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찬양한다
세 장의 달력을 한꺼번에 뒤로 젖혔다 정확히 석 달,
그 동안 우리는 매일 밤 전화를 했다 밤새
낡은 말을 하고 그 말을 믿었다
믿으려고 애썼다 한 줄의 글 쓰지 않았다
편지 보내지 않으니 오는 편지 없었다
단 하루의 日記도 없이 백 일을 보냈다 우리는
서로에게 주인을 강요했다 노예로
삼아달라고 밤새 서로를 설득했다 그렇게
백 일을 보냈으나, 백 원짜리 폭죽처럼
입술은 건드리는 족족
펑펑 터졌으나, 속 쓰리고 머리 아픈 아침만이 남은
몫이었으나
한 번의 후회도 언급한 적 없었다 불안함
없었다 비 없었고 빛도 없었다
그저 지루한 인생의 백 일을 도려냈다는
큰 몫을 우리는 찬양했다
바다를 보러 가야겠다 수많은 그를 수장하고 돌아선 바다 보러 가야겠다 내 눈물로 그 수위를 높였던 동해 바다에 가야겠다 먹장구름 삼키며 사나운 파도가 나를 삼키며 나는 세상을 삼키며 세월을 물쓰듯 썼던 그 시절들 보러 가야겠다
내가 신화 속에 존재할 먼 미래에 대해 궁리하다가, 나는 미래를 발길로 찼고 현재와 결별했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생소한 창밖 응시하다보면, 고스란히 실내를 되비추는 창이 보이고 그곳엔 내가 허공의 실내에 화분처럼 놓여 있기도 하다 멀리 한 줄로 세워진 아파트 불빛이 보인다 이 빠진 불빛 한 군데가 마저 줄을 채운다 거기 사람이 왔나보다 여기도 사람이 있다
창문을 흔들어대는 낯설고 억센 바람, 그, 억센 손아귀와 싸우다 실내에서 지쳐버린 이 영혼 하얗게 타고 있다 가벼운 입김에도 휙, 흩어지게 될 것이다 나는 온 청춘을 저속하고 불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거적 같은 몸뚱이를 아무데나 두고 자버렸고 내키는 대로 아무 꿈이나 불러들려 가위눌렸었고 바퀴벌레 우글거리는 헌 집처럼 오래오래 나를 비워두었었다 때가 온 것인가, 선회하는 멸망이 보이고 아주 달게 저무는 세기말이 보이고 나는 늙어가기보다는 꺾여가고 있음을, 헐렁헐렁한 제스처로 변두리 골목을 어슬렁대고 있음을, 세상의 가십거리를 들어주다 내뱉은 욕설에 뚝뚝 부러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것은 기분 좋고 바람직한 일이 되어버렸다
공명되는 악기보다 더 비었으면 비었지, 싶은 마음들이 백화점 세일 축제에 붙들린 풍선으로 매달려 있고, 아직 세상에 내건 문패가 없음과 그 문패가 마모될, 마모되어 다 지워질 세상에 대해 나는 기립 박수를 보냈고, 가장 좋은 것에 대해서 한마디도 발설하지 않은 채 내가 하루, 하루를 살아내고 있음을, 꿰매 입지 않고 찢어 입는 시대에 태어났음을, 뒷산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약수 행렬을 야호,를 점호로 삼는 야행성들이 컴퓨터 통신 대화방에서 불개미처럼 득실거리고 있음을 못내 만족스러워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여어, 우리는 전통이란 허깨비의 발뒤꿈치를 잠시 보았을 뿐, 그 허상을 숭배한 한때는 우리 인생의 양념이었을 뿐, 우리는 역사를 배반하기는커녕 구경조차 못 했으니 현실과도 자연스럽게 결별하는 것임을
내 삶의 목적은 천년 동안 잠을 자는 것, 나의 수면은 시대에 대한 예의이며 자비이다 사나운 파도가 지형을 바꾸며 나의 수면을 깨우지 않은 채 모든 것을 훼손할 것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