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 - 나는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
한한 지음, 김미숙 옮김 / 생각의나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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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는 부제를 가진 <1988>에서 1988이 의미하는 것은 1988년식 스테이션왜건이다. 그런데 이 1988이라는 숫자가 사뭇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하필 왜 1988일까? 개인적으로는 1989년의 천안문사태와의 연관성을 만들기 위해 1988이라는 숫자를 차용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 <1988>에서도 주인공 나의 어린 시절의 멘토. 세상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먼 길을 떠났던 띵띵 형이 천안문 사태로 희생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작가가 투쟁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처음 보여주기 위해 등장시킨 인물이 바로 띵띵 형이다. 공명정대한 판단을 내릴 줄 알았던 인물의 희생은 이 사회자 정의롭지 않음을 암시한다.

 

국도 위에서의 5일 동안. 회상을 통해 등장하는 인물들. 「10번, 리우인인, 멍멍」. 만나러 갈 인물. 「1988을 수리해준 친구」. 현재 만나게 된 인물. 「나나」. 과거와 현재. 양쪽에 걸쳐 주인공 나와 관계된 인물들은 각자 나름의 꿈을 꾸지만 꿈을 이룰 수 없게 만드는 큰 벽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등장한다.

 

"한 때 나는 민들레 홀씨였다. 어느 날 나는, 내가 그저 흩날리는 홀씨가 아니라 대지에 뿌리를 박고 있는 식물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대지가 진흙이 아닌 바람에 이리 모였다 저리 모였다 하는 사막모래라는 것도. 오랫동안 내 발 아래에 있는 사막모래는 나를 데리고 사방으로 떠돌았다. 사막모래는 나의 뿌리를 편안히 묻어주기는 커녕 시시때때로 흔들었다." -40p-

 

“중국은 직할시, 대도시, 지역급 시, 현, 진, 교외, 농촌, 산촌, 빈곤한 산촌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배우자를 찾는 기준은 사랑이 아니었다. 후커우 순위가 앞서 있는 배우자를 찾는다면 조상과 가문을 빛내는 것이었다.” -135p-

 

“『현실이 널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마. 어두운 밤을 검정색만으로 물들이지도마. 네 자신을 만들어. 현실은 네가 상상하는 것처럼 강하지 않아. 종이 위의 호랑이일 뿐….』

그때 ‘팍!’하는 소리가 났다. 멍멍은 청개구리가 밖으로 뛰쳐나오기 직전에 재빠르게 뚜껑을 덮어버렸다. 그러고는 불을 최대한 세게 올렸다. 청개구리는 유리냄비 안에서 정신없이 날뛰고 있었다. 멍멍은 한 손으로 뚜껑을 누른 채 몸을 돌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바로 현실이에요.』” 182~183p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민들레홀씨였다고 생각했던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 삶을 겪어가면서 출생위치에 따라 후커우라는 계급에 묶여 있는 즉, 사막모래에 흔들리고 있는 식물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청개구리를 눌러버리는 냄비뚜껑이 이야기하는 비합리적인 힘은 투쟁력을 상실해버리게 만든다.

 

그는 과거에 기자라는 이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권력을 무기로 냄비 속의 청개구리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지만, 실제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신문사 상사의 신문검열과 드라마 투자자의 폭로위협과 같은 냄비뚜껑들뿐이었다. 그리고 딴에는 정의를 위해 그가 과거에 썼던 기사는 현재 그의 1988에 함께 타고 있는 나나에게 냄비뚜껑이 되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는다.

