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여자
서영은 지음 / 문학사상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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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본 텍스트보다 뒤에 딸린 작품 해설이 더 재미있다. 비평가 김정란은 이 소설을 [그녀의 여자]가 아닌 [그녀의 아들]로 읽어 낸다. 중견화가인 '그녀' 현여사가 아들에 대한 근친상간적 욕망을 아들의 애인인 소연에게 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란의 비평이 설득력 있는 이유는 이 소설에 동성애 소재와 모순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현여사와 그의 양아들 사이의 긴장은 소연과의 관계에서보다 더 팽팽해서 무언가 억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한다. 영화 [페드라]가 인용되는 것도 이상하다. 페드라는 양아들을 사랑하여 파멸하는 희랍 비극의 여자 주인공이다. 결국 이 소설의 핵심 모티브는 동성애가 아니라 근친상간적 욕망이다. 현여사에게 소연은 아들 대용이며, 소연은 자기 어머니의 아들이 되어주고 싶었던 욕망을 현여사와의 관계를 통해서 충족하려 한다.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집착과 어머니에게 아들이 되어줄 수 없었던 딸의 좌절이 이 소설에서 여자들 사이의 사랑으로 탈바꿈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녀와 그녀의 여자 사이의 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 소설을 레즈비언 소설로 볼 수 있을까?

이 소설이 그리고 있는 관계는 이성애적인 사랑법을 따르고 있으므로 레즈비언 관계라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레즈비언 관계란 사회적으로 강제된 이성애 관계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레즈비언의 관계는 에로틱함이 가미된 우정에 가까워서 폭력성이나 일방성과는 다르다. 토니 모리슨이나 엘리스 워커 같은 작가들이 보여주는 여자들 사이의 사랑은 (유색인 여자로 두 번 소외된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어 주는 것이지 상대를 파괴하는 정념이나 다른 욕망의 가면으로서의 사랑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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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개 블래키의 우울증 탈출기 - 이유없이 우울하고 외로운 사람을 위한 책
베브 아이스베트 지음, 김은령 옮김 / 명진출판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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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온 여름 한철이었다. 사람들은 우울증을 이기기 위해서는 일조량을 늘리고 낮에 자지 말고 몸을 좀 움직이라고 충고했지만 우울증에 걸리면 밤에 잠을 못 자고 무기력해진다. 필사적으로 인터넷을 서핑하며 얻어낸 극복 방법은 다음 세 가지였다. 1. 항우울제를 9개월 이상 복용한다. 2. 전문의를 찾는다. 3. 일랭일랭이나 클레이세이지 같은 아로마 오일을 사용한다. 나는 이 중 아무것도 실천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돈이 많이 들 것 같아서였다.

나는 실용서를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경제적 형편이 곤란해지면서 새로 책을 사는 일 자체가 드물어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을 사 보게 된 것은 거의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책에도 나와 있지만 우울증에 걸리면 깊은 구렁에 빠져 꼼짝 못하게 된 느낌이 든다. 이럴 때 무기력함을 이기고 서점에 나가 책을 산다는 것은 평소보다 몇십 배 증가된 중력을 이겨내야 하는 것과 같다.

나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점에 주저앉아 이 책을 읽다가 결국엔 눈물까지 흘렸다. 블래키와 해피의 태도를 비교한 그림 중에 해피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슬프지만 계속 울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 하는 장면에서 나도 눈물이 터져나왔다.

우울증은 정말 이상한 병이다. 나만 따라다니며 비를 뿌리는 먹구름에 비교할 만 하다. 주위 사람의 이해를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고 그 때문에 사정은 더욱 악화된다. 아무도 나의 고통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오히려 자신을 탓하면서 먹구름만 더 험악해지는 것이다.

저자는 호주의 인기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라는데 그 자신이 우울증을 겪어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인 일러스트레이터도 우울증이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인 것 같다. 이 책은 의사나 임상심리학자들의 관련 서적보다 훨씬 쉬우며 친근하고 따뜻한 느낌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보이는 어둠>같은 본격 문학 작가의 책보다는 좀더 밝고 실용적이다.

