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진 들녘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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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난이도 : 


1. 과오, 돌이킬 수 없는...

 

비가 내리고 번개가 치는 그 날. 그 순간. 윤영재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혈기왕성한 사나이었기 때문에 생긴. 어쩌면 자연스러운 충동이었다. 하지만 영재가 순간의 욕구를 참지 못해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유마님이 추천해주신 소설.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의 아미르도 영재와 비슷한 잘못를 저지른다. 영재의 경우와는 조금은 다른 이유 (비겁함과 배신 그리고 침묵) 때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자신이 목격한 장면을 숨김으로써 하산은 그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훗날 탈레반이 된 그에게 목숨을 잃고, 하산이 남긴 아들의 삶까지 탈레반에 의해 핍박받는다. 영재의 외사촌누이 주실도 이와 같은 구조를 형성하며 고초를 겪는다. 

 

아미르는 오랜 시간이 흘러 자신의 저질렀던 잘못을 반성하고, 동시에 늦게나마 만회하고자 혈혈단신 하산의 아들 소랍이 있는 나라로 떠난다. 아미르는 탈레반에게 학대당하던 하산의 아들을 우여곡절 끝에 미국으로 구출해냄으로써 희망의 미소를 되찾는다. 

 

2. 합리화

 

<노을진 들녘>의 영재의 경우에도 잘못을 저지른 후, 아미르처럼 그곳에서 도망친다. 그리고 합리화1를 선택한다. 요즘 말로 하면 정신승리라고나 할까?

 

합리화에 사용된 개념은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의 무책임함과 분위기가 비슷하고,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다짐2에 맞닿아 있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욕망에 솔직한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성격은 그런 무모함과 뻔뻔함을 받쳐줄 만한 타고난 능력이 없었고, 가장 중요한 요소인 그것을 희생함으로써 열정을 바칠만한 숭고한 목표가 없었다. 그것은 단지 현실을 회피하기 위한 구차한 변명에 불과했다. 더불어 그를 둘러싸고 흘러가는 공기는 점점 그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결국,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얽매여 내면에서 고통받던 영재는 아미르처럼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다.  

 

3. 잘못보다 더 큰 잘못

 

이 작품들의 주인공이 저지른 가장 큰 실책은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하고도 그것을 인정하고, 빨리 수습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해서,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재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나 역시 내가 훗날 저지를 심각한 사고에 직면하여 영재와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장담할 수 없다. 영재의 생각처럼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해결될 문제일 것이기 때문에 도둑이 제 발 저리듯이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고 생각했을 것 같다.   

 

이것이 본심이긴 하다. 

 

그것은 어쩌면 막대한 피해를 초래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을진 들녘> 같은 소설을 읽고, 그들의 삶을 짚어보면서 스스로 이러한 비겁함을 반성할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4. 아직 못다한 이야기

 

이 이야기는 <노을진 들녘>의 극히 좁은 범위만을 다룬 것이다. 이 소설은 여러 부분으로 읽을 수 있다.

 

4-1. 신분제 사회의 잔재로 인한 성삼이와 영재의 신분 차. 그러한 갈등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부르주아에 대한 거부감(자격지심)과 부르주아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동시에 지닌 인물(<연을 쫓는 아이>에서 탈레반으로 성장한 아세프). 성삼이가 악의 중심이다.

 

4-2. 또한, 송노인 (영재의 외할아버지)의 안타까움에도 공감할 수 있다. 대학까지 보낸 하나뿐인 아들을 이데올로기 싸움과 전쟁으로 잃었고, 그래서 손녀는 세상의 더러움과 마주치지 않게 하려고 손녀를 시골에서 키웠던 노력과 그것이 남성의 욕망에 의해서 물거품이 되는 이야기.  

 

4-3. 성삼이가 주실을 사랑(?)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 또한, 영재의 여인들(아름답고 자유분방한 미술학도 일혜, 기품있고 우아한 의학도 수명)과의 연애와 사랑과 육체적인 쾌락 간의 갈등. 그 순간의 심리적인 묘사가 두드러지는 걸출한 연애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4-4. 영재의 절친한 친구. 동섭과 상호. 그들의 인생도 살필 수 있다. 

 

4-5. 권력에 붙어서 영재를 길러왔던 아버지와 새어머니. 그리고 이복동생의 인생도 엿볼 수 있다. 

 

4-6. 4.19

 

다시 읽을 날을 위해서 이쯤에서 접어둔다. 


