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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변증법 ㅣ 한길그레이트북스 33
테오도르 아도르노 지음 / 한길사 / 1999년 9월
평점 :
아도르노의 글 읽기는 상당히 어려웠다.특별히 I.Kant에 대한 그의 노골적인 비판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독자인 나의 칸트 공부에 대한 부족했기 때문이다.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 과 '실천 이성 비판'에 대한 논의들에서 나의 답답함은 그지 없었다.
아도르노에게 있어서 인간 개인에게 가장 끔찍한 일은 인간의 야만성을 경험한 세계대전이었던 것 같다. 그에게 있어서 문제는 "인류의 악몽이 어떻게, 왜 야기되었는가?" 이었던것 같다. 그는 위계적인 인과 구조로만 설명하기에는 그 원인을 지적한다는 것이 어려움을 느꼈던것 같다.
그러하기에 그의 글 쓰기는 짜임 구조라는 독특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의 글들은 단편적인 이라는 느낌을 줄만큼 글 하나씩 분리되어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어느새 읽어 본다면 그것은 일종의 그물망처럼 이 곳을 두드리면 다른 곳에서도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글의 논리 구조는 짜임새 있게 되었진다. 그것은 그 자신이 파악한 문제들이 결코 기계적인 인과구조로 설명할수 있는 것들이 아님을 간파 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래서 시대의 원인만으로도 돌리지 않고, 개인의 원인만으으로도 일방적인 논리를 펼치지 않는다.
이러한 글의 짜임 구조 속에서 그는 인간의 지배에 대한 문제를 중심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인간의 지배에는 추상화라고 하는 것이 존재한다. 추상화(abstract)는 개별 사물의 공통적인 속성을 뽑아서 만드는 구체적인 이성의 산물이다. 그것은 구조와 논리를 세우는데 적합하며, 개별적인 것들을 한 곳으로 모아 전체로 끌어들이는데 아주 유용한 사유의 도구이다. 여기에서 추상화의 작업은 개별 사물의 공통되는 부분을 뽑아 각 개체를 규정하기에, 그것은 전체와 사물의 동일시를 유도하게 되어진다. 이러한 동일시의 논의는 개별 사물의 비동일성인 부분을 없앤다. 비동일성을 없애므로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폭력적인 지배를 시작한다. 비동일성에 대한 끊임없는 규정에 대한 욕망, 개념화가 바로 지배의 핵심이 된다. 아도르노는 이 개념화에 대한 투쟁을 자신의 비동일성과 비규정성의 개념으로 넘어서고자 한다.
이점에서 그는 헤겔을 비판하는것 같다. 헤겔은 변증법으로 인해서 사물의 비동일성의 부분의 비규정적인 부분이 변증법적인 것으로 하나이며 전체로 통합되어져 간다고 한다. 그의 정신현상학 논의는 즉자(an sich)한 존재에게로 대자(fur sich) 존재가 그것을 통해서 즉자 대자적인 존재로 나아간다고 이야기 한다. 바로 헤겔의 정반합의 논리이다. 이 방법론은 시간의 역사속에서 펼쳐지는 논의이며, 이 논의는 세계화 정신에 기여하며, 이 세계화 정신은 인간의 비규정적인 부분을 부정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그리고는 변증법적인 방법을 통하여 긍정적인 세계화 정신 곧 전체성으로 나아간다고 Hegel은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아도르노는 이 부분을 맹렬히 비판한다. 이러한 헤겔의 변증법적인 사태가 전체성을 야기하며, 비동일성을 학살하려는 부분으로 이어지는 지배의 탐욕스런 논의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칸트에 대한 비판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은 이성이 형이상학을 파악할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출발한다. 그 논의 종국에는 이성이 파악할수 있는 것과 파악할수 없는것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시도하며, 과학적이며 철저한 분석과 종합을 시도한다. 이러한 부분에서 칸트는 형이상학을 부정하고, 개별화를 시도했다고 찬양을 받을수 있었을 것이나, 사실 또다른 의미에서 칸트는 형이상학을 긍정했던 것이다. 개별화에 대한 그의 시선은 사실상, 선험적인 것에 대한 경험적인 요소의 종합으로 또 다시 지식의 전체성을 추구하며, 그 안에서 사물을 규정하고자 했던 또 다른 형이상학자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칸트는 이성 비판을 통해 형이상학 지식에 대한 인간의 한계를 구술하고 있지만, 그는 결코 형이상학을 포기하였던 것이 아니었다. 비판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는, 또 다른 형이상학을 내어놓고는 그것에 종합되지 않는 비동일자들은 철저하게 짓밟아버렸던 것이다.
아도르노의 논의는 전체성에 기초한 지배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 그 논점이 있다. 지배는 동일시에 대한 욕구이다. 동일시 되지 못하는 모든 것들은 척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치와 대중문화는 비판되어지는 것이다. 동일시 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배척과 처결. 아도르노가 보기에는 그런 것들은 교묘하며 탐욕스런 형이상학자들의 조무래기에 불과했다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