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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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라카미의 세 번째 라디오라는 부제를 가진 책이다. 김영하 작가처럼 직접 라디오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게 아니라 여성잡지 <앙앙>에 기고한 글을 모은 세 번째 시리즈라는 의미를 가졌다.

 

이 에세이의 주제는 다양하다. 하지만 그 주제는 하루키의 취미와 경험(예를 들어, 음악, 영화, 여행, 책, 고양이, 채소, 그리고 글을 쓰는 것)에 깊숙하게 개입되어 있어서 무라카미 라디오를 읽는다는 것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대중에게 노출되기를 꺼려하는 하루키로서는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를 '에세이'를 통해서 마련한 셈이다. 지난해 한국 출판 트렌드를 분석한 글에서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가장 잘 이용한 작가 이름 가운데 하루키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 에세이 또한 소통의 잡문집. 그 연장으로 읽어낼 수 있을 듯하다. 

 

2. 그는 소통하는 작가다. 그 말은 대중에게는 친절하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작가라는 의미와도 같다. (그에 반해, 동료 문인들과는 상당히 먼 거리를 유지한다고 한다.) 이 책에는 친절에 관한 한 편의 에세이가 등장한다. 이 에세이를 통해 그는 친절함이 그를 유명하게 만든 큰 원인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23. 에세이든 소설이든 문장을 쓸 때 친절심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되도록이면 상대가 읽기 쉬우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써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시도해보면 알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알기 쉬운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생각을 깔끔하게 정돈하고, 거기에 맞는 적절한 말을 골라야 한다. 시간도 들고 품도 든다. 얼마간의 재능도 필요하다. 적당한 곳에서 "그만 됐어"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다.

 

결국, 하루키는 '이제 그만 써도 돼겠어.'라는 자만의 무수한 유혹을 견뎌내며 글을 썼던 작가였다. 그리고 이러한 친절심을 바탕으로 독자와 눈높이를 맞추는 데 성공했고, 그렇게 하루키의 문장은 나이를 먹지 않게 되었다. 마치 고인 웅덩이에 계속 물을 흘려보내어 깨끗한 물이 흐르도록 하듯이 그의 문장을 신선하게 유지한 것이다. 

 

214. 톨스토이는 친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친절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모든 비난을 해결한다. 사람들 사이의 오해를 풀어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 뿐 아니라 어려운 일도 수월하게 만든다. 어두웠던 마음에 밝은 빛을 비춰 기쁨을 안겨주기도 한다."

 

친절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고 예의. 친절은 내 이미지를 좋게 알릴 수 있는 수단이며 또한 내 인격과 위상을 올려주는 최고의 선물.

<나는 인생의 고비마다 한 뼘씩 자란다> 

 

112. 사람은 친절에 높은 가치를 둔다. 심지어 인간이 협동행위에 참여할 때는 뇌에서 보상과정에 연관된 부분이 관여한다. 친절은 친절을 베푸는 사람에게 그 자체로 보상이 되는 셈이다. 

<새로운 무의식>

 

그런데 과연 이처럼 젊고, 새로운 감각은 친절심 하나만 가지고 가능했던 것일까?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에서는 하루키의 젊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단서가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본질로의 접근이었다. 그가 향하고자 했던 본질의 방향은 대중의 마음과 욕망을 함께 읽는 것이었다. 

 

3. 드라마 <구가의 서>에서도 본질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을 담은 에피소드가 방영되었다. 드라마의 내용에 따르면 빗자루의 본질은 그것을 움직이는 사람의 마음을 잡는 것을 의미했고, 콩의 본질은 만 개가 넘는 콩이 하나의 자루에 담기면 하나의 콩이 되듯이 도관에 속한 식구들 모두 하나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시험한 공달선생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또 하나의 본질이었다. 

 

그러한 본질과 비슷하게 하루키는 언어의 본질에 관하여 이렇게 이야기한다. 언어의 본질은 이미 정해진 뜻이 아니라 변화하게 될 그것이라고 말한다. 즉, 대중의 욕망이 원하는 뜻이 바로 본질이 되리라는 것이다. 

