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무의식 - 정신분석에서 뇌과학으로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김명남 옮김 / 까치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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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인간의 무의식이 작용하는 방식과, 무의식에서 편집한 정보를 의식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관한 이론적인 이야기들을 사회 신경과학 분야의 많은 학자들이 시행했던 실제 실험을 사례로 증명하면서 들려준다. 

 

그 내용을 정리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가자니 너무 광범위 하고 해서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새로운 무의식>에서 언급하는 시각적 정보, 인간의 기억, 그리고 인간이 느끼는 감정들은 실제 세계에 존재하는 엄청난 정보들을 마치 다져놓은 돼지고기처럼 무의식의 세계에서 손질해두면 의식 세계에 있는 각종 도구들(말로서 표현핫거나 정의할 수 있는 개념어. 기호화시킬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여. 즉, 인간의 이성에 의해서 단순화하여 저장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2. 만약, 무의식에서 이와 같은 정보의 간편화 현상을 수행하지 않으면, 인간은 어떤 활동을 하던지 간에 자신에게 들어오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빠른 시간에 처리할 수 없게 된다. 특히, 아이큐가 높은 사람은 많은 정보가 저장되어 그 방대한 것들을 오히려 더 컨트롤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불필요한 정보는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낫고, 무의식에서 걸러진 그 정보는 축약된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진실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인간이 받아들이는 시각정보와 기억과 감정은 필연적으로 오류를 수반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음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오류투성이의 존재가 바로 인간임을 알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을 읽는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3. 이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는 생각들이 몇 개 떠올랐는데, 가장 먼저 책의 제목과 표지의 디자인. 그리고 출판사. 마지막으로 작가 이름으로 형성된 불필요한 선입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그 선입견으로 나는 처음부터 이 책을 어려운 책이라고 판단했었다. 

 

실제로 위에 보이는 표지의 겉 정보를 보고 이 책이 결코 쉬운 책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저자의 이름 때문에 그랬다. 책에서는 자기의 이름이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지만 믈로디노프라는 네임은 정말 낯설고 익숙하지 않다. 

 

그리고 내가 까치출판사의 책을 읽었던 경험 중에서 최근에 읽은 <희망의 발견>처럼 술술 읽었던 책보다는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처럼 꾸역꾸역 밀어넣었던 기억이 더 깊숙하게 박혀있다. 그래서인지 까치출판사의 책은 지금까지도 좀 학문적이고, 공부해야 할 책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고보면 많은 출판사들이 임프린트라는 형태로서 책을 펴낸다. 아마도 너무나 다양한 종류의 책에 대한 고정된 범주화를 막고, 생산자가 원하는 이미지를 씌우기 위한 작업으로 그런 범주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포지셔닝이라는 것이다. 

 

4. 범주화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대중들은 내가 속한 집단에 상당히 맹목적인 충성도를 보인다는 저자의 주장과 책에서 나타나는 실험결과과 예사롭게 읽히지 않았다. 책에서 보니 처음 만난 사람임에도 같은 이름표를 착용한 사람은 그들끼리 단체를 이루고, 그들과 다른 단체는 배척하는 결과를 보였다. 

 

그러고 보니 작년 대선이 시작되기 전, 그 결과를 몇 년 전에 예측한 네티즌의 글을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경상도가 만든다라는 제목이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한국 내에서 인구 수가 가장 많은 경상도 출신이 내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새누리당이 이길 수 밖에 없으며, 야당이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내 집단이라는 맹목적인 판단력을 흐트러뜨릴 수 있는 부산 지역에서 대통령 후보가 나와야 하고, 여당표를 갉아먹을 수 있는 제 3의 후보가 나와야 된다고 했었다. 

 

이러한 통계는 정확하게 내집단과 외부집단을 나누는 인간의 무의식적 결정과정을 꿰뚫어본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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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다리 1
줄리 오린저 지음, 박아람 옮김 / 민음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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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미 소설. 미국 소설. 줄리 오린저의 <보이지 않는 다리>는 나로 하여금 미국인은 정치적인 영향력뿐 아니라 이렇게 문학작품을 통해서도 자국의 이야기가 아닌 바다 건너 머나먼 땅의 이야기를 이리도 생동감 있게 술술 털어놓을 수 있느냐?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다뤘던 시대적 배경. 스페인 내전에서 다리를 폭파해야 했던 임무를 부여받은 한 미국인이 뿜어냈던 존재감. 왠지 그런 힘이 <보이지 않는 다리>에서도 여지없이 느껴졌다. 이러한 특성도 대에서 대를 이어가는 것 같다.

