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 2 버지니아 울프 전집 18
버지니아 울프 지음, 진명희 옮김 / 솔출판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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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했는데레이첼의 경우에는 허락되지 않는 말이었다.돌이킬 수 없는 열병의 아픔은 왜 스러져야 하는지 모르는 의문을 잔뜩 떠안기고 마침내 그녀를 사라지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역설만을 보여준다이런 역설은 토머스 하디의 <테스>의 역설과도 비슷하게 다가왔다두 작품 모두 상대적으로 나약한 여성상의 비극적 결말을 통해 이 사회의 무엇인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경고를 전달한다.

 

다만 두 소설의 차이점이라면 테스가 고통을 겪게 된 이유는 그녀의 외모와 분위기가 극히 눈이 부신다는 남성주의적인 이유라면레이첼이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이유는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라는 자체의 불분명함그 때문에 빚어지는 시각의 상실이라는 여성주의적인 이유라 하겠다.

 

이런 역설 속에서도 <출항>은 한줄기 희망을 남겨둔다개인적으로 그 희망을 이블린 M이라는 인물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군인 아버지를 둔 이블린 M은 소설 초기에는 남성의 힘에 의존하려는 인물이었다. 1권에 등장하는 남성 주류사회로 적을 옮긴 댈러웨이 부인과 비슷한 인물이다하지만 그녀는 기본적으로 나약하진 않다어조는 매우 강경한 인상을 풍겨내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녀는 이상형인 가리발디 장군과 비슷한 남성을 찾으려는 철저히 계산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였다하지만 동등한 위치에서도 충분히 순정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음을 보여주는 레이첼의 모습을 접하고 내적으로 깨달음을 얻게 된다이블린은 남성 의존적인 성향을 벗어던지고러시아의 혁명에 참여하려는 의지를 갖춘 주체적인 여성상의 모습으로 변모하는데 이것이 아마도 버지니아 울프가 우리를 위해 남겨둔 마지막 씨앗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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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 1 버지니아 울프 전집 17
버지니아 울프 지음, 진명희 옮김 / 솔출판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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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이미 늦었다고 누가 그랬던가변화하는 사회의 흐름을 좇아가기는커녕 변화와 흐름이라는 단어조차 몰랐음에 분명한 레이첼뒤늦게 알게 된 미지의 세계에 던져진 그녀의 늦은 몸부림을 수포로 만들어버리는 작가의 단호함이 얄밉게 느껴졌다. <출항>에서의 모든 문제가 수동적인 인생에서 능동적인 인생으로의 전환이 늦어졌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라고 한다면 너무나 충격적이 아닌가?

 

여성에게는 참정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가부장 중심의 영국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가 서서히 주목받아 재조명되고미약하게나마 사회에 여성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던 빅토리아 시대이 시대를 살았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처녀작 <출항>에서는 울프 그녀와 닮은 모습을 한 스물네 살의 숙녀 레이첼의 생애를 바라본다.

 

레이첼의 숙모 헬렌의 요청으로 <출항>을 허락받아 떠난 낯선 땅의 극히 짧은 경험 속에서 레이첼은 운 좋게도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인물들을 만나게 되고그중에서 좀 괜찮아 보이는 (개인적으로도 출중해보임게으른 점만 빼면…….) 테렌스 휴잇과 사랑을 나누고 미래를 약속한다그런데 답답한 것은 관계를 이어가는 전 과정에서 레이첼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위화감이 그녀의 몸을 감싸고 그녀를 불안하게만 한다는 것이다.

 

