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8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종길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 살이는 참으로 복잡하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관계의 끈들이 이어지고, 그 끈들은 감정이라고 하는 이상한 실타래들로 묶인다. 폭풍의 언덕은 말 그대로 wuthering heits 가에서 벌어지는 폭풍과 같은 일들이다. 자연의 섭리가 그 곳에 강렬한 폭풍이 몰아 닥치는 것처럼, 인간 관계에서도 그리해야만 했을까?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을 좋아한다. 캐서린은 현실적인 이유로 사랑의 선택을 하지 않는다. 히스클리프는 떠나고 그의 마음에는 깊은 상처가 남는다. 그 상처는 분노로 표현되어지며, 웨더링가와 에드거에게로 표출된다.

시대는 용서가 미덕인것으로 포장되어진다. 그러나 사랑에 배반 당한 자는 용서를 해야만 아름다운 것인가? 히스클리프의 행동을 두고 야만적이다, 비도덕적이라는 화살을 돌릴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겪는 아픔은 누구에게로 돌려야 하는것인가? 자신의 내면의 나약함으로 그 화살을 돌려야 하는가? 캐서린은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고 싶었고, 또한 히스클리프를 소유하고 싶었다. 이중적인 소유와 선택앞에서 모호한 선택을 통한 자신의 합리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그녀는 어느것도 이루지 못한다. 부와 명예의 가정도 온전히 이루지 못하며, 사랑도 이루지 못한다. 무엇이 그녀를 가로 막았던 것일까? 불행히도 그녀는 히스클리프를 자유롭게 놓아주지를 못한다. 그것이 히스클리프의 잘못이었던가.

히스클리프의 모습에서 나는 오늘 날의 상처받은 현대인을 본다. 사랑하지만 거절 당하는 아픔과 상대방의 미묘한 감정의 소유욕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외관이 미끈하며 경제적인 안정을 주기에 선택한 것은 아니었던가.

폭풍의 언덕의 핵심은 히스클리프가 아니었고, 캐서린의 자신을 속인 스스로에 대한 범죄를 기점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범죄를 알지 못한채, 또 다시 히스클리프를 소유하고 싶어한다. 불행하지만 히스클리프는 한 여인의 참혹한 범죄의 희생자에 불과했던 것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정변증법 한길그레이트북스 33
테오도르 아도르노 지음 / 한길사 / 199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도르노의 글 읽기는 상당히 어려웠다.특별히 I.Kant에 대한 그의 노골적인 비판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독자인 나의 칸트 공부에 대한 부족했기 때문이다.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 과 '실천 이성 비판'에 대한 논의들에서 나의 답답함은 그지 없었다.

아도르노에게 있어서 인간 개인에게 가장 끔찍한 일은 인간의 야만성을 경험한 세계대전이었던 것 같다. 그에게 있어서 문제는 "인류의 악몽이 어떻게, 왜 야기되었는가?" 이었던것 같다. 그는 위계적인 인과 구조로만 설명하기에는 그 원인을 지적한다는 것이 어려움을 느꼈던것 같다.

그러하기에 그의 글 쓰기는 짜임 구조라는 독특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의 글들은 단편적인 이라는 느낌을 줄만큼 글 하나씩 분리되어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어느새 읽어 본다면 그것은 일종의 그물망처럼 이 곳을 두드리면 다른 곳에서도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글의 논리 구조는 짜임새 있게 되었진다. 그것은 그 자신이 파악한 문제들이 결코 기계적인 인과구조로 설명할수 있는 것들이 아님을 간파 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래서 시대의 원인만으로도 돌리지 않고, 개인의 원인만으으로도 일방적인 논리를 펼치지 않는다.