 

미국소설이라는 다소 지엽적인 틀을 벗어던지면. 다시 말해, 영미 소설이라는 제약을 잠시 벗어두면 이데올로기의 싸움의 흐름에 휩쓸린 나약한 개인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그 인간이 인간과 인간에 대한 애정의 힘을 빌어 결코 세월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을 그려냈다는 점은 <닥터 지바고>의 유리 지바고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2. 생각해보니 <보이지 않는 다리>뿐만 아니라 기존에 읽었던 2000년 이후에 출간된 전미도서상이나 부커상 수상작이나 그 후보작들을 읽어 보면(읽어본 책들의 소견) 그 배경이 과거의 미국에 대한 것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러니까 영미소설들이 대부분이 그들의 현실에서 멀찍이 떨어져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훌륭한 서시시를 일궈낸다.

 

그때는 이 사람들 참 오지랖도 넓군. 그렇게 단순하게만 생각했었는데, <보이지 않는 다리>를 보니 그게 또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헝가리계 유대인, 프랑스, 우크라이나. 이렇게 넓게 펼쳐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어쩌면 이런 스케일을 통한 서사. 그 속에서의 인간. 이라는 틀이 한국문학의 다양성을 확대시키는 데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3. 물론, 한국문학도 나름대로의 특색과 재미가 있다. 이웃과 대화를 나눈다는 느낌.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어떻게 살았던가? 그리고 우리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들을 불러준다. 

 

그러나 문제점도 있다. 우리나라 문학은 대체적으로 우리것에만 집착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자본주의의 흐름에 따라 번져가는 개인화에 집중하는 등. 작가가 직접 겪었던 경험과 시대적 배경에만 의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런 작품이 아닌 작품들. 작가가 살고 있는 공간적 배경을 넘어선 작품들도 한반도의 호령했던 역사(고구려, 신라, 백제, 고려, 조선)와 그 인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쟁을 다룬 작품이라고 해도 한국전쟁. 좀 더 범위를 넓히면 베트남 전쟁을 다루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전부였다. 

 

우리의 소설도 완전히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역사 속의 인물을 탐구하는 서사시를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만약 그런 작품을 아는 분이 계시면 저에게 소개도 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4. 문학판에서 눈을 돌려서 영화와 드라마판을 기웃거려보면 지금 국내영화와 드라마는 이미 한반도의 한계에서 조금씩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전개하고 있는 것 같다. 영화를 즐겨보지는 않아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다루지는 못하겠지만 대표적으로 최근에 인기를 얻고 있는 <베를린>이라는 영화의 예고편의 화려함이 갑자기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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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리딩 - 깊이 읽기의 기술
퍼트리샤 마이어 스팩스 지음, 이영미 옮김 / 오브제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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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깊이 읽기의 기술 리리딩: 리리딩>의 읽기가 추구하는 바는 다시 읽기다.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의 차이를 두고 읽어보자는 것이다. <리리딩>은 과거와 현재.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은 같지만, 그 시간 동안 자신이 쌓아올린 역사, 문화, 지역사회에 대한 지식의 성장과 변화를 통하여 책의 감상을 다르게 하고 새롭게 만든다는 것이 핵심이다.      

 

2. 독자 가운데는 소박한 성향의 독자와 성찰하는 성향을 가진 독자가 있다고 했다. 소박함과 성찰하는 특성을 고루 갖추어 균형을 유지하는 독자가 훌륭한 독자라고 했다. 누가 그랬냐면 오르한 파묵이 그랬다. 그리고 제인 오스틴은 이것을 이성과 감성. 문명과 감정에 대한 균형으로 설명했다. 

 

<리리딩>.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텍스트는 독자와 친밀해진다. 그리하여 주어진 텍스트를 읽으려 애를 쓰지 않아도, 억지로 이해하려 애를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에게 다가온다. 그러니까 이 자연스러움은 아주 소박한 성질의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리리딩>은 소박한 읽기를 말하는 책인 것 같다.

 

