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스 - 셰익스피어전집 1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 민음사 / 1997년 5월
평점 :
품절


남자들의 게임의 규칙 두 개. 1 왕에 대한 충성. 2 왕에 대한 반역. 1번 규칙으로 유지되는 것이 질서이다. 2번 규칙도 1번과 다르지 않다. 왕에 대한 반역은 새로운 왕에 대한 충성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크게 말해서 남자들의 게임의 규칙은 위계질서의 수호이다. 남자들의 본성이 그러하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남자들이 지배 집단이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지배 집단은 지배 질서의 유지와 주기적인 쇄신을 요구한다고.

그런데 지배 질서의 규칙이 절대적이거나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절대'왕권의 지배권역에도 바깥이 있다. 이 책에서 그 바깥 영역은 마녀들의 공간으로 그려진다. 마녀들에게는 지배 질서의 법이 작용 못한다. 이들에게는 왕에 대한 충성심도 없고 왕권에 대한 야망도 없다. 이러한 마녀들의 존재 자체가 지배 질서에 대한 교란이다. 지배 질서 내부에서 자기가 속한 체계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사람에게 마녀란 ‘절대성의 파괴자’라는 개념화조차 하기 힘든 모순 존재이다. 이렇게 지배 질서의 중심에서는 그 힘이 주변부까지 고르게 미치지 못하지만, 주변부에서 이루어지는 마법의 힘은 중심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

그리고 레이디 맥베스. 문제적인 여자. 그는 여자이면서 남자들의 게임의 규칙에 몸을 싣는다. 여자는 지배 집단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모른다. 높은 신분의 자기만은 예외적인 여자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의식적으로 자기 안에서 남성성을 일깨우려고도 했다.

그는 남자들의 질서 내부에 자기 자리가 있다고 오인하는 캐릭터이다. 맥베스의 부인으로서 남편의 이름을 공유하면서 그는 자신이 맥베스인 줄 안다.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는 권력의 취득이라는 남자들의 게임의 규칙에 따라 그들의 욕망을 모방하면서 남편에게 대신 행동할 것을 촉구한다.

왕위에 오른 맥베스는 죄책감과 의심으로 광기로 치닫는 과정에서 레이디 맥베스를 점점 밀어낸다. 그는 더 이상 자기 아내를 자기와 한 몸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제 그에게 아내는 과거의 자기 행동을 상기시키는 이물질로서 지배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맥베스 그 자신이었던 레이디 맥베스는 이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좌천된다.

그녀에겐 본래 고유의 이름이 없었다. 그녀는 온전한 맥베스가 아니라 레이디 맥베스 즉 불완전한 맥베스이다. 오인의 결과였던 이름과 자리와 욕망의 대상을 상실하게 되자 레이디 맥베스는 자살한다. 존재 의미의 상실로 인해 필연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배 질서 내에서 벌어진 이 모든 비극이 질서 바깥의 마녀들에게는 전혀 비극적인 것이 아니다. 지배 질서의 내면화 없이 어떻게 그 낯선 사건에 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그들에게는 지배 질서의 법은 낯선 것이다. 결혼으로 여자가 남자에 동화되고 남자의 욕망을 모방하게 되는 것도 이들에게는 기이한 풍습이다. 여자가 남자와의 차이를 발견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존재 의미의 상실이 되는 것도 그들에게는 이상한 논리이다.

레이디 맥베스는 허공의 거미줄에서 거미가 추락하듯 남자들의 체계에서 탈락하였지만 그 결과가 꼭 죽음이었어만 했을까? 마치 그 법의 체계가 세계 전체이고 그 바깥은 없다는 듯이? 그러나 레이디 맥베스가 맥베스 자신과 동일인이 되는 것만큼이나 황야의 마녀들에게로 건너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황야에도 사람이 살 수 있다는 것을 고귀한 신분의 ‘레이디’가 어찌 알았겠는가? 고귀한 신분의 대가가 여자들에게는 고립과 단절이구나. 그녀에게 주어진 삶의 방법은 자기가 맥베스 자신이라는 환상 속에서 사는 방법이었다. 환상이 깨지면? 죽거나 미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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