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 잠자는 열정을 깨우는 강수진의 인생수업 인플루엔셜 대가의 지혜 시리즈
강수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1. 성공의 영광과 노력의 상흔이 공존하고 있는 발하면 생각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 질문에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축구선수 박지성의 발 혹은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처럼 이들의 발을 찍은 사진 단 한장만 가지고도 많은 이들에게 동기부여를 제공한다.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에서는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어떤 열정과 마음가짐으로 노력을 해왔는지를 평생의 발레리나 경험에 근거하여 털어놓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입에 발린 소리하기를 좋아하는 전문 작가의 자기계발서적과는 차원이 다른 책이라고 생각한다. 

 

유명인들의 성공담을 짜깁기하여 이어붙인 그들의 저서와 이 책은 내용적인 측면이 유사한 점이 혹여나 있을지 모르나 발레리나 강수진의 경험으로서 일궈낸 명징하고 단호한 메시지는 그녀가 하루 18시간을 오직 발레 하나에 몰입해보고 내린 결론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러한 고통과 쾌감이 공존하는 하루를 매일 반복하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가운데 얻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뭔가 그럴듯한 문장을 쓰려고 하니까 계속 뭐가 막힌다. 1은 그냥 이쯤에서 마감. 좋은 책을 넘어 위대한 책이라는 말 외에 뭔가를 덧붙이는 게 오히려 더 큰 모순이요. 헛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2. 

 

외향적인 인간 활동적인, 원기 왕성한, 말이 많은, 사교적인, 사람을 좋아하는, 흥분을 잘하는, 지배적인, 자기주장이 강한, 적극적인, 위험을 무릅쓰는, 얼굴이 두꺼운, 외부를 향하는, 느긋한, 대담한, 스포트라이트 앞에서 편안한. 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인간이다.

 

한편, 내향적인 인간 사색적인, 지적인, 책벌레, 꾸밈없는, 섬세한, 사려 깊은, 진지한숙고하는, 미세한, 내성적인, 내면을 향하는, 부드러운, 차분한, 수수한,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수줍음 많은, 위험을 싫어하는, 얼굴이 두껍지 않은. 과 같은 범주에 속하는 인간이라고 한다.

 

-콰이어트 중에서

 

작년에 읽은 <콰이어트>라는 책에서 발췌한 부분이다. <콰이어트>는 내향적인 인간이 가진 특유의 잠재력을 개발하면 얻을 수 있는 엄청난 결과를 조명했던 책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나도 내향적인 인간이 아닐까. 나에게도 혹시 어마어마한 잠재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내향적인 인간에 가깝다고 생각하며 상당히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은 책인데, 반갑게도 발레리나 강수진. 그녀의 고백에서 <콰이어트>의 내향적인 인간형에 가까운 특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가 솔직하게 자신의 내향성을 드러내는 일화는 책 속. 여러 곳에 등장하지만, 내향성에 견해에 대한 그녀의 고백을 여기에 인용한다.  

 

113. 소극적인 성격의 이면에는 타인을 배려하고 연치와 체면을 존중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은 대신 내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므로 어떠한 결정을 내렸을 때 실수할 가능성이 다른 사람보다 적고, 실행 속도는 훨씬 빠르다.

 

그녀가 내향적인 인간에 가깝다고 해서 내향성 = 성공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그 성격보다 백배 더 중요한 것이 그러한 성향을 열정으로 가공해 온 하루하루의 노력이다. 그럼에도 나는 대중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활발하고 외향적인 사람의 성공적인 모델과는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흥미를 돋우는 발견이었던 것 같다.

 

3. 여기서는 나에 대한 질책과 반성을 해야겠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는 카프카나 사르트르의 실존의 고통. 즉, 부조리에 엄청나게 많이 천착하고 있었던 것 같다. 대표적인 예로 <체인지킹의 후예>의 서평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민의 언어(부조리를 토로하는 언어)에 매혹당하여 부조리를 이겨낼 당위성을 찾아내지 못하고 우울해졌었다.