그런데 또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다시 읽기는 깊이 읽기라고도 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친밀해지고 자연스러워지는 것은 맞다. 그런데 그 친밀함을 통하여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작가가 쓴 책의 문장의 숨겨진 뜻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책을 더 많이 읽으면 문장을 뛰어넘어. 단어 하나를 읽으면서도 새로운 생각과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하여 리리딩의 결과물은 엄청난 성찰을 통해 일궈낸 글처럼 고차원적인 사유가 숨 쉬고 있는 성질의 것이 된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소박한 마음으로 나에게 익숙하고 재미있는 책을 읽었을 뿐인데, 그 책을 반복해서 읽다 보니 성찰적인 결과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3. 안락하고 편안하고 재미있어서 계속해서 그 책을 읽었더니 안 보이던 것이 계속해서 보이더라. 그것이 뭐냐면.... 솰라솰라. 이런 결과물들을 퍼트리샤 마이어 스펙스는 <리리딩>을 통하여 공개한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도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 읽기>와 마찬가지로 작가가 평생 읽어낸 결과물을 담아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리리딩>은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 읽기>처럼 전체를 다루는 과정은 살짝 생략하고, 온전히 리리딩에 의해 우려낸 이야기들만 설명한다. 그러므로 소박함의 행위는 생략되고(그것은 이미 작가가 해낸 상태고), 성찰적인 결과만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다루는 책의 핵심으로 곧바로 파고들어 간다는 인상이 짙었다. 그리하여 <리리딩>은 책을 다시 읽자는 권유에 관한 목적과 유용성으로 시작했지만 그 목적의 결과는 내면의 울림을 담아내는 형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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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 읽기
김의기 지음 / 다른세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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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TO에 소속된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듯 책을 읽는다고 한다. 일상적인 습관으로서 커피를 마시는 행위를 막연히 상상해보면. "굿 모닝~" 인사를 건네고 자연스럽게 커피를 내려 마시든지 아니면 스틱 커피 하나를 뜯어 뜨거운 물을 붓고 스틱을 휘휘 저어 마시던지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 읽기>를 쓴 김의기 작가는 전자에 가깝다. 어떤 원두가 담겨있건 원두를 정성스레 갈아서 커피를 내리고, 내리는 과정에서 흘러드는 향기와 맛을 깊이 음미하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인 것 같았다. 어느 장소에 있건 상관없이.

 

그에 비하면 나는 여전히 후자에 가까운 독서를 하는 것 같다. 스틱 커피를 뜯어 뜨거운 물과 함께 저어 마시거나, 아니면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뽑아 원샷 때리며. 헤헤 저 원래 뜨거운 거 잘 먹어요. 라고 자랑하듯이 휙휙 책을 읽는 것은 아닌지 반성을 해본다. 

 

그가 쓴 글을 보면 그런 느낌(커피를 내리는 행위)이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설명하려는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을 꼼꼼하게 아우르면서 그 작품의 인상적인 구절을 소개하고, 그로부터 우러나는 작중 인물에 대한 평가를 통해 읽어보지 않았던 작품에 대한 상당히 큰 공감도를 불러일으켰다. 

 

2. 개인적으로 책을 읽을 때 가장 어려운 순간은 어떤 책이든 항상 똑같은 것 같다. 바로 책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이다. 아무런 정보가 입력되어 있지 않은 상태는 마치 칠흑 같은 어둠에 싸인 공간에 있는 것만큼이나 무섭고 두렵다. 

 

나는 그러한 어둠에 맞서 창문을 열거나 휴대전화 액정을 켜서 환하게 비추려거나 하지 않고, 그냥 저자의 글을 계속 읽음으로써 어떻게든 어둠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할 때 항상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런 방식으로 책과 친밀도를 높여야지만 독서를 만족스럽게 시작할 수 있고,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3.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기에 이 책의 상세한 설명을 통해 형성될 관점으로 인하여 실제로 그 작품을 접했을 때 스스로 생각해 낼 수 있는 자유가 제약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표면적으로는 다른 사람(훌륭한 사람)은 어떻게 썼을지 궁금해서였고, 본질적으로는 나의 글쓰기를 발전시키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그런 마음으로 책을 읽은 이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우려보다는 단순히 고전이라는 이름 때문에 생기는 위압감(분량이 많아서, 인물이 너무 많이 등장해서, 시대적 배경에 적응하지 못해서 따위의 핑계)으로 인해 고전 읽기를 시작조차 못 했었던 것에 대한 두려움을 씻어내는데 기여를 하는 책이라고 말이다.


4. 해당 고전을 읽기 전에 읽어서 그렇지 해당 고전을 읽고 난 후에 이 책을 읽으면 아주 충실한 토론상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트문트>, <싯다르타>와 <수레바퀴 아래서>. 그리고 사르트르의 <구토>(구역질). 그 외 생략한 여러 작품은 과거의 느꼈던 기억을 다시금 살려주었다. 


대표적으로 <구토>같은 경우엔 주인공의 구역질이 막연하게 자신의 육감에 침입하는 실존(부정적인 것들)에 대한 거부감. 혹은 위에서 설명한 대로 내가 독서를 시작할 때 느끼는 두려움 같은 성질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것이 플라톤의 이원론을 초월하는 개념. 즉 본질을 찾는 노력에 대한 거부로까지 발전한다는 것은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특히, 이 책에 실린 <닥터 지바고>의 경우. 나는 러시아 내전기에 자신의 사상을 관찰시키려고 나섰던 자들이 어떻게 분열하고, 그러한 다툼 때문에 죄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피해를 보는지를 주의 깊게 봤었다. 그리고 유리 지바고의 마지막 순간이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작가는 라라의 치명적인 매력에 관해 중점적으로 서술하고 있었다. 상당히 다른 시각차였다.


