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래쉬 메틀 THRASH

스래쉬 메틀은 헤어 메틀(Hair Metal), 데스 메틀(Death Metal) 등과 더불어 헤비 메틀(Heavy Metal)이라는 장르 안에 들어가 있다.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 사이에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생겨났으며 서사적인 곡 구성과 장엄한 멜로디 등은 당시 영국으로부터 유입되기 시작한 뉴 웨이브 오브 브리티쉬 헤비 메틀(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에 영향 받은 것이고 빠르고 현란한 비트는 하드코어 펑크(Hardcore Punk)에서 빌려온 것이다. 스래쉬 메틀은 같은 시기 라이벌 장르라 할 수 있었던 '스피드 메틀(Speed Metal)'과 평행선을 그으며 전성기를 구가해나갔다.


스래쉬 메틀은 저음으로 일관하는 빠르고 복잡한 기타 리프와 간혹 등장하는 고음의 기타 애드립, 그리고 피킹하는 손바닥 모서리로 줄을 뮤트시켜(Palm Muting) '징징'대는 소리(전문 용어로 'Chugging Sound'라고 함.)를 내도록 하는데서 사운드의 정체성을 갖는다. 또 앞서 말한 '빠른 비트'는 두 개의 페달(Double Bass)로 1/2 비트를 주로 쓰는 드럼에 의해 표현되는데 덕분에 리듬 파트 짝궁인 베이스 기타도 손가락으로 치는 것(Fingering)보다는 속도 내기에 유리한 피킹이 일반적이다.


설이 분분하지만 위에 설명된 느낌의 리프, 그러니까 '최초의 스래쉬 메틀 리프'라 하면 보통 영국 헤비 메틀 밴드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의 71년작 <Paranoid>의 'Paranoid'와 75년 앨범 <Sabotage>에 수록된 'Symptom Of The Universe'의 리프를 꼽는다.(혹자는 그들의 세 번째 앨범 <Master Of Reality>의 'Into The Void'나 'Children Of The Grave'를 꼽기도.) 또한 국내에서도 유명한 영국 하드락 밴드 퀸(Queen)의 74년작에 있는 'Stone Cold Crazy'도 빠르기라는 측면에서 스래쉬 메틀에 큰 영향을 준 곡으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저러한 것을 바탕으로 해 70년대 후반부터는 이제 본격적인 스래쉬 메틀 곡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는데 그 최초는 바로 영국 런던 출신 헤비 메틀 밴드 모터헤드(Motorhead)의 79년작 <Overkill>의 'Overkill'이라는 곡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이 곡 제목은 나중에 미국 뉴욕 출신의 스래쉬 메틀 밴드 오버킬(Overkill)의 밴드 이름에 그대로 대입되기도 한다.




80년대가 열리며 남부 캘리포니아 출신 밴드 레더 챰(Leather Charm)은 'Hit The Lights'라는 곡을 들고 나온다. 하지만 밴드는 곧 해체되고 메인 송라이터였던 제임스 헷필드(James Hetfield)는 덴마크 출신의 드러머 라스 울리히(Lars Ulich)를 만나 새로운 밴드를 모의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의 메틀리카다. 82년 4월에 메탈리카는 <Power Metal>이라는 첫 데모를 발매하였고 7월에 <No Life 'til Leather>라는 데모를 이어 내놓았다.
좋은 반응에 힘을 얻어 밴드는 83년도에 대망의 데뷔작 <Kill 'Em All>을 발매, ‘전설’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 당시 메틀리카와 함께 헤비 메틀 씬을 주도한 밴드로는 최초의 스래쉬 메틀 데모로 기록되어 있는 <Red Skies>의 주인공 메틀 처치(Metal Church)와 앞서 언급된 오버킬, 그리고 메틀리카의 리드 기타리스트로 활약하다 밴드를 등진 데이브 머스테인(Dave Mustaine)의 밴드 메가데스(Megadeth)정도가 있었다.


필드에 몇몇 괜찮은 밴드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틀이 잡힌 스래쉬 메틀은 84년, 오버킬의 두 번째 데모 <Feel The Fire>와,
같은 미국 출신 밴드인 슬레이어(Slayer)의 미니 앨범 <Haunting The Chapel>이 발매되면서 비상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에 나온 역사적인 앨범들은 따로 있으니 미국 스래쉬 메틀 밴드 엑소더스(Exodus)의 데뷔작 <Bonded by Blood>와 슬레이어의 두 번째 앨범 <Hell Awaits>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이 두 장의 앨범은 스래쉬 메틀의 속성을 더욱 어둡고 무겁게 이끌어간 것으로 평가되고 있어 그 의미가 더 크다 하겠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독일에서는 뒤에 거물이 될 스래쉬 메틀 밴드 크리에이터(Kreator)가 <Endless Pain>이라는 데뷔 앨범을 발매하였고 남미땅 브라질에서도 세풀투라(Sepultura)라는 무시무시한 밴드가 <Bestial Devastation>이라는 미니 앨범을 발매해 스래쉬 메틀의 국제적 영향력을 실감케 하였다. 뿐만 아니라 캐나다에서도 대못이 박힌 갑옷을 입고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유독시스(Eudoxis)라는 밴드가 데모 <Metal Fix>를 발매하면서 스래쉬 물결에 합류하였고 메가데스의 데뷔 앨범 <Killing Is My Business... And Business Is Good!> 역시 같은 시기에 발매되며 스래쉬 메틀의 전성시대를 예고하였다.


