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탄줘잉 엮음, 김명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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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의 삶은 유한합니다. 그 유한한 삶을 최대한 만족스럽게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책이라는 녀석은 그 특유의 네모반듯한 모양새와 검은 활자들로 가득 찬 곳을 지긋이 응시하고 있는 우리들로 하여금 내일이 마지막삶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살라는 당부를 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치열하게 살다보면 인생의 한복판에서 전후좌우는 어느새 사라지고 맙니다. 좋은 의미의 ‘중독’이라고 할까요? 하나에 미쳐서 그 길로 계속 걷다보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빨리. 그리고 올바른 방법으로 도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만 가득하지. 자신을 지탱하고, 자신을 지금까지 있게 한 그들 주위의 배경들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는 바로 이런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이 책이 출간되어 사랑을 받게 된 시기가 IMF의 상처가 아물어가는 2005년. 그 시대의 대한민국은 범람하는 구조조정의 차가운 흐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우리들의 아버지들과 삼촌들이 지난 8년 간의 어두운 터널에서 희미하게나마 옅은 숨을 쉴 수 있었던 해가 아니었나 회상해봅니다.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는 사람들의 미약한 숨소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유지시켜주는 인공호흡기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주었습니다. 정신없이 달려서 도착한 이곳이 도무지 어디인지 알 수 없을 때. 이 책은 이곳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동시에 헐레벌떡 뛰어오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실타래를 주섬주섬 챙기게 함으로써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사장으로부터 어머니의 발을 씻겨드려야 취업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한 청년은 비로소 자신을 믿고 바라봐주었던 부모님의 희생을 발을 씻겨드리면서 딱딱하게 굳은 그 발을 바라보면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학문적으로 큰 성공을 이루어 낸 대학교수는 우연히 밤늦게 길을 걷다 자신의 모교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이끌려 발걸음을 하고, 그곳에서 그를 아직까지 잊지 않고 있었고, 뿐만 아니라 교수가 쓴 책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선생님의 큰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큰돈을 벌고 난 뒤, 40년 만에 고향을 방문하게 된 사업가는 친구들이 건네준 이름 모를 하얀 액체를 마시고서야 비로소 고향의 정취에 흠뻑 취할 수 있게 됩니다.  

출판편집자로 유명하신 한기호님의 <책은 진화한다>를 보면 지금까지 베스트셀러가 된 여러 책들의 성공요인을 분석하고 있는데요. 그가 이 책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이 책의 성공요인은 기존의 책들이 감성에만 호소하고 있는데 반해 이 책은 제목의 ~해야 할, 부제목의 ~하기. 와 같이 독자들로 하여금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미처 판단이 서지않는 독자들로 하여금 아무런 걱정과 의심없이 올바른 길로 이끌었다는 것이 성공요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쉬어가기(주위를 되돌아봄)와 또 한 번의 전진이라는 목적에 상당히 많은 비중을 부여하고 있는 이 책이 글로벌 금융위기시대인 2010년에 출간되었으면 어땠을까요? 나름대로 짐작해보건데 2005년과 같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긴 어렵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다시금 찾아온 불황의 그늘 앞에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건 이 책이 전달하고 있는 포근한 여유가 아니라 또 다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2009년에 나온 책들의 상당수가 <불황기> 또는 <불경기>  그리고 <대공황>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으며, 이 시기에 대한 대처방법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기를 힘겹게 맞서고 있는 저에게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의 메시지는 분명히 바람직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지금이 아니라 조금 더 나중에. 그러니까 이 시기를 이겨내고 난 이후에 하나하나씩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끝내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불황이 가져다주는 심리적인 압박감은 나 자신도 모르게 나를 초조하게 하고, 나를 쉬어가지도 못하게 옥죄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인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 책에서 인상적인 이야기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A : “살아오면서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입니다.”
B : “자네는 어떻게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말하는 거지? 자네가 결혼하던 날은? 설마 오늘보다 행복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겠지?”
A :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영원히 결혼하던 그날을 기억 할 겁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결혼이었거든요. 첫애가 태어나던 순간도 기억하고 있어요.”
B : “그것 보라고, 결혼이나 첫 아이 출산만큼 행복한 날이 어디 있어?”

