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back of the week


Extraordinary idealism

Martin Bright on The Ordinary Person's Guide to Empire

Sunday December 28, 2003
The Observer


The Ordinary Person's Guide to Empire by Arundhati R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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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rdinary Person's Guide to Empire
Arundhati Roy
Flamingo £8.99, pp160

This slim volume contains a collection of political essays written by the author of The God of Small Things between June 2002 and August 2003. They concentrate on the international events surrounding America's war on terror, but also demonstrate a wider range of causes that fuel Arundhati Roy's anger.

These include her much publicised campaign for the indigenous Adivasi people of Madhya Pradesh, who are faced with displacement by government plans to dam the Narmada valley in central India.

But they also stretch to a celebration of the work of Noam Chomsky and a critique of the present generation of African-American politicians.

Much of the subject matter here is predictable: Roy is against the illegal war in Iraq, despises American imperialism and bemoans the malign influence of the global corporations. She has the instincts of a radical student politician. But there is nothing wrong with that if what that means is intelligent, articulate, youthful passion about the injustices being perpetrated in the name of democracy. If only more of our public intellectuals could retain some of the idealism of their youth.

The sign of a great essayist is an ability to make you think again about a much discussed subject. Her essay on 'Ahimsa' (non-violent resistance) is genuinely inspiring.

She argues that we will make no progress in resolving serious conflict until governments start listening to the concerns of peaceful protesters. Otherwise, the message goes out that violence is more effective. 'Any government's condemnation of terrorism is only credible if it shows itself to be responsive to persistent, reasonable, closely argued, non-violent dissent.' Brilli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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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TER GRASS (1927-)  Danzig, Germany (now Gdansk, Poland)


"The job of a citizen is to keep his mouth open."

 -시민의 할 일은 계속해서 입을 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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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5-01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killjoy 2004-05-12 0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녜~
 

인도는 몇 세기를 동시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동시에 진보와 퇴보를 하고 있습니다. 한 국가로서 우리는 양극단으로 치달음으로써 늙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반대 방향을 바라보는 눈을 가진 귀상어의 머리처럼 커지고 있습니다. . .

개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우리가 감내하기 어려운 것은 그 정신분열증적 성격입니다. 이것은 옛것/새것의 문제만이 아니라 오늘날 국가경영이 보여주는 철저한 비논리에도 해당됩니다. 우리집 뒷길에서 매일 밤 나는 우리의 디지털 혁명을 앞당기기 위해 광섬유 케이블을 설치하려고 땅을 파고 있는 쇠약한 인부들을 지나쳐 걸어갑니다. 혹독한 추운 겨울날씨에 그들을 촛불 몇 개 켜놓고 일을 합니다.(125-26쪽)

내가 작가-활동가로 불리는 것은 [작은 것들의 신]을 쓴 후 내가 세편의 정치 에세이를 썼기 때문입니다. . . 그런데, 나는 [작은 것들의 신]을 쓴 사람은 왜 작가로 불리고, 정치 에세이를 쓴 사람은 왜 활동가로 불려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작은 것들의 신]은 소설이지만, 내가 쓴 어떤 에세이 못지않게 정치적입니다. 물론 내 에세이들은 논픽션입니다. 그러나, 대체 언제부터 작가들이 논픽션을 쓸 권리를 포기했는지요? (130쪽)

이와 같은 환경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관련해서 나를 ‘작가-활동가’라고 부르는 것은 나를 이중으로 움찔하게 만듭니다. 첫째, 그것은 작가와 활동가 모두를 위축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사용된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한 작가의 존재와 그 가능성의 영역과 범위와 영향력을 축소시키려는 기도입니다. 원래 어떤 정치적인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한다는 것은 명석한 논리와 열정과 용기와 대담성과, 또 때로는 야비함까지도 필요로 하는 법인데, 작가라는 것은 이런 일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부드러운 존재라는 암시가 여기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로, 활동가라는 것은 지적 스펙트럼에서 보다 거칠고 조야한 쪽에 서 있다는 암시가 여기에 또한 들어있습니다. 활동가는 본래 명확히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고, 따라서 복잡성과 지적 세련을 결여하고 있으며, 그 대신 사물에 대한 거칠고 단순하며 일방적인 이해로써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볼 때 이 용어가 갖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모든 저항적 운동을 직업적 활동가들이 하는 일로 만들고, 거기에 이름표를 붙임으로써, 결국 문제를 봉쇄하고, 나아가서는 문제해결은 직업적 활동가들에게 달려 있다고 암시한다는 데 있습니다. (137-38쪽)

