을 안팎으로 통제아닌 통제를 하며 살았던 그들의 진정한 모습은 어떠했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제1부 “뜻을 세우다”는 오늘로 치면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세우는 것과 관련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다. 서유구가 사촌 동생 유경에게 쓴 편지에서 “지난날 비가 오지 않은 것은 오늘을 위해 쌓아두었던 것이네. 오로지 오래 축적해야 지금처럼 모자람 없이 쏟아질 수 있는 법이지. 문장도 마찬가지야”라고 하는 대목은 오늘날 입시위주의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한 따끔한 충고가 되는 말이 아닐까 한다.

정약용이 권엄에게 쓴 편지에서 등장하는 ‘면신례’에 대한 이야기는 당시의 사회상을 보여주면 그 때나 지금이나 겪게 되는 통과의례의 힘든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면신례’는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게 나아가게 되면 귀한 음식을 마련하고, 기생을 불러 연희를 벌이며 열흘 가까이 선배의 비위를 맞추어야 했던 것으로, 얼굴에 먹물 칠하기, 하루 종일 춤추기, 서꺼래 들기 등 선배들이 후배들의 기를 꺾기 위한 횡포가 대단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제2부 “벗으로 산다는 것”은 조선 시대 선비들의 진한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을 원이 된 허균이 재주는 좋으나 서얼이라는 이유로 궁핍하게 살고 있는 이재영에게 같이 살자고 한 편지나, 박지원이 친구에게 먼저 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친구가 먼저 알아서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보내주어 너무나 고맙다는 편지, 홍길주가 말에서 떨어진 친구 상득용에게 위로를 하기 보다는 오히려 잘 된일이라며 사회생활에서 혹시나 자만심을 가지지나 않을까 경계하라는 취지의 에둘러 쓴 편지 등은 친구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대목들이다.

제3부 “세상살이, 고생길”에서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뜻하지 않게 마주치게 된 힘든 일로 마음 고생을 하는 속내를 그대로 털어 내놓고 있다. 여기서는 유배지에서 친구나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들이 많은데, 잘 나가던 사람이 한 순간에 자신의 생활을 떠나 유형생활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일 것이다. 특히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것은 육체적인 고통의 수준을 넘어서는 일인 것이다. 노긍이 큰아들 면경에게 가난해도 구차해지지 말라고 한 편지, 정약용이 아들 학연에게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을 담은 편지, 김정희가 아우 명희에게 손자가 태어난 일을 축하하는 편지 등에서 유배지에서의 힘든 삶속에서도 자신의 가족을 걱정하고 친구를 걱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이학규가 지인에게 쓴 편지에서는 유배지에서의 힘든 생활이 가장 솔직하게 표현되고 있다. 선비로서 가지는 체면치레는 찾아볼 수 없다. 그냥 한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앞서의 편지들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제4부 “아버지로 산다는 것”에서는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당시 조선 시대에서도 아버지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은 듯 하다. 유배를 간 정약용이 아들 학유에게 “아침에 햇빛을 받는 쪽은 저녁에 그늘이 빨리 들고, 일찍 핀 꽃은 먼저 진다는 사실을 명심하여라. 운명의 수레는 재빨리 구르며 잠시도 쉬지 않는다. 그 점을 기억하고 세상에 뜻이 있다면 잠시의 재난을 이기지 못해 청운의 뜻까지 꺾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라고 쓴 글을 통해 아들에게 현재 힘들더라도 대장부는 언제나 청운의 기상을 품을 것을 이르고 있고, 전우는 아들에게 쓴 편지에서 “허상경이 말하기를, ‘자식의 자질이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나면 걱정할 일이지 결코 기뻐할 일이 아니다‘고 하였다. 미리 자신을 단속하고, 겸손을 익히고, 성정을 두터이 해야 한다”라고 하며 예절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광사가 막내딸을 그리워하며 쓴 편지에서는 딸에 대한 아버지의 절절한 마음이 그대로 뭍어 나온다. “손님이 찾아와 온종일 돌아가지 않으면 마음이 답답하여 참기 힘들 지경이고 손님이 돌아서며 섬돌에서 내려서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딸을 불러대곤 했지. 딸이 예, 예, 대답하며 품에 달려들어 안길 때에는 마치 오랜만에 만나는 듯 기뻤지”하는 대목이나 소꿉놀이 하는 모습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는 진한 감동마저 느껴진다.

제5부 “죽음 앞에서”는 죽음을 앞에 둔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죽음이 가까워오면 누구나 자신의 마음 속 이야기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만큼 편지의 내용은 더욱 구구절절하게 다가온다. 이광사, 김정묵, 박사해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쓴 편지, 홍귀달, 조익이 죽은 딸에게 쓴 편지, 이천보가 영조에게 쓴 유서 등 죽은 이를 그리는 편지나 자신이 죽음을 앞에 두고 쓴 유서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산 사람들이 쓴 글과는 확연히 다르게 다가온다.


특히 김창협이 죽은 누이동생에게 쓴 제문에서 “우리 형제가 조금씩 나이를 덜어 네 목숨과 바꿀 수만 있다면,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무엇이 아깝겠느냐. 그럼에도 하늘이 네 목숨을 일찍 거두어 우리 형제의 가슴을 이리도 아프게 하는구나. 죽이고 살리고 덜어내고 더해주는 것은 하늘도 어쩌지 못한단 말이냐! 슬프고 슬프다. 애통하고 절통하다.” 구절에서는 김창협의 죽은 누이동생에 대한 상실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몇 장에 걸친 장문의 편지든 아니면 몇 줄 정도에 그치는 짧은 편지이든 편지를 통해 조선 시대 선비들의 내면에 숨겨진 진솔함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때로는 장부의 늠름한 기상을, 때로는 대장부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인간이 가지는 감정을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주어, 우리는 이 책에 소개된 다양한 편지 등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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