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바이처에 대한 이야기는 기독교내에서 많은 회상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보여준 의사로서의 헌신적인 삶의 봉사한 자세는 우리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특별히 개신교 안에서는 그의 이단적인 사상으로 인하여 그가 과연 천국행 티켓을 거머쥐어는가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고, 그로인해 그를 폄하하는 말도 적잖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과연 나는 무엇을 봉사하는 삶을 걷기 위해 무엇을 포기할수 있는가? 그는 오르간과 신학과 철학과 교수직을 포기해야만 했다. 앉아서 떠들기에 급급한 우리들은 과연 무엇을 포기할 수 있었던가?

나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길을 걷고자 하는 나 자신은 과연 무엇을 포기하였던가? 나 자신이 애태우며 근심 걱정하는 모든것은 내 마음속에 포기하지 못하는 욕망때문이다. 그 욕망을 나는 버리지 못하였으므로 나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는 인간에 대한 사랑때문에 자신의 가장 귀중한 것들을 버렸고 나는 버리지 못하였다. 그의 인생사를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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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정신현상학을 읽고 나서 나의 충격은 매우 심하였다. 내가 책을 읽고나서 이 사람은 천재다라고 내 입에서 저절로 탄복하였던 사람은 플라톤, 칸트 그리고 마지막 헤겔이다.

그의 사상에 대해서 현대에 들어와서는 비판을 하고 많은 의혹을 보내는 눈길을 지울수가 없다. 그러나 즉자대자적인 존재가 발전하여 최종적인 완성을 향하여 나간다는 그의 사상은 정말 놀랍기만 하다.

그의 사상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 역시 작지 않을거란 생각이 든다. 특별히 한국에서도 유명한 튀빙엔 신학교 출신인 헤겔은 그의 출신의 덕분인지는 몰라도 내가 알기로 그곳은 헤결 우파 신학교로 알고 있다.

그 사람의 사상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그의 놀라운 학자적인 자세는 정말 존경하고 배울만한 자세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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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trand Russell

우연찮게 집어 들었던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의 인식론의 관한 진지한 사유의 세계로 나를 처음으로 인도하여 주었던 사람이다.  그를 통하여 처음으로 철학이라는 학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플라톤, 데카르트, 데이브드 흄, 라이프니츠 칸트 그리고  조지 버클리 등의 철학자 이름을 나에게 처음으로 가르침을 받았다.

인식론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나는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 역시 러셀의 덕분이라는 것을 나는 부인하고 싶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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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4-01-02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러셀의 역서 "게으름에 대한 찬양" 1997, 사회평론 을 읽었는데, 러셀을 다시 보게 되었답니다. 특히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 대한 생각거리를 많이 주더군요. 좋은 읽을 거리 있으면 추천부탁드려요. 여울마당. 글보고 흔적남깁니다.
 

진정한 개인주의를 찾아서....

한국 사회에서 보여지는 여러 집단에 대한 광기를 보여주고 진정으로 한 개인이 존중받고,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를 꿈꾸는 사람이다.

특별히 나에게는 한국사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확인하고 점검하게 해주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내 자신이 버리고자 했던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으로 바라보고, 진심어린 걱정을 가지고 있는 박노자 교수님.

도리어 한국인인 자신을 버리고자 했던 나 자신을 부끄럽게 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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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빼놓고 내 고등학교 시절을 말할수 없을것 같다.

내가 처음 베토벤을 만난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우울하고 무엇인가 억눌려있던 내 자신은 감정의 분출구를 찾지 못했고 심하게 움츠려 들어있었다.

우연히 듣게 교향곡3번의 2악장. 그것은 나의 가슴 한쪽을 강타했다. 무엇인가에 이끌려 가는 듯한 처절함을 맛볼수 있었고 후반부에 가면 삶의 고통과 아픔을 이겨내는 영웅, 바로 자신의 모습을 그리지 않았는가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 역시 내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이 삶에서 굴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교향곡 9번은 그야말로 환희 그 자체였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자 발버둥치는 나에게 그는 날개를 달아주었다. 1악장의 놀라운 비상과 이어지는 2악장 쉴새없이 이어지는 템포들 그리고 3악장에 가서는 영원의 거대함이 밀려오는 웅대함을 보여주었다. 4악장은 어떠했는가! 그야말로 환희 그 자체를 나의 가슴 떠안겨 주므로 내 삶을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자 그 마음에 불타지 않았던가!

베토벤....

그가 살았던 시대는 나와는 달랐으나, 그가 현실의 문과 자신의 절대절명의 한계의 문을 박차고 나갔던과 마찬가지로 그는 나에게 말한다.

"절망스런 현실에 주저 앉지 말고 앞을 향해 박차고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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