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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전집 2 - 산문 ㅣ 김수영 전집 2
김수영 지음, 이영준 엮음 / 민음사 / 2018년 2월
평점 :
2012년 2월 1일 방문했던 민음사 북클럽 반값목록에 올라와있던 시인 김수영의 전집은 거의 2월 내내 전집에서 언급된 생소한 작가의 책을 찾아보게 했다. 왜냐하면 <김수영 산문집>을 보면서 문학에 대한 새로운 가지의 방법론을 배우고 있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느낌은 <괴테와의 대화>를 읽으면서 느꼈던 정확히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그것과 상당히 유사했다. 그의 산문에서 언급되는 작가의 평가나 아포리즘을 따로 엑셀로 저장해두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지 가늠할 수 없어 실행해 옮기지 못했지만, 열망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김수영 전집>은 한국의 근대문학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던 나로 하여금 김수영이라는 위대한 백그라운드라는 이름의 허세를 빌려주기에 이르러 지속적으로 그의 이름 석 자를 들먹거리게 했던 것 같다.
김수영 산문의 1부에서 다루고 있는 일상과 현실에 대한 글에서 느껴지는 솔직함이 좋았다. 넓은 시야를 바탕에 두고 그것들을 어색하지 않게 포괄하여 쓰는 그의 일상적인 글을 보면서 지금 쓰고 있는 내가 글을 한 가지 면에 집착하면서 쓰고 있지 않나? 라는 반성을 하게끔 하여 주었다.
그는 글이 쓰기 싫으면 싫다고 말한다. 그런데 싫어하고 있는 자체까지 산문의 내용을 이어주는 훌륭한 재료가 된다. 또한, 면봉이나 낙타산이나 구두와 같은 사물이 작동하는 과정을 관찰하며, 이 사물이 현실과 만났을 때 느껴지는 괴리감을 표현하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산문의 2부, 3부, 4부, 5부에서는 시인의 사회관과 문학관이 잘 드러난다. 그가 완벽한 정치적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은 4·19혁명을 극찬하고 있는 글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문학을 하기 위한 조건으로 사상과 언론의 완전한 자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냉전이 종식되지 않은 시대 상황임에도 그는 당당하게 자유를 요구한다.
시를 쓰는 사람, 문학을 하는 사람의 처지로서는 <이만하면>이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언론자유에 있어서는 <이만하면>이란 중간사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언론자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둘 중의 하나가 있을 뿐 <이만하면 언론자유가 있다>고 본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 자신이 시인도 문학자도 아니라는 말밖에는 아니 된다. -177p-
시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398p-
그는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것들을 향해 “살아있는 눈 위에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자”고 표현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그는 시는 온몸으로 쓰는 것이라 말한다. 머리에서 미리 걸러내지 말고, 심장이 뛰는 것만 고르지 말며, 그저 온몸이 가리키고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즉, 생명이면 생명. 분노면 분노, 냉정이면 냉정. 죽음이면 죽음. 그대로를 글자로 써내려가자고 말한다.
또한, 시가 뱉는 침은 현실사회의 상호연관성이라는 힘이 뚜렷하게 존재해야 함을 주장한다. 따라서 현실도피를 하는 당시의 초현실주의 시인들에게 상당한 반감을 드러낸다. 그리고 한국의 냉전 상황의 현실, 군부독재의 현실을 무시하고 세계문학의 조류에 휩쓸려 엉뚱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데 펜대를 기울이는 지식인들에게도 같은 공격을 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문학 선배라는 총대를 메고서 써내려간 그의 시 월평은 상당히 신랄한 어조를 띄고 있다.
이 산문에는 시인의 생전 모든 글을 모아 수록해 놓았다고 한다. 시작노트와 일기. 그리고 그가 완성하고 싶어 했으나 완성하지 못한 의용군이라는 장편소설까지. 600페이지가 넘는 글 사이사이에 명 문장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시에 대한 짤막한 감상을 남겨본다. 그의 초기 시들이 상대적으로 난해하고 메타포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후기로 가면서 점차 산문화되고 구체적인 단어들로 목소리가 분명해지고 있음이 전달되었다.
아마도 온몸으로 쓰고 있다는 것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손이 움직이는 대로 쓴 그의 후기작품들을 말하고 있는 것일 테다. 이승만의 사진을 밑씻개로 사용하자는 그의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라는 시가 특히 그러했다. 제목부터 솔직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