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문제들에 대한 공적 논쟁의 비전문화야말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전문가’들에게서 우리의 미래를 다시 낚아채와야 할 때입니다. 공적 문제를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언어로 질문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또한 일상적인 언어로 하라고 요구할 때입니다. (138쪽)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상식적인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서 있습니다. 사건들간의 연관성을 밝혀주고, 그것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줄 사람들은 작가, 시인, 예술가, 가수, 영화제작자들입니다. 회사 중역회의실의 현금의 흐름을 가리키는 도표와 현란한 말들을 살아있는 사람들의 살아있는 삶에 관한 진실한 이야기로 번역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힘 때문에 사람이 가정과 땅, 일자리와 인간적 존엄성, 그리고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잃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말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고, 따라서 증오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그 누구 또는 그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 갖가지 이야기들을--.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공간입니다. 새로운 종류의 도전을 기다리는 문제이고, 새로운 종류의 예술을 위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분명하지 않은 것을 분명한 것으로, 만져지지 않는 것을 만져질 수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예술, 실체가 없는 적을 현실적인 존재로 그려낼 수 있는 예술 말입니다. (143쪽)

아룬다티 로이, 작가와 세계화 --‘전문가’들에게 맡겨두어야 할 것인가
녹색평론 2002년 3-4월 통권 제 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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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 - 셰익스피어전집 1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 민음사 / 1997년 5월
평점 :
품절


남자들의 게임의 규칙 두 개. 1 왕에 대한 충성. 2 왕에 대한 반역. 1번 규칙으로 유지되는 것이 질서이다. 2번 규칙도 1번과 다르지 않다. 왕에 대한 반역은 새로운 왕에 대한 충성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크게 말해서 남자들의 게임의 규칙은 위계질서의 수호이다. 남자들의 본성이 그러하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남자들이 지배 집단이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지배 집단은 지배 질서의 유지와 주기적인 쇄신을 요구한다고.

그런데 지배 질서의 규칙이 절대적이거나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절대'왕권의 지배권역에도 바깥이 있다. 이 책에서 그 바깥 영역은 마녀들의 공간으로 그려진다. 마녀들에게는 지배 질서의 법이 작용 못한다. 이들에게는 왕에 대한 충성심도 없고 왕권에 대한 야망도 없다. 이러한 마녀들의 존재 자체가 지배 질서에 대한 교란이다. 지배 질서 내부에서 자기가 속한 체계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사람에게 마녀란 ‘절대성의 파괴자’라는 개념화조차 하기 힘든 모순 존재이다. 이렇게 지배 질서의 중심에서는 그 힘이 주변부까지 고르게 미치지 못하지만, 주변부에서 이루어지는 마법의 힘은 중심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

그리고 레이디 맥베스. 문제적인 여자. 그는 여자이면서 남자들의 게임의 규칙에 몸을 싣는다. 여자는 지배 집단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모른다. 높은 신분의 자기만은 예외적인 여자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의식적으로 자기 안에서 남성성을 일깨우려고도 했다.

그는 남자들의 질서 내부에 자기 자리가 있다고 오인하는 캐릭터이다. 맥베스의 부인으로서 남편의 이름을 공유하면서 그는 자신이 맥베스인 줄 안다.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는 권력의 취득이라는 남자들의 게임의 규칙에 따라 그들의 욕망을 모방하면서 남편에게 대신 행동할 것을 촉구한다.

왕위에 오른 맥베스는 죄책감과 의심으로 광기로 치닫는 과정에서 레이디 맥베스를 점점 밀어낸다. 그는 더 이상 자기 아내를 자기와 한 몸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제 그에게 아내는 과거의 자기 행동을 상기시키는 이물질로서 지배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맥베스 그 자신이었던 레이디 맥베스는 이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좌천된다.