80년대 중반은 헤비 메틀의 전성기였을 뿐 아니라 스래쉬 메틀의 분기점이 된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86년에는 스래쉬 메틀계에 길이 남을 '명반'들이 많이 나왔는데 슬레이어의 <Reign In Blood>, 메틀리카의 <Master Of Puppets>, 메가데스의 <Peace Sells... But Who's Buying?>, 미국 L.A 출신 스래쉬 메틀 밴드 다크 앤젤의 <Darkness Descends>, 그리고 스래쉬 메틀에 훵키 그루브를 접목시킨 미국 출신의 뉴클리어 어솔트(Nuclear Assault)가 발매한 <Game Over> 등이 자웅을 겨루었다. 한편 호주에서도 슬레이어를 닮은 홉스 앤젤 오브 데스(Hobbs' Angel Of Death)라는 밴드가 등장하는 등 스래쉬 메틀의 열기와 유행은 날이 갈수록 세계를 무대 삼아 더 멀리 퍼져만 갔다.


이듬해인 87년에도 명반 행진은 계속 이어져 뉴욕 출신 스래쉬 메틀 밴드 앤스랙스(Anthrax)가 밴드 최고 명반으로 인정받는 <Among The Living>을 발매해 슬레이어, 메틀리카, 메가데스와 함께 '스래쉬 4인방' 으로 군림하며 락필드를 이끌어 나갔다. 그리고 87년은 비록 ‘4인방’까지는 못됐지만 스래쉬 메틀 마니아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캘리포니아 출신의 테스타먼트(Testament)가 데뷔작 <The Legacy>를 발매한 해이기도한데 그들이 썼던 가사가 대부분 초자연적이고 '사타닉'한 것들이어서 테스타먼트는 한 때 '데스 메틀 밴드'로 오인되기도 하였다.


스래쉬 메틀의 80년대는 메틀리카의 88년 앨범 <...And Justice For All>과 테스타먼트의 89년작 <Practice What You Preach>같은 명반들을 더 남기고 저물었다. 그리고 90년대 초반에 와서도 그 열기는 쉬 식지 않았다. 이 역시 ‘스래쉬 4인방’이 있었기에 가능했는데 메틀리카의 91년작 <Metallica>, 메가데스의 90년작 <Rust In Peace>, 앤스랙스의 90년작 <Persistence Of Time>, 그리고 슬레이어의 90년작 <Seasons In The Abyss>가 모두 차트 및 판매고, 그리고 작품성에서 두루 좋은 성적을 거두어 불안했던 90년대를 활짝 열어준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또 하나의 영웅이 있었으니 바로 텍사스 출신의 4인조 밴드 판테라였다. 한마디로 ‘짧고 굵은’ 스래쉬 메틀 사운드를 무기로 헤비 메틀 씬을 초토화시킨 이들은 여러 면에서 혁신적이었던 메이저 레이블 데뷔작 <Cowboys From Hell>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 밴드가 된다. 헤비 메틀 밴드 중에는 메틀리카만이 할 수 있을 줄 알았던 빌보드 1위도 94년작 <Far Beyond Driven>으로 척척 해낸 판테라. 핵심 멤버 다임백 대럴(Dimebag Darrell)의 사망으로 인해 이젠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밴드가 됐지만 그 영향력만큼은 여전히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는 헤비 메틀 밴드들 사이에서 전설로서 살아 숨쉬고 있다.


90년대 초반을 넘어서 중반으로 치달아갈 때쯤 세계 락 필드는 얼터너티브 락이라는 새로운 조류를 맞아들여 불과 2~3년 전만 해도 잘 나갔던 스래쉬 메틀을 졸지에 ‘구닥다리’로 만들어버렸다. 믿었던 ‘4인방 효과’도 시대 흐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는지 네임 밸류로 차트 상위에 든 것 말고는 특별히 해낸 것이 없었다. 이른바 ‘스래쉬 메틀의 굴욕’이 시작된 것이다.


한번 뒤바뀐 흐름은 관성의 법칙에 의해 그대로 흘러가기 마련. 지금도 여전히 영국과 미국 쪽에서는 얼터너티브 사운드가 각광받고 있으며 헤비 메틀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스래쉬 메틀도 ‘정통’ 에만 집착하기보다는 스웨덴 예테보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멜로딕 데스 메틀(Melodic Death Metal)이나 미국의 메틀코어(Metalcore) 등으로 자체 변조되어 그 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물론 80년대를 호령했던 밴드들이 모두 ‘죽은 것’은 아니다. 스래쉬 4인방 중 슬레이어는 얼마 전 신보 <Christ Illusion>을 발매한 뒤 활동에 들어갔고 메틀리카, 메가데스도 조만간 새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다. 스래쉬 메틀 1세대인 오버킬, 테스타먼트도 각각 신보 발매와 원년 멤버 재결성 투어 등으로 옛 명성을 되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영한사전을 보면 ‘Thrash'의 뜻을 ’마구 때리다‘, '격파하다’, ‘파도를 헤쳐 나아가게 하다’, ‘두드리다’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정말 그렇다. 스래쉬 메틀은 두드리고 마구 때려 격파를 할 것처럼 내달리는 드럼과 파도를 헤쳐 나가듯 시원스러운 기타 리프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장르 이름에 이미 장르의 성격이 모두 녹아있는 스래쉬 메틀. 뭔가 답답하고 짜증이 날 때 좋은 친구가 되어줄 음악이니 잘 챙겨두면 나중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 음악 포털 사이트 도시락(www.dosirak.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글 / 김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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