위화감자신이 무엇을 하는지이게 올바른 길인지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도 없는해석 불가능한 상황에 놓인 레이첼에게 끊임없이 요구되는 이 깨달음의 확인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의문투성이의문들이 가져다주는 불안불안이 가져다주는 의심그리고 그 의심으로 빚어지는 쇠락만을 가져다주었다. 이 정체 모를 녀석을 접할 때마다 나 자신에게도 수시로 혼란스러움이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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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몸으로 말한다 - 마음을 읽는 몸짓의 비밀
제임스 보그 지음, 전소영 옮김 / 지식갤러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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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에서 제시한 사회 심리학자 앨버트 매라비언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의사소통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는 조건 중에서 절반이 넘는 55%가 제스처나 자세나 얼굴표정 같은 시각적인 몸짓 언어에 영향을 받고, 38%가 목소리의 어조나 높낮이나 빠르기 같은 말의 전달방식에 영향을 받으며나머지 7%가 말의 내용에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만약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사용하는 텍스트 위주의 서비스들(예를 들면트위터페이스북,카카오톡블로그)처럼 온라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친목질은 인간의 의사소통에 영향을 미치는 7%만을 사용하여 상대방의 성향을 해석한다는 다소 충격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2. 원서의 제목인 Body Language는 7%에 집중하는 책은 아니다이 책은 93%에 해당하는 각종제스처나 얼굴 표정이나 목소리 톤과 같은 몸짓언어를 어떻게 가다듬어야 상대방에게 호감을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책 동시에상대방의 93%의 몸짓언어에서 드러나는 여러 가지 메시지를 올바르게 해석함으로써 미리 처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야릇한 연애개론서로 짐작했던어리석게도 거기에 낚여서 집어든 <그녀는 몸으로 말한다>라는 한국어 제목은 책의 핵심을 포함한 많은 부분에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남녀를 가리지 않고 읽어볼 만한 한 책을 남성과 여성의 성을 구분 지은 것 같은 "그녀는"의 주어로 포지셔닝을 했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3. 마치 수학 공식처럼 나열한 여러 심리학적인 증거들이러한 행동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식의 결론을 무작정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저자도 주장하고 있지만, 이 주장은 항상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말마따나 상대방에 대해서 올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우선평소에 자주 하는 행동에 대해서 미리 알고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후에 어떤 행동이 일어난 상황(context), 행동에 대해 설명하는 말과 몸짓이 일치하는지의 조화(congruence), 그리고 그 설명 속에서 읽을 수 있는 하나가 아닌 여러 제스처들(cluster)을 통해 그 사람이 나와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4. 예전에 XTM에서 방영했었던 <그녀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대부분의 남성 출연자가 그녀의 진실된 몸짓(?)을 파악하는 것에 실패하고선 머리 위에서부터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이한다따라서 과연 이 책에서처럼 집중적으로 몸짓언어를 해석한다고 해서 우리가 상대방을 완벽히 파악할 수 있다는 주장에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바로 전에 읽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토니 웹스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토니가 곁눈질로 본 베로니카더 나아가 그녀의 전처 마거릿의 몸짓언어에 대한 토니의 추측은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는 100%의 조건을 완벽하게 바라볼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었기에 토니가 생각하는 그대로였어야만 했다그렇지만 결과는 달랐다.

 

5. 이런 예들은 작가가 주의하는 부분들(3의 부분)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반박할 수가 있다가령 출연한 여자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 그녀들의 습관을 잘 알지 못한다. 게다가 밑도 끝도 없이 당신을 좋아한다는 사람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처럼 말이다하지만 예로든 프로그램과 소설은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영리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므로 저자의 반박에 대한 반박이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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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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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기 다 있노. 식빵!” 그랬다나는 이 책의 결말까지 모조리 싹 다 읽고 난 뒤에도 대체 어떻게 된 거지아무리 짱구를 굴려 봐도 그런 관계가 불가능한데아 몰라머리아파 식빵식빵!” 거리고만 있다과거 <식스센스>의 반지 장면을 처음 마주했을 때도. “반지가 왜?” 이러고 앉았으니……쩝.

 

화가 나는 것은 줄리언 반스라는 작가가 아주 계획적으로 일을 꾸몄다는 거다그는 천연덕스럽게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수많은 독자들이 나에게 책을 다 읽자마자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고 말했다고로 나는 이 작품이 삼백 페이지짜리라고 생각한다.” 하이고 이런작가님 배짱 한번 보소.

 

그런데 이런 반응(식빵식빵!)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E.H.카의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로서 해석하는 역사가의 관점과 유사한 토니 웹스터의 극도로 제한적이면서도 완벽한 1인칭 시점의 서술방식과 그 제한된 시점에서 더욱더 목을 죄여오는 과거로의 회상이라는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불확실함 속에서 우리는 대체 무엇을 볼 것으로 기대하는가 말이다.

 

다시 말해서군데군데 끊어진 기억의 편린들의 어지러운 나열과 그 편린들마저도 자기 본위적으로 해석하려는 본능적이면서 비이성적인 인간 능력의 한계를 텍스트에 고스란히 옮겨놓는 치밀함을 자신이 40년간 알고 있었던 기억과는 완전히 다른 신랄한 어투와 입에 담기 힘든 저주를 퍼붓고 있는 토니가 에이드리언에게 보냈던 과거의 편지로서 증명하고 있었다그리고 고발하고 있었다.

 

고로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구나그렇지넌 늘 그랬어앞으로도 그럴 거고그러니 그냥 포기하고 살지그래’ 라는 베로니카의 체념은 비단 토니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토니의 기억만을 나열해둔 텍스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독자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런 의미에서 나는 식빵거리면서도 한편으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그러니 결국 포기해야지 뭐…….

