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1. 그들이 다른 도시로 갔는데, 거기에는 마음 속에 저주받은 반역자 사탄이 들어 있는 여자가 살았다.

2. 이 여자는 물을 길러 갈 때 옷을 걸치지 않았고, 어느 집에서도 가만히 들어앉아 있지를 못했다. 그리고 쇠사슬과 밧줄로 자주 묶어두었지만 끊어버리고는 사막으로 달아났다. 가끔 교차로에 서 있거나 무덤에 가 있었는데, 사람들에게 돌을 마구 던졌다.

3. 성모 마리아가 이 여자를 바라보면서 동정심을 느꼈다. 그러자 여자한테서 사탄이 나와 청년의 모습으로 변하여 날아가면서 "마리아, 당신과 당신 아들 때문에 내가 저주를 받았소."라 말했다.

4. 고통에서 해방된 여자가 자기 몸이 나체라는 것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옷을 걸친 뒤에 집으로 돌아간 여자가 아버지와 친척들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그 도시의 상류층인 그의 아버지와 친척들이 요셉과 성모 마리아를 최대한으로 정중하게 모셨다.

5.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충분히 선물받고 다음날 요셉과 마리아가 떠났다. (하략) (80)

 

*) 이 장은 성모 마리아의 기준에 맞추어 여성의 정체성을 조각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머니와 아내 이외의 정체성은 깎여 나간다. 여성 안의 남성성을 쫓아내고, 여성에게 결혼 제도 안에서 말하게 하고 (결혼 이데올로기의 내면화와 그 상징질서 내부로의 진입), 여성의 성을 통제한다. . .

 "교차로에 서 있거나 무덤에 가 있는" 여자가 마리아와 그의 아들을 만난 후,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옷을 걸친 뒤에 집으로 돌아간" 여자로 변한다. . . 어떤 여자들은 잘 알고 있다. 자기 마음 속에 "저주 받은 반역자 사탄"이 들어 있다는 것을. (내가 쓴 이 마지막 두 문장은 마치 김혜순 시에나 나올 법한 구절이다.. 그러고보면 시보다는 설화나 산문이 더 다가오는 느낌이다. 시는 어쩐지 독자를 속이는 것 같고 더 나쁜 경우에는 시인 혼자 열에 들떠 있고 주변 사람들은 썰렁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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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_and_naru 2005-12-01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글쓴이는 여성해방이라는 이데올로기의 굴절에 의해 진리를 외곡하고 있다고 본다.

왜냐면 윗장을 최소한 사회학적 또는 인문학적으로 해석을 하고 싶었다면 글쓴이는 "성모 마리아에(기독교에)의해 인간의 정체성이 조각되어졌다" 라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본인의 생각엔 글쓴이는 1. 의복, 2. 쇠사슬과 밧줄, 3. 사막, 4. 교차로나 무덤에서 사람들에게 돌을 던짐, 5. 사탄이 나와 청년의 모습으로 변하여, 이렇게 다섯가지 여자의 행동이 마리아와의 조우 이후 사라진것을 바탕으로  여성의 어머니와 아내 이외의 정체성이 깍여 나갔다고 주장한다.

1. 의복

글쓴이는 의복을 안입고 있다 마리아와 조우 이후에 의복 착용을 어머니와 아내 이외의 정체성 상실로 규정하고 있는건데 그렇담 어머니와 아내이외의 여성들은 의복을 입고 있지 않단 말인가? 또한 글쓴이는 "옷을 걸친후 여성으로 돌아갔다" 고 했는데, 그렇담 남성들은나체주의자란 말인가? 여성과 남성을 통틀어 의복착용은 성을 떠난 인간적은 행위다. 만약 윗장에서 "그 여자가  물을 길러 갈때 남자의 의복을 입었다" 라고 했다면 글쓴이의 주장이 타당할수도 있겠으나 여기선 "그 여자"가 여자옷을 고사하고 남자옷도 입지 않았었다., 옷을 입지 않은게 남성적이라는 주장의 타당성을 증명하지 못하는한 글쓴이는 스스로를 남성비하주의자라고 주장하는것에 불과하다. 왜냐면 남자들도 옷을 입고 다니고 옷을 입지 않고 다니는 남자도 미쳤다고 많은 인간사회는 보기 때문이다. 