5. 읽어보지 않았던 책 중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가 생긴 작품은 <데카메론>이다. 이 작품이 쓰여진 배경이 상당히 흥미롭다.(흑사병 때문에 산골 마을로 피신한 열 명의 남녀 젊은이가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하루에 하나씩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고, 그렇게 탄생한 100개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라고 한다.) 


한창 성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성에 대해서 개방적이며, 성애의 순간과 감정과 변명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표현했을지 자연스레 궁금해졌다. 그중에서도 특히, 알리베크와 루스티코의 이야기는 단연 압권이었다. 보카치오의 문장으로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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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이호철 문학재단 총서 1
이호철 지음 / 북치는마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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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솔직히 재미로 읽을 책은 아니다. 그래서 편하게 누군가에게 추천할만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왜?" 라는 질문에 수준 높은 대답을 들려준다. 그런 의미에서 공부가 되는 책이다. 더불어 러시아와 중국 같은 한반도 주위 나라의 역사적 사실에 관한 이해도 생긴다. 제목만큼이나 여러모로 상징적인 책이다.

 

이 책에서는 판문점2(2012)와 판문점1(1961)이라는 두 편의 소설을 다룬다. 두 작품 사이에 50년의 시간차가 났지만,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남북통일 문제에 대한 고민을 이 두 작품을 통하여 이호철 작가는 그려낸다.

 

2. <판문점2>은 소설보다는 대담집에 가까운 형식을 띤다. 진수와 영호 두 인물이 주고받는 대화가 반복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희석되어가는. 통일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데 대한 고민과 원망을 털어놓는다. 북한의 실상을 무시하는 듯한 식자의 글에도 비판적이다.

 

그들의 말처럼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개인이 가진 꿈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에 관심이 있지. 어떻게 통일을 해야 할까에 대한 관심은 없다. 그저 이 세계가 평화롭기만 바랄 뿐.

 

3. 이호철 작가의 통일에 관한 깊은 고민은 평생 동안 이어져온 저술 활동(삶)과 궤를 같이했다. 그가 전후의 모습을 다루는데 그치는 소설가가 아니라 통일의 문제를 다루는 대표적인 소설가로 인정받는 이유는 1.4후퇴 당시.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탈북자 출신 소설가이며, 그의 소설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실제이기 때문이다. 경험을 통하여 이 문제를 축적했기 때문이다.

 

<판문점>을 쓴 일차적인 이유 또한 남과 북이 휴전선으로 틀어막혀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남한에서 소설가로 살아가고 있음을 북에 있는 가족과 친지들에게 알리기 위한 목표라는 점에서 그는 정말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소설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에게는 통일이 되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더 큰 꿈이고 행복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남·북의 대화 단절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이 현실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현실이 얼마만큼 절망적인지는 그가 <판문점2>를 통해 제시하는 통일의 방법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남한과 북한 중 어느 한 곳이 미치지 않고서는 실현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 

 

작가의 문장을 빌어 이야기 하자면, 남한과 북한 양쪽에서 통일시킬 영향력을 가진 파천황 같은 존재를 기다리고, 천지개벽과 맞먹는 대북정책을 소망한다. 예를 들어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남한으로 건너와 성공한 자본가들이 자진해서 북한으로 이동하여 통일의 밑거름을 만들자 라는 극단적인 표출은 오히려 통일에 대한 소망에 비하여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시대에 대한 절망을 표현한다.

 

4. 그렇게 따지면 1961년의 <판문점>에서 서술했던 통일은 남북이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앞사람의 옷자락처럼 가까워보인다. <판문점>에서 그들이 해결해야 했던 것은 어떤 자유를 추구할 것인가라는 단순한 명제였다. (지금은 <판문점>의 고민이 확장되었다. 남한의 개인화 된 자유주의와 권태. 북한의 적극적 자유를 앗아간 김씨의 세습이 문제다.) 

 

북한 대표로 판문점을 방문한 여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자유란 민족과 국가를 우선시하는 나를 희생하는 의미를 가진 적극적 자유고, 남한의 진수가 말하고자 하는 자유란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데 집중할 수 있는 소극적 자유라는 것이다. 

 

서로가 가진 이념에서 표출되는 단점이 그들을 방해하는 장벽이었고, 이러한 장벽은 그 때 당시만 하더라도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으로 작가는 판단했던 것이다. 통일을 가로 막는 것은 어쩌면 소극적 자유에 내재된 권태가 아닌가 의심도 했던 것이다. 그런 마음에서 주위 인물들의 권태를 그렸던 것이다.

 

그러한 권태가 문제였기 때문에 <판문점>은 외국 언론이 제기한 바대로 사랑하는 연인의 문제 같은 기이한 분위기를 표출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그런 분위기를 느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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