“또 다른 수많은 아름다운 날들도 기억합니다. 분명히 그런 날들도 무척 행복했어요. 하지만 오늘처럼 좋았던 날은 없지요. 그날들 중 어떤 날도 단지 두 번째일 뿐이에요. 그 하루하루가 지금의 생활을 만들어주었습니다. 행복했던 날들이 모두 모여서 오늘을 만들어준 것이니 바로 오늘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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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3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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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누구나 한번쯤 이름은 들어보았을 과학 분야의 고전 <이기적 유전자>에 드디어 손을 대고야 말았습니다. 이 책을 구입하고 읽게 되기까지 정확히 1년의 시간이 흘러버리고 말았는데요.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은 소장하기는 쉬워도 완독해내기엔 너무 까다로운 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이 책을 읽기를 상당히 주저하는데요. 각종 포털사이트의 책 소개에 달린 여러 사람들의 댓글들은 이 책의 진입장벽을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그 내용들을 들여다보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번역상의 오류가 너무 심하다.” 면서 차라리 원서를 읽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저는 원서의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전문용어로 가득 찬 어려운 영어들을 원서로 해석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제기하고 있는 번역에 대한 우려를 무시하고 <이기적 유전자>를 읽게 되었는데요. 제가 읽은 버전은 제일 최근에 나온 30주년 기념판이었습니다.

저도 이 책을 매우 어렵게 읽었습니다. 보통 마음먹고 읽으면 오래 붙잡지는 않는데 이 책은 내용도 어렵고, 생각할 여지를 너무 많이 제공하는 바람에 일주일이나 걸렸습니다. 그렇지만 책을 다 읽고 이 책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니 책 자체의 번역문제 보다는 리처드 도킨스의 서술방법 자체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리처드 도킨스가 쉽게 풀어쓴다고 노력은 했지만 그가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전부 이런 분야의 비전공자라고 할 수 있는 우리들로서는 개념 자체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 가장 큰 이유고, 또한 책의 내용의 전개방식에 있어서 많은 학자들의 이론을 기본토대로 깔아놓고 어떤 부분에서는 기존의 의견에 반박하는 형식을 취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그것을 보완하는 기술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앞서 제공한 이론에 대해서 알 길이 없는 우리들로서는 이해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리처드 도킨스는 모든 챕터의 마지막에 항상 자신의 의견을 정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내용상 전개에 있어서 이해가 안 되더라도 각 챕터의 마지막까지 계속 읽다보면 그가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사실 책을 읽지 않아도 이기적 유전자가 의미하는 핵심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은 유전자의 복제 욕구를 수행하는 이기적인 생존 기계이다”라는 문장이 나와 있기 때문에 이기적 유전자가 무엇인지 추상적으로는 이해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목만 알고 미리 유추해버리면 “인간은 이기적인 생존기계라면 왜 인간이나 생물들은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 마주치게 됩니다. 그에 대한 답을 간단히 하자면 그런 “이타적 행동 자체가 종을 오래 유지시킬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방식”이기 때문에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트리려는 이기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유전자는 그런 행동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처럼 이타적인 행동이 어떻게 보면 가장 이기적인 판단이 되어버리게 된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이타적인 행위가 무조건 이기적인 행위로서의 해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떤 생물체들이 살고 있는 환경의 조건에 따라서 가장 안정적인 포지션(ESS)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환경과 생물들의 성향에 따라서 이타적인 행동이 가장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일 수 있고, 또 다른 환경과 생물들의 성향에서는 그들을 배신하고 자신의 이익을 탐하는 것이 가장 오래 살아남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가장 안정적인 포지션(ESS)을 찾기 위한 생명체들의 환경은 ‘죄수의 딜레마’의 이론으로 구성되는데요. 이 ‘죄수의 딜레마’의 게임이론이 “연속적인가?, 불연속적인가?” 와 같은 여러 가지 이론 속에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환경이 구성되어지고 그 환경에 의해서 행위자체의 우열은 달라집니다. 안정적인 상태가 어떤 형태건 간에 그 행위들은 각 종이 오래살기 위해서 오랜 시간 거쳐 온 결과물의 표현이 됩니다.

이 결과들은 엄청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퇴적되어왔습니다. 그 긴 시간동안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돌연변이가 발생했을 것이고, “유전자의 수명, 다산성, 복제의 정확도”의 여부에 따라서 환경에 적합한 돌연변이가 자연선택을 받아서 새롭게 주류로서 우뚝 서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생명체라는 큰 범주에서부터 이 세상에 처음 만들어지게 된 유전자 원자 하나라는 아주 작은 범주에까지 부합하는 내용입니다.

