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양장)
김려령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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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의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는 자전적 소설의 형식만을 취한 동화다다시 말해서이 소설의 화자. 오명랑 동화작가가 경제활동을 위해서 벌인 '이야기 들어주는 학원'에 모인 세 명의 수강생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오명랑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들어있다는 말이다한마디로, 이야기 속 이야기인 셈이다.

 

우리들은 그녀의 건널목 아저씨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물론나경이처럼 아저씨 이야기를 꼼꼼히 메모해서 소설을 쓰든 뭘 하든 상관은 없다어쨌든 간에 나는 이 책의 오명랑 동화작가의 건널목 아저씨 이야기가 자전적인지 아닌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책 속에서 그려지는 건널목 아저씨의 따스한 인간애가 혼탁한 세상을 바로잡는 데 필요한 바람직한 어른들의 모습이라고 본다.

 

듣는 사람의 마음을 열려면 이야기를 하는 사람부터 마음을 열어야 한다마음을 닫아 놓고 입으로만 하는 이야기그러면 안 된다. -13p-

 

건널목 아저씨는 쌍둥이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게 된다. 주체할 수 없는 상실감에 그는 괴물의 심장과 함께했었던 지난 과거를 잊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다그는 똑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어린이들이 자주 다니는 도로에 건널목이 그려진 카펫을 펼쳐놓고 교통정리를 한다.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에서는 오명랑 작가와 우리의 시선이 동시에 향한 곳아리랑 아파트의 뒷문에 있는 도로에서 빨간불과 파란불이 그려진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눌러쓰고 매일 교통정리를 하는 그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이 모습은 누군가 자신의 전철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한 아버지의 애절한 마음이요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에서의 매그위치가 전해준 막대한 유산 속에 숨어있는 위대한 속뜻과도 일맥상통한다그는 결코 보답을 바라고 하지 않았다엄마와 아빠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어린아이와 보호할 쌍둥이를 잃어버린 어른의 만남이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이 소중한 추억이 화자가 겪었던 공개하고 싶지 않은 과거까지 함께 들춰내야만 타인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점은 <완득이>에서의 완득이의 처지와 비슷하다열등감을 벗어내야만 그것을 동력으로 더욱 큰 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오명랑이라는 작가의 인생에서도 이 사실은 꽤 중요한 전환점으로 작용하는 듯했다그녀는 이야기를 고백하지 않고는 다른 작품을 쓸 수 없었을 것 같다는 고통을 토로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지어서 써도 불현듯 나오는 문장까지는 지어서 못 써요몸에 박힌 말이 툭 나와 버린 거니까저한테 아저씨는 그런 문장 같은 분이에요너무 깊이 박혔거든요. -75p-

 

하지만이것은 완득이가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기인한 어떤 열등감어머니와 아버지 그들 역시 가지고 있는 열등감을 꺼내야한다는 상황과 마찬가지로 오명랑 작가의 새언니의 아동학대의 과거와 엄마의 가출이라는 과거가 전달하는 열등감을 상기시키는 기억이었다.

 

그렇지만작가는 그녀의 열등감을 건널목 아저씨의 이야기와 함께 다른 아이들에게 전달한다우리 사회가 건전하게 자라나기 위해서 건널목 아저씨의 따뜻한 인간애는 반드시 필요하고 생각한다성공의 위치에서 과거와 단절하거나 거드름 피우지 말고과거의 은인들의 따뜻한 손길을 기억하고 타인과 공유하자는 메시지가 나에게 다가오는 순간이다당신의 건널목 아저씨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좋은 사람이란 그런 거야가만히 있어도 좋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내가 이걸 해 주면 저 사람도 그걸 해주겠지하는 계산된 친절이나나 이정도로 잘해 주는 사람이야하는 과시용 친절도 아닌 그냥 당연하게 남을 배려하는 사람그 사람이 바로 건널목 씨야. -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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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과 젊은 그들의 모험 - 조선 엘리트 파워
안승일 지음 / 연암서가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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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은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며, 우리에겐 ‘삼일천하’라는 단어로 친숙한 인물이다. 안승일의 <김옥균과 젊은 그들의 모험>은 조선 말기를 살았던 개화파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으로서, 그들의 탄생배경에서부터 성향과 실패의 원인을 분석한 책이면서 또한 김옥균을 중심축으로 개화파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열전같은 책이었다.


