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젊은 예술가의 초상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평점 :
“내가 믿지 않게 된 것은, 그것이 나의 가정이든 나의 조국이든 나의
교회든 결코 섬기지 않겠어. 그리고 나는 어떤 삶이나 예술 양식을 빌려 내 자신을 가능한 한 자유로이, 가능한 한 완전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할
것이며, 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내가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 있는 무기인 침묵, 유배 및 간계를 이용하도록 하겠어.” -379p-
책 속에 있는 이 문장이 제임스 조이스의 자전적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스티븐 디덜러스라는 청년의 입을 빌어 밝힌 소설 속 화자의 결심이자, 소설 밖의 예술가인 제임스 조이스. 자기 자신의
결심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임에도 틀림없다.
숨어있는 한 문장. “믿지도 않고 믿지 않는 것도
아니다.”(368p)라는 다소 애매모호한 발언은 위의 메시지와 더불어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를 제공한다. 이 발언은 그가 믿지 않겠다는
조국, 종교, 가정에 관련한 모든 말들이 거부의 의미 보다는 초월의 의미에 더 가까운 의미가 아닐까 유추하게 만든다.
이 소설은 모든 것을 초월하려는 스티븐 디덜러스라는 청년의 눈앞에서
일어난 상황들을 고유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생각하려는. 즉, 태어나면서부터 얻은 고정된 배경들보다 그가 살아가면서 학습한 철학적 가르침에
의존하겠다고 선언한 1904년의 유배생활 이후 10년 만에 결실을 보게 된 열매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유년시절부터 청년시절을 담고 있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그가 예술가의 삶을 결심하게 된 이유에 관련된 기억들 중에서도 강렬하게 남아있는 순간들을 나열함으로써 진행된다. 그 나열의
뇌까림이 그 당시 느낀 그대로 옮겨진다는 것이 하나의 커다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디덜러스의 타고난 성격을 알아볼 수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1부와
2부에서 몇 가지의 장면을 거쳐서 후다닥 지나간다. 그러나 매춘을 했다는 죄의식에서 시작된 그의 고뇌와 고뇌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은 3부와
4부에 걸쳐 중점적으로 다루어진다.
제임스 조이스는 발버둥을 표현하기 위해 기독교의 이론과 세계관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한다. 왜냐하면 그 시기의 기독교는 그의 시야의 전부를 차지할 정도로 컸기 때문이다. 고뇌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로를 결정하게 될 나이가 됐을 때, 디덜러스는 성소(聖召)를 받드는 것이 해결책이 아님을 깨닫는다.
5부에서는 대학생인 디덜러스가 그가 공부하여 얻어낸 아퀴나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들로 학우들과 논쟁을 벌이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설득하기 위해 그가 직접 얻은 도구들을 꺼내든다. 5부는 그 도구들로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들이 중점적으로 펼쳐진다. 이 도구들은 자아를 깨닫게 하는 결정적인 무기가 된다. 결국, 디덜러스는 깨닫는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마치 한 인물의 초상화처럼 스티븐
디덜러스라는 인물이 어떻게 해서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했는지에 대해서 섬세한 필치로 그린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초상화는 그림 속의
디덜러스를 통해서 그림 밖의 제임스 조이스 자신을 그려놓은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자화상을 따라가 보면, 보는 사람들 각각의 유년시절에 대해 개인적으로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그
때, 나를 얽매였던 것이 무엇이었나?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생각들은 각자의 자화상을 탄생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