그렇지만 리처드 도킨스가 주장하는 것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은 유전자의 전파와 복제를 달성하기 위한 단순한 껍데기”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개개인의 인간이라는 소속감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유전자가 설계해놓은 큰 설계도를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단세포동물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는 얘기인데 어떻게 우리들은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일까요?”

이것을 설명하고 있는 재미있는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밈(Meme)"라는 것의 존재입니다. 쉽게 말해서 문화적 유전자라고 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이 밈이라는 것은 유전자와 다르지만 똑같은 방식으로 진화합니다. 고대의 구석기 시대의 문명에서부터 모방으로 차츰 진화하고 종이의 발명과 책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전파됩니다.

이렇게 인간은 모방을 통해서 밈이 진화되어왔고,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분야에 걸쳐서 밈의 유전자는 현재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문화, 예술, 사회, 종교 모든 부분에서 말이죠. 이렇게 누적된 지식이 인간을 좀 더 멀리 볼 수 있게 만들고,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와는 달리 이타적인 행동이 이득이 되는 행동임을 간파할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물론 그런 상황을 역이용해서 약자를 괴롭히는 무자비한 사람들도 있긴 합니다만 그런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 역시 자신의 이득을 가장 많이 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결론은 한 곳으로 귀결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성선설을 따를까요?” 아니면 “성악설을 따를까요?”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나름대로 판단해본다면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태도를 취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분법적인 논리에 상관없이 말입니다.

즉, 선, 악의 구도를 나누기보다는 주위의 환경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자신이 처한 주위의 모든 환경들이 배신을 했을 때, 가장 큰 이득을 얻는다면 ‘악한성향’을 띄게 될 것이고, 환경이 나쁜 행동에 대해서 처벌을 내릴 경우 ‘선한성향’을 띄게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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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 digilog - 선언편
이어령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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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터넷 공간에는 동서남북이 없지만 여전히 오늘날 해는 동쪽에서 아날로그 방식으로 뜬다. 무엇보다도 디지털로는 절대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 설날의 떡국 맛이다. 모든 감각을 양자화하여 빛의 속도로 보낼 수 있지만 컴퓨터와 인터넷이 천만 번 까무러쳐도 못하는 것이 어금니로 씹는 미각의 맛이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금니로 씹어서 맛을 음미하고, 무엇이든지 직접 손으로 이용해야했던 ‘아날로그’적인 것들에 길들여져 살아왔다. 뿐만 아니라 나와 당신들의 할아버지 그리고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우리보다 더 ‘아날로그’와 밀접한 삶을 이루며 살았다.

하지만 산업사회를 지나서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우리들 앞에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낸  텔레비전. 컴퓨터와 휴대폰과 같은 간접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우리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정보의 바다라고 일컬어지는 그 속에서 우리들은 손쉽게 헤엄쳐서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세상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우리 눈앞에 재생시킬 수도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들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자기분야의 ‘프로’들이 많았고, ‘프로’들의 현란한 동작에 취해서 우리들은 점차 직접 하는 즐거움보다는 하는 것을 지쳐보는 즐거움에 익숙해져갔다.

어느새 우리는 삶에서의 주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객체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정보화 사회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왜 우리들을 객체적으로 바꿔버리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아날로그와 디지털 문화의 차이점에서 찾을 수 있다.

아날로그라는 것은 오감을 충족시킴으로서 나와 그것이 일체화 될 수 있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이란 보고, 들을 수는 있으나 그것과 내가 일체화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을 객체화 시키는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2010년의 트렌드 보고서 <트렌드 코리아>라는 책에서도 <당신의, 당신을 위한, 당신에 의한>이라는 키워드로서 개인적인 존재감이 커진다고 이야기되고 있고, 이런 트렌드를 반영하듯이 텔레비전을 틀면 나오는 각종 광고들은 우리들에게 내 스타일대로 가는거라는둥. 생각대로 하는거라는둥 하면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이것들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디지털의 아날로그화. 즉, 책의 제목과 같은 <디지로그>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는 우리들이 느낄 수 없는 제품은 실패할 것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문화들 역시 우리가 오감을 발동시킬 수 있어야하며 우리의 몸으로 체득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함을 일러준다.

어느새 디지털문화는 알게 모르게 우리들로 하여금 아날로그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먹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책에서 예를 든 것과 같이 애플의 베어 먹은 사과마크나 자바의 커피 향은 우리가 그들의 브랜드를 처음 봤을 때,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연상시키는 작용을 하여 친밀감을 높일 수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를 하나 덧붙이자면 작년 명텐도 해프닝을 불러일으켰던 닌텐도사의 Wii라는 제품 역시 <디지로그>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저자인 이어령님이 예측한 그대로 현재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디지로그>제품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면에서 아날로그의 손맛을 충족시켜주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그래서 사실 나는 손맛이 그립다.