2. 쇠사슬과 밧줄,  &  3. 사막

글쓴이는 "쇠사슬과 밧줄"을 여성을 얽매는 상징으로 봤다고 생각된다. 아마 쇠사슬과 밧줄을 결혼, 육아, 또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즉 사회성으로 본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글쓴이는 인간의 정체성의 확립이 아닌 여성의 정체성의 확립으로 곡해하고 있다. 왜냐면 결혼과 육아는 단지 여자들만의 몫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소한 아들의 경우 아버지(남자)가 교육을 시켜야만 하는 부분이 많고 결혼과 육아는 남자들도 얽매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번돈을 자신 혼자만을 위해 쓰는가? 정상적인 사회에선 남자의 번돈은 가족의 부양(결혼과 양육)에 쓰인다.)  또한 남자들 역시 다른 사람과의 관계 즉 사회성에 얽매이기 마련이다.

글쓴이의 주장이 맞을려면 윗장은 "그 여자가 자신의 아이와 남편을 내 팽개치고" 라고 했어야 했다.

그런 관점에서 사막또한 쇠사슬과 밧줄을 끊어 버린것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 할것이다. 사막이란 여기선 "은둔"이라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또는 인간세상에서 벗어나 사람과 같이 사회안에서 사는것이 아닌 홀로 살아가는것의 상징) 하지만 이 역시 인간적인것으로 봐야지 (왜냐면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니깐.) 여성적이나 남성적으로 구분해 보는것은 오류이다. 남자도 여성도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4.  무덤이나 교차로에서 사람들에게 돌을 던짐.

이것이 그나마 글쓴이의 주장중에 설득력이 조금은 있는것이지만 이 역시 글쓴이의 곡해에 지나지 않는다. 글쓴이와 생각처럼 실제로 남성의 폭력성과 여성의 비폭력성이 어느정도 사회에 의해 인간에게 세뇌되어진것은 부정할수 없고 그럼으로서 여성의 폭력성이 부정되어진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남성의 폭력성도 많은 사회에선 터부시 되어온건 사실이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남성이나 여성을 떠나서 폭력성보단 타협과 공존이 많은 전통적인 사회에서의 이상이였다. (실예로 많은 사회에선 문이 무를 지배해야한다고 봐왔던것도 사실이다.) 만약 윗장에서 "그여자가 남자들에게 힘겨루기나 씨름들을 도전해왔다"라고 한다면 글쓴이의 주장이 타당할수도 있었겠지만...

5. 사탄이 나와 청년의 모습으로 변하여.

글쓴이는 아마도 "청년의 모습으로 나왔다"를 가지고 어머니와 아내 이외의 정체성이 깍였다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또한 그로인해 여성의 남성성을 부정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구분짓는 것은 누구인가?

글쓴이는 사회나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나 이는 현실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우선 여성의 남성성을 사회가 인정안할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어쨌단 말인가 자신이 원한다면 사회의 백안을 무시하고 남성성을 유지하면 될것이 아닌가? 실제로 "주위의 눈을 신경쓰지말고 대범해져라"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성성의 기본이다. 여성이 진정으로 남성성을 유지하고 싶다면 이런 대범함을 우선 가져야하는게 아닐까? 사회가 청안으로 봐주길 바라는것 자체가 이미 스스로의 남성성을 버리는것이 아닌가? 그렇담 결국 여성성이나 남성성을 구분짓는건 바로 여성 스스로가 아닌가?

그렇담 결국 글쓴이의 주장은 허무맹랑한것에 불과했다고 볼수도 있고 윗글을 정확히 사회학이나 인문학적으로 해석을 한다면 인간성의 확립이라고 봐야 할것이다. 

 

 

 


killjoy 2005-12-01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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