 

206. 언어는 우리가 보내고 있는 일상생활 속에서 날마다 쉴 새 없이 변화하고 있다. 이전까지 감각으로는 '뭔가 이상한 일본어'라고 생각했던 것이 눈에 익숙해지고 귀에 익숙해지면, '이쪽이 더 기분에 맞을지도' 하고 우리의 어휘로 온전히 수용되어, 어느샌가 일본어(언어)로서 포지션을 얻게 된다.

 

207. 흔히 '아름다운 일본어(언어)'니 '바른 일본어(언어)'라고 하지만, 아름다운 것, 바른 것은 사람 각각의 마음속에 있는 것으로, 말은 그 감각을 반영시키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물론 말은 소중히 해야 하지만, 말의 진짜 가치는 말 그 자체보다 말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관계성 속에 있는 게 아닐까?

 

즉, 중요한 것은 언어라는 껍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목소리를 헤아리는 것이고, 하루키는 지금껏 그 목소리를 누구보다도 먼저 채집해왔다는 고백으로 들린다. 이러한 본질로 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와중에 그와는 상반된 길을 가고 있음을 풍자하는 외국인이 본 토익이라는 문제지가 눈에 들어왔다. 

 

문제는 '서울 지하철 요금이 내달 30일부터 100원 ___될 예정이다' 였고 문제의 답을 고르기 위한 보기는 일상, 인상, 관상, 상상’ 이었다. 과연 이 문제는 무엇을 얻기 위한 질문일까? 본질에 접근해서 생각해보면 직장을 얻기 위한 질문일 것이다. 더 나아가 살기 위한 질문일 것이다. 그런데 직장 얻기 위한 질문. 살기 위해 풀어야 할 질문치고는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것을 대중들이 정말로 본질로 여긴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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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 - 이탈리아와 사랑에 빠진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
리처드 폴 로 지음, 유향란 옮김 / 오브제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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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처럼 중세시대 이탈리아의 밝고 느리고 뜨거운. 그리고 장엄한 건축물을 시선에 담음에 자연스레 기지개를 켜듯 피어나는 감각적 쾌감을 음미하며 쓴 일기형식의 에세이가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2.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는 학자 간에 암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학설이 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영국 지방을 벗어나지 않고, 기록물에 근거하여 '이탈리아 희곡'(이탈리아의 도시가 배경이 되는 희곡들)을 썼다."인데, 이 책은 그 학설을 반박하고 "셰익스피어는 분명히 이탈리아를 여행했을 것이다."라고 주장하기 위해 쓴 학술 서적에 가까웠다. 다소 건조하고, 불친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워낙 전문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리처드 폴 로는 알려지지 않은 유적지를 발굴하여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밝혀내는 고고학자처럼 아주 집요하게 직접 희곡의 배경이 되었던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방문하여, 과거의 기록물. 그리고 토착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탐사함으로써 희곡에서 묘사하는 배경과 실제 배경이 일치함을 밝혀낸다. 

 

3. 열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밝혀낸 근거를 토대로 기존의 판본에서 잘못 해석된 부분에 대해서도 새로운 해석을 내놓기도 하고, 일반인들이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으며 신경을 쓰지 않고 넘어갔던, 지명과 건축물이나 배경과 관계된 고유명사들(예를 들어 성 베드로 교회, 빌라프란자, 볼카노 섬)에 숨어있는 상징적인 뜻을 밝혀주어 희곡을 더욱 풍성하게 해석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 상징성을 보면서 예전에 읽었던 찰스 부코스키의 소설 속. 1967년식 폭스바겐이 생각났다. 작가는 이 차종을 통해서 비트 세대의 특징을 형상화했던 것인데, <자동차와 민주주의>라는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주 큰 부분을 간과한 채, 부코스키의 작품을 읽었을 것이다. 이런 사례처럼, 셰익스피어가 제공하는 지명과 건축물을 언급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잡아낸다면 그 시대의 인물 간의 갈등을 쉽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4.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에 담긴 탐사물은 추리소설가 윤해환의 저작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모른다고 본문을 읽는 데 딱히 큰 문제는 없지만 안 읽으면 섭섭할 매우 편협하고 사적인 주석들>과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가 있다. 차이점이라면 리처드 폴 로가 원작자를 대신해서 주석을 남겼다는 정도랄까? 

