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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평점 :
1. 인간을 멈추게 할 존재는 정녕 인간을 초월한 존재밖에 없는가? 그 말은인간의 비행을 멈추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 아닌가? 라는 자조 섞인 물음은 <제노사이드>의 마지막을 덮고 난 이후에도 떠나지 않는다.
정훈이 남긴 “내가 꿈을 꾸었구나.”라는 넋두리처럼, 윤리 브레이크가 아예 빠져 버린 행동으로 신문지 상에 오르내리는 이름들. 그 사람들을 멈추게 할 제어장치를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제노사이드>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 잘못된 방향으로 달린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그들의 야만스러움을 꿈에서나마 단죄하기 위해 태어난 소설로 바라볼 수 있다.
504. 모든 정치적 결정이란 이성적인 판단처럼 보여도 의사 결정권자의 인격이 강하게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루벤스는 단호한 대통령의 태도 속에 약간이지만 편향된 인격을 보았다. 그가 누스 말살을 고집하는 이유는 뭔가 개인적인 신념에 의한 것이었다.
<제노사이드>가 알려주는 그들의 정체 (역사적으로 따지자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그들을 끝도 없이 줄줄이 엮을 수 있다.)는 번즈 집권의 미국이고, <현실>로 따지면 지하자원 때문에 이라크를 침공한 부시의 네오콘 쪽으로 화살이 기운다. 그리고 꿈이란 바로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수십만 년 전에 태어났던 것과 같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태어난 신인류 아키리와 에마의 탄생. 그것이 시작이었다.
277. 이것은 그냥 암살이 아니라 ‘제노사이드’라고 생각했다. 목표는 이 세상에 한 개체밖에 없는 인류종. 단 한 사람을 ‘제노사이드’하는 것이다.
<제노사이드>는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죄 없는 나라의 다른 인종의 인간을 제노사이드 했던 과거. 그리고 하고 있는 현실을 신인류가 태어난 이후의 가상 세계와 절묘하게 조합한다. 우리들에게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영상을 제공한다. 트랜스포머 같기도 하고, 에어리언 시리즈 같기도 하고, 인류 이외의 존재를 다룬 여러 SF물의 이미지들이 함께 떠올랐다.
그 영상 속에서 반짝이며 빛나는 것은 범일본적인 스케일이다. 광대한 범위를 자랑하는 여러 전공의 학. 학. 그리고 학의 개념은 읽는 이로 하여금 저자의 노력에 대한 경탄을 보낼 수밖에 없을 정도의 수준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2.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라는 책을 보면, 실제 아프리카 대륙에서 소련에서 발명한 AK47이라는 소총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총은 무게가 가볍고, 조립법이 간단하고,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해서 중국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으로 건너오는 대표적인 무기인데, 이것을 총의 전체 길이 보다 키가 작은 어린 소년병들의 손에 쥐여주며 전쟁의 한복판으로 밀어 넣는 상황이 아프리카의 현실이다.
따라서 적군에게 포로로 잡힌 아이가 살아남을 유일한 조건을 치욕스럽게 이행하는 장면부터 그 아이가 전쟁에 투입되고, 계속되는 살인으로 인성이 말살되고, 그 상태의 아이들과의 성당 옥상 교전의 장면과 그 아이의 관점에서 최후의 감정을 서술하는 이야기는 저자의 상상력으로 이뤄진 꿈이 아니라 현재 아프리카 대륙에서 벌어질 법한 현실이었기에 가슴 속이 울컥하며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3. 나는 이 소설을 절반쯤 읽었을 때, 소설의 빈틈을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하이즈먼 보고서의 내용과는 달리 신인류 역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제노사이드도 불사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인류의 종들은 다 똑같구나 싶었다. 그러나 나머지 반을 읽어보니 이런 내가 생각했던 빈틈을 완벽하게 채워주는 줄거리가 담겨있었다.
신인류가 했던 행위들은 선제공격이 아니라는 점에서 인류들도 오랜 시간동안 다른 종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해왔었던 정당방위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인간의 부조리에 대한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인간의 질문에 대한 신인류의 대답과 신인류의 질문과 그것에 대한 인간의 대답이 반복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415. " 무서운 것은 지력이 아니고, 하물며 무력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