유명한 조선의 학자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의 세력을 기반으로 조용하게 시작된 개화의 움직임은 김옥균이 성장하는 시기에 이르러 상당한 발전을 이룸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서양의 문물을 접하고, 외국문화를 다룬 청나라의 서적을 필사하여 강대국들의 문물을 면밀히 공부했으며, 신분차별 없는 평등사회와 강력한 군사력에 감동하여 급진적으로 개화를 서두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개화의 움직임이 그들만의 리그로 매우 한정적으로 치러진다는 것에 있다. 개화파는 청나라의 군사가 감소하는 틈을 타서, 일본의 도움을 빌어 민씨 세도세력을 축출하는 데까지는 성공하는데, 이 정변에 대한 국민적 동의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 정변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도성을 지키는 군사들은 청나라의 반격이 시작되자마자 바로 개화파들을 배신하고, 지방의 선비들은 위정척사 정신을 위배하고 있는 그들을 규탄하고, 또한 서양열강과 청나라와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불안한 시국에 정변을 위해 일본을 끌어들인 그들에게 쏠린 반일 감정은 개화파의 자리를 더욱 위태롭게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위로부터의 개혁이 성공한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그 개혁이 사회적인 합의가 없이 갑자기 이루어졌다면 더욱 성공확률은 희박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력을 과신하고 젊은 혈기로 일을 벌였지만, 돌아오는 보답은 일본으로의 망명생활이었고, 이 개혁에 가담한 인물은 대부분 암살당하거나, 살아남은 몇몇은 나중에 친일파에 가담하게 된다. 서재필만이 그나마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긴 한데, 그 역시 미국시민으로서 철저히 계산적인 움직임을 보였다고 이 책은 서술한다.


책을 읽으며 어제의 선거결과를 되짚어보니 지금껏 떠들어왔던 모든 구호에 사회적 합의가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나꼼수로 대표할 수 있는 SNS 속에서 우리들은 우리들을 향해서만 진보를 부르짖은 것은 아닐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6.25 남북전쟁을 직접 겪은 분들. 전쟁 후 황폐해진 나라 꼴 때문에 가난하게 살아야만 했던 그분들의 처지를 이해해야만 했다. 결국, 우리의 개혁의지는 그들까지 감싸 안아야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투표를 하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남녀노소 가리지 말고, 잘 살 수 있게 만들어주려고 노력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개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결론은 급진적인 개혁과 진보는 이유없는 반대를 불러올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이다. 급진개화파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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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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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면서, 영화는 어떻게 표현해놨을까 궁금했다. 완득이에게 체벌을 가하면서 만남이 시작되는 영화의 똥주 선생과 완득이가 하느님에게 제발 똥주 좀 죽여달라고 비는 책의 똥주 선생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죽이고 싶었던 책 속의 똥주 선생은 완득이에게 99대의 매에 대한 유예기간만 줬을 뿐, 모질게 체벌하는 모습을 순전히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완득이에게는 신체적 고통을 주는 똥주보다는 남들에게 주목받고 싶지 않은데 그를 자꾸만 끄집어내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가하는 똥주가 더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완득이는 난쟁이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가 낳은 혼혈아였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난쟁이 춤꾼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 어머니가 저쪽 사람이라는 사실을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그는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않으려고 죽은 듯이 지냈다. 삶의 밧줄을 놓아버린 사춘기의 사내아이였다.


한 번, 한 번이 쪽팔린 거야 싸가지 없는 놈들이야 남의 약점 가지고 계속 놀려먹는다만, 그런 놈들은 상대 안 하면돼. 니가 속에 숨겨놓으려니까, 너 대신 누가 그걸 들추면 상처가 되는 거야. 상처 되기 싫으면 그냥 그렇다고 니 입으로 먼저 말해버려. -136p-


그런 완득이에게 똥주 선생은 자꾸만 쓸데없는 관심을 보인다. 이 순간을 책에서의 터프하면서도 구수한 “새끼야” 대신에 영화에서는 까칠하게 재잘대는 “얌마”로 희화화하여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와 ‘얌마 도완득’이 같은 카테고리에 묶어버리는데 우스우면서도 손발이 오그라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갑자기 튀어나온 원작에서는 없는 앞집 여자는 똥주의 몫으로 남겨준 영화의 위대한 유산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정윤하는 예뻤다.


