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죽음의 교향곡 - 브루노 발터가 만난 구스타프 말러
브루노 발터 지음, 김병화 옮김 / 마티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군가가 한 사람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평생을 바라보기는 쉽지 않다. 그것도 당대의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여기 20세기 최고의 지휘자 중의 한 사람인 부르노 발터가 20세기 최고의 작곡가라 칭송받는 구스타브 말러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보이는 이야기를 글로 옮겼다.

말러는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등에 버금갈 정도로 많이 연주되고 있다. 그는 9개의 교향곡과 ‘대지의 노래’를 포함한 7개의 가곡을 완성했다. 그의 음악은 기존의 음악에 비해 모든 음악적 기법을 사용하였고 풍부한 감정의 묘사에 주력하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에 대해서는 찬반의 극단적인 견해들이 많이 눈에 띈다. 광신도적인 열정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기존의 다른 작곡가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18세 때 말러를 만나 평생 스승으로,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음악적 동료로 지내오면서 ‘인간 말러’를 바라보고 있다. 1부 ‘회상’에서는 말러와의 첫만남을 시작으로 함부르크, 슈타인바흐, 빈 등지에서의 말러의 삶을 그리고 있고, 2부 ‘성찰’에서는 오페라 감독, 지휘자, 작곡가로서의 말러와 그의 인품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특히 2부에서는 말러의 작품에 대한 발터 자신의 자세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어 말러를 이해하는데 있어 더없이 좋은 것 같다.

“폴리니와의 첫 면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거기, 극장의 사무실에 그가 있었어요. 몸집이 작고 창백하며 여윈 사람이었습니다. 길쭉한 얼굴에 고상한 이마를 칠흑 같은 머리칼이 에워쌌고, 안경 뒤의 눈은 아름다웠습니다. 얼굴에는 슬픔과 유머가 감도는 주름살이 져 있었고, 입을 열어 주위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시작하자 놀랄 만큼 다양한 표정이 얼굴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크라이슬러의 화신, 호프만 환상 소설의 젊은 독자가 상상한 것처럼 인상적이고 악마적이며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지휘자였습니다.”(본서 제25쪽 참조) 라고 지은이가 말러를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하는 장면은 그가 얼마만큼 말러에 대한 애정이 넘쳐 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시종일관 지은이의 말러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과 존경이 넘쳐 흐른다. 심지어는 그의 괴팍한 성질도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묘사되곤 한다. 이처럼 지은이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을 정도로 말러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 자체가 지은이가 바라본 말러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위와 같은 지은이의 시선은 글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은이인 발터의 음악적 견해를 이해하는데 일조하고 있어 두 거장들의 숨결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발터가 지휘하는 말러의 음악을 들으면서 다시 한번 이 책을 음미해보는 것도 이 책을 잘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

지은이가 “여러 해 뒤, 내 영혼에 대한 진지한 모색을 거치면서 그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했던 시기가 있긴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나는 말합니다. 그때 존재 깊숙한 곳에서 느꼈던 그대로 그의 영향은 나의 전 생애에 내린 축복이었다고.”(본서 제34쪽 참조) 라고 말한 것처럼, 말러가 지은이의 음악에 있어서 뿐 만 아니라 인생에 있어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인디언 말로 ‘친구’는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자'라고 하고, 이 세상에서 자신을 이해해 주는 진정한 친구가 한 사람있다면 그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라는 말도 있는데, 갑자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런 친구가 떠오른다. 많은 나이차이가 있음에도 인생의 친구로서 말러를 바라본 지은이의 애정어린 시선이 부럽기만 하다. 그런 든든한 인생의 후원자가 있어서 말러의 작품이 더 아름답고 훌륭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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