우울증이 심각한 문제가 된 사회는 구조적인 결함을 반드시 짚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환자들에게 하나같이 스트레스를 줄이라고 제안하지만 그것이 사회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고 사회 환경은 오히려 역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전문가의 처방은 무의미한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울증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힘든 건 알지만 언제까지나 우울증에 끌려 다닐 수는 없지 않느냐'고 다독이지만 이는 결과적으로는 그들이 좋은 회사원, 좋은 부모, 좋은 학생이 되도록 만들어 사회가 계속 잘 돌아가도록 하는 데 힘을 보태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전제를 염두에 두고도 이 책에서 미덕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 몇주일을 우울증에 사로잡혀 몸부림을 쳐도 (겉으로 볼 땐 시체놀이를 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른다고 해보자. 내 상태의 심각성에 대해 암호로나마 도처에 송신을 해도 위로 한마디 못 얻는다고 해보자 (워낙 전염성이 강해서 아무도 접근하려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점점 더 고립되어 갈 때, 누군가 내게 '노력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얻지 못한 적이 있지 않니?' '어렸을 때 어른처럼 행동하도록 기대되지 않았니?' 물어보며 원인을 돌아보게 해주고 미궁 속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는 데 기꺼이 도움을 주고자 할 때 이보다 더 큰 힘이 되어주는 것이 어디 있을까? 이 책의 미덕은 우리가 어떤 이유에서 잃어버린 친구, 가족, 형제의 역할을 대신 해준다는 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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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의 경제 - 빈민의 유리지갑에 비친 경제 이야기!
바바라 에렌라이히 지음, 홍윤주 옮김 / 청림출판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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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 노동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직장에서 잠시 쉴 틈을 타서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 주제는 무엇일까?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대한 고발? 노동 해방? 하다 못해 중간관리자에 대한 불만조차 아니다. 전문직 미국 여성인 저자가 그들 사이에서 엿들은 대화 내용은 주말에 뭘 먹었느냐에 관한 단순한 문답이었다. 한끼의 만족스러운 식사,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되는 거처, 이런 것에 대해 불안을 느끼며 살도록 되어 있는 것이 전 세계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의 수준이다.

저임금 노동에는 미국이고 한국이고 없다. 마흔도 쉰도 넘긴 아줌마가 갑자기 생계를 떠맡게 되었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장시간 저임금 육체 노동뿐이다. 그 한국 아줌마가 12시간 식당 일을 하면서 8시간 노동시간을 보장받을 것 같은 미국 저임금 노동자를 부러워해도 될까? 이 책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아줌마는 8시간 짜리 일의 대가만으로는 부족해서 파트타임 일을 더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주5일 근무제 시행으로 월차도 생리휴가도 빼앗긴 젊은 한국 여자 비정규직이 미국 이민을 꿈꾸어도 될까? 그곳의 웨이트리스나 청소 파출부들은 심각한 신체 이상을 자각한다 해도 병원은 고사하고 진통제에 의지하여 노동 시간을 채우고 있는데?

고시원 침상에 엎드려 울며 웃으며 읽은 책이다. 잘 읽히기도 하지만 명쾌하고 생생하다.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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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 미국 인디언 멸망사
디 브라운 지음, 최준석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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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아메리카의 원(래 거)주민인 인디언들이 유럽계 백인 이주민들과 토지를 두고 벌인 전쟁사이자 인디언 멸망사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절박한 상황이 으레 그러하듯이 이 책에 두드러지는 인물들은 주로 인디언 전투추장들이고 백인들의 편에서도 군인, 정치가, 농장주 등이다. 전쟁은 힘의 논리대로 짜여진 질서를 공고화하는 기능을 한다. 이 책에서 다른 인종의 목소리는 물론이고 인디언이든 백인이든 여성과 아이들의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책은 백인과 인디언에게 각각 해당되는 것 같았던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을 전도시킨다. 백인 이주민들은 오로지 토지와 금광에 대한 이익을 위해 움직이며 법, 정치, 언론, 종교, 사상 등 소위 우월한 백인의 문명과 제도가 한갓 이익추구의 시녀로 전락한다. 이주민들이 보기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이익을 뽑아내려면 인디언들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장애물일 뿐이었다.

백인들이 온갖 제도와 군대를 동원하여 원주민들을 추방하고 학살하기 시작했을 때 이들은 물질적 이익을 인간의 권리 보다 상위에 두었다는 점에서 문명에서 야만으로 건너간 셈이다. 인디언의 친구였던 백인들이 있었지만 지배적인 흐름을 거스르기에는 너무나 소수였다. 다수의 일반 이주민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인종학살의 정책을 시행하는 미국의 민주주의는, 다수의 인디언 주민들의 삶의 질을 위해 협상하거나 투쟁했던 아메리카 인디언의 민주주의에 비해 도덕적으로도 열등하다.