똥주 선생을 죽여 달라고 빌었던 그 교회가 똥주가 매입한 건물이었으니, 완득이는 부처님 손아귀에서 발버둥치는 손오공 꼴이 되었다. 스승의 은혜가 부처님 손바닥처럼 넓은, 하늘 같았을까? 완득이를 세상 밖으로 꺼내놓으려 했던 똥주 선생의 목적이 우연히 킥복싱이라는 스포츠 종목과 맞닿아서 완득이를 일으켜 세우려 한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니. 니가 나비처럼 우아하게 날 때 상대가 벌처럼 쏘면 어떡할래? 우아하게 날갯짓하게 누가 그냥 둔대? 잊지 마라. 침착하게 끊임없이 움직이는 거야. 방어하기 위해. 공격하기 위해. 힘껏 당긴 고무줄을 탁! 놓은 것처럼 빠르고 깊게. -223p-


물론,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만화와는 달랐다. 완득이가 바라본 첫 세상의 연습경기는 2회 T.K.O였고, 진짜 시합은 1회 T.K.O였지만, 그 패배가 끝이 아님을 알기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완득이가 3번째 K.O패를 당하고 세상에 갚아줄 몫이 단지 2회에서 3회로 늘어났을 뿐이라고 여기는 완득이의 뻔뻔한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순간 ‘아 완득이는 앞으로 뭐가 되도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완득이가 자신의 목표를 향해 걸음을 내딛기 시작하는 것처럼 책에서는 윤하도 전쟁에 슬퍼하는 사람이 없도록 ‘종군기자’가 되려고 한다는 목표를 완득이에게 이야기하는 부분이 그려지는데, 영화에서는 윤하의 장래희망이 갑자기 사라져버려서 좀 아쉬웠다. 윤하의 처지와 똥주 선생의 처지와 아버지와 삼촌의 처지와 어머니의 처지. <완득이>라는 좁은 공간 속에서 완득이과 함께하지만, 그들 각자의 몫으로 남겨진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부분 중 중요한 부분이 사라져서 안타깝다. 그렇지만 정윤하는 예뻤다.


가끔은 울음보다 웃음이 더 가슴 저릿할 때가 있다. 아버지 춤에 웃는 사람들. 그 웃음에 웃음으로 대꾸해주던 아버지. 아버지와 별반 다를 게 없던 삼촌……. 그리고 지금 그분의 저 웃음이 그렇다. -1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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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하라 - 세계를 뒤흔드는 용기의 외침
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 유영훈(류영훈) 옮김, 우석훈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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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하라>는 미국 뉴욕의 월가(Wall Street)를 중심으로 일어난 점령운동에 참여한 다양한 분야의 종사자들의 목소리로 이루어낸 한 권의 책이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조금만 깊이 생각했더라면 알 수 있었던 문제인데, 지금까지 놓치고 있었던 부분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언론은 미 월가의 점령시위를 두고, 이 시위는 2008년에 일어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 대한 월가 금융인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분노의 시위이며, 동시에 오바마 정부의 막대한 재정지원을 규탄하는 움직임이라는 설명과 함께 관련 보도 자료를 배포했었다. 정밀하게 좁혀놓은 언론의 프레임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눈길이 쏠린 곳은 미국 월가의 ‘도덕적 해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점령하라>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금융자본의 ‘도덕적 해이’보다 훨씬 더 넓은 곳을 향한 외침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의 양극화’를 막고자 하는 절망적인 희망의 외침이었다. <점령하라>는 흔히들 ‘1%와 99%의 싸움’이라고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에 따른 부의 양극화를 규탄하고 있는데, 왜 나는 미처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을까?


겉으로 보기에는 휘황찬란한 미국사회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 <점령하라>의 시위대원들은 높은 생활 수준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생활 수준을 바라기 때문에 점령시위를 한다고 말한다. 사회가 이루어낸 많은 부분을 금융재벌의 밑씻개가 아니라 서민들의 삶을 위한 공공재로 쓰이기를 희망하는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주요 언론이 전하고 있는 ‘월가의 점령시위’는 절대로 월가에게만 국한된 시위가 결코 아니었다. 뉴욕에서 시작된 <점령하라>는 이미 애틀랜타, 오클랜드, 필라델피아, 보스턴으로 확산되었고, 책에서는 이곳에서 일어나는 시위자들의 의견충돌과 합의의 과정과 서로 다른 생각들 지닌 사람들의 문제점과 극복의 과정을 담은 풍경의 조각들을 전달하고 있었다.


