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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예찬 - 번역가의 삶과 매혹이 담긴 강의노트
이디스 그로스먼 지음, 공진호 옮김 / 현암사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난이도 : ★★
1. 예전부터 제목을 이렇게 저자 역자 편집자 순으로 달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질 못했다. 왜일까? 그냥 그래야만 하는 명확한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출간년도와 원제, 그리고 저자의 이름만 표기하는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다. 작가, 번역가, 그리고 편집자. 그리고 더 나아가서 디자이너, 교정, 인쇄, 출판 에이전트와 비평가 그리고 독자까지. 아마 빼먹은 사람들이 있겠지만, 책이라는 것은 저자 혼자서 완성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해야만 이 책을 만들어질 수 있고, 우리들이 읽을 수 있게 된다. 그 사실을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을 보면서 확실하게 깨달았다.
2. 저자인 이디스 그로스먼이 번역예찬을 하게 된 이유는 미국 출판시장에서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는 번역 문학의 위기 때문이었다. 번역서가 범람하는 우리나라의 출판시장과는 달리. 미국은 자기들의 언어에 대한 자부심 때문인지. 자만심 때문인지. 다른 나라의 서적을 번역하는 사례가 줄고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번역은 이와 같은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24. 번역은 문학을 통해 다른 사회, 다른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탐구하는 능력을 키워줍니다. 낯선 것을 익숙한 것으로 바꾸어 그것을 음미할 수 있게 해줍니다. 잠시나마 우리 자신의 삶, 우리 자신의 편견과 착각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살게 해주는 것입니다.
33. 번역은 여러 언어 언어를 서로 교배시켜 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독보적이며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33. 괴테는 한 나라의 문학이 다른 나라의 문학에서 받을 수 있는 영향과 기여를 막는다면, 결국 그 나라의 문학은 스스로 고갈되고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의 질은 낮아지기 마련.
문학 뿐 아니라 언어 자체도 다른 언어와 서로 관계를 맺을 때 풍성해집니다. 한 언어에 주입되는 새로운 표현 수단이 가져오는 결과는 어휘의 확장, 연상 잠재력, 구성상의 실험입니다.
번역을 통해 넓어진 시야는 한 언어를 쓰는 사람이나 그 언어로 쓴 글을 읽는 사람, 그 언어로 글을 쓰는 작가에 그치지 않고 그 언어 자체의 본질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번역의 순기능은 대략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새로움을 공급하기 위한 필수조건인 셈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자라온 곳에서 나온 문화와 다른 이질감에서 배양된 작품을 통해 우리는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양쪽을 아우를 수 있는 균형감각을 기를 수 있고, 또 창의적인 관점에서 색다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41. 자신이 번역 자체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이유로 자기가 원본의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번역본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그의 말이 암시하는 것은 서평에서 번역을 논하는 목적과 번역의 정확성 검사를 동일시한다는 점. 그러나 진짜 중요한 점은 그게 아닙니다.
번역에 대한 평가를 주저하게 되는 이유는 내가 원서를 해독할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말해왔다. 그렇지만 그것은 저자의 말처럼 나도 모르게 번역의 본질과 정확성 검사를 동일시해왔다는 실책에서 비롯된 뼈아픈 잘못이었다.
4.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가?
79. 충실성을 직역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직역은 어설프고 도움이 되지 않는 개념으로, 번역과 원본의 복잡한 관계를 심히 왜곡하고 지나치게 단순화합니다.
83. 번역가의 충실함은 어휘의 짝짓기가 아니라 문맥에서 드러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즉 원저자의 어조와 의도와 담화 수준이 암시하고 반향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좋은 번역이 좋은 이유는 문맥 상의 의미에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단어나 구문에 충실하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번역이 아닙니다. 단어나 구문, 이런 것들은 언어마다 독특하여 좀처럼 곧바로 다른 언어로 옮겨질 수 없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하든 원문을 그대로 복제하려는 시도는 그릇된 것이며, 그래서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직역주의자들이 빠지는 함정입니다. 단어란 개별적으로 분리될 경우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입니다. 단어는 문맥 전체에 꼭 필요한 부분이 될 때 의미를 띱니다. 이 문맥이라는 것은 감정적 어조와 영향, 문학적 전례, 개개의 표현이 나타내는 후광 같은 언어의 의미 뿐 아니라 암시적 의미까지도 포함됩니다.
그로스먼은 지나친 직역투의 번역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인다. 제임스 우드가 분류했던 오리지널리스트와 액티비스트 가운데 액티비스트에 가까운 번역을 지지한다. (훌륭한 번역가라면 물론 양쪽을 겸비해야 하지만. 어쩌면 겸비하는 것이 선행조건인지도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그로스먼이 나보코프의 축어역 이론에는 반대하며, 매끈하면서도 독립적인 번역의 자세를 가질 것을 주문한다.)
위의 단락을 다시 분해해보자. 중요한 부분이 있다.
문맥이라는 것은 감정적 어조와 영향, 문학적 전례, 개개의 표현이 나타내는 후광 같은 언어의 의미 뿐 아니라 암시적 의미까지도 포함됩니다.
그렇다. 번역가는 문맥을 충실히 번역하는 사람이지만. 그 문맥이 지닌 의미는 겉으로 드러나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단어 속에 내재된 것까지 포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문맥 속에 내재된 내용을 작가와 번역가의 관계에서만 교류하는 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제 3자인 독자에게로 잘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좋은 번역이란 독자가 무사히 읽었을 때, 매끄럽게 읽었을 때 완성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책임은 저자와 번역가가 공평하게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노벨문학상으로 선정된 작가의 작품은 작가와 번역가가 함께 누려야 하는 영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