  1. 합리화의 다양한 방식들
    202. 
    "의무고 우정이고 합법이고 개똥이고 없단 말이야!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나의 죄악은, 나의 욕정은, 젊었기 때문에 아름답기조차 한 거야. 나는 젊어. 내 힘은 넘쳐흐르는 강물이야. 아무도, 그 누구도 넘쳐흘러가는 물을 막을 수 없어. 그것은 자연의 섭리야. 어리석게도 인간이 그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흥! 위대한 힘이군그래. 그야말로 초인이다."
    "그럼. 누구나 자기 혼자의 세계에선 초인이다. 특히 젊은 놈들에게 있어선 그렇다! 나는 그 힘을 주체할 수가 없어. 폭탄을 안고 적진에 뛰어들든지, 아니면 온갖 것을 때려 부수고 백주 대로에서 내가 나를 고발하고 내가 인간을 고발하고... 아아, 그러나 나는 그 여자를 가지고 말 테다!."
    246.
    "아내가 살아 있었다 하더래도 아마 저는 홍 선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죄가 되겠습니까? 죄가 되겠죠. 그러나 애정이란 죄악을 초월한 것이 아닐까요? 죄의식 때문에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면 그것은 얼마나 하찮은 인생이 되겠습니까. 비겁한 짓이죠. 애정이란 순전히 정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니 누가 그것을 심판하겠습니까?"
  2. “내가 믿지 않게 된 것은, 그것이 나의 가정이든 나의 조국이든 나의 교회든 결코 섬기지 않겠어. 그리고 나는 어떤 삶이나 예술 양식을 빌려 내 자신을 가능한 한 자유로이, 가능한 한 완전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할 것이며, 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내가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 있는 무기인 침묵, 유배 및 간계를 이용하도록 하겠어.” 젊은 예술가의 초상 -3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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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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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이도 : 


1. 잊혀진 이야기

 

이 소설은 현재 사람들에게 잊혀진 도시 평대를 터전으로 삼아 삶을 꾸려 나갔던 노파, 금복과 애꾸눈, 춘희. 이렇게 삼대에 걸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2. 큰 것에 대한 동경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주인공, 주변인물 모두 대부분 정상적이지 않다. 그들은 커다란 것에 굶주려 있다. 많을수록 좋고, 힘이 셀수록 좋고, 클수록 좋았다. 제목처럼 고래를 동경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업가 기질과 바람기가 다분한 금복이 오랜 방랑 끝에. 겉과 속이 모두 남자로 변해버린 것으로 봤을 때, 이들은 그 시대 남성이 가지고 있었던 가부장적 권력을 동경했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3. 큰 것을 동경함에 대한 경고

 

남성의 가부장적인 권력. 그것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존재를 인정받았던 사람들. 노파의 남자.( 반편이), 금복의 남자. (생선장수, 걱정이, 칼잡이. 엿장수 아들), 춘희의 남자. (트럭 운전사), 감옥 안의 남자. (교도소장, 무당벌레, 그 외 간수들과 미장이 그 외 남성 죄수들). 장군.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자가 된 금복. 소설 <고래>에서는 이것을 하나씩 해체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성보다는 본능에 충실했다는 점. 그 본능이 거대한 욕망으로 향하게 했다는 것이고, 따라서 그것의 완성인 <고래> 소설 내부의 고래 모양의 극장은 '마초를 지향함'이라는 상징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4. 

 

<고래>의 고래는 마초를 지향했을지언정. 소설 <고래>는 그것을 지향하지 않는다. 그것은 文의 존재 때문이다. 심사평이나 인터뷰나 다른 사람의 리뷰를 훑어봐도 文의 이야기는 중요하게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文을 <고래>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바라본다. 文이 있었기 때문에 춘희가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춘희는 금복의 강함(본능)과 文의 여림(이성)이 공존하는 인물이다. 

 

<고래>의 모든 남성과 차별화되는 이 남자의 이름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글이 아닌 한지. 文으로 등장한다. 결국, 한자의 뜻이 그 사람을 성격을 규정하는 셈인데. 文은 쉽게 말해서, 3에서 이야기한 가부장적 권력과 완전히 반대의 개념이고, 본능보다는 이성에 더 치우친 개념을 상징하는 존재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지독하게 굶주린 상태에서 먹이를 찾듯이 권력으로 배를 채우면서 남성화되는 금복을 대신하여 춘희에게 여성성을 불어넣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잊혀진 도시 평단, 잊혀진 노파의 저주, 잊혀진 사람. 노파와 애꾸눈, 금복과 춘희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文의 철학이 새겨진 붉은 벽돌 때문이었다. 

