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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 현실인가 또 하나의 신화인가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3
구춘권 지음 / 책세상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지구화(또는 세계화)라는 말이 이제는 그다지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우리 사회는 지구화에 대한 논의가 거세다. 특히 IMF와 한미FTA를 거치면서 여론이 양분될 정도로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지은이는 이러한 지구화를 모든 국가를 관통하는 강제적·현실적인 과정이라고 이해하는 견해와 지구화를 내용 없는 일종의 정치적 신화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있다고 지적하며, 지구화 자체가 한 두 문장으로는 도저히 정의될 수 없는 대단히 복잡한 과정이라고 설명하면서, 이를 20세기 자본주의의 발전이라는 역사적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다.
지구화의 특징
지은이는 지구화의 특징으로 국제적 경제 관계의 연결이 심화되는 과정,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형성된 기술적 패러다임이 확산되는 과정, 국제금융시장의 팽창, 지역화, 다국적 또는 초국적 기업들의 부상, 전 세계적 규모에서 국민경제의 위계화 등을 들고 있다.
지은이는 이러한 지구화의 특징은 자본측에 유리한 경제정책을 일상화하려는 일종의 정치적 프로젝트라고 하면서, 20세기의 자본주의의 흐름에 대해 살펴보며 지구화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고 발전되어 왔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20세기 자본주의의 흐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1974-95년 세계 경제위기까지의 25-30년간의 짧은시기를 '자본주의의 황금시대'라 하는데, 이는 냉전체제, 미국이라는 강력한 헤게모니 국가의 존재, 기술적 패러다임으로서의 포드주의, 케인즈주의의 결합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하지만 생산성의 하락, 임금상승, 자본수익성의 하락, 원자재가격의 상승(유가 파동)이 이어지면서 포드주의적 축적체제는 붕괴되고, 신자유주의와 포스트포드주의적 축적체제가 성립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프로젝트의 핵심은 다양한 형태의 공급친화적 요소들을 정착시켜 포드주의적 위기를 통해 드러난 자본수익성을 회복하려는 것으로, 임금비용의 삭감, 새로운 생산품 및 생산기술의 도입, 노동관계의 유연화, 자본집약적 설비의 가동시간 연장과 사용강도 강화, 기업에 대한 세제혜택, 공급측에 유리한 사회하부 구조를 구축하는 것으로, 이로 인해 국제금융시장이 팽창화를 가져와 국제금융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가 도래하였다는 것이다.
20세기 자본주의의 흐름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형성배경를 설명하는 지은이의 생각은 여태 피부로 느끼기는 했으나 머리 속에만 머물러 있던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며, 빠르게 돌아가는 지구화 속에서 우리가 어떠한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하고 있다.
대안적 지구화
위와 같은 일련의 논의를 통해 지은이는 지구화는 신자유주의라는 정치적 프로젝트가 지난 20여년 동안 진행된 결과로서 현실이지 숙명이 아니므로,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는 제3의 길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지은이는 대안적 지구화는 신자유주의와의 근본적인 결별을 전제로 해야한다고 하며, 국제금융시장의 규제, 지구적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노력, 환경에 대한 관심, 전지구적 지역적 국제협력기구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은이가 주장하고 있는 제3의 길은 현재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한미FTA와 관련해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물론 오늘날 지구화의 현실을 직시할 때, 대안적 지구화가 결코 쉬운 작업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은이는 '지식의 비관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라는 그람시의 말을 인용하면서 낙관주의를 고수해야 한다며 끝을 맺고 있다. 그렇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된다고 미리 포기할 것이 아니라, 지은이의 주장처럼 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으로 우리만 아니라 전세계가 공존·번영할 수 있는 세계를 이루는 것이 진정한 지구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