 

한편, 나나라는 여인은 매춘부다. 사장에게 잘 보인 결과로 획득할 수 있는 영광의 8번과 18번의 매춘부가 아니라 40명 중에서 38번의 매춘부다. 그렇지만 그녀는 현재 처한 위치에서 더 나아가기 위해서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뱃속에 3개월짜리 아기와 함께 하고 있는 나나는 그녀의 가난과 천한 직업을 아기에게 대물림 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 그렇지만 현실의 처참함은 그녀가 2만 위안을 모으게 될 때마다 단속에 걸려서 2만 위안 전부를 범칙금이 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우연히 2만 위안이 모이게 되는 순간을 함께했던 ‘나’와 나나의 어색한 동행은 이 모든 회상을 불러오는 핵심사건이 된다. 그리고 동행과 회상 끝에서 1988 친구를 만났을 때, 그들을 기다리는 현실은 1988의 뒷좌석에 차갑게 놓인 친구의 유골함이었다. 그리고 예고 없이 찾아오는 나나의 심각한 병은 여행의 끝을 알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희망적인 메시지라고는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는 한한의 <1988>. 음울한 사회상을 풍자하는 것에 만족했던 지난 소설들과 <1988>의 결말은 달랐다. 2년 뒤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반전을 불러온다. 심각한 병에 걸렸던 나나가 낳은 아기가 두 돌이 될 때까지 무사히 성장했음을 알리며 모든 부분에서 한줄기 희망을 보여준다.

 

“만약 1988이 고장 나 도중에 멈추지만 않는다면 해안선은 나로부터 5,000킬로미터를 떠나갈 것이다. 그곳은 아주 낯선 곳이다. 그렇지만 나는 기다린 적이 있다. 당신이 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 당시 당신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았다. 내가 거짓말을 할 때도 그건 모두 진심이었다. 이번에 나는 용감해야 한다. 내가 인정했던 친구들도 내 행동을 칭찬하며 허락해 줄 것이다. 어쩌면 당신도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릴지 모른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렇게 말할지도…….『당신은 너무 어리석어.』” -278p-

 

“1988 그 친구. 띵띵 형과 10번, 그리고 리우인인과 멍멍, 그리고 또 다른 내 친구 나나. 그들은 오로지 내가 부딪혀야 하는 높은 벽을 나를 대신해 부딪혔고, 내가 빠져야 할 협곡에 대신 떨어졌다. 그런 다음 나에게 알려주었다. 『이 길은 괜찮으니까 계속 앞으로 가봐. 안녕 친구!』" -279p-

 

2년 후의 1988과 나와 나나의 아들의 새로운 여행이 암시하는 것은 1989년의 천안문 사건처럼, 어떤 투쟁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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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핵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
조셉 콘라드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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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200페이지도 되지 않는 <암흑의 핵심>의 책장은 쉬이 넘어가는 법이 없다. 가장 큰 원인은 책 속 빼곡하게 자리한 묘사의 향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무슨 '마치'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암흑의 핵심을 표현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대부분 이 묘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묘사들은 기행문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나름의 판단으로 해석한다. 그 판단에는 대부분 많은 이들이 좋다고 인정하는 것이 가장 윗자리를 차지한다. 조셉 콘래드가 <암흑의 핵심>이라고 일컫는 아프리카의 한 지역을 그리는 풍경묘사들은 유럽인들이 가지고 있는 판단의 결과로 해석해도 될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암흑의 핵심>에는 다소 어두운 분위기가 감돈다.

 

"아프리카의 해안은 마치 아직도 생성중인 것처럼 단조롭게 음침한 빛을 띄고 있을 뿐 거의 아무런 형상을 띠고 있지 않았다네." -30p-

 

"대지 속의 그 작은 공지(空地)를 둘러싸고 있던 말없는 밀림은, 마치 악이나 진실처럼, 무언가 위대하고 정복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내게 엄습해 왔으며, 이 어처구니없는 침입이 종식되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는 듯했어." -52p-

 

"나는 축축이 젖은 대지의 냄새,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기고만장하게 실재하는 부패, 그리고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밤의 어둠……. 등과 같은 견딜 수 없는 것들이 무겁게 내 가슴을 짓누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어." -142p-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콩고의 이름 모를 강의 상류지역. 그곳을 유럽사회의 판단력으로서 유럽 사람들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개척하려는 활동. 즉, 지도상에 어둡게 표시되어 있는 곳을 붉은 물감으로 색칠하려고 했던 찰리 말로의 체험담은 <암흑의 핵심>의 중심 이야기가 된다.