 

5. 간단 요약

 

이 소설은 한국 사회를 이끌어왔던 가부장 제도의 비판이자. 페미니즘의 남성 권력 지향이라는 쏠림에 대한 경고다. 이러한 권력을 반대하며, 작가는 장인정신을 추구하는 文의 철학이 앞으로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이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소설 속의 시멘트. 이것은 완벽을 추구하는. 하지만 결코 완벽할 수 없는. 의 판단 착오이지만, 시멘트라는 것이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왔는지 보여주는 상징인 것 같다. 따라서, 고래 = 시멘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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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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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승...?

 

저승은 어떤 모습일까? 내세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던 나에게 이 질문은 낯설기 그지없다. 물론, 유령이나 귀신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나 지옥이나 천국 같은 추상적인 공간을 상상력을 통해서 지어낸 이야기를 즐기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상과 창조에 대한 경탄이지. 그것이 실제적인 믿음으로까지 나를 이끌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위화가 창조한 빈의관이라고 불리는 저세상은. 나로서는 실제의 저세상이라는 생각보다 현세의 팍팍하고 고된. 그리고 부조리에서 태어난 삶의 여진(餘震)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2. 위화가 창조한 이승과 저승의 경계. 그곳의 사람들

 

보통 저세상이라고 하면 현세의 모든 속박과 굴레와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공간. 즉, 안식처라는 의미로 흔히 생각하는데, 위화의 그곳에서는 앞서 여진(餘震)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현세의 사회제도가 고스란히 유지되는. 단절이 아닌 연속된 공간이었다. 

 

그곳에는 소파와 플라스틱 재질로 분류된 의자가 있고, 수입가마와 국산가마가 있어서 화장터를 선택할 수 있으며, 수의와 유골함의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점은 유골이 안장될 묘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죽은자들의 계급이 나뉜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서, 현세에서 돈을 벌어 장례 절차에 필요한 제반 용품에 비싼 가격을 지불할 여력이 되는 자들은 안락한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차례를 기다리면서 저세상으로 넘어갈 수 있고, 그렇지 않은 빈곤한 사람들은 입장료를 지불하지 못한 채, 영혼이 이승과 저승 사이에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3. 위화의 작품들 1

 

사실 위화의 작품은 이런 식으로 삶과 죽음을 다루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중국 사회의 부조리와 가난이라는 고통. 그리고 급작스럽게 변하는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하고, 그 위기를 헤쳐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해학을 담아 보여줌으로써 인간이라는 존재의 위대함. 그와 더불어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제공했지. 이렇게 처음부터 우리에게 실패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죽음을 던져주지는 않았다.  

 

그런데 <제7일>에서는 모든 상황이 종료된 상태에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죽음을 보면서 극복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포장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진 현실감에 두려움이 엄습했고, 한편으로는 안타깝게 육체의 종말을 맞았을지언정. 끝까지 잃어버리지 않은 찬란한 영혼에서 우러나는 인간애. 그것이 육신의 죽음을 초월하는 순간에 더욱 숭고해지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4. 인간애

 

솔직히 말해서, <제7일>에서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한 인물들은 물질적으로 부유한 인간처럼 계산적이지 않았다. 따뜻한 가슴을 지닌. 친절하고, 열정적으로 사랑할 줄 알았던 진정한 휴머니스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가난에서 비롯한 절박함과 유혹. 그리고 좌절감 때문에 삶의 끈을 놓아야만 했다. 

 

위화가 그린 저승세계는 현세의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계급이 나누어진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계급은 그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자들을 위해 설계된 프레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소파에 앉은 자들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보다 장례식과 비용에 관한 의견만 주고받으며 그 프레임에 순응한다. 그것을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절차에 구애받지 않는 영혼들에게 작가는 위화 특유의 스타일을 불어넣는다. 물질적 가치를 뛰어넘는 초월적인 인간애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가난해서 저승으로 가는 번호표를 받지 못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광활한 공간에 육신은 모두 사라지고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모습은 말라빠진 해골로 변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외면적인 초라함 때문에 슬퍼하고 방황할 영혼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초연했다. 

