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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알랭 드 보통 지음, 박중서 옮김 / 청미래 / 2011년 9월
평점 :
1.알랭 드 보통은 무신론자다. 하지만 무신론자가 비종교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란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깨달았다. 신은 이미 죽었다며,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주장하는 드 보통의 관점은 내가 보기엔 종교인들과 훨씬 더 가깝다.
드 보통은 말한다. 신이 없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신이 있고 없고 와는 별개로 종교의 가르침 중에 우리가 본받을만한 훌륭한 것들이 많다. 그것들은 오랜 세월 동안 인류가 축적해놓은 지혜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가르침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여 현실의 우울한 삶을 바꿔나가자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계 각국의 여러 종교 속에 내포된 채 인간을 향한 따뜻한 교의들의 총합. 이것을 재료로 무신론자를 위한 새로운 종교를 만들자고 외치고 싶은 그의 마음은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라는 책의 제목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드 보통은 이러한 정신은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의 뜻과도 맞닿아 있다고 한다.
2.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는 간단하게 말해서 그의 베스트셀러 <불안>에 관한 해결책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자본주의 사회. 1%의 고독한 승리자가 되기 위해 경쟁 체제에 돌입한 인간들이 겪는 필연적인 불안. 이와 더불어 불완전함을 타고 난 인간에게 드 보통은 기독교, 가톨릭, 유대교,선불교 등과 같은 종교적인 가르침을 권한다.
불안을 겪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복권(권리 회복)을 위해서 삶의 주체가 되기를 권했던 우리나라 작가들의 <청춘인문학>,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같은 책의 해결방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들이 남들에게 휩쓸리지도 말고, 쉽게 원자화되지도 않는. 곧은 자아를 찾아나가자는 주장을 했던 것과 반대로 드 보통은 우선 공동체 사회로의 복귀나 소속감을 이용하기를 권한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해결 방안 중에 어느 것이 우수하다고 쉽게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으로 남과 비슷하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우리들에게 곧은 신념을 가지라는 충고도 올바른 가르침이요. 불안에 홀로 시달리지 말고, 보듬어 줄 수 있는 공동체 사회의 따스함을 기억하라는 충고도 올바른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3.무신론자를 위한 새로운 종교의 성격은 헤세의 <유리알 유희> 유리알 명인 크네히트가 나아가고자 했던 방향과도 일맥상통한다. 통제된 사회. 하나의 교리만을 진리로. 그렇게 하나의 진리에 얽매여버렸던 종교인이었던 크네히트가 좋은 스승과 다른 신을 숭배하는 타 종교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갇혀있던 새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진리를 추구하는 명인으로 발전하고 이러한 성장은 드 보통이 추구하는 무신론자의 종교와 아주 잘 어울린다.
4. 저자가 대하는 문학에 대한 주장이 옳다면 문학은 인생에 대한 현상에 집중할 뿐,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직접적인 가르침이 없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자기계발서에도 문학은 자리를 내줘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무신론자의 종교를 위해 철저하게 유린당하는 문학가와 문학 작품에 대한. 낭만주의에 대한 변론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작품을 사랑하는 이는 문학에서 이야기하는 그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 그 모습 그대로를 통해 종교인의 설교로서 끊임없이 주입시키는 위로의 과정을 이미 작품을 읽는 순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낭만주의에 대한 비판에도 반박을 하자면 저자의 말처럼 인간은 불완전하고 나약한 존재지만 나약하기를 다그칠 것이 아니라 나약하기 때문에. 어리석기 때문에. 인간이 추구하려는 그 열정에 대해서도 우리가 절대자가 아닌 이상 존중해야할 의무가 있음을 말하고 싶다.
다만, 세속의 교육과 대학 과정의 문제점에는 동감하는 바이다. 삶에서의 커다란 방향을 결정지을 수 있는 온건한 가르침보다. 다소 기술적인 부분에 치우친 지식의 전달. 단편적인 전달력에 의존하는 교육 과정. 그 과정 속에서 삶과 인생을 느낄 수 없다는 부분은 가슴에 와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