 

말로가 그곳에서 만나게 될 한 인물. 커츠의 젊은 날은 파란만장한 희망에 부풀어 있었던 것 같았다. 사랑하는 약혼녀를 홀로 유럽 땅에 남겨두고 성공을 위해 혈혈단신 넘어온 아프리카 대륙. 그곳에서 그는 그가 생각했던 장밋빛 미래보다는 남을 굴복시켜야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논리만을 체득하며 평생을 살 수 밖에 없었다.

 

말로가 그를 데리러 왔을 때의 그 광기어린 행동들은 그가 처음 유럽을 나서던 모습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참혹한 모습이었다. 먼 옛날 로마제국이 영국 땅을 침략했을 때 남겨놓은 그 잔혹한 모습들처럼, 커츠가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굴복시키기 위해 벌인 행동들은 로마인들 못지 않아보였다. 그 사실은 그의 본거지에 효수해놓은 흑인들의 머리들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세계의 정복이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우리들과는 피부색이 다르고 우리보다 코가 약간 낮은 사람들을 상대로 자행하는 약탈 행위 아닌가. 그러므로 그 행위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것이 못 된다구. 이 행위 이면에 숨은 이념이지. 감상적인 구실이 아니라 이념이라야 해." -15~16p-

 

상아를 가장 많이 운반해냈던 커츠는 유럽의 방식으로는 결코 통제되지 않는 원주민들과 불안감만을 증폭시키는 오지의 밀림들이 그에게 주는 위압감에 맞서 외로운 전투를 벌여나가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무서워라! 무서워라!>라는 말을 남긴 채…….

 

이처럼 말로가 꿈꿔왔고 커츠가 계획하고 실행했던 개척이라는 것이 그가 고백한 바와 같이 처절한 살육과 약탈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그 일들을 교화했다는 말로 기리고 있었다. 유럽으로 되돌아간 말로에게 사람들은 커츠의 지식을 내놓으라 말했다.

 

그런데 아무리 그것을 교화라는 단어로 포장한다고 해도 포장되지 않는 사실이 있다면 바로 제국주의라는 이념을 따르는 행동들이라는 것이다. 광활한 전 세계의 미개척지 앞에서 사람의 노동력은 제국을 만들기 위한 하찮은 것으로 전락해버린다는 레닌이 주장했던 제국주의의 정의처럼, 커츠 스스로 주체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던 무엇인가가 알고 보니 어떤 이념에 따른, 이념이 가리키는 행동이었고 그것의 결과였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인생이라는 건 우스운 것, 어떤 부질없는 목적을 위해 무자비한 논리를 불가사의하게 배열해 놓은 게 인생이라구. 우리가 인생에서 희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우리 자아에 대한 약간의 앎이지. 그런데 그 앎은 너무 늦게 찾아와서 결국은 지울 수 없는 회한이나 거두어들이게 되는 거야.” -159p-

 

커츠가 죽음을 앞에 두고 죽음과의 싸움을 치러보니 평생토록 진리라 여기고 살아왔던 것들과 그것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지난 싸움들이 별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후회가 밀려들어올 때, 우리들은 아마 그들과 같은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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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생존경제학 - 경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
미네르바 박대성 지음 / 미르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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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글은 ‘개인이 살아야 조직이 산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경제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다. 이 책은 내 방식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소통하려는 도전적 시도이다. 그들과 함께, 그들의 편에 서서 목소리를 내고 싶은 바람의 결실이다. -8p-


이 책은 경제위기 덕분에 경제관련 서적을 탐독하기 시작했었던 2009년과 2010년의 언저리에 만난 세계경제위기 시대의 상징적인 인물인 미네르바의 책이다.


