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컨템포러리 색소폰의 발자취

인간의 목소리를 닮은 소리, 가장 감성적인 톤, 그리고 가장 재즈적인 악기. 색소폰 예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모든 색소폰 연주가 재즈라 할 수 없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색소폰은 대중들에게 재즈의 느낌을 선물했다. 컨템포러리 재즈 색소포니스트, 굳이 재즈에 한정되지 않은 대중적인 연주음악을 소개했던 이 부류의 연주인들은 예술적 깊이가 담긴 연주의 내공만큼이나 이들의 연주에 환호하는 팬들의 성원에 화답했다. 갑자기 스포라이트를 받게 된 재즈 색소포니스트들의 등장은 재즈를 상업적으로 변질시킨다는 평자들의 혹독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아름드리 친숙한 색소폰 선율을 통해 어느덧 대중들은 재즈의 감성을 체득할 수 있게 됐다.


1.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 흑인대중음악 R&B를 인기 연주음악으로 소개

1970년대 초, 재즈 퓨전의 창궐은 재즈와 록, 팝 음악간의 폭넓은 교류의 장을 제시해줬다. 이런 분위기에서 당시 팝 음악의 주류침공을 시도한 알앤비를 재즈에 접목시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 첫 주역은 바로 색소포니스트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였다. CTI 레이블의 설립자인 크리드 테일러 사단의 막내로 데뷔한 그는 모타운 출신 가수들의 인기곡을 감미로운 색소폰 연주로 소개했다. 대표적으로 마빈 게이의 'Inner city blues(1971)' , 빌 위더스의 'Ain't no sunshine' (1971), 스티비 원더의 'You are a sunshine of my heart'(1972)를 색소폰 연주로 소개하며 빌보드 알앤비 차트에 오른다. 그의 대중 친화 전략은 지금껏 대표작으로 칭송되는 앨범 < Mr. Magic > (1975)의 골드로 이어졌고 데뷔 10년째를 맞은 1980년작 < Winelight > 에 소개된 'Just the two of us'로 정점에 다다른다. 2개의 그래미 상 수상과 52주간 빌보드 앨범 차트에 등재됐던 < Winelight >의 부상으로 그로버 워싱턴은 재즈 뮤지션으로서 최고의 스타덤을 맛본다.

2. 데이빗 샌본-소울색 짙은 알토 색소폰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스타덤을 목격한 대중들은 비슷한 시기 그에 필적한 또 하나의 백인 색소포니스트의 등장에 환호한다. 바로 알토 색소포니스트 데이빗 샌본. 팝가수 스티비 원더의 'Tuesday heartbreak'(1972) 데이빗 보위의 'Young American'(1975)에서 소울색 짙은 울림을 선사한 스튜디오 세션맨으로 줏가를 올렸다. < Takin' off > (1975)을 시작으로 컨템포러리 재즈 뮤지션으로의 처녀비행을 감행한 그는 팝 뮤지션들과의 오랜 세션 경험을 바탕으로 재즈를 대중적으로 해석해내는 발군의 능력을 선보인다. 훗날 어반(Urban) 사운드로 통칭된 그의 연주는 재즈의 색체가 가미된 팝 연주의 선두격으로 기억된다. 앨범 < Hideaway > (1980)로 빌보드 알앤비 차트 1위에 오르며 인기 전선에 합류한 그는 이어지는 히트작 < Voyer > (1981)로 그래미 컨템포러리 부문이란 대어를 낚는다. 이후 데이빗 샌본은 1980년대 내내 컨템포러리 재즈계의 절대 강자로 군림한다.

3. 케니 G - 팝 연주음악의 황제로 등극하다.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와 데이빗 샌본의 부상은 색소폰 연주 음악이 대중들에게 충분히 어필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제 남은 건 흑인대중에게 한정된 알앤비의 장벽을 뛰어넘어 범세계적으로 어필할 색소폰 스타를 찾는 일이다. 팝가수 휘트니 휴스턴을 발굴한 아리스타 레코드의 사장 클라이브 데이비스는 팝 연주 음악의 가능성을 일찍이 간파했고 그 꿈을 실현할 주역으로 색소포니스트 케니 G를 소개한다.
예상은 적중했다. 그의 첫 앨범 < Duotones > (1986)의 수록곡 'Songbird'는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라는 기염을 토한다. 애무하듯 귀에 속삭이는 소프라노 색소폰의 울림은 이후 케니 G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고 컨템포러리 재즈라는 이름 대신 케니 지의 연주 앞엔 '스무드 재즈'라는 이름이 하사된다.
케니 G의 인기는 인종과 국경을 넘어섰다. 'Going home'(1989)과 영화 < 다잉 영 > 의 메인 타이틀 'Dying Young'(1991)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권에서 케니 G 선풍은 뜨거웠다. 신문, 방송 등의 매체는 너도나도 케니 G의 인기를 대중적인 재즈의 표상인 냥 홍보했고 그 여파는 여기저기에서 나타났다. 90년대 가요 음반 세션에서 자주 등장하는 색소폰 연주는 가요가 팝 사운드로 향하게 하는 성과를 가져왔고 탤런트 차인표(1994)의 부상은 색소폰 연주를 일상의 교양으로까지 자리 매김 시킨다. 아울러 케니 G의 영향을 받은 색소포니스트 대니 정의 등장(1998) 또한 주목할 만하다.

4. 그들의 후예는 누구?

상기 언급한 컨템포러리 재즈 스타의 등장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지금까지 진한 영향력으로 남아있다.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유산은 건반주자 밥 제임스(Bob James)의 앨범 < 12 > (1984)를 통해 데뷔한 색소포니스트 커크, 휄럼(Kirk Whalrum)으로 이어졌고,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음악성을 빼어 닮은 내지(Najee)의 등장 또한 환호 받았다. 알토 색소폰의 진한 울림을 선사했던 데이빗 샌본의 흔적은 1990년대 팝스타로 나선 데이브 코즈(Dave Koz)와 캐나다 출신 여성 색소포니스트 캔디 덜퍼(Candy Dulfer), 워렌 힐 (Warren Hill)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연주 음악을 팝의 경지로까지 승화시킨 케니 G는 재즈를 넘어 가요,팝, 월드 뮤직, 클래식 등 전 장르의 음악에 영향을 준다.

클럽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카리스마적인 울림을 선사했던 색소폰은 어느덧 감미롭고 가슴깊이 스며드는 아름드리 선율 악기로 인식됐다. 컨템포러리, 스무드란 꼬리표를 달고 나온 재즈 색소폰. 분명한건 시대에 흐름에 발맞춰 여타 장르와 지속적인 만남을 가져온 것이 재즈고 그 선봉장이 바로 색소폰이었다. '가장 재즈적인 악기' 색소폰은 지금 이순간도 만인이 사랑하고 원하는 '팝'의 옷을 입고 라디오 전파와 방안의 스피커를 통해 재즈의 느낌을 전파해 갈 것이다.

  2006/12 정우식 (jasbso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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