그녀에겐 본래 고유의 이름이 없었다. 그녀는 온전한 맥베스가 아니라 레이디 맥베스 즉 불완전한 맥베스이다. 오인의 결과였던 이름과 자리와 욕망의 대상을 상실하게 되자 레이디 맥베스는 자살한다. 존재 의미의 상실로 인해 필연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배 질서 내에서 벌어진 이 모든 비극이 질서 바깥의 마녀들에게는 전혀 비극적인 것이 아니다. 지배 질서의 내면화 없이 어떻게 그 낯선 사건에 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그들에게는 지배 질서의 법은 낯선 것이다. 결혼으로 여자가 남자에 동화되고 남자의 욕망을 모방하게 되는 것도 이들에게는 기이한 풍습이다. 여자가 남자와의 차이를 발견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존재 의미의 상실이 되는 것도 그들에게는 이상한 논리이다.

레이디 맥베스는 허공의 거미줄에서 거미가 추락하듯 남자들의 체계에서 탈락하였지만 그 결과가 꼭 죽음이었어만 했을까? 마치 그 법의 체계가 세계 전체이고 그 바깥은 없다는 듯이? 그러나 레이디 맥베스가 맥베스 자신과 동일인이 되는 것만큼이나 황야의 마녀들에게로 건너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황야에도 사람이 살 수 있다는 것을 고귀한 신분의 ‘레이디’가 어찌 알았겠는가? 고귀한 신분의 대가가 여자들에게는 고립과 단절이구나. 그녀에게 주어진 삶의 방법은 자기가 맥베스 자신이라는 환상 속에서 사는 방법이었다. 환상이 깨지면? 죽거나 미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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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없어서 슬펐니?
김미경 외 열 명의 엄마들 지음 / 이프(if)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1
옆집 여자는 아이가 셋이다. 노상 야단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엄청나게 굵고 큰 목소리이다. 사람이 뒤집어질 만큼 온 힘을 다해 지르는 소리다. 그렇다고 별 효과가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고함은 계속 된다. 말은 규율을 가르치는 매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거기에 여유를 상실한 한 사람의 삶의 조건이 기입되어 있다.

2
이 책이 독서모임에서 논란거리가 된 것은 책 내용 중 어떤 부분 때문이었다. 밖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들어온 엄마가 귀가하자마자 자기 방에서 잠이 들었는데 잠긴 문밖에서 아이가 엄마를 부르며 문을 두드렸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독서모임의 어떤 회원들에게 이 내용이 아동학대로 읽혔던 모양이다. 그들은 어머니의 자아실현을 위해 아이가 희생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3
격렬한 토론이 이어졌는데 귀결은 대략 이렇다. 표면적으로 우리는 '육아는 가족공동의 책임이다'에 동의했다. 그러나 심층적으로 우리는 '가족이 공동으로 육아 책임을 분담하지 못할 경우 육아는 일차적으로 어머니의 책임이다'라는 일반적인 가정을 인식했고 그에 대한 반응은 '그러므로 모성은 굴레다'와 '그러나 모성은 축복이다'로 분열되었다. 사회가 책임지기와 가족 모두가 책임지기가 앞으로 성취되어야 할 목표라는 점에서는 모두가 동의하는데 아직 그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서 개인이 부닥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가 문제거리인 것이다. 결국 독서 회원들 중 젊은 여자들은 아이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을 방기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여기고 책임지기와 안 낳기 이 둘 중에 선택하게 될 것 같았다. 젊은 남자들은 대체로 육아를 도와야 한다는 각오를 보였는데 물론 젊은 여자들보다는 좀더 여유 있어 보였다. 일차적인 책임 소재가 그들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다.

4
나는 언제나 여자들이 더 도덕적인 이유에 대해서 궁리하게 되었다. 여자들이 약자들에게 더 책임의식을 느끼는 것은 여자들의 본질일까 구성된 것일까? 예를 들어, 가족 중에 누군가 데려온 강아지가 찬밥 신세가 되었을 때 개가 아무리 싫어도 끝까지 똥오줌을 치우고 신경 쓰는 어머니는 도덕적이어서 그렇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명령할 권리나 일을 떠넘길 누군가가 없는 유일한 가족구성원이어서 그렇게 하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여자들의 도덕성이 어떤 시스템의 유지에 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5
기억나는 구절: '내가 아이들을 포함한 우리 집 남자들에게 행하는 유일한 목적의식적 교육이 있다면, 그건 바로 자신의 생존을 위한 기본노동을 타인, 특히 여자들의 노동에 의지하려 들지 말라는 것이며,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 배우고 익히라는 것이다.'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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