 

나의 멍청함을 쉽게 말하자면, 시지프스가 평생 돌을 밀어올려야 했던 징벌은 나는 지금껏 도대체 그걸 왜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는 노가다로 보고 있었던 셈이다. 까짓것 안 하면 그만이지. 라고 회피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삶이고, 그렇기에 우리가 우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그것에 의미를 찾고, 투쟁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제 원본은 없어. 이미 너무 많은 이야기가 축적됐고, 그 속에서 나올 만한 것은 다 나와버렸어. 너와 나는 무언가의 맥빠진 모방이나 복제 속에서 사는 거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체인지킹의 후예 265-


세계의 구축이 정교하면 정교할수록 인력은 강해져. 그런데 인력이란 건 세상 어디에나 있어. 돈은 인력이야. 명예도 인력이지. 야심도, 자존심도 모두 인력이야. 하다못해 장래희망이나 목표, 꿈 같은 것도 인력이지. 거기에 빠지고 즐기는 느낌은 분명 판이하게 다르겠지만 인력에 끌린다는 건 결국 행위의 결과만으로는 만화 영화나 게임에 빠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그저 사람들이 더 많이 줄을 선다는 것이 다를 뿐이야. -체인지킹의 후예 268-

 

이렇게 멍청한 나에게 최근 읽은 여러 권의 책들은 깨우침을 주었다. 고마운 책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체인지킹의 후예>,<삶으로부터의 혁명>,<정크>,<카프카의 서재>,<문명의 배꼽, 그리스>. 그리고 오늘 평을 남기는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어쩌면 이렇게 부조리에 투쟁해야 한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이미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내려놓기를 권하는 <오늘, 뺄셈>이나 시간을 발견한 시간의 아버지에게 형벌을 주는 <타임키퍼>에 감동을 받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지금 나는 뭔가를 빼거나. 시간의 개념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이 부조리의 현실에 투쟁하여 나의 꿈을 현실화하는데 얼마남지 않은 시간을 더욱 충실하게 보내야 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4. 강수진 발레리나가 나에게 권하는 가르침에는 열정과 노력. 친화력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깊게 생각하면서 봤던 부분은 하루 18시간을 보내는 몰입의 힘. 그리고 누구와도 같지 않은 개성을 찾는데 조언을 주는 부분이었다. 

 

당연한 말이다. 누구든지 각자의 무기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 역시 책을 다루는 많은 블로거 가운데 차별화되고 싶은 한 사람이기 때문에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체득하고 풀어 낼 것인지. 생각해봐야겠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조금 깨닫는 바가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만의 개성이기에 노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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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대화
정지아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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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이 세상에 단 하나의 진실만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일테다. 죽음. 정지아의 <숲의 대화>는 삶에서 죽음으로 향하는 자연스럽지만 인정하기 싫은 길을 향해 걷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포용함으로써 존재하는 소설집이었다.

 

어떤 작품은 줄거리를 숨김으로써 즉. 은유를 흘려놓으면서 자연스럽게 온전한 모습이 형상화될 수 있도록 구성된 단편으로 이루어지고, 또 어떤 작품은 다른 성격을 가진 2명 이상의 인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삶을 구성한다. 아주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개인적으로는 단편 <숲의 대화>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읽으면서 느껴졌던 은유를 통한 서사. 그러니까 자세하게 말하자면.. 첫 부분의 숨김과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것의 외피에서 드러나는 것이 '악'이거나 '부도덕'에 형상을 띄는데, 그것에서 작가가 은유를 이어가면서 악과 부도덕의 형상이 어떤 사건과 필연적인 결말로 향해 달려가며 슬픈 이야기로 변신하는 단계를 유심히 지켜봤다.

 

마지막 단편 <절망>에서도 무지갱 같은 공간 속에서 볕과 같은 존재인 김씨의 비극으로 자신의 희망이 절망으로 변하고, 절망의 고통을 공유하는 고시원 안의 불특정다수가 숨죽이며 욕망을 푸는 처절함에서 이 사회의 처절한 단면을 맛보게 된다.

 

2. 이 두 작품을 제외한 나머지 단편은 대체적으로 사상이나 성장 배경의 차이로 인해서 다른 성격을 갖게 된 인물들 각자가 노년에 접어들면서 그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고, 사상이 어땠건 간에 과거의 공통된 기억을 공유한 사람끼리 삶을 살아왔던. 그리고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각자의 관점을 서술한다.

 

그러한 작품 가운데 <목욕 가는 날> 같은 경우는 사회의 때에 찌들어 제각기 페르소나의 가면을 쓰며 살아가는 한 가족을 그것을 씻겨내주는 상징적이면서도 동시에 실제적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 목욕탕에 가둠으로서 이토록 빠르게 세월이 흘러가고 있음을 드러내 보여준다.

 

3. 이와 같이 어떻게 살던 간에 사람들은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바람에 관한 묘사를 많이 사용했나보다. 특히, 단편 <숲의 대화>에서 다양한 모습을 가진 바람을 가장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존재를 확인하거나. 세월을 밀어내는 것. 모든 것이 바람의 영향이었다. 뿐만 아니라 흐름을 견뎌내지 못한 어떤 이들의 한숨에도 바람은 있었다.  

