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답게 산다는 것
안대회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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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답게 산다는 것”
과연 선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답게”라는 전제가 깔리면 그 전제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것이 어법상 맞다. 그렇다면 선비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부터 세워진 다음에 그 삶에 대해 논해 보아야 하는 것이 이야기의 순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 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선비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선비”라고 하면 의리와 예절을 숭상하고 학문에 전념하며 재물과 관직을 멀리하는 사람을 일컫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대해 “선비”는 신분계급상 무위도식하며 글이나 읽고 형식에 얽매여 사화나 당쟁을 일삼는 등으로 부정적인 측면을 언급하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아마 지은이는 선비를 전자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듯하다.

지은이는 자신을 호고벽(好古癖)에 빠진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선비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새로우면서도 현재에 큰 의미를 던져주는 글과 삶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지은이는 선비들의 내면의 모습과 취미, 글, 그리고 공부와 책에 대한 주제로 선비들의 삶을 조망하고 있다.

인생을 관조하는 여유로움

지은이는 선비들이 살아 생전 자기 묘지명을 직접 쓴 점이라든지, 일기를 13년간이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쓰며 자신의 생활을 정리한 생활자세와 절식문화를 강조한 성호 이익의 철학 등을 통해 선비들이 내면의 성찰을 중요시하고 마음을 비우는 관조적인 삶을 영위하였다고 한다.

물론 묘지명을 먼저 쓴다거나 아니면 일기를 13년 쓴 것으로 그러한 삶과 연관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역사는 현재의 시각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시각에서 보는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지은이가 언급한 것처럼 ‘쿨’하지 않은 다음에는 실천으로 옮기기 쉽지만은 않다고 하겠다.

취미를 넘어서는 매니아적 생활

벼슬길을 마다하고 오랜된 서화나 청동기 같은 골동품을 수집한 김광수의 수집벽은 18세기의 시대상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하였을런지도 모르지만, 그의 수집열은 단순한 취미생활을 넘어서서 광적인 수준이었다고 하겠다.

여기에 수집한 서화에 대해 자신의 감상을 기록한 제발이나 시를 쓰거나 편지를 쓰기 위한 시전지는 예술과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특히 서평군은 유럽 귀족 사회의 살롱문화에 비견될 정도로 예술가들에 대한 열렬한 후원자로서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앗다고 한다. 이는 생활과 삶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였다는 증거라고 하겠다.

물론 타고난 재력을 바탕으로 할 일이 없으니 문화생활이니 취미생활이니 하면서 즐긴 것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는 문제지만, 자신이 직접 나서서 예술가들을 모으고 그 후원자가 되기를 청했다는 것은 그러한 비난과는 상관없이 인정받아야 할 부분이라 하겠다.

글에 죽고 글에 사는

선비들은 자신들의 불우한 처지나 친구나 지인들에 대한 애뜻한 감정을 시로 쓰거나 아니면 간단한 편지로 마음을 전하였는데, 요즘과 같은 편리한 세상과 달리 당시의 통신수단은 편지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통신 수단이었으므로 편지나 시 등과 같이 사람의 사상과 담긴 글에 대해 대단한 애착을 보였다. 이는 개인적인 글 뿐만 아니라 나라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명태조실록>과 <대명회전>에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권신 이인임의 후손으로 잘못 기재된 것을 바로잡는 ‘종계변무宗系辨誣’사건, 인조반정을 찬역으로 간주한 <명사明史>의 오류를 바로잡은 ‘명사변무明史辨誣’사건, 김택영의 역사뒤집어 보기 등은 글을 한 나라와 한 시대의 영혼이라고 생각한 선비들의 정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특히 종계변무 사건이나 명사변무 사건이 그 자체로 어떠한 역사적 의의를 가지는 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중국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독도망언과 관련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여유 있는 시간을 기다려 책을 읽고자 하면 한 해를 마칠 때까지 책을 읽을 수 있는 날이 없다. 여유가 있을 때를 기다려 남을 구제하려는 사람은 죽는 날까지 남을 구제할 시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여유가 없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옛사람은 “한가로울 때도 바쁜 한 순간이 있듯이 바쁠 때도 한가로운 한 순간이 있다”라고 하였다. 어찌 독서만이 그러랴? 무릇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말을 자신을 반성하는 도구로 삼아야 하리라. 이 이야기를 적어두어 옛일을 본받고자 한다.“(본서 제244쪽 참조)라고 한 박규수나 <사기史記>의 <백이전伯夷傳>을 1억 1만 3,000번을 읽은 김득신의  이야기는 이들이 얼마나 글을 숭상하였는지를 알게 한다. 그야말로 글에 살고 글에 죽은 삶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선비답게 산다는 것'이라는 제목보다는 '선비들의 삶과 인생'이라고 하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선비사회의 정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지은이가 보여주는 선비들의 삶은 그야말로 펄펄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모습이었다. 이 책을 통하여 기존에 알고 있었던 선비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보았다는 점에서 무척 뜻깊었으며, 오늘날 이러한 선비정신을 디지털 시대에 맞추어 재해석하고 우리들만의 고유문화로 승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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