 

5. 어쨌든 간에 이 책을 만날 사람을 위해 이 책을 가장 완벽하게. 즉, 저자가 이 책을 낸 의도에 충실하게 읽기 위해서 도움이 될 말을 덧붙이자면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희곡'과의 접근성이 떨어져 있는 상태가 아니라 최대한 해당 희곡과 이 책을 동시에 읽어야 장인이 요리한 디너 코스를 만끽하듯이 셰익스피어 희곡을 음미하며 즐길 수 있을 것이다.

 

6. 책을 읽는 지금의 시점에서 이 책과 나의 화학 반응이 일어나지 않음에 안타까움만 남겨둘 뿐이다. 그렇지만 이 저작을 위해 쏟은 작가의 시간과 노력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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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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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의 기원이 궁금하다. 유명한 작가라면 통과의례처럼 출간하는 서평집이 목적이었을까? 아니면 우리나라의 토건만능주의를 부르짖은 한 정치인(그의 임기는 이미 끝났지만)을 연상케 하는 스티븐 하퍼 수상에게 문학이 가진 힘을 슬며시 보여주기 위해서였을까? 도대체 어느 것이 먼저였을까? 단순 서한집이라고 보기에는 속에 든 내용이 너무 알차서 하는 말이다.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어버린 얀 마텔의 서신이 안타까워서 그렇게 생각했다.

 

2. 문학의 이로움은 읽는 이로 하여금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을 형성케 하고, 언제 어디서나 스스로 상상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주는 데 있다.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맞는 백신의 접종과 비슷하다고 할까? 문학을 읽지 않는 사람은 타인을 이해하지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라는 얀 마텔의 견해에 나 역시 동의하는 바이다.

 

물론, 요즘은 책이 아닌 다른 매체로도 쉽게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일 방영하는 TV 드라마도 이야기의 한 장르이니. 문학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문학적으로 백치같은 사람이 되지는 않겠지만. 드라마에 너무 심취하면 주위 사람을 아래와 같은 기준에 대입하여 생각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1. 잘 생기고 예쁜 사람은 재벌집 아들이나 딸일지도 모른다. 2.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악당이다. 3. 주인공인 나는 모든 여건이 힘들지만, 꿋꿋하게 버텨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4. 엄마의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끔씩 출생의 비밀을 의심한다. 5. 스킨십하며 지나가는 연인들을 바라보면서 그들 관계에 불륜이라는 가정을 개입시킨다. 

 

3. 페이지를 넘겨보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작가와 작품에 관해 간략하게 평가하는 내용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이 부분들을 메모한다면 아마 나중에 써먹을 수 있을 곳이 생길 것 같다. 얀 마텔이 말하기를……. 이라는 식으로. 한 작가에 대해서 제법 훌륭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을 듯하다. 

 

무려 101편의 서신을 전달했으니. 그것을 여기에 모두 다 옮기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이 서신 가운데 가장 많이 기억에 남고, 한 번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고른 부분이 있다. 미국 보수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인물이자 합리적 개인주의, 극단적 자유주의의 방종을 비판하는 데 사용되는 아인 랜드의 사상에 관한 부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유명하지 않은 아인 랜드의 마천루(파운틴헤드)라는 작품은 서브프라임 사태가 벌어졌을 당시 '연쇄하는 대폭락'이라는 경제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미국의 정신적 사상. '당신들을 빚더미에 앉혀서라도, 내 재산만 불리면 된다'는 식의 지독한 모럴 해저드를 일으킨 주요 사상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아인 랜드의 개인주의적인 모습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영웅주의로 불리기도 한 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아틀라스는 읽지 않았지만, 마천루를 읽은 결론은 그러하다. 아인 랜드의 마천루를 읽으면서 느낀 개인의 자아를 중시하는 사상은 천편일률적인 건축계의 관행을 극복하는 한 개인의 바람직하며 권장할만한 이상향으로 보였으며, 그러한 이상향을 담아낸 아인 랜드의 인물은 월가 사람들처럼 누군가에게 고의적으로 손해를 끼친 적이 결코 없었다. 

