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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굿맨
A. J. 카진스키 지음, 허지은 옮김 / 모노클(Monocle)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1. A.J. 카진스키라는 작가는 안데르스 뢰노우클라르룬이라는 덴마크 영화감독과 야콥 베인리히라는 시나리오 작가가 합쳐 만든 팀 이름이다. 그 외 다른 설명은 출판사의 책 소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2.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가 생각났다. 이 소설은 댄 브라운의 소설처럼 수학과 과학이 상징하는 운명적이며 결정론적인 관점, 그리고 기독교와 유대교가 말하는 종교적이며 신화적 관점, 종말론과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임사체험의 불가사의한 관점들이 한데 어우러진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3. <라스트 굿맨>에서 가장 유심히 살펴야 하는 것은 <탈무드>에 기록된 전설대로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36명의 선한 사람이 존재하고, 만약 그 선한 사람들이 사라지면 인류가 종말에 이르게 되는 것이 사실인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한편, 전설의 사실을 밝히는 것에 앞서. 그러한 종말론을 사실로 가정하고, 36인의 굿맨을 암살하는 자로부터 구출하고자 동분서주하는 주인공들의 행위는 촌극을 다투는 긴박감을 부여하여 심리적 쾌감을 가져다주는 데 성공한다.
4. <라스트 굿맨>의 배경. 그리고 그것과 매우 닮아 있는 이 세상은 굿맨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쉽게 탐지할 수 있었다. 최후의 굿맨의 성격은 보통 사람의 눈에는 우유부단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2명의 굿맨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도덕적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그러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동료들은 그들을 배제시킨다.
우유부단을 불러일으키는 도덕적 양심은 인본주의적인 마음과 같다. 이 우유부단함은 이슬람 문화권과 기독교 문화권의 갈등에서 빚어진다. 모든 인간은 인종과 종교와 사상의 차별 없이 인간 그 자체로 대우받아야 하는데, 서로 다른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 대부분은 그들을 처음부터 적으로 간주하고, 차별과 착취와 범죄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5. 그리하여 굿맨의 고독한 사투가 <라스트 굿맨>에서 펼쳐진다.
결말을 읽으면서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허무한 기분이 순간 찾아왔지만. 조금 더 숙고해보면 앞에서 이야기했던 인간의 삶과 행복을 우선시하는 관점이 <탈무드>의 굿맨의 전체적인 맥락에 닿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임사체험이라는 설정 또한 인간이 지닌 한계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암시한다.
<탈무드>의 36명의 굿맨의 죽음은 과연 인류를 종말로 이끌 것인가? 신으로부터 '굿맨'이라고 정의내려진 그들은 죽음에 이르게 될 운명을 거부할 수는 없을까? 이 모든 의문을 풀어내는 라스트 굿맨의 생존기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신의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임을 독자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준다.
굿맨으로 지칭된 그들의 운명이 억압적이고 고통스러웠던 것에 반해, 굿맨의 표식이 제거된 이후. 희망이 보이는 것은 단지 나의 편견 때문일까? 굿맨으로 얽힌 그들이 죽음에 항거하거나 죽음을 고통스러워 하거나 나쁜 짓을 하던 말건 간에 신은 그들에게 부여한 임무를 다른 누군가에게 부여할 것이다.
6. 고로 결론은 착하게 살 필요가 없다? 단정하니까 좀 이상하다. 도덕적일 필요성은 있지만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지는 것은 거부한다? 그러므로 삶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