 

앞에서 <정크>같은 청년의 소설, <내가 너다>같은 중년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했던 적이 있다. 그런 분류법을 따른다면 이 소설은 중년을 넘어서 노년으로 가는 소설이거나 아니면 노년의 세월 앞에서 이미 흘러온 기억을 재조립하여 단순화시킨 다양한 삶을 풀어놓은 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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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서재 -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책 읽기
김운하 지음 / 한권의책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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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무의식이 나로 하여금 의도한 결과대로 2월에는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세 권의 책을 읽었다.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읽기>, <리리딩>, 그리고 <카프카의 서재>다. 세 권의 책에 대한 긴 이야기는 차츰 차츰 조금씩 생각나는대로 연계를 시키도록 하고, 지금 이 순간은 이 책을 읽고 들었던 단편적이며, 기본적인 감상을 남겨보고자 한다.

 

먼저 처음 읽은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 읽기>에 대한 잔상은 '인물'이라고 하겠다. WTO에서 일하는 작가는 그의 소속 내의 북클럽에서 인기있는 문학 작품에 대한 줄거리과 등장하는 인물의 매력을 탐구한다. 동시에 세계의 다양한 시간과 공간에서 탄생한 작품 속의 다채로운 성격을 가진 흥미로우면서도 매력적이거나 혹은 모범적이거나 본받을만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책이다.

 

그런가 하면 다시 읽기를 통해 문학의 맛을 느끼자는 계획의 일환으로 시작한 <리리딩>은 책의 줄거리 보다는 인간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위기를 헤쳐나가는가에 대한 부분에 큰 무게를 두는 책이다. 우리는 리리딩을 통해서 우러나는 줄거리에서 벗어난 아주 세부적인 감상을 붙잡아야 하고, 그렇게 우러나오는 것들이 리리딩의 장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유명하게 생각하는 <호밀밭의 파수꾼>같은 한 인간이 부조리의 폭로과 그  허무함에 함몰되고 마는데 그치는 책은 처음에 읽었을 때는 감명을 남기지만 되새길수록 저자에게 "그래서 어쩌라고?" 같은 메시지 밖에 전달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고 전한다. 

 

그러한 사례를 고백함으로써 <리리딩>은 우리가 흔히 계몽적인 교훈을 전해주는 소설이라고 말하는 책들이 큰 인상을 남겨줄 수 있음을 주장하는 책이었다.

 

<카프카의 서재>는 계몽적이지도(읽기에 따라서는 계몽적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딱히, 계몽만을 위한 내용은 아닌 듯 하다.) 다양한 인물 군상(읽기에 따라서는 인물에 대한 책으로도 읽히지만 딱히, 소설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작가론에 가까운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리고 작가가 그려낸 미로에 긷힌 인간. 나와 닮은 소설 속 화자들에 관심을 보인다. 

 

<카프카의 서재>는 셋 가운데 가장 원초적이며 추상적인 개념을 서술한다. 한 인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조차 없는. 현재 걷는 길이 과연 올바른가에 대한 확신이 전무한 없는 상황.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조리인데, 인간은 그러한 부조리를 느끼면서도 그것에 반항해야 하는. 반항이라기 보다 부조리 속에서도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아나서야 한다는 작가의 집념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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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뺄셈 - 버리면 행복해지는 사소한 생각들
무무 지음, 오수현 옮김 / 예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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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나는 <오늘, 뺄셈>에서 이야기하는 뺄셈의 의미. 즉, 욕심을 버리자. 내려놓자. 자신을 인정하자와 같은 계몽적 가르침을 알랭 드 보통의 <불안>과 버틀란트 러셀의 <행복의 정복>에서 이미 얻은 바(뒤통수를 엄청 세게 얻어맞아서 얼얼해진 기억)가 있다. 

 

근 몇년간 한국 사회는 <생각 버리기 연습>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같은 베스트셀러를 통하여 빠르게 흘러가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느림의 미학을 역설해온 바 있다. 책을 안 읽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많은 한국인이 이 책을 통하여 힐링의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그리고 오늘. 그들이 나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 담긴 책 한 권이 찾아왔다. 

 

2. 위의 내려놓기에 관한 책들이 현상의 해석과 대안, 잠언과 단상으로 이루어진 책이라면, <오늘, 뺄셈>은 조곤조곤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독자의 감정을 건드리는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위에서 언급한 책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장점을 맛볼 수 있었다. 