 

자신을 막아세우는 자들에 불복하는 것을 증명하듯이 막노동을 할지언정. 그의 독창적인 신념과 이론은 꺾지 않았다. 이러한 내용은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주인공 스티븐 디달러스를 둘러싼 모든 환경적 요인을 초월하려는 그것.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선택과도 매우 유사한 성향이라고 볼 수 있다. 차라리 이 두 작품이 아인 랜드의 사상보다 훨씬 더 극단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렇게 비판의 목소리를 덧씌운다 하더라도 이러한 개인이 품고 있는 가치가 변질되어버린 가장 큰 원인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에 있는 것이지. 어떻게 그 사상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얀 마텔의 우려는 아리스토텔레스 적인 윤리학에 기원한, 즉 마이클 샌델 교수가 주장하는 정의. '나'가 중심이 되어 판단하는 윤리 관점과 개인의 자유주의가 결합한다면 어느 정도 씻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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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굿맨
A. J. 카진스키 지음, 허지은 옮김 / 모노클(Monocle)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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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J. 카진스키라는 작가는 안데르스 뢰노우클라르룬이라는 덴마크 영화감독과 야콥 베인리히라는 시나리오 작가가 합쳐 만든 팀 이름이다. 그 외 다른 설명은 출판사의 책 소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2.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가 생각났다. 이 소설은 댄 브라운의 소설처럼 수학과 과학이 상징하는 운명적이며 결정론적인 관점, 그리고 기독교와 유대교가 말하는 종교적이며 신화적 관점, 종말론과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임사체험의 불가사의한 관점들이 한데 어우러진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3. <라스트 굿맨>에서 가장 유심히 살펴야 하는 것은 <탈무드>에 기록된 전설대로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36명의 선한 사람이 존재하고, 만약 그 선한 사람들이 사라지면 인류가 종말에 이르게 되는 것이 사실인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한편, 전설의 사실을 밝히는 것에 앞서. 그러한 종말론을 사실로 가정하고, 36인의 굿맨을 암살하는 자로부터 구출하고자 동분서주하는 주인공들의 행위는 촌극을 다투는 긴박감을 부여하여 심리적 쾌감을 가져다주는 데 성공한다. 

 

4. <라스트 굿맨>의 배경. 그리고 그것과 매우 닮아 있는 이 세상은 굿맨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쉽게 탐지할 수 있었다. 최후의 굿맨의 성격은 보통 사람의 눈에는 우유부단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2명의 굿맨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도덕적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그러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동료들은 그들을 배제시킨다. 

 

우유부단을 불러일으키는 도덕적 양심은 인본주의적인 마음과 같다. 이 우유부단함은 이슬람 문화권과 기독교 문화권의 갈등에서 빚어진다. 모든 인간은 인종과 종교와 사상의 차별 없이 인간 그 자체로 대우받아야 하는데, 서로 다른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 대부분은 그들을 처음부터 적으로 간주하고, 차별과 착취와 범죄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5. 그리하여 굿맨의 고독한 사투가 <라스트 굿맨>에서 펼쳐진다. 

 

결말을 읽으면서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허무한 기분이 순간 찾아왔지만. 조금 더 숙고해보면 앞에서 이야기했던 인간의 삶과 행복을 우선시하는 관점이 <탈무드>의 굿맨의 전체적인 맥락에 닿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임사체험이라는 설정 또한 인간이 지닌 한계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암시한다.

 

<탈무드>의 36명의 굿맨의 죽음은 과연 인류를 종말로 이끌 것인가? 신으로부터 '굿맨'이라고 정의내려진 그들은 죽음에 이르게 될 운명을 거부할 수는 없을까? 이 모든 의문을 풀어내는 라스트 굿맨의 생존기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신의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임을 독자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준다.

 

굿맨으로 지칭된 그들의 운명이 억압적이고 고통스러웠던 것에 반해, 굿맨의 표식이 제거된 이후. 희망이 보이는 것은 단지 나의 편견 때문일까? 굿맨으로 얽힌 그들이 죽음에 항거하거나 죽음을 고통스러워 하거나 나쁜 짓을 하던 말건 간에 신은 그들에게 부여한 임무를 다른 누군가에게 부여할 것이다.   

 

6. 고로 결론은 착하게 살 필요가 없다? 단정하니까 좀 이상하다. 도덕적일 필요성은 있지만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지는 것은 거부한다? 그러므로 삶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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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탐정 설록수
윤해환 지음 / 씨엘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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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NG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한다. 그런 환상을 깨트리는 TV나 라디오 도중 발생하는 몇 초간의 방송사고는 쉽게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이 되었다. 대중의 목소리가 지배하는 인터넷 세상에서도 우리는 사진 하나, 글 하나를 올리더라도 가장 자신 있고 멋져 보이는 그림과 글을 올려야 한다. 무분별한 신상 털림을 방지하기 위해서 조심스럽게 행동했던 두려움들은 암묵적인 룰을 깬 자들에게 분노를 화살을 날렸다. 나는 그렇게 못 하는 데, 어떻게 너는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냐며...  

