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 - 되풀이되는 연구 부정과 '자기검증'이라는 환상
니콜라스 웨이드.윌리엄 브로드 지음, 김동광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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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사태가 몰고 온 우리 사회의 파장은 엄청났다. 어떻게 해서 과학자가 거짓 발표를 할 수 있을까? 이제까지 우리는 과학이라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무엇보다 객관적 지식을 추구한다는 과학 자체가 가지는 특성상 기만 행위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거짓이었다는 것이 드러났을 때는 정신적 공황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과학에서마저 이러한 일이 일어나니 무엇을 믿어야 할지 당황스럽기만 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우리 사회에서는 여태껏 논의되지 않았던 과학 사기, 과학과 윤리 등 과학의 이면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 의미에서 황우석 사태는 잃은 것도 많았지만, 반면에 얻은 것도 많았던 사건이었다. 많은 논의들이 있었지만 정작 과학에 왜 기만행위가 일어나는지에 대한 구체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접근이 미흡하여 못내 아쉬웠는데, 이 책은 그러한 과학 기만행위에 대해 '뉴욕 타임스' 과학기자로 활동했던 지은이들이 다양한 사례와 과학 기만행위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전통적인 과학관


전통적인 과학관에 따르면 과학은 엄격하게 논리적인 과정이고 객관성이야말로 과학 연구의 기본적인 태도이며, 과학자의 주장은 "자기규찰 시스템" 즉, 동료들의 엄격한 검증과 실험의 재연을 통해 점검된다. 그리고 자기 검증 체계를 통해 모든 오류는 신속하게 그리고 가차없이 추방된다(본서 제9쪽 참조).


하지만 이러한 전통적인 과학관으로는 과학을 이해할 수 없다. 이는 최근까지 발생한 많은 과학 기만행위를 통하여 더 이상 적합하지도 유효하지도 않게 되었다고 하겠다.


지은이들은 히파르코스의 연구를 차용한 프톨레마이오스, 실험을 했는지 자체가 의심스러운 갈릴레오, 데이터를 조작한 뉴턴, 사실이라고 보기에는 통계수치가 너무나 정확한 멘델 등 역사 속에 나타난 과학자들의 기만행위와, 과학자적인 양심보다는 자신의 출세를 위하여 다른 사람의 논문을 도용한 알사브티 사건, 연구 재연이 어려운 점을 이용한 키나제 캐스케이드와 관련한 실험을 조작한 스펙터 사건, 데이터를 조작하고 연구 경력도 조작하였지만 저명한 연구자 아래 있다는 이유로, 즉 엘리트 파워로 인해 동료평가과정을 면제받은 존 롱 사건, 펄서를 처음 발견하고 천체로서 펄서의 성질을 처음 인식한 사람은 대학원생 조셀린 벨이었지만 지도교수와 제자의 관계상 교수인 휴이시가 그 모든 공을 안은 휴이시 사건 등 최근에 일어난 과학 기만행위 등을 들면서 위와 같은 전통적인 과학관이 잘못 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과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비합리적 요소의 존재를 인정할 때만이 비로소 과학의 기만행위라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과학의 구조적인 문제


위와 같은 역사적 과학 기만행위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이는 과학이 가지는 특성과 과학 내부에 잠재해 있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과학에서의 인정은 그 연구가 얼마나 독창적인지, 그리고 특정 사실을 누가 먼저 발견하였는지(先取權)에 따라 주어진다. 2등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인정을 받고 동료들로부터 존경을 얻으려는 열망과 함께 과학자들은 데이터를 조금 더 '다듬으려는' 유혹, 심지어는 이를 넘어서 날조하려는 유혹에 쉽게 빠지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과학자들이 있는 것이다.