아마도 앞으로 소비자의 감성을 유혹할 수 있는 제품은 20대 중반을 기준으로 아날로그적인 향취가 물씬 풍기는 제품들이 나이에 비례할 수록 큰 인기를 얻게 될 것이고, 철저히 디지털적인 느낌을 보여주는 제품들이 나이에 반비례해서 인기를 얻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그리운 것은 손맛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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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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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의 연애>의 프롤로그에 있는 한 단락이 나의 정신세계 속에 내재되어 있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어느 한 공간을 세차게 뒤흔들어 놓고야 말았다.

“존재했던 엄연하고 무거운 현실도,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져버립니다. 그 반대로, 존재하지 않았던 일도 일단 기록되어버리면 존재했던 것으로 착각되어요.(중략) 기록은 기억의 확장이니까요.(중략) 결국 기록은 존재를 대신해요. 존재는 기록이 남아 있는 그 범위까지만 유효성을 가지죠. 그렇기 때문에 영리한 사람이라면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이 어떻게 기록되고 있는지 그 기록이 어떻게 유지될 것인지 신경 써야 할 것입니다.”

기록과 존재의 표출 => 영혼을 기록한다는 것

지은이의 관념으로 해석해봤을때 기록이라는 것은 존재를 드러내는 필연적인 조건이었다. 그리고 영혼의 이야기들을 기록하는 주인공 이진의 행위는 소설 속 세계의 존재. 즉 현실을 투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의 기록. 그 속에는 여러 군상들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이 영혼이라는 개념을 식스센스의 영혼처럼 죽은 사람의 영혼일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이현의 연애>의 영혼은 죽은 영혼이 아니라 삭막한 세상을 힘겹게 살아가는 불특정한 어느 누군가의 영혼이었다. 즉, 현실세계에 나와 같이 숨 쉬며 어딘가에서 함께 울고 웃는 사람들의 영혼이었다. 

대대로 먹고 살 재산을 벌어놓은 시아버지의 주식실패. 그로 인해서 겪게 되는 한 며느리의 고단한 삶. 돈이라는 장난감의 부작용이 가져온 가정파탄과 동시에 빚더미에 앉게 된 한 젊은이의 꺼지지 않는 허영심의 질주. 그리고 권력의 중심 그 한가운데에서 어느 하나 모자랄 것 없어 보이는 부총리의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그릇된 욕정의 씨앗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이현의 연애>에 담겨져있다. 정확하게 말해서 이현의 연애대상이었던 이진의 손끝을 통해 기록되고 우리에게 전달되며 전달된 우리들로 하여금 현 시대를 조명하도록 만든다. 소설 속의 대한민국일 수도 있고, 아니면 현재의 대한민국의 어두움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이 글을 읽는 여러 사람의 몫일테다.

또 하나의 이야기. <이현의 연애>

사실 위에서 이야기한 기록과 존재. 그리고 영혼에 관한 이야기는 이 소설의 두 가지 주요부분 중에 하나일 뿐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관점은 바로 제목 그대로 <이현의 연애>에 관련한 연애론적인 이야기였다.

어린 나이에 품고 있던 이상형을 끝내 사랑할 수 있게 된 한 남자 이현. 그냥 이런 단순한 문장을 통해 강 넘어 불구경 하듯이 들여다본다면 이현이라는 남자는 엄청난 행운아일텐데, 이 소설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이현이라는 남자의 삶은 그렇게 기쁘지도 않은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불행할지 기쁠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아낌없이 쏟아 붓는 사랑. 그리고 그녀를 탐닉하는 그 순간.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남들의 시선들을 즐기는 그의 모습을 본다면 그는 분명 행복했을 것이다.

허나 그녀가 이현을 사랑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던 많은 날들은 다른 평범한 가정과는 사뭇 다른 둘 사이의 냉랭한 기류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공개되었던 부총재의 영혼 속에 가두어져 있었던 이현의 모습은 그를 한없이 괴롭게 했고 분노케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의 행복과 절망은 마침표가 찍혀버리게 된다.

