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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9
김승옥 지음 / 민음사 / 2007년 8월
평점 :
“ 김승옥 소설의 인물들은 근대와 대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근대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향해 화살을 쏜다. 독하고도 숭고하다.” -400p-
김승옥의 단편집 <무진기행>에 실려 있는 작품 해설의 마지막 글귀를 옮겨보았다. 명징하게 다가오는 한 문장
속에서 극복이라는 이질감 섞인 단어를 발견하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과연 김승옥이 그려낸 “그들은 근대를 극복했을까?” 그 물음에 대한
나의 답은 분명하게 “아니오.” 였다.
김승옥의 소설 속의 인물들은 극복을 위해 발버둥만 쳤을 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피폐한 삶은 근대의 힘의
논리에 굴복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에 순응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무진기행>의 단편 곳곳에서는 근대라는 현실에 부르르 몸을 떨며 분노하지만, 동조하게 될 수밖에 없는 시민들의 모습들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김승옥이 보여주는 것은 현실과 타협하게 되는 여정을 담은 동조화 과정들이었다. 이 추레한 과정을 거쳐 어떤 이는 직장을
얻게 되고, 어떤 이는 또래 집단의 지지를 얻게 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그런 타협의 결과로 심적으로 몇 십 년씩 늙는 듯 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무사히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표시한다.
아, 그가 10년 이상의 시간차를 두고 펴낸 마지막 단편 <서울의 달빛 0장>에서의 타협은 타협의 결과가
부정적이었다는 점에서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남편이 아내의 더러움을 인식하면서도 건네 준 위자료는 그녀의
육체를 탐하려는 그의 음흉한 타협의 결과물임을 숨길 수 없다.
김승옥은 삶이 호락호락 하지 않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는 더러움에 저항하는 것 보다
더러움의 끄트머리에 조금만 발을 담근 채로 걷는 것이 수치스러울 수도 있지만 어쩌면 더 나은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타협이라는 녀석을
알려준다. 타협이 왜 효과적이냐면 인간의 페르소나적인 본능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지난번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을 속이고 남들에게 의지하면서
어울리고, 남들이 인정하는 보통의 평균적인 삶을 살아가는 세인. (직접성의 인간 = 페르소나)
하지만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김승옥의 타협은 탐욕만을 위한 이기적인 형태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러설
수 없는 낭떠러지에서의 마지막 선택이 타협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소설은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독인 줄 알면서도 마셔야 하는 독약 같은
이야기들이다.
그렇지만 그의 소설은 지금 시대의 <플라이 대디>, <체게바라 평전>, <겟 섬>,
<말죽거리 잔혹사>, <도가니>, <블리치> 같은 영화나 책에서 말하는 세상의 부조리함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는
투쟁정신과는 사뭇 다르게 해석된다. 철학카페에서 이야기 하는 앙가주망과도 다르다. 어떻게 보면 이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인 것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를 결코 외면할 수 없다. 이것 역시 시대를 읽는 하나의 방법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