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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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라카미의 세 번째 라디오라는 부제를 가진 책이다. 김영하 작가처럼 직접 라디오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게 아니라 여성잡지 <앙앙>에 기고한 글을 모은 세 번째 시리즈라는 의미를 가졌다.

 

이 에세이의 주제는 다양하다. 하지만 그 주제는 하루키의 취미와 경험(예를 들어, 음악, 영화, 여행, 책, 고양이, 채소, 그리고 글을 쓰는 것)에 깊숙하게 개입되어 있어서 무라카미 라디오를 읽는다는 것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대중에게 노출되기를 꺼려하는 하루키로서는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를 '에세이'를 통해서 마련한 셈이다. 지난해 한국 출판 트렌드를 분석한 글에서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가장 잘 이용한 작가 이름 가운데 하루키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 에세이 또한 소통의 잡문집. 그 연장으로 읽어낼 수 있을 듯하다. 

 

2. 그는 소통하는 작가다. 그 말은 대중에게는 친절하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작가라는 의미와도 같다. (그에 반해, 동료 문인들과는 상당히 먼 거리를 유지한다고 한다.) 이 책에는 친절에 관한 한 편의 에세이가 등장한다. 이 에세이를 통해 그는 친절함이 그를 유명하게 만든 큰 원인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23. 에세이든 소설이든 문장을 쓸 때 친절심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되도록이면 상대가 읽기 쉬우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써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시도해보면 알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알기 쉬운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생각을 깔끔하게 정돈하고, 거기에 맞는 적절한 말을 골라야 한다. 시간도 들고 품도 든다. 얼마간의 재능도 필요하다. 적당한 곳에서 "그만 됐어"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다.

 

결국, 하루키는 '이제 그만 써도 돼겠어.'라는 자만의 무수한 유혹을 견뎌내며 글을 썼던 작가였다. 그리고 이러한 친절심을 바탕으로 독자와 눈높이를 맞추는 데 성공했고, 그렇게 하루키의 문장은 나이를 먹지 않게 되었다. 마치 고인 웅덩이에 계속 물을 흘려보내어 깨끗한 물이 흐르도록 하듯이 그의 문장을 신선하게 유지한 것이다. 

 

214. 톨스토이는 친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친절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모든 비난을 해결한다. 사람들 사이의 오해를 풀어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 뿐 아니라 어려운 일도 수월하게 만든다. 어두웠던 마음에 밝은 빛을 비춰 기쁨을 안겨주기도 한다."

 

친절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고 예의. 친절은 내 이미지를 좋게 알릴 수 있는 수단이며 또한 내 인격과 위상을 올려주는 최고의 선물.

<나는 인생의 고비마다 한 뼘씩 자란다> 

 

112. 사람은 친절에 높은 가치를 둔다. 심지어 인간이 협동행위에 참여할 때는 뇌에서 보상과정에 연관된 부분이 관여한다. 친절은 친절을 베푸는 사람에게 그 자체로 보상이 되는 셈이다. 

<새로운 무의식>

 

그런데 과연 이처럼 젊고, 새로운 감각은 친절심 하나만 가지고 가능했던 것일까?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에서는 하루키의 젊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단서가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본질로의 접근이었다. 그가 향하고자 했던 본질의 방향은 대중의 마음과 욕망을 함께 읽는 것이었다. 

 

3. 드라마 <구가의 서>에서도 본질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을 담은 에피소드가 방영되었다. 드라마의 내용에 따르면 빗자루의 본질은 그것을 움직이는 사람의 마음을 잡는 것을 의미했고, 콩의 본질은 만 개가 넘는 콩이 하나의 자루에 담기면 하나의 콩이 되듯이 도관에 속한 식구들 모두 하나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시험한 공달선생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또 하나의 본질이었다. 

 

그러한 본질과 비슷하게 하루키는 언어의 본질에 관하여 이렇게 이야기한다. 언어의 본질은 이미 정해진 뜻이 아니라 변화하게 될 그것이라고 말한다. 즉, 대중의 욕망이 원하는 뜻이 바로 본질이 되리라는 것이다. 

 

206. 언어는 우리가 보내고 있는 일상생활 속에서 날마다 쉴 새 없이 변화하고 있다. 이전까지 감각으로는 '뭔가 이상한 일본어'라고 생각했던 것이 눈에 익숙해지고 귀에 익숙해지면, '이쪽이 더 기분에 맞을지도' 하고 우리의 어휘로 온전히 수용되어, 어느샌가 일본어(언어)로서 포지션을 얻게 된다.

 

207. 흔히 '아름다운 일본어(언어)'니 '바른 일본어(언어)'라고 하지만, 아름다운 것, 바른 것은 사람 각각의 마음속에 있는 것으로, 말은 그 감각을 반영시키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물론 말은 소중히 해야 하지만, 말의 진짜 가치는 말 그 자체보다 말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관계성 속에 있는 게 아닐까?

 

즉, 중요한 것은 언어라는 껍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목소리를 헤아리는 것이고, 하루키는 지금껏 그 목소리를 누구보다도 먼저 채집해왔다는 고백으로 들린다. 이러한 본질로 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와중에 그와는 상반된 길을 가고 있음을 풍자하는 외국인이 본 토익이라는 문제지가 눈에 들어왔다. 

 

문제는 '서울 지하철 요금이 내달 30일부터 100원 ___될 예정이다' 였고 문제의 답을 고르기 위한 보기는 일상, 인상, 관상, 상상’ 이었다. 과연 이 문제는 무엇을 얻기 위한 질문일까? 본질에 접근해서 생각해보면 직장을 얻기 위한 질문일 것이다. 더 나아가 살기 위한 질문일 것이다. 그런데 직장 얻기 위한 질문. 살기 위해 풀어야 할 질문치고는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것을 대중들이 정말로 본질로 여긴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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