 

그들은 그러한 조건에서도 더불어 나아가는 법을 터득한 것 같다. 서로 힘을 모아 새로운 유토피아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과 같이 고난의 삶을 살았던 슈메이를 진심으로 위하고, 저승(빈의관)으로 배웅하는 장면과 찬란하게 빛나는 슈메이의 영혼은 남은자들의 축복이 길어낸 위대함의 표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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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먹탱이의 문자로 보는 세상 - 유쾌한 유식, 해학의 즐거움
권상호 지음 / 푸른영토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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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예 예찬론

 

유쾌한 먹탱이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을 쓴 분은 세계를 이루는 거의 모든 관념을 문자. 특히, 한자의 구성 원리로 해석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서예를 통해서 붓끝으로 표현하며, 그것을 볼거리로 승화시킨 프로페셔널이다. 쉽게 말해서. 그는 자신의 홈그라운드. 삶의 터전. 직업으로 서예를 택했다. 따라서 작가의 서예 예찬은 그를 높은 경지에 오르게 한 원동력이라고도 볼 수 있다.

 

16. 서예는 글자를 매체로 표현하는 시공간 예술이다. 음악은 시간예술, 미술은 공간예술이지만, 서예는 시간과 공간을 아우른 종합예술이다. 


17. 붓질은 생활의 리듬이요, 먹빛은 사고의 향기다. 묵향은 맡을수록 영혼이 깨어난다. 붓을 잡은 손끝을 통하여 온몸에 전해지는 은근한 흥분과 감동은 천금의 놀음차로도 오히려 부족하다.


27. 피는 신의 영역이다. 그래서 인간이 영원히 만들 수 없는 것이란다. 피가 육체에 영양을 공급해준다면 먹은 정신에 영양을 공급해준다. 이렇게 보면 '먹은 정신의 피'라고 할 수 있다. 

 

2. 진정성

 

265. 아무리 훌륭한 성공 노하우를 전한다 해도 여기엔 진정성이 문제가 된다. 진정성이 없이는 가르쳐도 선생이 될 수 없으며, 베풀어도 벗이 될 수 없다. 선거에서도 진정성이 없는 후보는 좋은 공약 대신에 빌 공(空)자 공약만 남발한다. 진정이랑 가슴 밑바닥에서 나오는 대상에 대한 애정을 가리킨다.

 

이 책에는 좋은 말과 문장이 많다. 하지만 진정성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믿을 수 없고, 믿고 들으려고 해도 올바로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성이 중요하다는 말은 매번 들어도 부족하다. 

 

3. 한자공부 잔혹사

 

예전에 한자공부를 할 때는. 참 무식하게 공부했었다. 두꺼운 EBS 급수 책은 아무리 봐도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니 연습장에 글자를 갈겨써도 도무지 외워지질 않았다. 한자공부를 접은 한참 뒤에야 <세상에서 가장 쉬운 한자 공부법>이라는 책을 만났다.

 

그 책 덕분에 한자라는 글자는 부수들을 먼저 외우고, 그것들의 뜻을 연결해서 이해하면 공부하기가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자로 보는 세상>에서 설명하고 있는 한자들의 뜻풀이도 그러한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느낄 감(感)자는 모두 함(咸)과 마음 심(心)이 합해져서 만들어진 글자인데. 그 두 가지 글자의 뜻을 조합하면 '마음 속의 모든 것'이라는 의미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바로 느낄 감(感)자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 외에도 꽤 많은 글자가 나오는데. 한자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읽어도 좋은 책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4. 라이브 서예

 

라이브 서예는 글자 그대로 서예하는 것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아니. 함께 즐기는 공연이다.

붓글씨는 예로부터 점잖고, 정적인 이미지가 강조되었고. 그러한 정적인 분위기 안에 존재하는 글씨의 강렬한 기운과 그것을 음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라이브 서예는 화선지와 붓이 만나는 순간의 모든 기운을 공연으로 승화시키는 예술이라고 한다.

 

영상매체의 발달 덕분인지. 21세기는 무엇보다 보는 것이 중요해진 시대가 된 것 같다.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출판계가 북 트레일러 같은 것을 이용하는 것처럼.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이 유행이 된 것처럼. 서예도 직접 글씨를 쓰는 행위를 공연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를 저자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66. 관중 속에서 붓을 잡고 온몸으로 쓰는 라이브 서예는 3분만 지나도 땀에 젖는다. 라이브 서예는 붓이란 도구를 통한 육체 단련이기도 하다. 고로 라이브 서예는 마인드 피트니스는 물론 바디 피트니스도 기대할 수 있는 미래의 건강 아이콘이다.  

