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로의 정원
리앙 지음, 김양수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1. “사랑은 그렇게 성난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책의 겉표지에 새겨진 문장 속의 감성. 정말로 내 눈앞에 높은 파도의 물결이 나를 덮치려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란 어떤 것인지 책을 읽을 덮은 후에야 비로소 온몸에 전해지기 시작했다.
성난 파도가 물결치는 모습처럼 <미로의 정원>에서 말하는 사랑 또한 피하기 어렵고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성질로 표현되어 읽는 내내 안타까웠던 것 같다.두 사람이 전개할 사랑을 가늠하고 예측하려 노력해봤지만 갑작스럽게 생겨버린 한 남자에 대한 맹목적인 일편단심과 어긋남 속에서 벌어지는 돌발적인 행동을 나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과연 린시겅의 매력이 무엇일까?’ 라는 의문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대한민국과 상당히 흡사한 사회구조 속에서 자수성가한 젊은 땅 부자라는 단어에 은유적으로 함축된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
즉, 자본주의에서 성공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이미지. 다소 속물적인 기준의 매력기준에서 끌릴만한 요소가 많아 보이는 인물에게 주잉홍이 무섭게 빠져들었다는 생각에 나는 이 두 사람의 관계의 이어짐이 더욱 못마땅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2. <미로의 정원>의 페미니즘. 이것은 다소 능력치가 떨어지는 남성을 치명적인 매력의 여성이 주도하는 일반적인 관계와는 다른 새로운 설정이었다.주잉홍은 미실처럼 모든 남자를 휘어잡지 못하고 잡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단지, 린시겅에게 매료된다.
하지만 뼈대있는 가문 출신이라는 굴레 때문에 그에게 풀어놓지 못한. 오히려 그런 그녀가 린시겅에게 성적 도구 따위로 전락하는 장면. 남성으로서는 정복했다는 쾌감을 느낀. 하지만 여성에게는 무척이나 치욕스러운 그 순간. 깊은 곳에서 샘솟는 야릇한 욕구. 이것을 다른 남자에게 무자비하게 풀어내는 기이함.
이처럼 성적으로 결핍되어있는 그녀의 동물적인 감각이 요구하는 허용치는<미실>보다 훨씬 높았다. 그 강렬하면서 적나라한 행위는 치밀한 포르노그라피의 방식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 순간 주잉홍의 내면이 개입하며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의 성애는 황홀하지만 밝은 모습이 전혀 아닌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퇴폐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감정을 이해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책을 읽고 손에 놓고 다시 읽은 일주일 내내 느끼는 어려움이다.
3. <미로의 정원>은 정말 집중하기 어려웠던 책이다. <정원>에서 주로 사용한플래시백 기법은 어떤 상황이나 사건에 대한 잠재적이거나 표면적인 과거의 원인이 될 만한 이야기를 덧붙여 인물의 내면에 대한 이해를 돕는 의미로 사용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미로의 정원>에서의 시점전환은 그런 모습을 잘 관찰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판이한 두 시대의 계속되는 전환은 나에게는 주잉홍의 내면을 이해하는 거울의 역할이라기보다는 시대의 어떠한 단절. 그리고 급격한 변화를 암시하는 장치로 다가왔던 것 같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나라의 급격한 경제성장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된 대만의 경제성장의 전과 후의 느낌이 바로 <미로의 정원>에서의 그려내고자 했던 단절감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불과 이, 삼십 년 간의 짧은 시간차(인류역사의 발전 속도에 비하면 현대의 시간동안 발전한 속도는 무시무시하게 빠르다.)가 빚어내는 낯섦이 <미로의 정원>에는 숨겨져 있고 집중하기 어려운 느낌은 어떤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4. 그러나 그러한 변화가 낯섦을 불러내는 흐름 속에서 단 한 사람은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일제에 반대하고, 독재정치에 반대했던 그를 옥죄었던 감시의 눈초리들. 함원. <미로의 정원> 내에서만 누릴 수 있었던 제한된 자유 속에서 행했던 여러 행동들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았지만 분명히 의도된 행동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현재를 남김없이 보존하려 했던 존재였고, 우리는 이와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남긴 무언가로부터 과거와 현재를 간신히 이어가고 추억하며, 그 감성을 아날로그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이라는 어떤 메시지를 느꼈다. 그리고 이것을 양분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아비의 마음이 전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