이 책의 각 장은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배우는 일련의 연대기적 역사로 시작하여 그 연도에 해당하는 인디언들의 역사로 본문을 채운다. 교과서적 역사가 얼마나 많은 진실을 숨기고 있는지 알려주려는 의도일 것이다. 예를 들면, 연대기에는 미국 연방 정부가 소위 '만민법'이라는 것을 통과시킨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만 우리는 그 '만민'의 범주에 인디언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또 하나의 미덕은 인디언들의 사진과 노래를 싣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 사진에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점 굳어져 가는 전투추장들의 표정을 확인하며 불길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노래에서 때로는 순박한 기쁨의 탄성을, 때로는 희망이 종료된 시대를 만난 인간이 내지르는 절망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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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 젊은이들이 피의 대가 치르는가"

[속보, 사회] 2004년 01월 19일 (월) 21:12
[오마이뉴스 장윤선 기자]
▲ <작은 것들의 신> 작가 로이. 그는 인도여성들에게도 추앙받는 평화운동가이기도 하다.
ⓒ2004 민족21 강은지

아룬다티 로이는 누구인가?

민족21 강은지
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y)는 1961년 시리아 기독교인 어머니와 힌두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인도 남단의 케랄라 주의 아예메넴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뒤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고, 환경·반핵·반세계화 운동을 하고 있다. 현재 영화제작자와 결혼해 두 딸과 뉴델리에 살고 있다.

1997년 소설 <작은 것들의 신(The God of Small Things)>으로 영국 부커상을 받으며 유명작가가 되었으며, 지은 책으로 평론집 <권력의 정치학(Power Politics)>, <무한 정의의 대수학(The Algebra of Infinite Justice)> 등이 있다.

아룬다티 로이는 인권·환경·반핵·반세계 운동에 적극 활동하고 있으며, 대중 강연과 글쓰기에 힘쓰고 있는 인도 여성이다. 그의 저서 <생존의 비용>에서 그는 "인도 정부의 개발 중심주의, 핵무장 옹호가 자연은 물론 인도인의 삶까지도 황폐화시키고 있다"고 고발했다. /

인도 세계사회포럼에서 가장 주목을 끌고있는 인물은 단연 소설가 아룬다티 로이다. 전세계 45개국, 644개 언론사에서 몰려든 기자들 중에는 아룬다티 로이만 쫓아다니면서 인터뷰를 시도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에도 <작은 것들의 신> 작가로 잘 알려진 인도 퀘랄라주 출신의 로이는 세계사회포럼 행사장에서 좀체 발견하기 쉽지 않다. 기자들 사이에는 '로이를 어디서 누가 봤다더라'라는 '카더라' 통신만 떠도 취재수첩을 들고뛰는 분위기다. 그래서 허탕치는 기자들도 많다.

기자들이 이토록 그에게 달라붙는 이유는 무엇일까. 빼어난 미모의 소설가, 특유의 문체로 심금을 울리는 문장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전쟁과 고통받는 여성들에 대해 쏟아내는 심장의 소리를 듣기 위한 것이다.

로이의 '개막식 독설'에

세계사회포럼이 발칵 뒤집히다

특히 이번 세계사회포럼에서 그가 기자들로부터 주목받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그가 던진 '개막식 독설' 때문이다. 로이는 지난 16일 저녁에 시작한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 WSF) 개막연설에서 "세계사회포럼과 뭄바이 레지스탕스(MR)가 연합해 구체적 투쟁을 조직하자"며 "이번 세계사회포럼이 끝나는 날 아예 미국이 일으킨 전쟁 앞잡이 노릇을 한 기업을 찍어 철퇴시키자!"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로이의 개막연설 뒤 세계사회포럼 인도조직위원회가 발칵 뒤집혔다는 후문이 있다. 이유는 '비폭력' 노선을 고수하는 세계사회포럼에서 '폭력적 방법'을 제안했기 때문. 그러나 로이가 세계사회포럼에서 던진 이 얘기는 좌우 맥락 없이 그냥 툭 던진 것은 아니다.

3차까지 브라질에서 진행된 세계사회포럼에서 세계화의 문제점은 많이 지적됐지만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는 실천적 대안은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지구촌 반세계화 운동가들 사이에는 '공허한 논쟁만 진행되는 세계사회포럼, 이제는 재미없다!'는 지적도 쏟아졌다.

이러던 참에 세계사회포럼 장소가 브라질에서 인도로 바뀌었다. 개발국가에서 저개발국가로 장소가 이동된 것. 인도는 그간 세계사회포럼 참가자들이 겪지 못한 '일상의 불편함(화장실, 물, 먼지구덩이, 위생 등)'을 통해 세계화의 문제점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투쟁의 현장'을 제공했다. 로이는 이 자리에서 '직접적인 실천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로이 발언 맥락에는 이런 것도 숨어 있다.