이러한 글의 짜임 구조 속에서 그는 인간의 지배에 대한 문제를 중심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인간의 지배에는 추상화라고 하는 것이 존재한다. 추상화(abstract)는 개별 사물의 공통적인 속성을 뽑아서 만드는 구체적인 이성의 산물이다. 그것은 구조와 논리를 세우는데 적합하며, 개별적인 것들을 한 곳으로 모아 전체로 끌어들이는데 아주 유용한 사유의 도구이다. 여기에서 추상화의 작업은 개별 사물의 공통되는 부분을 뽑아 각 개체를 규정하기에, 그것은 전체와 사물의 동일시를 유도하게 되어진다. 이러한 동일시의 논의는 개별 사물의 비동일성인 부분을 없앤다. 비동일성을 없애므로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폭력적인 지배를 시작한다. 비동일성에 대한 끊임없는 규정에 대한 욕망, 개념화가 바로 지배의 핵심이 된다. 아도르노는 이 개념화에 대한 투쟁을 자신의 비동일성과 비규정성의 개념으로 넘어서고자 한다.

이점에서 그는 헤겔을 비판하는것 같다. 헤겔은 변증법으로 인해서 사물의 비동일성의 부분의 비규정적인 부분이 변증법적인 것으로 하나이며 전체로 통합되어져 간다고 한다. 그의 정신현상학 논의는 즉자(an sich)한 존재에게로 대자(fur sich) 존재가 그것을 통해서 즉자 대자적인 존재로 나아간다고 이야기 한다. 바로 헤겔의 정반합의 논리이다. 이 방법론은 시간의 역사속에서 펼쳐지는 논의이며, 이 논의는 세계화 정신에 기여하며, 이 세계화 정신은 인간의 비규정적인 부분을 부정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그리고는 변증법적인 방법을 통하여 긍정적인 세계화 정신 곧 전체성으로 나아간다고 Hegel은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아도르노는 이 부분을 맹렬히 비판한다. 이러한 헤겔의 변증법적인 사태가 전체성을 야기하며, 비동일성을 학살하려는 부분으로 이어지는 지배의 탐욕스런 논의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칸트에 대한 비판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은 이성이 형이상학을 파악할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출발한다. 그 논의 종국에는 이성이 파악할수 있는 것과 파악할수 없는것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시도하며, 과학적이며 철저한 분석과 종합을 시도한다. 이러한 부분에서 칸트는 형이상학을 부정하고, 개별화를 시도했다고 찬양을 받을수 있었을 것이나, 사실 또다른 의미에서 칸트는 형이상학을 긍정했던 것이다. 개별화에 대한 그의 시선은 사실상, 선험적인 것에 대한 경험적인 요소의 종합으로 또 다시 지식의 전체성을 추구하며, 그 안에서 사물을 규정하고자 했던 또 다른 형이상학자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칸트는 이성 비판을 통해 형이상학 지식에 대한 인간의 한계를 구술하고 있지만, 그는 결코 형이상학을 포기하였던 것이 아니었다. 비판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는, 또 다른 형이상학을 내어놓고는 그것에 종합되지 않는 비동일자들은 철저하게 짓밟아버렸던 것이다.