 

그래서 내 결론은 이렇다. 나는 작가가 마련해둔 감을 못 잡고 헤메는 느낌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두 번 이상 읽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역설적이지만 감을 잡지 못하고 헤메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다왜냐하면 그것이 현실 세계에서 존재하는 각각의 가 지금 이 시간에도 수차례 맞딱뜨리는 타인과의 사소한 오해와 가장 유사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만약이 제안을 무시하고 이 책을 두 번 이상 읽는다면 아마도 당신은 토니의 자기 본위적 본능을 발견한 이후의 전지적인 시점으로서 텍스트를 해석해야만 할 것이고이 변환은 선한 이미지의 토니가 아닌 구정물이 덕지덕지 붙은 토니의 이미지로 덧칠된 텍스트에서 한편의 추리소설을 읽게 될 것임을 단언한다.

 

나는 반드시 을 잡아야겠다비이성적인 본성의 발현에 솔직히 만족하지 못하겠다대체 왜 토니보고 포기하라고 했는지 궁금하다면 한 사람의 탐정이 되어서 끝까지 파헤쳐보길 바란다하지만 내 생각에는 파헤쳐봤자 달라지는건 하나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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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하 - 채만식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1
채만식 지음, 이주형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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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임이 틀림없으나 여간해서는 의미를 알아채기가 어려웠던 일제강점기 시대를 보낸 작가 고유의 언어. 그리고 등장인물 사이에서 엿가락처럼 늘어져 나오는 전라도 방언. 이 두 가지의 요소가 채만식의 <태평천하>의 독해를 어렵게 하는 수고로움을 가져다주지만, 이 수고로움은 강점기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작업이므로 마땅히 감수할 만하다.

 

약간의 수고로움만 견디어낸다면 <태평천하> 역시. 세계고전보다 우위에 있을만한 작품으로 감상할 수 있음이 틀림없다. 이번에 비교해볼 작품은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윤직원 영감(생김새와 덩치 때문에 윤두꺼비라고 불렸던 영감은 두섭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매관매직의 상징인 직원(直員)이라는 직함을 자랑스러워 했다.)의 인물 됨됨이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4장의 제목(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에서 우리들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며, 자기만 잘살면 누가 어떻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스크루지의 얼굴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다.

 

유사한 성향의 인물을 다루고 있으나, <태평천하><크리스마스 캐럴>에 비해 훨씬 현실적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있으므로 비교적인 우위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태평천하><크리스마스 캐럴>이 제공하는 판타지의 요소와 이를 통해서 깨닫는 내적인 자기반성이라는 교훈을 완벽하게 제거한다. <태평천하>는 예방의 의미보다 현실의 극한까지 보여줌으로써 깨닫게한다.

 

부유한 지주의 신분으로 땅을 소작농에게 경작케 하여 부를 착취하거나, 일수를 빌려주어 폭리를 취하는 윤직원 영감에게 일제강점기 시대는 구한말 신변의 위협에 따른 불안함에서 해방된 사회이며, <태평천하>의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운 삶은 윤직원 영감이 처한 신분에 한해서는 어쩌면 타당하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윤직원 영감은 이런 평화로움(?)에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린다. 명예까지 얻으려한다. 권위있는 양반가문으로의 전환을 계획한다. 하지만 권위(지방군수와 경찰서장을 손자로 둔 뼈대있는 집안의 완성)로의 멀어짐은 부유한 환경이라는 늪에 빠진 자식들의 니힐리즘적인 탈선으로서 이루어지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종학의 사회주의자로의 배반은 영감의 입을 빌려 이 태평천하에! 이 태평천하에…….”라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불신의 목소리를 만들어 낸다.

 

결국, 이 소설은 사회비판 이전에 인간의 욕망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으며, 이를 개성적인 인물의 표현(풍자·역설·반어·희화·과장)으로서 적절하게 묘사한다. 그렇게 따지면 <태평천하>라는 제목 역시 풍자와 역설과 반어의 표현이다. 미상불(과연) 작가가 설명한 대로 현실의 를 문학적 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115P.“나 한번 급살 맞어 죽어뻬리면 아무것두 모루구 다아 잊어뻬릴 년의 세상…… 그런데 글씨, 어쩌자구 내가 이렇게 아그려쥐구 앉아서, 돈 한푼에 버얼벌 떨구, 뭇 놈년덜 눈치코치 다아 먹구, 늙발에 호의호식, 평안히 못 지내구…… 그것뿐잉가? 게다가 한 푼이라두 더 못 뫼야서 아등아등허구…… 허니, 원 내가 이게 무슨 놈의 청승이며, 무슨 놈의 지랄짓잉고오? 이런 생각이 가끔, 그 뒤버틈은 들더람 말이네그려!” 

 

이와 같은 건전한 생각이 잠깐 그의 곁으로 찾아왔다가. 의미를 되새겨볼 여지도 없이 잔인하게 지워버린 것은 이런 고민 자체가 남들에게 약하게 보일 빌미를 제공했기에 스스로 감내해야만 했을 어두운 대가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그의 비극을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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