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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밀러 (책 + CD 2장) ㅣ 삼지사 명작영한대역 6
헨리 제임스 지음 / 삼지사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그는 제네바에서 너무나 오래 살았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상실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미국적인 것에 어색해져 버렸던 것이다. 사실 그가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나서 사물을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게 된 뒤로
이처럼 명백한 유형의 미국 아가씨를 만난 적이라곤 한 번도 없었다.
그녀가 아주 매력적인 아가씨인 것은 사실이지만 어떻게 그녀가 사교계의
광이란 말인가! 그녀는 다만 뉴욕 주에서 온 예쁜 아가씨에 불과할까. 남자들 사교계에 드나드는 예쁜 아가씨들이란 모두가 그녀와 같을까? 아니면
그녀 역시 뱃속이 검고 뻔뻔스럽고 부도덕한 젊은이일까?" -37p-
스위스의 브베이라는 작은 휴양지에서 처음 만나게 된 데이지 밀러라는
어여쁜 미국 아가씨는 윈터본의 마음을 처음 본 순간부터 뒤흔들어 놓았다. 그렇지만 유럽의 사교문화에 환호하고, 이성을 만나는 행동에 거리낌이
없는 데이지가 너무나도 자유분방해 보였던 탓에 미국인이었던 윈터본은 같은 미국인인 데이지 밀러를 바라보며 내가 비정상인가? 아니면 그녀가
비정상인가? 에 대한 혼란스러움에 빠져든다.
헨리 제임스의 <데이지 밀러>는 <아메리칸>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유럽의 문화차이에서 오는 대립적인 시각을 축소화시켜 드러내는 작품이다. 다만 <아메리칸>과의 차이점이라면
<아메리칸>이 미국과 유럽의 차이를 미국과 유럽의 모습 그대로 표현해 냈다면, <데이지 밀러>는 미국과 유럽의 차이를
미국에서 살다온 미국인과 유럽에 정착한 미국인의 모습으로 표현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헨리 제임스의 작품에서 미국을 대변하는 인물인 뉴만과 데이지
밀러는 약자의 위치에 서있다는 점은 같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느껴지는 데이지 밀러의 자유분방함이 너무나 강렬해서 윈터본이 느끼는
감정에 동정심이 생기는 것도 지금의 심정이었다. 솔직히 탁 까놓고 말해서, 윈터본이 느끼기에는 자신이 어장관리 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마음 또한
사실이니 말이다.
나는 결코 남들의 시각 때문에 무조건 스스로를 억제하며 살아야 한다는
윈스턴의 유럽의 시각에서 충고하는 이야기들을 공감하지는 않는다. 데이지 밀러를 몰래 훔쳐보면서 유럽에 정착한 미국인들끼리 천박하다며 수군거리는
행동 또한 비열해 보인다. 이런 집단화된 논리는 소수의 약자를 괴롭히는 큰 무기가 되고, 그 집단 논리에 저항해보려고 반항하다가 결국 데이지
밀러는 숨진다.
그런데 <데이지 밀러>에서 재미있는 것은 데이지가 숨진 후의 마지막 장면인 이탈리아인 조바넬리의 대응방식에서 소설 내내 숨겨져 있었던 유럽인들이 미국인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살짝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아가씨가 살아계셨다 해도 저는 아무것도 얻는 게 없었을
겁니다. 그녀는 틀림없이 저와 결혼하려고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219p-
즉, 유럽에 정착한 타인 중에 애정을 느낀 윈터본은 그녀에게 미움을
받을지언정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지만, 유럽인 중에 애정을 느낀 조바넬리는 ‘어차피 안 될 것 같으니 그냥 갖고 놀다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상당히 크다.
쉽게 말해서, 설사 남들이 그녀에게 천박하다 손가락질 할지라도 윈터본은 함께 살아가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의미가 있고, 조바넬리는 어차피 남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이 아쉽고 슬프다.
그나저나 헨리 제임스 소설에서 스위스가 주는 상징적 의미가
궁금해진다. 왜냐하면 스위스라는 곳이 미국과 유럽을 각각 50퍼센트씩 혼합 시켜놓은
이미지를 풍기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아메리칸>에서도
마찬가지였었다. 스위스는 꽤 중립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은데 어떤 이유에서 그런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