아도르노의 논의는 전체성에 기초한 지배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 그 논점이 있다. 지배는 동일시에 대한 욕구이다. 동일시 되지 못하는 모든 것들은 척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치와 대중문화는 비판되어지는 것이다. 동일시 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배척과 처결. 아도르노가 보기에는 그런 것들은 교묘하며 탐욕스런 형이상학자들의 조무래기에 불과했다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험으로서의 예술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25
존 듀이 지음, 이재언 옮김 / 책세상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예술에 대한 많은 오해들 중의 한가지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삶의 접근성이다. 예술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 공간에서 구현되어지고 밝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 이라는 것이 어느덧 극장으로 들어가고 박물관에 위치하게 된다.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 예술을 통한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내용이 1,2,3장만 발췌되어진것이라서, 듀이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파악할수 없다는 것이 많이 아쉬운점이다. 역자의 해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 책으로 듀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듯 싶다. 이 책을 구입하느니, 차라리 완전 번역판이나 원서가 있다면 그것을 보는 것이 이해의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인류의 빈곤과 가난은 대륙별로 크나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격차의 원인을 찾는 다는 것이 국가 시민의 인종적인 원인에 의해서 그 원인이 설명이 되어졌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진화론에 근거해져서 자연 선택에 따른 우월한 인종이 더 많으 부를 소유했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고결한 도덕성과 강인한 정신력등과 같은 현대의 의미에서도 통용 되어지는 고귀한 덕성들이다. 그러한 것들은 자신의 부를 설명함에 있어서 유럽인들의 우월성을 찬미하는데 시간이 다 가버리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인종주의적인 우월에 근거한 내용을 비판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해서 나는 심한 모순감을 느낄뿐이다. 왜냐하면, 진화론에 근거한 인종주의의 우월성을 비판하고자 했지만, 그 역시도 진화론에 근거한 설명을 시도함으로써 도리어 합리화하는 모습이 나타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예를 들면, 세균에 의해서 북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이 스페인 병사의 200명에게 정복되어졌다는 내용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진화론적인 세균에 더 강한 존재가 되었으니, 생물학적으로 우월한건 아니냐라는 질문을 던지면, 저자는 무엇이라 할지 궁금하기만 할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의 기원 - 최첨단 경제학과 과학이론이 밝혀낸 부의 원천과 진화
에릭 바인하커 지음, 안현실.정성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부의 역사적인 탐방이라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곧장 이 책이 부의 사회학적인 관점의 접근이 아니라, 경영이라는 관점에서 부라는 것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한 일종의 경제학 내지 경영학 서적에 해당하는 책이겠다.

나에게 주어진 몇가지 핵심적인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

첫째, 철저한 현실 적응주의자가 되어라. 미래를 예측한다는 경제학자들의 노고는 불행하게도 빗나가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들이 주장했던 과학적이고 예측적인 모델을 제안한 사람들은 유럽권 계열의 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여러가지 주장을 하지만, 그들이 찾고 싶었던 것은 경제의 예측과 질서였던것 같다. 그것은 기독교 세계관이 가지고 있는 독특성이라고 할수 있겠는데, 거기에서 말하는 신정(神政)의 합리성을 인간세계에서 찾고자 했던것 같다. 결과는 경제학자들의 참담한 패배였다. 그러한 가운데서 나온것이 복잡적응 이론이다. 이것은 합리적으로 움직이는 경제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보다는 주어진 현실을 직시하고 놀라운 적응속도를 보여야만이 살아 남을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래를 예측하고 기다리기 보다는, 현실을 빨리 파악하고, 계획을 세우고, 변화를 받아들이며 살아라는 것이다.

둘째는, 합리성의 추구이다. 경영은 결국 무질서한 게임이 아니다. 경영을 하는데 있어서 3가지를 있지 말라고 한다. 그 중에서 비가역성, 엔트로피의 저하, 현실 적응이다. 경영이라는 것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사회적 기술과 물리적인 기술을 이용하여 경제성으로까지 연결시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것을 하기위해서는 흩어져 있는 무질서한 엔트로피의 세계를 경영을 통하여서 무질서도를 하락시켜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셋째는, 변화를 적응하라는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 말라, 변화를 즐겨라 라는 것만으로 되지는 않는다. 철저하게 변화를 인식하고, 배우고, 연구하고, 도전하고 시도해야 한다. 그래야만이 부를 얻을수 있고, 획득할수가 있게 된다. 이것을 잊어 버린다면, natural selection, 자연 선택에서 버림받는 현실이 되고 마는 것 아니겠는가.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이 책은 좋은 경영관을 설립하는데 도움을 준다. 번뜩이는 혜안들이 내가 현실을 얼마나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과 미래를 위해서 자기 투자와 노력을 해야하는지를 보여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