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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 읽기
김의기 지음 / 다른세상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1. WTO에 소속된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듯 책을 읽는다고 한다. 일상적인 습관으로서 커피를 마시는 행위를 막연히 상상해보면. "굿 모닝~" 인사를 건네고 자연스럽게 커피를 내려 마시든지 아니면 스틱 커피 하나를 뜯어 뜨거운 물을 붓고 스틱을 휘휘 저어 마시던지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 읽기>를 쓴 김의기 작가는 전자에 가깝다. 어떤 원두가 담겨있건 원두를 정성스레 갈아서 커피를 내리고, 내리는 과정에서 흘러드는 향기와 맛을 깊이 음미하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인 것 같았다. 어느 장소에 있건 상관없이.
그에 비하면 나는 여전히 후자에 가까운 독서를 하는 것 같다. 스틱 커피를 뜯어 뜨거운 물과 함께 저어 마시거나, 아니면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뽑아 원샷 때리며. 헤헤 저 원래 뜨거운 거 잘 먹어요. 라고 자랑하듯이 휙휙 책을 읽는 것은 아닌지 반성을 해본다.
그가 쓴 글을 보면 그런 느낌(커피를 내리는 행위)이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설명하려는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을 꼼꼼하게 아우르면서 그 작품의 인상적인 구절을 소개하고, 그로부터 우러나는 작중 인물에 대한 평가를 통해 읽어보지 않았던 작품에 대한 상당히 큰 공감도를 불러일으켰다.
2. 개인적으로 책을 읽을 때 가장 어려운 순간은 어떤 책이든 항상 똑같은 것 같다. 바로 책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이다. 아무런 정보가 입력되어 있지 않은 상태는 마치 칠흑 같은 어둠에 싸인 공간에 있는 것만큼이나 무섭고 두렵다.
나는 그러한 어둠에 맞서 창문을 열거나 휴대전화 액정을 켜서 환하게 비추려거나 하지 않고, 그냥 저자의 글을 계속 읽음으로써 어떻게든 어둠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할 때 항상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런 방식으로 책과 친밀도를 높여야지만 독서를 만족스럽게 시작할 수 있고,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3.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기에 이 책의 상세한 설명을 통해 형성될 관점으로 인하여 실제로 그 작품을 접했을 때 스스로 생각해 낼 수 있는 자유가 제약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표면적으로는 다른 사람(훌륭한 사람)은 어떻게 썼을지 궁금해서였고, 본질적으로는 나의 글쓰기를 발전시키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그런 마음으로 책을 읽은 이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우려보다는 단순히 고전이라는 이름 때문에 생기는 위압감(분량이 많아서, 인물이 너무 많이 등장해서, 시대적 배경에 적응하지 못해서 따위의 핑계)으로 인해 고전 읽기를 시작조차 못 했었던 것에 대한 두려움을 씻어내는데 기여를 하는 책이라고 말이다.
4. 해당 고전을 읽기 전에 읽어서 그렇지 해당 고전을 읽고 난 후에 이 책을 읽으면 아주 충실한 토론상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트문트>, <싯다르타>와 <수레바퀴 아래서>. 그리고 사르트르의 <구토>(구역질). 그 외 생략한 여러 작품은 과거의 느꼈던 기억을 다시금 살려주었다.
대표적으로 <구토>같은 경우엔 주인공의 구역질이 막연하게 자신의 육감에 침입하는 실존(부정적인 것들)에 대한 거부감. 혹은 위에서 설명한 대로 내가 독서를 시작할 때 느끼는 두려움 같은 성질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것이 플라톤의 이원론을 초월하는 개념. 즉 본질을 찾는 노력에 대한 거부로까지 발전한다는 것은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특히, 이 책에 실린 <닥터 지바고>의 경우. 나는 러시아 내전기에 자신의 사상을 관찰시키려고 나섰던 자들이 어떻게 분열하고, 그러한 다툼 때문에 죄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피해를 보는지를 주의 깊게 봤었다. 그리고 유리 지바고의 마지막 순간이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작가는 라라의 치명적인 매력에 관해 중점적으로 서술하고 있었다. 상당히 다른 시각차였다.
5. 읽어보지 않았던 책 중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가 생긴 작품은 <데카메론>이다. 이 작품이 쓰여진 배경이 상당히 흥미롭다.(흑사병 때문에 산골 마을로 피신한 열 명의 남녀 젊은이가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하루에 하나씩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고, 그렇게 탄생한 100개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라고 한다.)
한창 성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성에 대해서 개방적이며, 성애의 순간과 감정과 변명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표현했을지 자연스레 궁금해졌다. 그중에서도 특히, 알리베크와 루스티코의 이야기는 단연 압권이었다. 보카치오의 문장으로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