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령하라 - 세계를 뒤흔드는 용기의 외침
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 유영훈(류영훈) 옮김, 우석훈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점령하라>는 미국 뉴욕의 월가(Wall Street)를 중심으로 일어난 점령운동에 참여한 다양한 분야의 종사자들의 목소리로 이루어낸 한 권의 책이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조금만 깊이 생각했더라면 알 수 있었던 문제인데, 지금까지 놓치고 있었던 부분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언론은 미 월가의 점령시위를 두고, 이 시위는 2008년에 일어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 대한 월가 금융인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분노의 시위이며, 동시에 오바마 정부의 막대한 재정지원을 규탄하는 움직임이라는 설명과 함께 관련 보도 자료를 배포했었다. 정밀하게 좁혀놓은 언론의 프레임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눈길이 쏠린 곳은 미국 월가의 ‘도덕적 해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점령하라>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금융자본의 ‘도덕적 해이’보다 훨씬 더 넓은 곳을 향한 외침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의 양극화’를 막고자 하는 절망적인 희망의 외침이었다. <점령하라>는 흔히들 ‘1%와 99%의 싸움’이라고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에 따른 부의 양극화를 규탄하고 있는데, 왜 나는 미처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을까?


겉으로 보기에는 휘황찬란한 미국사회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 <점령하라>의 시위대원들은 높은 생활 수준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생활 수준을 바라기 때문에 점령시위를 한다고 말한다. 사회가 이루어낸 많은 부분을 금융재벌의 밑씻개가 아니라 서민들의 삶을 위한 공공재로 쓰이기를 희망하는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주요 언론이 전하고 있는 ‘월가의 점령시위’는 절대로 월가에게만 국한된 시위가 결코 아니었다. 뉴욕에서 시작된 <점령하라>는 이미 애틀랜타, 오클랜드, 필라델피아, 보스턴으로 확산되었고, 책에서는 이곳에서 일어나는 시위자들의 의견충돌과 합의의 과정과 서로 다른 생각들 지닌 사람들의 문제점과 극복의 과정을 담은 풍경의 조각들을 전달하고 있었다.


<점령하라>에서는 상세히 설명하진 않지만, <점령하라>의 구호는 전 세계의 900개가 넘는 도시가 참여할 정도로 많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세상을 떠나신 김근태 선생님의 “2012년을 점령하라”는 말씀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시민운동이라는 개념에서 광우병 촛불 시위와 동일하지만, 부당한 한·미 FTA 조약으로서의 반대를 외쳤던 시위와 부의 양극화를 규탄하는 목소리는 조금은 다른 시각을 가진 문제로 바라봐야 할 듯하다.)


불평등 문제가 다시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월가 점령시위 덕분이다. 우리는 ‘1퍼센트 대 99퍼센트’와 ‘점령’이라는 어젠다를 세웠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큰 승리다. -215p-


<점령하라>는 월가의 분노에서 시작된 그들의 시선과 움직임이 99퍼센트의 몫을 흡수한 거대재벌들에게 쏠리고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노숙자와 범죄자를 일부러 시위대의 무리에 몰래 편입시키거나 무력으로 제압하고 있는 경찰들과의 싸움에 승리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불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그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광장에 모여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임을 몸으로서 보여주고 있다.


만약에 희망이 불가능한 요구라면,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겁니다. 만약에 쉴 곳과 음식, 일자리에 대한 권리가 불가능한 요구라면,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겁니다. 불경기에 수익을 얻은 자들에게 부를 재분배하고 탐욕을 멈추라고 하는 것이 불가능한 요구라면, 그렇습니다.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겁니다. -28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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