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의 핵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
조셉 콘라드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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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200페이지도 되지 않는 <암흑의 핵심>의 책장은 쉬이 넘어가는 법이 없다. 가장 큰 원인은 책 속 빼곡하게 자리한 묘사의 향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무슨 '마치'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암흑의 핵심을 표현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대부분 이 묘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묘사들은 기행문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나름의 판단으로 해석한다. 그 판단에는 대부분 많은 이들이 좋다고 인정하는 것이 가장 윗자리를 차지한다. 조셉 콘래드가 <암흑의 핵심>이라고 일컫는 아프리카의 한 지역을 그리는 풍경묘사들은 유럽인들이 가지고 있는 판단의 결과로 해석해도 될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암흑의 핵심>에는 다소 어두운 분위기가 감돈다.

 

"아프리카의 해안은 마치 아직도 생성중인 것처럼 단조롭게 음침한 빛을 띄고 있을 뿐 거의 아무런 형상을 띠고 있지 않았다네." -30p-

 

"대지 속의 그 작은 공지(空地)를 둘러싸고 있던 말없는 밀림은, 마치 악이나 진실처럼, 무언가 위대하고 정복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내게 엄습해 왔으며, 이 어처구니없는 침입이 종식되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는 듯했어." -52p-

 

"나는 축축이 젖은 대지의 냄새,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기고만장하게 실재하는 부패, 그리고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밤의 어둠……. 등과 같은 견딜 수 없는 것들이 무겁게 내 가슴을 짓누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어." -142p-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콩고의 이름 모를 강의 상류지역. 그곳을 유럽사회의 판단력으로서 유럽 사람들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개척하려는 활동. 즉, 지도상에 어둡게 표시되어 있는 곳을 붉은 물감으로 색칠하려고 했던 찰리 말로의 체험담은 <암흑의 핵심>의 중심 이야기가 된다.

 

말로가 그곳에서 만나게 될 한 인물. 커츠의 젊은 날은 파란만장한 희망에 부풀어 있었던 것 같았다. 사랑하는 약혼녀를 홀로 유럽 땅에 남겨두고 성공을 위해 혈혈단신 넘어온 아프리카 대륙. 그곳에서 그는 그가 생각했던 장밋빛 미래보다는 남을 굴복시켜야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논리만을 체득하며 평생을 살 수 밖에 없었다.

 

말로가 그를 데리러 왔을 때의 그 광기어린 행동들은 그가 처음 유럽을 나서던 모습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참혹한 모습이었다. 먼 옛날 로마제국이 영국 땅을 침략했을 때 남겨놓은 그 잔혹한 모습들처럼, 커츠가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굴복시키기 위해 벌인 행동들은 로마인들 못지 않아보였다. 그 사실은 그의 본거지에 효수해놓은 흑인들의 머리들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세계의 정복이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우리들과는 피부색이 다르고 우리보다 코가 약간 낮은 사람들을 상대로 자행하는 약탈 행위 아닌가. 그러므로 그 행위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것이 못 된다구. 이 행위 이면에 숨은 이념이지. 감상적인 구실이 아니라 이념이라야 해." -15~16p-

 

상아를 가장 많이 운반해냈던 커츠는 유럽의 방식으로는 결코 통제되지 않는 원주민들과 불안감만을 증폭시키는 오지의 밀림들이 그에게 주는 위압감에 맞서 외로운 전투를 벌여나가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무서워라! 무서워라!>라는 말을 남긴 채…….

 

이처럼 말로가 꿈꿔왔고 커츠가 계획하고 실행했던 개척이라는 것이 그가 고백한 바와 같이 처절한 살육과 약탈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그 일들을 교화했다는 말로 기리고 있었다. 유럽으로 되돌아간 말로에게 사람들은 커츠의 지식을 내놓으라 말했다.

 

그런데 아무리 그것을 교화라는 단어로 포장한다고 해도 포장되지 않는 사실이 있다면 바로 제국주의라는 이념을 따르는 행동들이라는 것이다. 광활한 전 세계의 미개척지 앞에서 사람의 노동력은 제국을 만들기 위한 하찮은 것으로 전락해버린다는 레닌이 주장했던 제국주의의 정의처럼, 커츠 스스로 주체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던 무엇인가가 알고 보니 어떤 이념에 따른, 이념이 가리키는 행동이었고 그것의 결과였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인생이라는 건 우스운 것, 어떤 부질없는 목적을 위해 무자비한 논리를 불가사의하게 배열해 놓은 게 인생이라구. 우리가 인생에서 희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우리 자아에 대한 약간의 앎이지. 그런데 그 앎은 너무 늦게 찾아와서 결국은 지울 수 없는 회한이나 거두어들이게 되는 거야.” -159p-

 

커츠가 죽음을 앞에 두고 죽음과의 싸움을 치러보니 평생토록 진리라 여기고 살아왔던 것들과 그것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지난 싸움들이 별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후회가 밀려들어올 때, 우리들은 아마 그들과 같은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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