세계사회포럼 개막 3일째를 지내는 지금 행사장(네스코) 건너편에는 '뭄바이레지스탕스2004'가 따로 조직돼 활동 중이다. 이들은 "세계화는 인간화할 수 없다"는 구호를 걸고 '세계사회포럼 반대'를 외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로이는 '뭄바이레지스탕스2004'가 조직한 토론에 참가하면서 '세계사회포럼과의 연대'를 강조했다. 그래서일까? 기자들은 마치 술래잡기를 하듯 세계사회포럼 행사장에서 그를 찾아도 쉽게 볼 수 없었다.

18일 오후 4시25분 기자는 세계사회포럼 미디어센터 흙바닥에 앉아 몇몇 이들과 토론하는 로이를 발견했다. 마치 숨은 그림을 찾던 사람처럼 기자는 로이에게 다가가 "아 유 로이?"라며 아주 황당한 질문을 던졌다.

로이는 한동안 웃고는 "맞다"고 답한 뒤 "오늘 저녁 6시 '여성에 대한 전쟁, 전쟁에 반대하는 여성' 포럼 이후 만나자"고 인터뷰에 승락했다.

"아 유 로이?" 드디어 로이를 찾다

▲ 로이는 한국정부와 일본정부의 이라크 파병결정에 저항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4 민족21 강은지
로이는 18일 저녁 6시30분 마이단 광장 연설 뒤에 연단 아래로 몰려든 몇몇 세계 각국 기자들에게 "마치 기자회견을 하는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원래 따로 만나 인터뷰할 예정이었으나, 워낙 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어 플래시를 터뜨리자 로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 뒤에 쏟아진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세계사회포럼 현장에서 로이를 인터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한국 기자로는 최초로 아룬다티 로이를 인터뷰했다.

- 이번 세계사회포럼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인도와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전세계 많은 문제들이 하나로 모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이 안에 함께 한다는 것이 너무나 기쁘다."

- 이번 세계사회포럼은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 이어 4번째로 열리는 것이다. 세계사회포럼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는가?

"세계사회포럼은 제도화되지 않도록 상당히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다른 관료적 기구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세계사회포럼이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다른 위험 중의 하나는 포럼이 활동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현장에서 뛰기보다는 포럼만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 포럼에서 어떤 이슈를 제기할까 등등. 그래서 활동가들은 한 포럼이 끝나면 그 다음에 바로 다른 포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운동가들이 앉아서 고민만 하지말고, 현장에서 직접 뛰기를 바란다. 그들이 진정한 정치적 행동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 세계사회포럼 공식참가자인데, 왜 매일 '뭄바이레지스탕스2004'를 방문하는가?

"나는 그들 또한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 중에는 이곳에 초대받지 못한 이들도 있다."

- 세계사회포럼은 비폭력노선이다. 그러나 '뭄바이레지스탕스2004'는 비폭력노선을 명시하지 않았다. 평소 로이는 무장투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성으로서, 내가 아는 유일하고도 진정한 현실, 인도에 사는 사람으로서, 나는 폭력을 믿지 않는다. 나는 겁이 난다. 폭력이 무언가와 싸워서 얻어내기 전에 세상을 먼저 망가뜨리게 될까봐…. 그리고 그 무기가 곧 여성을 향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아주 털어놓고 솔직하게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세계는 아주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런 종류의 대화는 이니셔티브나 도그마에만 의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팔레스타인에서 온 사람들, 이라크 사람들, 이곳에서 무장투쟁을 하는 사람들, 또 서로 다른 투쟁을 하는 사람들과 모두 함께 솔직히 털어놓고 진정으로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라크파병, 저항해야 한다!"

▲ 로이는 "운동가들이 자리에만 앉아있지말고 현장을 뛰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4 민족21 강은지
- 로이는 인도정부가 추진하는 대형 댐건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3000개의 댐이 건설되고 있다. 아주 심각하고 어려운 상황이다. 구자라트와 남부 다른 지역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잠시 건설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갈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각지에 있는 그 누구도 그걸 모른다.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있었던 환경재해 중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대형 댐이라고 생각한다. 니르마다 지역과 같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더 심한 곳에서는 더 큰 문제들이 벌어지고 있다. 강과 환경문제 같은 것들 말이다."

- 한국 정부는 이라크 전쟁 파병을 결정했고, 일본 정부는 자위대를 파병했다. 이라크 전쟁에 한국과 일본 같은 나라들이 파병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소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저항해야만 한다. 저항해야만 한다! 그 전쟁에 동참하는 것을 당장 멈춰야 한다. 미군들이 그곳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 상황에서, 미군 가족들이 그 전쟁에 가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왜 한국과 일본 젊은이들이 거기서 피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파병은 즉각 멈춰야 한다."

/장윤선 기자 (sunnijang@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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