진리를 발견한다는 점에서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실험실 내부에서는 오히려 가장 비민주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교수와 학생들 간에 존재하는 권력관계로 인하여 교수에 의한 학생들 또는 연구자들에 대한 노력의 착취가 공공연하게 자행된다. 그로 인해 착취를 당한 학생은 자신도 그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되고, 악순환은 계속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의 기저에는 과학의 외형주의, 성과주의, 출세주의가 깃들어 있다고 하겠다. 당장 어떠한 결과물을 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일정한 결과물에 대해서만 보상이 주어지는 시스템 하에서는 기만행위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규찰 시스템의 오작동


과학의 자기규찰 시스템을 구성하는 세 가지 메커니즘은 동료 평가, 심사위원 제도, 재연이다. 하지만 이는 현재까지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동료 평가 제도'나 '심사위원 제도'는 같은 집단 또는 엘리트 집단 내에 속해 있다는 점으로 인해 이를 면제받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해 미국 애리조나 주 전(前) 하원의원인 존 콘랜은 "참신한 아이디어나 중요한 과락적 발견을 질식시키는 근친상간적인 패거리 체계"라고까지 혹평을 하기도 한다.


'재연'은 논문에 실린 실험 방법의 불완전한 기술, 실험 장비와 재료의 부재, 그리고 무엇보다 재연에 대한 동기의 결여로 인해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기만행위가 일어 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밝혀 내지 못하거나, 아니면 외부 기관에 의해서 밝혀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과학 기관들은 하나의 썩은 사과가 한 상자의 사과를 상하게 한다는 '썩은 사과' 이론을 내세워 이는 기만행위를 한 개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역설하고 자기규찰 시스템을 통하여 이 썩은 사과는 골라 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자기규찰 시스템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지금의 상황을 본다면 썩은 사과 하나가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는 사과가 든 통에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즉 느슨하게 작동하는 자기규찰 시스템이 문제인 것이다.


건강한 과학을 위하여


과학은 종전에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과학자들은 논리나 객관성의 인도만 받는 것이 아니라 수사(修辭), 선전, 그리고 개인적 편견 같은 비합리적인 요인들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고 있었다.


즉 과학은 비합리성의 지배를 받으며, 과학 기술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사회적 제도이자 문화적 표현의 중요한 형태 중 하나일 뿐이었다.


지은이들은 과학이라는 사회 조직은 출세주의를 조장하고 거기서 보상을 얻는데, 그런 조직의 특징들이 기만행위의 원인이 된다고 하며, 일련의 과학 기만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 세가지의 견해를 제시하고 있었는데 설득력이 있는 부분이었다.


첫째, 과학자들은 엘리트주의에 대해 좀 더 의심해 보아야 하며, 특히 너무 빨리, 너무 많은 것을 하는 엘리트 연구기관의 젊은 슈퍼스타들에 대해서는 더 의심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논문과 관련하여 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모든 사람은 연구에 구체적으로 주요한 공헌을 했어야 하고, 공헌도가 낮은 사람에 대해서는 논문 본문에서 분명하게 사의를 표시해야 하며, 논문의 모든 저자는 공적을 취한 만큼 그 내용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너무 많은 논문은 검증의 기회를 가지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기만행위를 양산하는 계기가 된다며, 게재료 관행은 줄이고,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 기능이 논문 발간 영역에 도입되어야 한다고 한다.


셋째, 좀 더 현실적인 태도가 대중과 과학자 모두에게 바람직하나 과학에 대한 적절한 이해는 과학자 자신부터 시작해야 하며 지적 창조에서 과학과 기타 활동이 단절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황우석 사태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결과물이 주어지지 않았다. 과학계나 정부에서는 다시는 황우석 사태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시스템 개발과 제도적 보완장치를 마련했어야 하지만, 진지한 논의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고 하겠다.


이미 10년 전에 국내에서 출간된 책이었다는 점에서 지은이들의 탁견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과학 기만행위에 대해서 이처럼 명확하고 속시원하게 이야기한 책은 없지 않나 한다.


과학 기만행위는 좁게 보면 과학에 국한된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넓게 보면 이는 우리 사회 전반에 노정되고 있는 문제들과도 연관되어 있는 것들이라고 하겠다. 이 책을 통하여 과학에 실망한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여태까지 제대로 몰랐던 과학의 실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고 '아는 것이 힘'이라고, 그래서 우리 과학에 희망을 가지기로 했다. 우리 사회의 건강을 위하여 우리 과학의 건강을 위하여 과학자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과학의 파수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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