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심인 TV 세상
방송과 통신, 다운로드로 만나다
2007.01.24 / 송주연 기자 

다운로드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들의 중심은 ‘나’다. 일방적으로 정해진 콘텐츠들의 시간에 내가 맞추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볼 수 있도록 콘텐츠들을 내게 맞춘다. 바로 IPTV, 이는 컴퓨터가 아닌 초고속 인터넷과 연결된 TV 수상기로 다양한 콘텐츠를 다운받아 즐기는 TV 세상이다.

A : “주말에 <하얀거탑> 봤니? 정말 재미있던데.”
B : “그렇잖아도 인터넷에서 하도 재밌다고 해서 지금 보고 있는 중이야.”
A : “지금? 벌써 케이블에서 재방송해?”
B : “아니, 우리 집 IPTV 보거든.”


직장에 다니는 A 씨와 친구 B 씨의 전화통화 내용이다. 주말에 시간을 맞춰 TV 수상기 앞에 앉아 있었던 A 씨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정보를 일방향 전송하는 것’이라는 방송의 본래적인 의미를 따르는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 중 하나다. 반면 B 씨는 내보내는 영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가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방송 콘텐츠를 IPTV로 다운로드해 보는 주체적인 시청자다. 방송 시청의 행태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방송 시청 행태에 이 같은 변화를 가져온 것이 바로 IPTV(Internet Protocol Television)다. IPTV는 용어 그대로 방송 프로그램, 영화, 동영상 등 다양한 영상 콘텐츠들을 초고속 인터넷망을 이용해 TV 수상기로 내보내는 서비스다. TV 수상기에 셋톱박스를 설치하면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해 볼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원하는 때에 다운로드해 볼 수 있다. 컴퓨터를 통하지 않고 일반 TV 수상기와 리모컨을 이용해 시청하기 때문에 컴퓨터에 친숙한 세대가 아니더라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TV 시청과 동시에 전자상거래, 은행업무, 메신저, 영상전화 등 쌍방향의 다양한 통신서비스까지 누릴 수 있다. 때문에 TV 프로그램이나 영화 시청 외에도, 동영상 강의 등 쌍방향 통신이 요구되는 영역에서의 활용도가 매우 높다. 다양한 기능을 TV 수상기 안에서 처리해내는 IPTV는 방송 프로그램들을 시청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방송이면서도 동시에 인터넷 다운로드이기도 하고, 쌍방향 통신까지 가능한 통신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즉,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새로운 서비스이자 매체인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IPTV를 표방하며 서비스를 하고 있는 곳은 하나TV다. 하나로텔레콤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하나TV는 TV 수상기를 초고속 인터넷망과 연결시켜 국내 지상파방송은 물론, 할리우드 메이저영화사들의 영화까지 원하는 시간에 다운로드해 시청할 수 있다. H.264 코덱기술로 전송된 콘텐츠들을 다운로드 앤 플레이(Download & Play) 방식으로 셋톱박스에 저장해 일정기간 소장 및 반복시청이 가능토록 했다. 즉, IPTV에 가장 근접해 있는 서비스인 셈이다. ‘근접해 있다’ 함은 아직까지 기존 방송 프로그램들을 실시간으로 내보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실시간 방송까지 가능한 IPTV와 다르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는 실시간 방송 역시 가능하지만, 방송과 통신 사이의 개념정립과 법제화 문제로 아직 실시간 서비스는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하나TV PR팀 신동석 대리는 “법제화가 아직 이뤄지지 않아 현재는 기존 방송사 프로그램의 경우 실제 방송시간으로부터 12시간이 지난 후부터 서비스되고 있다”고 전한다. 때문에 IPTV의 핵심 중 하나인 TV를 보면서 동시에 쇼핑을 하고,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과 같은 쌍방향 서비스는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완전한 형태의 IPTV는 아니더라도, 골라보는 TV인 이 새로운 방송 서비스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은 높은 편이다. 지난 2006년 7월 24일 론칭한 후 6개월 만에 가입자 수 22만 명을 돌파했고, 올해 말이면 10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하나TV 측은 내다보고 있다. 이 외에도 또 다른 초고속 인터넷사업자인 KT 역시 메가패스TV를 2004년부터 실시 중이다. 하나TV와 같은 개념이지만, 다운로드 방식 대신 스트리밍 방식을 택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IPTV는 아직 본격적인 서비스가 시행되고 있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방송의 개념마저 바꿔놓고 있다. 일방적으로 불특정 다수를 향해 메시지를 보내는 개념이었던 방송이 이젠 개인의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 돼버린 것이다. 방송의 기본적인 개념을 뒤엎는 이 같은 특성 때문에 IPTV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이 무척 치열하다. 우선, 방송위원회 측에서는 IPTV가 방송 프로그램을 전송하는 종합 유선방송사업과 유사하므로 방송영역으로 포함시키고 방송법을 적용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하나로통신 등 IPTV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통신업계에서는 방송보다는 통신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방송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편성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방송으로 규정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하나TV가 서비스를 시작하면서부터 더욱 커진 이 같은 논쟁은 현재까지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태다. 입법 대안으로 제시된 내용도 제각각이다. 유승희 의원 등이 발의한 정보미디어사업법안에서는 IPTV를 방송도 통신도 아닌 제3의 영역으로 규정하고 국무총리실 산하에 정보미디어감독위원회를 설치해 따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김재홍 의원 등은 방송법 개정을 통해 IPTV를 인터넷 방송으로 규정하고 방송위원회의 허가사항을 준수해야 하며, 방송발전기금 역시 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또, 정보통신부는 광대역융합서비스법안을 만들어 IPTV에 대한 사전 규제를 최소화하고, 정통부와 방송위가 공동 관할을 통해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IPTV의 성격을 둘러싼 이 같은 논의는 현재까지 뚜렷한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만 IPTV를 계기로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이는 방송과 통신의 융합에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체제가 정립돼야 한다는 원칙에는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현대원 교수는 IPTV에 대해 "전송망 및 가입자들의 광대역화가 가속화되고 있고,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한 응용서비스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멀티미디어의 확산과 방송과 인터넷의 융합으로 일체형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며 기술, 시장, 서비스의 관점에서 모두 기다려왔던 서비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IPTV는 정보통신과 방송, 다운로드를 기반으로 한 IT기술의 발전이 한 지점에서 만나 탄생한 차세대 매체다. 또, 그동안 방송에 대해 수동적인 입장일 수밖에 없었던 시청자들을 능동적인 위치로 올려놓았다는 면에서도 의의가 크다 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파일을 다운로드받으면서 시작된 다운로드 세상은 컴퓨터와, 멀티미디어 매체들을 넘어서 아날로그 한 추억을 품은 TV까지 정복했다. 오래된 매체와 결합한 다운로드의 물결은 지금 방송과 통신에 대한 새로운 개념정립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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