 

77. 트위터 참 신기했습니다. 프로필에 딱히 뭐라고 써놓지 않아도 금세 친구가 생겼습니다. 실생활의 저는 재수생에 별 볼 일 없는 놈인데도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금세 만 팔로워를 달성했고, 트위터에서 영향력 있는 일반인 5위 안에 들었습니다. 의기양양해졌습니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재수생이라도 이 세상을 사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2. 현실은 여전히 시궁창스러운 빈틈투성이인데 반해, 트위터의 타임라인이라는 가상 공간은 팔로워를 많이 가진 자가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완벽한 공간이 되었다. MMORPG 게임의 공간 또한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높은 레벨을 올린 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현실의 불완전함과 가상의 완벽함의 간극 사이에 생긴 괴리감은 엄청나게 커졌다. 그래서 이제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 죽음을 맞이할 때가 되었다. 현실과 가상 현실 중에 누가 먼저 목숨을 내놓을 것인가? <트위터 탐정 설록수>의 사람들은 현실에게 이제 그만 눈을 감으라고 소리친다. 외로움에 부르르 몸을 떠는 가운데 쉽게 안락함을 느끼고 싶은 인간은 불완전한 현실을 한쪽으로 밀어버리고, 완전함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상 공간에서 현실을 재창조한다. 그리고 자신도 재창조한다. 그리고 팔로워라는 추종자를 모집한다. 꾸준히 레벨을 올린다.

 

3. 현실의 토실여왕은 시티헌터와 결혼해서 이제는 한 가정에 충실한 유부녀였지만, 가상의 토실여왕은 팜므파탈이었다. 자신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그렇게 되었다. 팔로워 캡틴거북이 그렇게 느낀 이유는 그녀의 가상 세계에서 만들어 놓은 완벽한 이미지 덕분이었다. 캡틴거북이 현실을 죽인 후 들여놓은 새로운 안락한 공간에 그녀의 행복의 충만함과 웃음소리가 가장 크게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318. 눈물이 나는데, 너무나 화가 나는데 타임라인 속의 나는 웃고 있었다. 타임라인 속의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새로운 트윗을 올리고 있었다.

 

도대체 저건 누구지. 저 웃고 있는 캡틴거북은 누구지

 

4. 하지만, 우리는 이 가상과 현실의 역전현상을 인터넷 차단기를 내리듯이. 휴지 한 칸을 툭 하고 끊어내듯이 끊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설록수의 말마따나 허무해져 버렸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가상의 인간관계가 현실로 이어져서 현실의 누군가를 살인에 이르게 하는 장면은 <설록수> 소설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사회에 당면한 실제상황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그 사건이 심각한 의미를 지닌 사건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332. 가장 허무한 건 무엇인지 아는가? 이런 일이 생기더라도 사람들은 아, 그런 일도 있었나요? 하며 남의 일로 생각할 것이라는 게야. 아무렇지 않게 이 이야기를 들으며 핸드폰을 들어 게임을 하겠지. 트위터에 카카오톡에 블로그에 페이스북 담벼락에, 포스트고 댓글이고 답글이고 멘션 따위를 올릴 거고, 그리고 그 안에서 가짜일지도 모를 반응과 관심을 기대하고 사랑을 꽃피우길 기대할 것이야. 지금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주변을 둘러보게.


5. 윤해환 작가는 이러한 실제 사건들을 살펴보며 사이버 공간을 아주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80. 어째서 제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요. 왜? 내가 예전과 달라진 게 뭔데? 달라진 것이라고는 팔로워 숫자뿐이데?

 

6. 이제는 죽음을 권했던 현실에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하여야 한다. 설록수의 말처럼 주변을 둘러와야 한다. 

 

130. "행복은 행운의 결과물 따위가 아니라네. 행복은 말이야.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따르는 별책 부록이야. 그러니 로또 따위는 잊어. 잊고, 눈앞의 사건에 집중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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