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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
브렌다 매독스 지음, 김종건 옮김 / 어문학사 / 2011년 11월
평점 :
당신이 만약 이 책의 존재를 알고 있다면 당신은 아마도 제임스
조이스라는 인물을 아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당신이 만약 이 책을 읽으려 한다면 당신은 제임스 조이스의 한 두 작품쯤은 읽어본 사람일 것이다.
그저 책의 주인공이 위대한 작가의 부인이라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혹은
주인공의 포스가 멋들어지게 담겨있는 겉표지에 홀렸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려 한다면 개인적으로 말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만큼 이 책은 제임스
조이스의 모든 배경의 연관성을 필요로 한다.
여자 조르바, 노라
제임스
개인적으로는 <노라>라는 인물을 읽으면서 그녀에게 감히
조르바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그녀는 본능적이었다. 돋보기 안경을 쓰고 다닐 정도로 시력이 안 좋았던 제임스 조이스를
한눈에 반하게 만들어버린 육체적인 강인함에서 풍겨오는 성적매력은 그토록 본능적이었다.
노라는 성적매력을 숨기지 않았다. 노라와 제임스는 동거생활 내내
커다란 올가미에 걸린 채, 아슬아슬하고 아찔하면서도 강렬한 밤을 즐겼다. 밤에 하는 일 뿐이던가? 서로를 애타게 갈구하며 성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해놓은 비밀스런 편지글들은 두 사람 보다 더 완벽한 유전적인 반쪽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그녀의 성적 행위들과 흥분했을 당시의 그녀의
문체들이 제임스의 머리와 손을 거쳐 <율리시스>라는 대작의 몰리 블룸의 모습으로 낱낱이 공개된다는 사실이었다. <율리시스>
뿐만 아니라 제임스의 대부분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이 노라가 모델이라고 하니 그의 작품에서 노라가 차지했던 비중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이 사실을 뒤집어서 생각하면 제임스 조이스에게 노라처럼 뜨거운 매력의
여인이 없었더라면 그의 작품은 오늘날의 위치에 서 있지 못했을 것이라는 섣부른 해석이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른다. 즉, 노라 제임스는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에 있어서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부부가 아닐 수 없다. 제임스의 천재성을 표출하는
데 있어서 가장 적합했던 여인이 그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내조하는 현모양처 스타일의 여성이 아니라, 자신의 본능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몸을
맡기는 여성이라니.
노라뿐만 아니라, 제임스 조이스 역시 본능적 삶을 추구한 인물이었다.
그 본능이 표출하는 바를 의식의 흐름이라는 훌륭한 서술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천재성. 그 본성이 사회적인 명성과 부를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은 유교의 예(禮)의 사상에 젖어 남을 배려함에 익숙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동양인들에게 삶에 있어서 절대적인 방법은 없다는 점을
일러준다.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의 인생이 모든 면에서 성공했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작품 형성에 노라가 끼친 영향력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는 전반부를 지나고, 개인적인 욕망만을 충족시키려는 시도는 분명 다른 여러 부분에서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을 <노라>의 후반부에 이르러서 잘 보여주고 있었다.
욕심 많은 삶이 낳은
부작용
간략하게 말하자면, 민족과 국가와 종교를 모두 초월하기로 결심한 두
사람은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채, 계획도 없이 바로 앞에 닥친 환경에 따라, 가난하거나 때로는 호화로운 일상을 반복한다. 이런 생활 덕분에 그들
부부는 주위 사람들에게 여러가지로 신세지는 일이 많이 생긴다. 그들은 제임스의 천재성을 알아본 사람들의 지원 속에서 국경을 넘나들며 여러 지역을
전전하며 지내게 된다.
그랬던 두 사람에게는 조지오라는 아들과 루치아라는 딸이 있었다. 두
자녀들은 부모의 욕심에 이리저리 지방을 옮겨 다니면서 성장기를 보내게 된다. 가치관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어린 나이의 아이들은 자주 바뀌는
언어적, 문화적 환경으로 인해 혼란스러움을 겪게 된다. 이것이 자녀들의 정서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 결과, 자녀들이 가지고 있던 꿈의 접근은 요원해진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부터 그들의 만족감과는 관계없이 이리저리 떠돌아 다녔기 때문이었다. 조지오는 아름다운 목소리의 잠재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루치아는
애정결핍이 낳은 극도의 정신적인 분열증상으로 평생 동안 정신병원에서 지내야만 하는 참혹한 삶을 강요당한다.
맺음말
분명히 <노라>는 제임스 조이스의 부인만을 조명한 작품은
아니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조이스 가문의 기둥 역할을 맡은 제임스 조이스. 조이스 가문의 아들, 딸의 이야기들을 통해 개인의 전기가 아니라 한
가족사에 대한 전기로 발전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던 것 같다.
전기를 통해서, 한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세계를 탐험하는
것에 벗어나 그들의 가족의 이야기와 작품이 쓰였을 때의 역사적 상황이나 경제적 상황들을 들여다봄으로써 작품에 숨겨져 있는 창조주적인 생각들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을 읽은 사람. 의식의 흐름에 따라서 서술한다는
그의 문체를 실제로 접해본 사람. 대체 왜 제임스 조이스라는 사람은 이따위로 어렵게 글을 써야만 했는지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은 지적갈증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