그는 서두에 이렇게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리고 지금 살펴보는 바로는 그 단락에 밑불까지 쳐놨었는데, 나는 그 당시 <생존 경제학>에서 그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신선함만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예전에 간단히 코멘트를 남긴 것처럼, 대기업의 실적이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자체기술로 원전을 수출하고 있고, 세계 최고층의 빌딩을 건축하고 있는 한국의 경기상황이 뉴스에서 호들갑을 떠는 것처럼 그리 낙관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생존경제학>에서는 대한민국이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해법으로 채택한 저금리가 모든 이들의 빈 잔에 물을 채우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저금리 시대가 부의 양극화라는 무서운 현상으로 진행될 것임을 경고한다.


<생존경제학>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이라면 생활경제, 부동산, 금융, 증권, 정책. 더 나아가 남북관계와 세계경제 등.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의 양극화 현상을 모두 개인의 시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경제위기가 불러올 많은 상황들 (물가상승, 워킹푸어, 저출산시대, 전세대란, 전업투자자시대) 속에서 개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설정을 도와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근래에 전해들은 미네르바 관련 소식은 한겨레 신문에서 읽은 아주 비관적인 내용의 기사 (미네르바 “약으로 하루하루 버텨…가족도 파괴”. 12월 22일자) 였는데, 아무쪼록 사건이 잘 해결되시길 바라며, 이 책 맨 앞에 드러낸 바램처럼 계속 글을 통해 권리를 스스로 지켜나가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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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9
김승옥 지음 / 민음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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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옥 소설의 인물들은 근대와 대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근대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향해 화살을 쏜다. 독하고도 숭고하다.” -400p-

 

김승옥의 단편집 <무진기행>에 실려 있는 작품 해설의 마지막 글귀를 옮겨보았다. 명징하게 다가오는 한 문장 속에서 극복이라는 이질감 섞인 단어를 발견하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과연 김승옥이 그려낸 “그들은 근대를 극복했을까?” 그 물음에 대한 나의 답은 분명하게 “아니오.” 였다.

 

김승옥의 소설 속의 인물들은 극복을 위해 발버둥만 쳤을 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피폐한 삶은 근대의 힘의 논리에 굴복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에 순응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무진기행>의 단편 곳곳에서는 근대라는 현실에 부르르 몸을 떨며 분노하지만, 동조하게 될 수밖에 없는 시민들의 모습들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김승옥이 보여주는 것은 현실과 타협하게 되는 여정을 담은 동조화 과정들이었다. 이 추레한 과정을 거쳐 어떤 이는 직장을 얻게 되고, 어떤 이는 또래 집단의 지지를 얻게 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그런 타협의 결과로 심적으로 몇 십 년씩 늙는 듯 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무사히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표시한다.

 

아, 그가 10년 이상의 시간차를 두고 펴낸 마지막 단편 <서울의 달빛 0장>에서의 타협은 타협의 결과가 부정적이었다는 점에서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남편이 아내의 더러움을 인식하면서도 건네 준 위자료는 그녀의 육체를 탐하려는 그의 음흉한 타협의 결과물임을 숨길 수 없다.

 

김승옥은 삶이 호락호락 하지 않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는 더러움에 저항하는 것 보다 더러움의 끄트머리에 조금만 발을 담근 채로 걷는 것이 수치스러울 수도 있지만 어쩌면 더 나은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타협이라는 녀석을 알려준다. 타협이 왜 효과적이냐면 인간의 페르소나적인 본능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지난번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을 속이고 남들에게 의지하면서 어울리고, 남들이 인정하는 보통의 평균적인 삶을 살아가는 세인. (직접성의 인간 = 페르소나)

 

하지만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김승옥의 타협은 탐욕만을 위한 이기적인 형태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러설 수 없는 낭떠러지에서의 마지막 선택이 타협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소설은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독인 줄 알면서도 마셔야 하는 독약 같은 이야기들이다.

 

그렇지만 그의 소설은 지금 시대의 <플라이 대디>, <체게바라 평전>, <겟 섬>, <말죽거리 잔혹사>, <도가니>, <블리치> 같은 영화나 책에서 말하는 세상의 부조리함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는 투쟁정신과는 사뭇 다르게 해석된다. 철학카페에서 이야기 하는 앙가주망과도 다르다. 어떻게 보면 이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인 것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를 결코 외면할 수 없다. 이것 역시 시대를 읽는 하나의 방법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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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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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만 되면 밤의 밑바닥이 하얘질 정도로 눈이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고장. 세 번의 여행길에서 만난 <설국>에 담긴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다양한 표현들은 이유 모를 감상에 젖게 만든다.

