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 이 책의 기원이 궁금하다. 유명한 작가라면 통과의례처럼 출간하는 서평집이 목적이었을까? 아니면 우리나라의 토건만능주의를 부르짖은 한 정치인(그의 임기는 이미 끝났지만)을 연상케 하는 스티븐 하퍼 수상에게 문학이 가진 힘을 슬며시 보여주기 위해서였을까? 도대체 어느 것이 먼저였을까? 단순 서한집이라고 보기에는 속에 든 내용이 너무 알차서 하는 말이다.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어버린 얀 마텔의 서신이 안타까워서 그렇게 생각했다.

 

2. 문학의 이로움은 읽는 이로 하여금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을 형성케 하고, 언제 어디서나 스스로 상상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주는 데 있다.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맞는 백신의 접종과 비슷하다고 할까? 문학을 읽지 않는 사람은 타인을 이해하지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라는 얀 마텔의 견해에 나 역시 동의하는 바이다.

 

물론, 요즘은 책이 아닌 다른 매체로도 쉽게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일 방영하는 TV 드라마도 이야기의 한 장르이니. 문학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문학적으로 백치같은 사람이 되지는 않겠지만. 드라마에 너무 심취하면 주위 사람을 아래와 같은 기준에 대입하여 생각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1. 잘 생기고 예쁜 사람은 재벌집 아들이나 딸일지도 모른다. 2.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악당이다. 3. 주인공인 나는 모든 여건이 힘들지만, 꿋꿋하게 버텨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4. 엄마의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끔씩 출생의 비밀을 의심한다. 5. 스킨십하며 지나가는 연인들을 바라보면서 그들 관계에 불륜이라는 가정을 개입시킨다. 

 

3. 페이지를 넘겨보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작가와 작품에 관해 간략하게 평가하는 내용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이 부분들을 메모한다면 아마 나중에 써먹을 수 있을 곳이 생길 것 같다. 얀 마텔이 말하기를……. 이라는 식으로. 한 작가에 대해서 제법 훌륭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을 듯하다. 

 

무려 101편의 서신을 전달했으니. 그것을 여기에 모두 다 옮기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이 서신 가운데 가장 많이 기억에 남고, 한 번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고른 부분이 있다. 미국 보수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인물이자 합리적 개인주의, 극단적 자유주의의 방종을 비판하는 데 사용되는 아인 랜드의 사상에 관한 부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유명하지 않은 아인 랜드의 마천루(파운틴헤드)라는 작품은 서브프라임 사태가 벌어졌을 당시 '연쇄하는 대폭락'이라는 경제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미국의 정신적 사상. '당신들을 빚더미에 앉혀서라도, 내 재산만 불리면 된다'는 식의 지독한 모럴 해저드를 일으킨 주요 사상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아인 랜드의 개인주의적인 모습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영웅주의로 불리기도 한 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아틀라스는 읽지 않았지만, 마천루를 읽은 결론은 그러하다. 아인 랜드의 마천루를 읽으면서 느낀 개인의 자아를 중시하는 사상은 천편일률적인 건축계의 관행을 극복하는 한 개인의 바람직하며 권장할만한 이상향으로 보였으며, 그러한 이상향을 담아낸 아인 랜드의 인물은 월가 사람들처럼 누군가에게 고의적으로 손해를 끼친 적이 결코 없었다. 

 

자신을 막아세우는 자들에 불복하는 것을 증명하듯이 막노동을 할지언정. 그의 독창적인 신념과 이론은 꺾지 않았다. 이러한 내용은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주인공 스티븐 디달러스를 둘러싼 모든 환경적 요인을 초월하려는 그것.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선택과도 매우 유사한 성향이라고 볼 수 있다. 차라리 이 두 작품이 아인 랜드의 사상보다 훨씬 더 극단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렇게 비판의 목소리를 덧씌운다 하더라도 이러한 개인이 품고 있는 가치가 변질되어버린 가장 큰 원인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에 있는 것이지. 어떻게 그 사상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얀 마텔의 우려는 아리스토텔레스 적인 윤리학에 기원한, 즉 마이클 샌델 교수가 주장하는 정의. '나'가 중심이 되어 판단하는 윤리 관점과 개인의 자유주의가 결합한다면 어느 정도 씻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