 

피트니스를 통한 육체 단련을 겸한 라이브 서예. 51. 서예는 일회성이라는 점에서 인생과 닮았다. 라이브 서예는 일회성에 현장성이 더하여져 순간순간 판단과 선택을 잘해야 하는 현대인의 삶과 너무나 닮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309. "라이브 서예란 몰래 써서 포구한 박제된 서예가 아닌 현장성 있는. 살아 있는 서예" 라는 점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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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철학적 질문들
앤서니 그레일링 지음, 윤길순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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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시온이 읽었을 것 같은 책

 

드라마 <굿 닥터>를 보면.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의사 박시온은 거짓말을 못 한다. 그는 이 세계를 둘러싼 온갖 규칙. 예를 들면, 선과 악의 개념 같은 것들을 책에서 보고 무작정 외움으로써 적응해왔지만, 이상하게도 불합리나 부조리에 관한 것들은 이해할 수 없어서 보통 사람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간단한 거짓말조차도 하지 못했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철학적 질문들>이라는 책. 혹은 이와 유사한 종류의 책이 박시온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읽어왔던 책 가운데 한 자리 정도는 차지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그가 이해하지 못했던 사회의 부조리를 공부하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이유 때문이었다.(부조리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프카나 카뮈. 그리고 다자이 모사무의 문학을 읽는 것이 더 낫긴 하겠지만 말이다.) 

 

행복과 선, 도덕과 공감, 우정, 도덕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 훈계할 자격, 윤리와 다윈, 인권과 정치, 빈곤, 아름다움은 주관적인 것일까?, 육체와 정신, 피해에 대한 인식, 사과와 역사, 사회악, 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유명인, 건강과 외모, 마약과 법, 웃음, 칭찬, 신, 고행, 뉘우침, 역사, 사랑, 과학과 합리성 등등……. 

 

왠지 느낌아니까. 목차보고 가실게요.

 

2. 나의 대답을 찾아서

 

409. 올바른 질문은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가 아니라 '나의 관계, 나의 목표, 나의 노력, 나의 재능, 내가 하는 다양한 것과 나의 다양한 관심사, 나의 희망과 나의 욕망으로 내가 나의 삶을 위해 만들어내려 하고 만들어내야 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것이다. 

 

그렇지만 <철학적 질문들>은 사전적 구성으로 일관하는 책은 아니다. 쉽게 말해서, 보편적인 삶의 의미라기보다는 '나 : 앤서니 그레일링'이 생각하는 삶의 의미이고, 목차에서 언급하는 여러 질문을 그레일링의 관점과 경험을 통해 풀어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그런 책이다. 그와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관점으로서 철학적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라고 독려한다. 

 

3. 내가 혐오하는 돼지들

 

정치인 가운데 가장 조심해야 할 인물들이 바로 돼지들이다. 그들은 국민을 섬기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국민과 더불어 정치를 하려 하지 않는다. 국민 위에 서서 권력을 휘두를 생각부터 한다. 즉, 국민을 통치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웅주의의 변질이다. 엘리트주의와 계몽주의의 변질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그들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과. 그리고 그들이 처한 상황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민주주의 선거에까지 조작의 손길을 뻗쳤다. 조작을 통해서 기어코 자신의 이름을 집어넣었다. 자신들만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긴 불상사다. 이처럼 돼지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같은 편을 밀어내는 짓도 마다치 않는다. 돼지우리에 먹이를 풀어놓으면 시간이 갈수록 똥과 음식물과 침이 뒤섞여 더러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 과정에서 정의를 추구하던 인물들. 힘이 필요해서 썩은 동아줄을 잡은 사람들은 조용히 돼지들과의 연을 끊고 떠나갔다. 정의로운 그들은 자신의 실책을 용납하지 못했고, 그 이유로 소리치지 못했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지 못했다. 

 

하지만 소리 없는 결별 때문에 많은 국민들은 정의를 추구했던 인물과 돼지들을 아직도 같은 편으로 믿고 있었다. 나 역시 그러했다. 그러다가 결국, 열려야만 했던 판도라의 상자는 절묘한 타이밍에 열려버렸다. 

 

그들의 오류. 그들에게 생명을 부여해준 결정적인 실책. 그리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돼지들로 인해 현 세상의 모든 부조리한 상황을 만들어 낸 시스템이 정상적이며,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시스템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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