 

따스해진 가슴에 예고 없이 찾아드는 장면들에서 빠지지 않고 계속 등장하는 것은 두 사람이 대화하는 장면들이었다.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대화는 그들이 애정의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유추할 수 있게 하지만 그 대화의 줄은 촘촘히 얽혀 있어서 줄의 어느 부분을 잡아야 할지 몰라 힘을 쏟아볼 요량도 없이 맥이 빠진다.

 

거울 속에는 저녁 풍경이 흘렀다. 비쳐지는 것과 비추어지는 거울이 마치 영화의 이중노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등장인물과 배경은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게다가 인물은 투명한 허무로, 풍경은 땅거미의 어슴푸레한 흐름으로, 이 두 가지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이세상이 아닌 상징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었다. -12p-

 

눈에 등불이 켜졌다고 묘사하는 요코라는 여인을 여러 장소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시마무라가 내적으로 풍겨내는 심리표현들은 관음적인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무용가의 살아 움직이는 육체가 춤추는 예술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제멋대로의 상상으로 서양의 언어나 사진에서 떠오르는 그 자신의 공상이 춤추는 환영을 감상하는 것이다. 겪어보지 못한 사랑에 동경심을 품는 것과 흡사하다. -25p-

 

부모가 남겨주신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며 책이나 사진과 같은 인쇄물만을 보고서 서양무용에 관해서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시마무라의 골수 깊숙이 박혀있는, 대상을 탐색하고 이리저리 재며 상상하는 관찰자적인 버릇은 여행 중인 설국에서 일어나는 상황 속으로 몰입할 수 없도록 한다.

 

<설국>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단어인 ‘헛수고’라는 단어는 그 관찰자 적인 버릇의 결과이며, 모든 관계의 진전을 방해한다. 이 헛수고는 시마무라의 입을 통해 여러 장면에서 등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말 그대로 모든 행위가 헛수고임을 의미한다. 약혼자를 위해 게이샤가 된 것도 헛수고. 읽은 책의 제목과 지은이 그리고 등장인물을 나열하는 것도 헛수고다.

 

이 헛수고는 시마무라가 중요한 것을 취하려는 순간 자의적으로 허무함이라는 니힐리즘을 버무려 탈출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때 마침 묘사되는 주위 풍경의 평화로움은 시마무라의 탈출행위를 교묘히 덮어버린다. 그리고 예고 없이 또 다른 시점에서 새로운 대화들이 이어지고, 고양되고, 또 탈출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그렇지만 그의 탈출은 점차 어려워진다.

 

고마코의 애정은 그를 향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름다운 헛수고인 양 생각하는 그 자신이 지닌 허무가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고마코의 살아가려는 생명력이 벌거벗은 맨살로 직접 와 닿았다. -110p-

 

그런데 속물임에 분명한 시마무라가 허무함을 무기로 그녀들에게서 거리를 두려는 이유에 대해 궁금즘이 생긴다. ‘헛수고’와 그것 때문에 느낄 수 있었던 순수함(생명력)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시마무라의 더러운 부분이 그녀들에게 미치지 않도록 만든 것일까?

 

“나는 더러운 병균을 가지고 있는 놈이니 순수한 이들에게 병균을 전염시키지 않고, 그냥 앓으면서 혼자 더러움을 감내하고 간직하며 살겠다.” 이런 것일까?

 

마지막의 화재사건은 그들의 줄다리기가 종결됨을 의미하는데 과연 시마무라는 그녀들과의 추억들을 헛수고로 생각했던 것이 다행스러울까? 아니면 후회스러울까? 궁금하게 만든다. 아마도 후자 쪽에 가까워졌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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