영혼을 기록하던 여인 이진은 그녀의 어머니와 같은 모습으로 사라져버렸다. 그의 분신만을 남편에게 떠넘겨버리고서 말이다. 과연 이현은 이런 현실에 어떻게 대처해나갈지 자못 궁금해진다. 그의 장인처럼 분노의 대상으로서 여길지. 아니면 아직까지 남아있는 사랑과 후회를 담아 키워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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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 88만원 세대에게 전하는 한기호의 자기 생존 솔루션
한기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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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나는 이 세상이 너무나 궁금했던 것 같다. 세상 그 자체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학창시절의 교과서에는 그 어느 곳에서도 “이 세상이 어떻다.” 라는 이야기를 찾아낼 수 없었다. 그저 수업을 듣고 정리하고 외우고 그 뿐이었다. 아무런 비판없이 순순히 받아들여야 했다. 대학을 가고 싶다면 말이다.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교과서라는 것을 “정상학문을 배우기 쉽도록 만들어 놓은 도구”라고 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가 지난날 동안 배워왔던 ‘교과서’라는 것은 우리는 앞으로 배워야할 지식을 따라가기 쉽도록 요약해놓은 것들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래서 교과서만 봤더니 성적이 잘나오더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정해지지 않은 비밀스런 사실에 대한 이야기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에 큰 파동을 일으킨 10년 전의 IMF는 어린 나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나중에 우리나라의 경영방식의 미숙한 점이 있었다고 배웠기 때문에 이해하고 지나왔다.

하지만 작년에 불어 닥친 또 다른 파동은 미국발 금융위기는 나로 하여금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 대한 물음만 잔뜩 던져놓고 떠났다. 내가 직접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이 사건. 그리고 그와 동시에 벌어졌던 이명박 정권의 광우병 파동 그리고 사대강 사업. 2008년에 일어났던 여러 가지 사건들은 나로 하여금 정상학문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들을 공부해야 할 때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동안 묵묵히 내게 주어진 과정들을 이수했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었던 금융위기는 경기침체와 취업난을 일으켰고 나에게 절망의 구렁텅이로 이제 떨어져보라고 ‘히죽히죽’ 비웃음을 던졌다. 그렇다고 나는 그런 비웃음 따위에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위기는 바로 기회”라고 누가 말했던가? 나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지식의 폭을 넓히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수단으로 교과서가 아닌 책을 책했다. 

그 이유는 사회가 원하는 사람은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에 잘 따라오는 수동적인 사람. 혹은 전공과목 하나 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더 나아가서 토익점수가 900점이 넘으면 취업은 자연스럽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어진 여건 속에 존재하고 있는 티끌 같은 미세한 가능성을 토대로 새로움을 창조하는 사람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한비야 님이 이야기하셨던 “책 한권으로 사람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는 이야기를 나는 책을 읽으면서 몸소 체험해 볼 수 있었다. 이런 지식의 중독에 빠진 나는 위기의 1년을 기회의 1년으로 만들기 위해서 무작정 읽고, 그리고 나의 생각들을 차곡차곡 남기기 시작했다. 이 책을 쓰신 한기호 님에 비하면 아직까지는 조족지혈 정도에 불과하긴 하지만 말이다.

이런 새로움을 탐구해나가는 과정들이 아마도 저자가 이야기하는 ‘컨셉력’ 이요.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지금껏 실행해왔던 ‘컨셉력’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실제로 나는 어떤 한 가지의 책을 보고나서 또 다른 책에서 읽었던 전혀 연관성 없는 이야기들을 접목시켰을 때 그 두 가지의 것들이 이상하게도 매끄럽게 이어진다는 것을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결코 멈추지 않으면서 여러 분야의 지식들을 그곳에다 적용시켜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것. 지금까지는 잘 되지는 않았지만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노력한 바로 그 활동들의 지향점이 바로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라는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내 나이보다 더 오랫동안 출판계에 몸담고 계신 ‘책의 달인’ 한기호 선생님. 그가 이곳저곳 흩뿌려 놓는 지식의 결정체들과 각종 인용도서들은 앞으로 내가 가야할 방향을 제시해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방누수님의 <생존독서력>이라는 책을 보면서도 책을 읽은 후에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을 많이 배웠는데, 이 책에서도 그런 방법들을 배운 것 같다.

나와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름 모를 20대들이여. 아직도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면 이 책을 먼저 찾아라. 그리고 이것을 읽어라!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2009년 1월 1일 빌 게이츠의 <생각의 속도>를 읽으면서 지식의 가지를 넓히기로 결심했던 나. 그리고 그 가지 넓히기를 수행해왔던 지난 일 년 동안의 비밀이 이 책을 통해서 낱낱이 공개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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