<점령하라>에서는 상세히 설명하진 않지만, <점령하라>의 구호는 전 세계의 900개가 넘는 도시가 참여할 정도로 많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세상을 떠나신 김근태 선생님의 “2012년을 점령하라”는 말씀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시민운동이라는 개념에서 광우병 촛불 시위와 동일하지만, 부당한 한·미 FTA 조약으로서의 반대를 외쳤던 시위와 부의 양극화를 규탄하는 목소리는 조금은 다른 시각을 가진 문제로 바라봐야 할 듯하다.)


불평등 문제가 다시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월가 점령시위 덕분이다. 우리는 ‘1퍼센트 대 99퍼센트’와 ‘점령’이라는 어젠다를 세웠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큰 승리다. -215p-


<점령하라>는 월가의 분노에서 시작된 그들의 시선과 움직임이 99퍼센트의 몫을 흡수한 거대재벌들에게 쏠리고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노숙자와 범죄자를 일부러 시위대의 무리에 몰래 편입시키거나 무력으로 제압하고 있는 경찰들과의 싸움에 승리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불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그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광장에 모여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임을 몸으로서 보여주고 있다.


만약에 희망이 불가능한 요구라면,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겁니다. 만약에 쉴 곳과 음식, 일자리에 대한 권리가 불가능한 요구라면,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겁니다. 불경기에 수익을 얻은 자들에게 부를 재분배하고 탐욕을 멈추라고 하는 것이 불가능한 요구라면, 그렇습니다.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겁니다. -28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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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뇌 - 당신의 뇌가 정보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법
토르켈 클링베르그 지음, 한태영 옮김, 정갑수 감수 / 윌컴퍼니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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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찾아온 반란성이라는 방해자는 ‘뇌’의 정체가 까발려지기를 싫어하는 단순한 자의식의 방해였을까? 아니면 생소한 분야를 탐색하기에는 나의 ‘작업기억’ 용량이 작았기 때문에 충분한 주의력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었을까?


<넘치는 뇌>의 겉표지에 적힌 “정보 과잉으로 넘치는 뇌!”, “정보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법”이라는 문구와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뇌가 폭발하는 표지를 얼핏 보고서 ‘현대 사회를 비판하고 있는 책이구나!’ 싶었는데 읽고보니 내 생각은 틀렸다.


토르켈 클링베르그의 <넘치는 뇌>는 “우리의 뇌는 석기시대의 뇌와 크기가 거의 같고, 기능도 거의 같은데 왜 사람들의 아이큐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높아지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제한된 시간 동안 정보를 기억하는 능력을 뜻하는 ‘작업기억’의 증가가 주의력의 향상과 더불어 문제해결력의 상승으로 연결된다는 답을 전달하는 책이었다.


이 책에 따르면 적절한 스트레스와 함께 제공되는 정보는 자신의 ‘작업기억’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력과 집중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이때 우리의 뇌를 살펴보면 전두엽과 두정엽 부분이 활성화된단다. 하지만 인간의 뇌에 끊임없이 흘러드는 정보의 혼란스러움을 견디다 정보를 잊어버리는 임계점은 ‘작업기억’의 한계를 보여준다.


저자는 근육처럼 키울 수 있는 가소성이라는 개념으로 두뇌의 ‘작업기억’의 용량을 향상시킬 수 있는 여러 훈련 방법을 알려주는데, 명상과 독서, 체스와 같은 긍정적인 방법이 있는 반면에 약물이라는 부정적인 방법도 있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치료할 목적으로 개발된 리탈린이라는 약물을 미국의 대학생들은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좀 충격이었다.


결국, ‘작업기억’의 향상이라는 관점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혼잡스러운 정보를 견뎌내기에 무리가 없다면 별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다만, 지금의 정보가 너무 많아서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정보의 양을 조금 줄여서 받아들이면 되고,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주의력 향상방법을 통해 적절한 스트레스로 몰입하여 익숙하게 만든 다음 조금씩 정보의 양을 늘리면 된다. 마치, 바벨의 무게를 조금씩 올리듯이 말이다.


예전에 빌 게이츠의 <생각의 속도>에서 읽었던 "5세 어린이 때부터 컴퓨터와 친숙하게 만들어라. 그리고 모든 초등학교에 개인용PC를 설치하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가 말했던 컴퓨터가 클링베르그의 <넘치는 뇌>에서 ‘작업기억’의 향상을 이끌 헬스기구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관련 도서를 찾아 읽어보고 싶을 정도의 풍부한 지식으로 무장된 책이 당연한 결론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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