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
헨리 제임스 지음, 최경도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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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페이지 분량의 <아메리칸>은 총 26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재미있는 점은 각 장에 할당된 20페이지 내외의 일정한 분량이 26부작의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간략하게 <아메리칸>은 자수성가한 미국인 크리스토퍼 뉴만이 유럽의 귀족사회의 벽에 부딪히면서 깨닫게 되는 사실들을 부각시킨 작품인데, 이 사건들은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향인 프랑스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서 프랑스 사회는 허례·허식의 댄디즘이 만연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댄디즘을 말하기 위해서 고리오 영감과 매우 흡사한 인물이 헨리 제임스의 <아메리칸>에서도 등장한다. 노에미 양의 아버지 뉴만의 불어 선생 니오슈 씨였다.

 

그림이라는 도구를 통해 상류사회의 입성을 노리다가 능력의 한계를 깨닫고, 자신의 몸을 아름다운 그림처럼 꾸며내어 돈 많은 귀족과의 혼인을 통해 상류사회에 진출하려는 노에미 양. 그런 딸이 못 마땅하지만, 애틋한 부정(父情)이 어쩔 도리 없게 지켜보도록 만드는 아버지 니오슈는 <아메리칸> 속 <고리오 영감>이었다.

 

한편, 미국인의 눈으로 본 유럽사회를 그린 <아메리칸>. 이 소설의 주연배우 격인 미국인 뉴만과 벨가드 가문의 싱트레 부인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야기가 담겨있는 <아메리칸>은 미국을 정복한 뉴만이 진입하려고 하는 목표가 유럽 사회의 내부에 있음을 유럽을 방문함으로써 알린다.

 

미국인 뉴만에게는 세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의 귀족 여인을 품에 안고, 스스로 획득한 부와 그에 걸맞은 부인이 내려주는 귀족의 지위를 누리며 살고 싶은 내적 욕망이 있었다. 그런 그에게 자본적으로 쇠락의 길을 걷는 벨가드 가문의 싱트레 부인은 안성맞춤이었다.

 

개척정신하면 미국인이라는 사실처럼 뉴만은 그녀를 얻기 위해 저돌적으로 달려들었고, 6개월의 구애 끝에 결혼할 권리를 얻는다. 그렇지만 결혼을 허락할 것 같아보였던 그녀의 어머니와 오라버니는 돈이냐? 지위냐? 라는 갈등에 빠진다. 돈이 곧 지위가 되는 지금의 시대에서는 상상 할 수 없는 갈등인데 그 시대에는 이것이 중요한 갈림길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것은 1870년대의 미국과 유럽 사이의 갈등이었다.

 

결국, 벨가드 가문의 반대는 미국인 뉴만의 귀족 사회 진출을 막아세운다. 그녀의 어머니와 오빠의 선택은 딸을 처음 시집보낼 때와 같았다. 돈과 지위 모두 다 충족하는 사람이어야 했고, 돈과 지위 중 선택하라면 지위를 택할 것임을 뉴만에 대한 반대로 나타낸다. 집안의 반대는 싱트레 부인에게 수도원에서 남은 생을 마감하기를 강요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싱트레 부인의 대처방법이다. 어찌하면 이토록 수동적인 인물의 탄생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집안의 명령에 그녀는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않는다. 뉴만을 사랑했던 그녀는 그를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순순히 뉴만을 떠나보낸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겨내는데 익숙했던, 개척정신이 강한 미국인 뉴만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겼다는 상실감과 그로인한 벨가드 가문에 대한 증오는 그로 하여금 벨가드 가문의 숨겨진 부정을 알게 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한다. 그 사실은 바로 돈 많은 늙은 귀족에게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노(老) 벨가드 부인이 그녀의 남편을 살해했다는 사실이었다.

 

뉴만은 -이를 사회에 공개한다는 것은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서 고립됨을 의미하고 더 이상 지위 누리지 못함을 의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사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뉴만은 폭로할 결심을 한다. 그렇지만 유럽사회 구성원들이 구축해놓은 암묵적인 카르텔은 강력했다.

 

프랑스의 귀족들은 미국인 뉴만의 이야기를 들어볼 여지조차 주지 않는다. 가로막힌 상황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뉴만은 체념한다. 벨가드 가문의 부정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를 불태워 버린다. 불은 문서와 함께 그의 사랑을, 유럽사회 진출을 모조리 태워버린다.

 

“내 느낌으로 그들이 도전한 이유는 결국 당신이 일을 벌이지 못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숙의한 끝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답니다. 그건 자신들의 결백함도 아니고, 허세를 부려 혐의를 뒤엎는 재능도 아니었어요. 그건 놀랄 만큼 선량한 당신의 성격에 있었어요! 그 사람들의 생각이 옳다는 걸 알겠지요.” -521p-

 

그가 넘기엔 유럽은 너무나 커다란 장벽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앞만 바라보고 달릴 줄만 알았던 착한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돈만 있었을 뿐,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너무나 한정적이었던 것이다.

 

즉, 헨리 제임스의 <아메리칸>은 100년의 역사가 안 된 미국이 유럽 사회에 인정을 받기가 얼마나 험난한지에 대한 풍자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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