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로그 digilog - 선언편
이어령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인터넷 공간에는 동서남북이 없지만 여전히 오늘날 해는 동쪽에서 아날로그 방식으로 뜬다. 무엇보다도 디지털로는 절대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 설날의 떡국 맛이다. 모든 감각을 양자화하여 빛의 속도로 보낼 수 있지만 컴퓨터와 인터넷이 천만 번 까무러쳐도 못하는 것이 어금니로 씹는 미각의 맛이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금니로 씹어서 맛을 음미하고, 무엇이든지 직접 손으로 이용해야했던 ‘아날로그’적인 것들에 길들여져 살아왔다. 뿐만 아니라 나와 당신들의 할아버지 그리고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우리보다 더 ‘아날로그’와 밀접한 삶을 이루며 살았다.

하지만 산업사회를 지나서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우리들 앞에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낸  텔레비전. 컴퓨터와 휴대폰과 같은 간접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우리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정보의 바다라고 일컬어지는 그 속에서 우리들은 손쉽게 헤엄쳐서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세상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우리 눈앞에 재생시킬 수도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들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자기분야의 ‘프로’들이 많았고, ‘프로’들의 현란한 동작에 취해서 우리들은 점차 직접 하는 즐거움보다는 하는 것을 지쳐보는 즐거움에 익숙해져갔다.

어느새 우리는 삶에서의 주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객체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정보화 사회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왜 우리들을 객체적으로 바꿔버리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아날로그와 디지털 문화의 차이점에서 찾을 수 있다.

아날로그라는 것은 오감을 충족시킴으로서 나와 그것이 일체화 될 수 있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이란 보고, 들을 수는 있으나 그것과 내가 일체화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을 객체화 시키는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2010년의 트렌드 보고서 <트렌드 코리아>라는 책에서도 <당신의, 당신을 위한, 당신에 의한>이라는 키워드로서 개인적인 존재감이 커진다고 이야기되고 있고, 이런 트렌드를 반영하듯이 텔레비전을 틀면 나오는 각종 광고들은 우리들에게 내 스타일대로 가는거라는둥. 생각대로 하는거라는둥 하면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이것들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디지털의 아날로그화. 즉, 책의 제목과 같은 <디지로그>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는 우리들이 느낄 수 없는 제품은 실패할 것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문화들 역시 우리가 오감을 발동시킬 수 있어야하며 우리의 몸으로 체득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함을 일러준다.

어느새 디지털문화는 알게 모르게 우리들로 하여금 아날로그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먹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책에서 예를 든 것과 같이 애플의 베어 먹은 사과마크나 자바의 커피 향은 우리가 그들의 브랜드를 처음 봤을 때,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연상시키는 작용을 하여 친밀감을 높일 수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를 하나 덧붙이자면 작년 명텐도 해프닝을 불러일으켰던 닌텐도사의 Wii라는 제품 역시 <디지로그>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저자인 이어령님이 예측한 그대로 현재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디지로그>제품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면에서 아날로그의 손맛을 충족시켜주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그래서 사실 나는 손맛이 그립다.

아마도 앞으로 소비자의 감성을 유혹할 수 있는 제품은 20대 중반을 기준으로 아날로그적인 향취가 물씬 풍기는 제품들이 나이에 비례할 수록 큰 인기를 얻게 될 것이고, 철저히 디지털적인 느낌을 보여주는 제품들이 나이에 반비례해서 인기를 얻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그리운 것은 손맛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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