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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3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한번쯤 이름은 들어보았을 과학 분야의 고전 <이기적 유전자>에 드디어 손을 대고야 말았습니다. 이 책을 구입하고 읽게 되기까지 정확히 1년의 시간이 흘러버리고 말았는데요.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은 소장하기는 쉬워도 완독해내기엔 너무 까다로운 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이 책을 읽기를 상당히 주저하는데요. 각종 포털사이트의 책 소개에 달린 여러 사람들의 댓글들은 이 책의 진입장벽을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그 내용들을 들여다보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번역상의 오류가 너무 심하다.” 면서 차라리 원서를 읽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저는 원서의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전문용어로 가득 찬 어려운 영어들을 원서로 해석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제기하고 있는 번역에 대한 우려를 무시하고 <이기적 유전자>를 읽게 되었는데요. 제가 읽은 버전은 제일 최근에 나온 30주년 기념판이었습니다.
저도 이 책을 매우 어렵게 읽었습니다. 보통 마음먹고 읽으면 오래 붙잡지는 않는데 이 책은 내용도 어렵고, 생각할 여지를 너무 많이 제공하는 바람에 일주일이나 걸렸습니다. 그렇지만 책을 다 읽고 이 책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니 책 자체의 번역문제 보다는 리처드 도킨스의 서술방법 자체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리처드 도킨스가 쉽게 풀어쓴다고 노력은 했지만 그가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전부 이런 분야의 비전공자라고 할 수 있는 우리들로서는 개념 자체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 가장 큰 이유고, 또한 책의 내용의 전개방식에 있어서 많은 학자들의 이론을 기본토대로 깔아놓고 어떤 부분에서는 기존의 의견에 반박하는 형식을 취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그것을 보완하는 기술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앞서 제공한 이론에 대해서 알 길이 없는 우리들로서는 이해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리처드 도킨스는 모든 챕터의 마지막에 항상 자신의 의견을 정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내용상 전개에 있어서 이해가 안 되더라도 각 챕터의 마지막까지 계속 읽다보면 그가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사실 책을 읽지 않아도 이기적 유전자가 의미하는 핵심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은 유전자의 복제 욕구를 수행하는 이기적인 생존 기계이다”라는 문장이 나와 있기 때문에 이기적 유전자가 무엇인지 추상적으로는 이해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목만 알고 미리 유추해버리면 “인간은 이기적인 생존기계라면 왜 인간이나 생물들은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 마주치게 됩니다. 그에 대한 답을 간단히 하자면 그런 “이타적 행동 자체가 종을 오래 유지시킬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방식”이기 때문에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트리려는 이기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유전자는 그런 행동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처럼 이타적인 행동이 어떻게 보면 가장 이기적인 판단이 되어버리게 된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이타적인 행위가 무조건 이기적인 행위로서의 해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떤 생물체들이 살고 있는 환경의 조건에 따라서 가장 안정적인 포지션(ESS)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환경과 생물들의 성향에 따라서 이타적인 행동이 가장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일 수 있고, 또 다른 환경과 생물들의 성향에서는 그들을 배신하고 자신의 이익을 탐하는 것이 가장 오래 살아남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가장 안정적인 포지션(ESS)을 찾기 위한 생명체들의 환경은 ‘죄수의 딜레마’의 이론으로 구성되는데요. 이 ‘죄수의 딜레마’의 게임이론이 “연속적인가?, 불연속적인가?” 와 같은 여러 가지 이론 속에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환경이 구성되어지고 그 환경에 의해서 행위자체의 우열은 달라집니다. 안정적인 상태가 어떤 형태건 간에 그 행위들은 각 종이 오래살기 위해서 오랜 시간 거쳐 온 결과물의 표현이 됩니다.
이 결과들은 엄청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퇴적되어왔습니다. 그 긴 시간동안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돌연변이가 발생했을 것이고, “유전자의 수명, 다산성, 복제의 정확도”의 여부에 따라서 환경에 적합한 돌연변이가 자연선택을 받아서 새롭게 주류로서 우뚝 서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생명체라는 큰 범주에서부터 이 세상에 처음 만들어지게 된 유전자 원자 하나라는 아주 작은 범주에까지 부합하는 내용입니다.
그렇지만 리처드 도킨스가 주장하는 것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은 유전자의 전파와 복제를 달성하기 위한 단순한 껍데기”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개개인의 인간이라는 소속감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유전자가 설계해놓은 큰 설계도를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단세포동물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는 얘기인데 어떻게 우리들은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일까요?”
이것을 설명하고 있는 재미있는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밈(Meme)"라는 것의 존재입니다. 쉽게 말해서 문화적 유전자라고 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이 밈이라는 것은 유전자와 다르지만 똑같은 방식으로 진화합니다. 고대의 구석기 시대의 문명에서부터 모방으로 차츰 진화하고 종이의 발명과 책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전파됩니다.
이렇게 인간은 모방을 통해서 밈이 진화되어왔고,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분야에 걸쳐서 밈의 유전자는 현재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문화, 예술, 사회, 종교 모든 부분에서 말이죠. 이렇게 누적된 지식이 인간을 좀 더 멀리 볼 수 있게 만들고,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와는 달리 이타적인 행동이 이득이 되는 행동임을 간파할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물론 그런 상황을 역이용해서 약자를 괴롭히는 무자비한 사람들도 있긴 합니다만 그런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 역시 자신의 이득을 가장 많이 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결론은 한 곳으로 귀결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성선설을 따를까요?” 아니면 “성악설을 따를까요?”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나름대로 판단해본다면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태도를 취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분법적인 논리에 상관없이 말입니다.
즉, 선, 악의 구도를 나누기보다는 주위의 환경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자신이 처한 주위의 모든 환경들이 배신을 했을 때, 가장 큰 이득을 얻는다면 ‘악한성향’을 띄게 될 것이고, 환경이 나쁜 행동에 대해서 처벌을 내릴 경우 ‘선한성향’을 띄게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