 

무무라는 필명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고 알려진... 작가의 글은 매우 좋았다. 직장, 우정, 사랑, 연애같은 관계의 진전에 대한 짧막한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더하기를 하는 것보다 빼기와 나누기를 하는 것이 어떻게 이득이 되는지 납득을 하게 된다.

 

글은 좋다. 누군가 나에게 무무라는 작가의 글이 좋으냐고 100번 물어보면 100번 그렇다고 말하겠다. 그렇지만 내 시선은 엉뚱한 곳으로 향한다. 뺄셈이라는 이야기 때문에 희생되어야 하는 사람. 즉, 소중한 누군가에게 뺄셈의 효용을 알리기 위해서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모습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 책에 대해서 100% 확신하거나 동의할 수 없다. 모든 이야기가 뺄셈을 위한 이야기이고 그렇기 때문에 뺄셈의 결과와 부합하는 이야깃거리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20%정도는 놔두고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마 작가도 그것을 원할 것이다. 

 

무한 뺄셈은 결핍을 낳으므로 적당히 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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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한국사를 조작하고 은폐한 주류 역사학자를 고발한다
이주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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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 여기 한국사에 대한 두가지 견해가 있다. 

 

첫 번째,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된 홍익인간의 단군조선을 시작으로 반만 년의 역사를 이어온 한민족은 수많은 외세의 침입을 받았지만 일제강점기 삼십오 년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완전히 외국에 복속되지 않은 저력을 가진 불굴의 정신과 투쟁심을 가진 민족이다. 

 

두 번째, 단군은 신화다. 체계를 갖추지 못했던 고조선은 중국인 위만에 의해 청동기를, 그리고 한나라의 식민지배를 통해 철기를 받아들인다. 시간이 흘러 한반도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은 기득권 유지를 위해 당파싸움에 열을 올리고, 쇄국을 일삼다가. 마침내 일제에 지배당하면서 근대화가 시작된다. 

 

2.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에서 가리키는 한국사란 바로 두 번째의 역사관을 뜻한다. 그리고 이 역사관이 대한민국의 주류 역사학자들의 역사관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가리켜 저자는 "식민주의 역사관"이라 칭한다.

 

식민주의 역사관이라... 식민주의라는 낯익은 단어를 발견한다. <그들이 내이름을 부를때>의 김근태가 박정희라는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에 관련된 자료를 읽다가 -지금껏 살아온 박정희의 발자취를 통하여 그의 내면을 관찰하려는 공부- 번갯불처럼 맞닥뜨린 두 단어 가운데 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군국주의다.

 

3. 이 식민주의 역사관을 통하여 일제는 한국인들이 그들의 전통과 역사, 사상과 문화를 저급하게 여기고, 한민족을 부정하거나 열등감을 조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친일파와 그들의 후손에 의하여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았었다.

 

그리하여 친일행위를 한 역사학자들은 한국의 역사학계를 지금껏 이끌어왔다. 특히,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의 이병도를 필두로 김철준, 한우근, 김원룡, 이기백, 이기동, 노태돈, 서영수, 송호정 등이 일제의 역사관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주류 역사학계를 만들면서, 나라의 지원을 받으면서 그들의 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4. 사실 나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지도 오래되었는데, 한국의 주류 역사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대체 어째서 역사적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지. 일제가 만들어놓은 식민사관의 축소된 한반도의 역사를 정설로 받들면서 그것을 유지하려고만 모르겠다. 그러한 행위로 기득권과 부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영화는 언젠가는 깨지고 말건데 말이다. 

 

현재 고조선이 실제역사라는 것을 증명할 유적과 유물도 발전된 과학 기술. 예를 틀어 탄소 연대 측정법을 통해 주류 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건국시점보다 훨씬 오래되었음이 밝혀지고 있는 상황이고, 그에 따라서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의 내용도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되었다고 한다.' 에서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되었다.'로 정정되는 상황인데 말이다.


그들이 가진 그 좋은 머리로 직접 유적과 자료의 탐구에 나선다면, 현재 그들이 매도하는 재야사학자(이들도 역사를 전공한 학자다. 다만 주류역사관을 따르지 않아 재야사학자라 불릴 뿐이다.)들이 발견한 역사적 기록보다 훨씬 더 가치있고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찾아낼 수 있고, 또 복원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역사학자라는 자신의 직업적인 성취를 이뤄내어 개인으로서도 행복하고, 단재 신채호 선생처럼 오래도록 기억되고, 존경받는 학자가 될 수 있을텐데 왜 그러질 않고 있는지... 아둔한 나로서는 도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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