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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책을 보면서, 영화는 어떻게 표현해놨을까 궁금했다. 완득이에게 체벌을 가하면서 만남이 시작되는 영화의 똥주 선생과 완득이가 하느님에게 제발 똥주 좀 죽여달라고 비는 책의 똥주 선생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죽이고 싶었던 책 속의 똥주 선생은 완득이에게 99대의 매에 대한 유예기간만 줬을 뿐, 모질게 체벌하는 모습을 순전히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완득이에게는 신체적 고통을 주는 똥주보다는 남들에게 주목받고 싶지 않은데 그를 자꾸만 끄집어내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가하는 똥주가 더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완득이는 난쟁이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가 낳은 혼혈아였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난쟁이 춤꾼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 어머니가 저쪽 사람이라는 사실을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그는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않으려고 죽은 듯이 지냈다. 삶의 밧줄을 놓아버린 사춘기의 사내아이였다.
한 번, 한 번이 쪽팔린 거야 싸가지 없는 놈들이야 남의 약점 가지고 계속 놀려먹는다만, 그런 놈들은 상대 안 하면돼. 니가 속에 숨겨놓으려니까, 너 대신 누가 그걸 들추면 상처가 되는 거야. 상처 되기 싫으면 그냥 그렇다고 니 입으로 먼저 말해버려. -136p-
그런 완득이에게 똥주 선생은 자꾸만 쓸데없는 관심을 보인다. 이 순간을 책에서의 터프하면서도 구수한 “새끼야” 대신에 영화에서는 까칠하게 재잘대는 “얌마”로 희화화하여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와 ‘얌마 도완득’이 같은 카테고리에 묶어버리는데 우스우면서도 손발이 오그라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갑자기 튀어나온 원작에서는 없는 앞집 여자는 똥주의 몫으로 남겨준 영화의 위대한 유산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정윤하는 예뻤다.
똥주 선생을 죽여 달라고 빌었던 그 교회가 똥주가 매입한 건물이었으니, 완득이는 부처님 손아귀에서 발버둥치는 손오공 꼴이 되었다. 스승의 은혜가 부처님 손바닥처럼 넓은, 하늘 같았을까? 완득이를 세상 밖으로 꺼내놓으려 했던 똥주 선생의 목적이 우연히 킥복싱이라는 스포츠 종목과 맞닿아서 완득이를 일으켜 세우려 한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니. 니가 나비처럼 우아하게 날 때 상대가 벌처럼 쏘면 어떡할래? 우아하게 날갯짓하게 누가 그냥 둔대? 잊지 마라. 침착하게 끊임없이 움직이는 거야. 방어하기 위해. 공격하기 위해. 힘껏 당긴 고무줄을 탁! 놓은 것처럼 빠르고 깊게. -223p-
물론,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만화와는 달랐다. 완득이가 바라본 첫 세상의 연습경기는 2회 T.K.O였고, 진짜 시합은 1회 T.K.O였지만, 그 패배가 끝이 아님을 알기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완득이가 3번째 K.O패를 당하고 세상에 갚아줄 몫이 단지 2회에서 3회로 늘어났을 뿐이라고 여기는 완득이의 뻔뻔한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순간 ‘아 완득이는 앞으로 뭐가 되도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완득이가 자신의 목표를 향해 걸음을 내딛기 시작하는 것처럼 책에서는 윤하도 전쟁에 슬퍼하는 사람이 없도록 ‘종군기자’가 되려고 한다는 목표를 완득이에게 이야기하는 부분이 그려지는데, 영화에서는 윤하의 장래희망이 갑자기 사라져버려서 좀 아쉬웠다. 윤하의 처지와 똥주 선생의 처지와 아버지와 삼촌의 처지와 어머니의 처지. <완득이>라는 좁은 공간 속에서 완득이과 함께하지만, 그들 각자의 몫으로 남겨진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부분 중 중요한 부분이 사라져서 안타깝다. 그렇지만 정윤하는 예뻤다.
가끔은 울음보다 웃음이 더 가슴 저릿할 때가 있다. 아버지 춤에 웃는 사람들. 그 웃음에 웃음으로 대꾸해주던 아버지. 아버지와 별반 다를 게 없던 삼촌……. 그리고 지금 그분의 저 웃음이 그렇다. -17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