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지바고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39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지음, 박형규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보리스 빠스쩨르나끄의 <닥터 지바고>란 책은 개인적으로 참 몰입하기 어렵다. 상권을 읽은 후의 솔직한 심정이다.

 

<의사 지바고>의 독자들 중에는 그 속에 든 작가의 내러티브가 명확하지 않다고 불평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시인의 소설이다. 그리고 시인은 간결하고 통렬한 것을 좋아한다. 이 소설의 이야기에는 바이런적인 맛이 풍긴다. <김수영 전집 산문편. -311p->

 

김수영 전집에서 발견한 친숙한 제목 덕분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하긴 했는데, 상권을 끝내고 중간의 감상을 말해보려는 지금 이 단계에서 “명확하지 않은 내러티브”가 무엇이고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

 

<닥터 지바고>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따로 메모해서 기억해두지 않으면 조금 후 다시 연관되어서 나열되는 새로운 이름에 파묻혀 소설을 읽어낼 수 없기에 조그만 메모장에 각 장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이름을 적는 수고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그래야 안심하고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

 

이 말은 뒤집어 말하면 <닥터 지바고>의 등장인물 묘사가 그의 글 전체에서 아주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번에 읽은 <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서 거론된 '제 짝 아닌 훌륭한 신발 두개'와 같은 훌륭한 묘사방법. 다시 말해서,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한 두 단어를 사용하여 그 단어가 파생하는 이미지가 무의식적으로 인물의 모습을 만들어내는 묘사들이 <닥터 지바고>에 자주 드러난다.

 

가령, <꽉 죄게 싸고 있는 옷소매 위에 잔주름이 잡힌 검은 옷을 입은 한 사나이> 의 잔주름은 그의 경제적 상황이 그리 풍족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벨기에인 기사의 미망인이자 러시아에 귀화한 프랑스 인> 에서 기사와 프랑스라는 단어는 파티문화를 즐기는 프랑스 인들의 귀족사회 모습이 오버랩되어 문란하고 자유분방한 의미를 부여한다.

 

급속도로 붕괴하는 세계의 압력 속에 든 서정시의 소리였다. 수많은 태도와 기분과 표현 속에서, 파스테르나크의 소리는 본질적으로 서정적이고, 주관적이며, 외면상으로는 얼마간 밀봉적인 것이었다. <예술에서는 인간은 침묵을 지키고 이미지가 말을 한다.> <김수영 전집 산문편. -306p->

 

그리고 내전 중인 상황에 따른 공포스러운 분위기. 눈(雪)으로 설명될 수도 있는 모든 면에서 얼어붙어 있는 러시아의 묘사와 모스크바를 떠나는 열차에서 지바고가 맞이하는 봄과 폭포의 묘사까지. 시인이 표현할 수 있는 특수한 단어와 분위기의 선택은 자꾸만 그곳의 풍경을 상상하게 만들어주곤 한다.

 

다만, 이 모든 인물과 주위환경의 묘사가 그 시기의 러시아가 겪은 전쟁의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 몰입을 방해하는 주요한 요소이다. <닥터 지바고>는 텍스트를 읽는 독자에게 상당히 제한적인 공간만이 허락되고, 이 제한적 공간이 하나의 배경이 되어버린다. 이것이 명확한 내러티브를 야기하는 주요한 이유이다.

 

의사가 될 유리 지바고의 어린 시절 느낀 어머니라는 이름의 큰 상실에서부터 <닥터 지바고>는 시작된다. 이 상실감에 비명횡사하는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이 포개어지고, 전쟁이라는 사건이 가족과의 상실을 불러오며, 이념의 다툼이 인간성의 상실을 불러온다. 즉, 상권의 유리 지바고의 주요 테마는 상실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라라의 테마는 자신의 위치에서의 탈출이라고 볼 수 있다. 꼬마로프스키와의 도가니스러운 부적절한 관계. 그를 노린 한발의 총알탄은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녀의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또한, 떠나버린 남편을 찾아서 먼 곳으로 떠나는 그녀의 여정은 안정된 결혼생활을 꿈꾸는 그녀의 탈출기라고 생각된다.

 

죽은 줄로 알았던 라라의 남편. 스뜨렐리니코프 (=빠벨 빠블로비치 안치뽀프)과 유리 지바고의 만남으로 거대한 사건이 시작됨을 알린다. 하지만 그들의 만남 이전의 모든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서론만 잔뜩 쌓아놓은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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