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몇 세기를 동시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동시에 진보와 퇴보를 하고 있습니다. 한 국가로서 우리는 양극단으로 치달음으로써 늙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반대 방향을 바라보는 눈을 가진 귀상어의 머리처럼 커지고 있습니다. . .

개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우리가 감내하기 어려운 것은 그 정신분열증적 성격입니다. 이것은 옛것/새것의 문제만이 아니라 오늘날 국가경영이 보여주는 철저한 비논리에도 해당됩니다. 우리집 뒷길에서 매일 밤 나는 우리의 디지털 혁명을 앞당기기 위해 광섬유 케이블을 설치하려고 땅을 파고 있는 쇠약한 인부들을 지나쳐 걸어갑니다. 혹독한 추운 겨울날씨에 그들을 촛불 몇 개 켜놓고 일을 합니다.(125-26쪽)

내가 작가-활동가로 불리는 것은 [작은 것들의 신]을 쓴 후 내가 세편의 정치 에세이를 썼기 때문입니다. . . 그런데, 나는 [작은 것들의 신]을 쓴 사람은 왜 작가로 불리고, 정치 에세이를 쓴 사람은 왜 활동가로 불려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작은 것들의 신]은 소설이지만, 내가 쓴 어떤 에세이 못지않게 정치적입니다. 물론 내 에세이들은 논픽션입니다. 그러나, 대체 언제부터 작가들이 논픽션을 쓸 권리를 포기했는지요? (130쪽)

이와 같은 환경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관련해서 나를 ‘작가-활동가’라고 부르는 것은 나를 이중으로 움찔하게 만듭니다. 첫째, 그것은 작가와 활동가 모두를 위축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사용된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한 작가의 존재와 그 가능성의 영역과 범위와 영향력을 축소시키려는 기도입니다. 원래 어떤 정치적인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한다는 것은 명석한 논리와 열정과 용기와 대담성과, 또 때로는 야비함까지도 필요로 하는 법인데, 작가라는 것은 이런 일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부드러운 존재라는 암시가 여기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로, 활동가라는 것은 지적 스펙트럼에서 보다 거칠고 조야한 쪽에 서 있다는 암시가 여기에 또한 들어있습니다. 활동가는 본래 명확히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고, 따라서 복잡성과 지적 세련을 결여하고 있으며, 그 대신 사물에 대한 거칠고 단순하며 일방적인 이해로써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볼 때 이 용어가 갖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모든 저항적 운동을 직업적 활동가들이 하는 일로 만들고, 거기에 이름표를 붙임으로써, 결국 문제를 봉쇄하고, 나아가서는 문제해결은 직업적 활동가들에게 달려 있다고 암시한다는 데 있습니다. (137-38쪽)

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문제들에 대한 공적 논쟁의 비전문화야말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전문가’들에게서 우리의 미래를 다시 낚아채와야 할 때입니다. 공적 문제를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언어로 질문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또한 일상적인 언어로 하라고 요구할 때입니다. (138쪽)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상식적인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서 있습니다. 사건들간의 연관성을 밝혀주고, 그것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줄 사람들은 작가, 시인, 예술가, 가수, 영화제작자들입니다. 회사 중역회의실의 현금의 흐름을 가리키는 도표와 현란한 말들을 살아있는 사람들의 살아있는 삶에 관한 진실한 이야기로 번역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힘 때문에 사람이 가정과 땅, 일자리와 인간적 존엄성, 그리고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잃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말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고, 따라서 증오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그 누구 또는 그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 갖가지 이야기들을--.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공간입니다. 새로운 종류의 도전을 기다리는 문제이고, 새로운 종류의 예술을 위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분명하지 않은 것을 분명한 것으로, 만져지지 않는 것을 만져질 수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예술, 실체가 없는 적을 현실적인 존재로 그려낼 수 있는 예술 말입니다. (143쪽)

아룬다티 로이, 작가와 세계화 --‘전문가’들에게 맡겨두어야 할 것인가
녹색평론 2002년 3-4월 통권 제 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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