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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ㅣ 밀란 쿤데라 전집 10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 민음사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1. 망명객의 애환을 담아낸 <향수>는 처음과 끝 부분이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져 있다. 대체로 <향수>가 제한적으로 느껴져서 조금은 답답하다. 이들이 티격태격 주고받는 귀향에 관련한 불명확한 대화의 의미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아주 어렴풋하게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2. 이야기와 함께 주제를 전달하는 일반 소설과 비교하면 밀란 쿤데라의 문학은 사건. 그리고 각 인물의 관점사이에 비물질적인 본질(다소 추상적인 관념)에 대한 뛰어난 통찰을 나열하는 부분(인물의 내면 그리고 작가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문장)이 많아서 총 53부분의 짧은 단락에 숨어있는 예리하게 벼리어진 문장을 뚝 떼어 소리 내 읽으면 자연스럽게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그렇지만, 그의 통찰력이 미치는 범위가 너무도 방대한 나머지. <향수>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밀란 쿤데라라는 넓은 바다 한가운데서 표류하고 있다는 감정뿐.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에 관련한 어떤 긍정이나 반론을 쉽사리 전개하기가 망설여진다.
3. 그럼에도 조금 용기를 내서. 기억의 불완전성에 대해 토로하는 쿤데라의 문장을 인지하고, 기억의 개인차가 뚜렷하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받아들인 몇 가지 생각들은 있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라는 점을 다시 말하고자 한다.
3-1. 공산주의가 낳은 억압된 식민주의 시대를 피해 오랜 세월 동안 떠나있었던 이레나와 조제프. 그들은 수십 년 만에 다시 찾은 프라하의 모든 존재로부터이질감을 느낀다. 다름을 의미하는 투명한 막이 형성되어 있다. 모든 것은암묵적이다. 조제프의 그림과 손목시계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남에게 속해있는 것처럼. 이레나가 준비한 와인 대신 맥주를 마시는 그녀들처럼.
마치, 낯선 환경에 홀로 떨어져서 적응해야 하는 어떤 느낌과 비슷하다. 예를 들면, 신입사원이 그 회사 사람들이 쓰는 은어를 어려워하는 그런 순간이랄까. 그래도 신입사원은 그 무리로 서서히 편입되는 과정이니 다행인데, <향수> 속의 대립은 그런 성격이 아니니 문제다.
평생 삶을 살아온 각자의 방식. 그리고 그 방식의 커다란 차이. 그 차이는 타협하여 좁힐 수 있는 의견 따위가 아니다. 삶의 방식을 포기하는 순간 자아를 상실하는 것이다.
3-2. 그들은 동병상련의 존재다. 그러나 이 동병상련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동병상련이 아니라. 다시 찾은 고향에서 이방인 같은 취급을 받는 동병상련에 가깝다. 그러므로 향수가 내포한 뜻인 ‘돌아가고자 하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서 비롯된 괴로움’처럼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는 있겠지만, <향수>가 풍겨내는 결말은 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그런 아름다운 고향이 아니다.
그들에게 고향에 대한 잊지 못할 그리움이 있겠거니 싶은 생각은 망명 생활을 하는 사람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아니라 망명객 주위에 있는 자들의 생각이다. 그들의 요구에 떠밀려 고향을 찾은 <향수>의 이레나와 조제프의 귀환은 너무나 건조하다. 이것은 참 의미심장하다.
4. 어떤 죽음, 고독, 고뇌, 향수, 욕망, 사랑 그 외에 나열하지 못한 <향수> 속의 주제어들. 이 모든 것은 엉망진창이다. 그리고 어렵다. 이것을 하나씩 떼어내서 생각하는 것은 가능하나 <향수>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생각하기가 너무 혼란스럽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