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난이도 : ★★☆

11(첫 문단).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보라. 그러면 세상은 변한다. 사람들이 그 순간을 미처 깨닫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세상은 달라졌기 때문이다.
 
1. 느닷없다고 해야 맞는 표현일 듯 싶다. 이 문단 밑으로 왜 19세기 말 즈음의 최초의 비행과 기구(벌룬)와 관련된 인물이 등장하는지. 그 인물과 예사롭지 않은 첫 문단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특히, 첫 장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행위의 의도는 드러내지 않아 의미가 불명확하다고 느꼈고, 인물이 살았던 시점을 고의로 나열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형님은 앞서 읽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에서도 그랬지만 까칠하다. 그러나 그의 에세이. <깊이의 상실>(이 책은 비상의 죄, 평지에서, 깊이의 상실로 구성되어 있다.)에서 모든 것은 밝혀진다. 

2. 원서의 제목은 <Levels of Life>다. 하지만 재치있는 우리의 번역자 누님께서 앞서 출간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처럼 라임을 주셨다. <틀리지 않는다>의 후속편 <끝나지 않는다>로... 이 번역된 제목 역시 이 책의 핵심을 정말 제대로 파악한 후에 담아낸 글이라는 점에서 이분께서 번역한 책을 앞으로도 관심을 갖고 찾아볼 것 같다.

'삶의 수준들(?)'이라는 원서의 제목을 통해서 비로소 첫 문단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인류가 살아온 '수준'은 과거와 비교했을 때 분명 매우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러한 '수준들'. 즉, '단계'에 관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통해서 엿본 '수준의 변화'는 편리해진 일상 속에서의 변화가 아니라 아내를 떠나보낸 이가 깨달은 '작별 의식의 시대적 변화'다. 자세하게 말하자면 사별에 직면한 사람들은 어떻게. 즉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 슬픔을 극복하는가에 관한 변화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3. 결과적으로 삶은 편해졌겠지만, 슬픔의 극복은 과거보다 어려워졌다. 

4. 인간이 신에게 도전하는 것을 암시하는 제목(비상의 죄)을 통해 반스 형님은 우리가 기계론적 세계관을 받아들인 점에 대한 대가를 지적한다, 자연을 마음대로 사용함으로써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얻는 대신 미신과 종교의 해체가 이루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여기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무신론자가 말하기를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허수아비라고 불평할지라도 과거에는 신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위로받고, 치유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그것이 제거되었다. 고통을 감해주었던 은유는 상실되었고,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벌거벗은 인간의 몸뚱아리 그 자체가 되었다. 인간이 자발적으로 독립을 선택한 후 맞이한 아이러니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반스 형님은 이와 같은 낭떠러지에서 대안적 요소를 발견한다. 그것은 인간의 꿈과 기억이다. 

148. 아내가 어떤 식으로든 살아 있는 한, 그녀는 내 기억 속에 살아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물론 아내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도 생생히 살아 있다. 그러나 나는 아내를 기억하는 가장 주된 사람이다. 만약 그녀가 어디엔가 존재한다면, 그녀는 내 안에서 내면화되어 존재한다. 

이런 대안은 기존의 기계적 유물론에 물든 인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만들 수 없다고 본다. 휴머니즘에 바탕을 두어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히 내면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5.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반스 형님께서는 전작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슬픔을 극복하게 해 줄 도구인 기억의 불완전함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도 그러한 부분을 다시금 인정한다. 

181 ~182. 우리는 꿈속으로 내려가고, 또 기억 속으로 내려간다. 

 

(중략)

 

'우리'는 씻겨가고 이제 '나'만 남았다. 쌍안경의 기억은 단안경이 되었다. 똑같은 하나의 일화에 관한 두 가지의 불확실한 기억을 삼각측량과 항공 탐사의 과정을 거쳐서 더 확실한, 단일한 기억으로 응집할 가능성은 이제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그 기억은 바야흐로 일인칭 단독 시점하에 변질된다. 그 일화를 사진으로 남긴 것만도 못한 기억이 되고 만다. 

 

높이도, 정확함도, 초점도 잃어버린 이즈음, 우리는 예전처럼 사진을 신뢰해도 되는지 확신할 수 없다. 지금보다 행복했던 시절을 담은 친숙한 옛 스냅 사진들은 예전만큼 각별하지 않고, 인생 자체를 찍은 사진처럼 다가오지 않으며, 그저 사진을 찍은 사진인 것 같은 느낌 뿐이다.

 

(중략)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그토록 뚜렷하고, 그토록 확실하지만, 결국 이런저런 연유로, 지구가 움직이고, 구름이 흩어지고 태양이 각도를 바꾸기 때문에, 그 이미지는 영영 잃어버리게 되고, 오직 기억 속에서만 살아 후일담으로 변해버린다. 

 

변화된 기억. 뭐랄까... 과거가 아름다워진다고 할까... 흔히 우리가 자신이 존경하는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하면 그를 우상화하는 것과 같다고 할까. 

신을 불러오는 대신 그에 대한 좋은 기억을 불러오는 것이다. 그렇게 좋은 기억으로 그를 추억하고, 그와 함께했음을 기쁨으로 치환하여 슬픔의 자리에 대입하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을 맞은 지인을 아직 떠나보내지 않고, 그의 꿈과 기억에 붙잡아두고 여전히 함께 생활함으로써 극복하는 것일까? 그렇기에 그를 향한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일까? 

194. 우리는 우리가 그 아픔과 싸웠고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슬픔을 극복했고, 우리의 영혼에서 녹을 긁어냈다고 생각하지만, 그 모든 일이 일어난 때는 비탄이 다른 곳으로 떠났을 때, 자신의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린 때이다. 우리 쪽에서 먼저 구름을 불러들인 것이 아니며, 우리에겐 구름을 흩어지게 할 힘도 없다. 

6. 그렇게 생활하다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상실을 무의식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순간. 자신이 슬픔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슬픔이 자신을 두고 어디론가 갔다는 것을 알아 달라고 말하는 듯하다.

170. 외부인들이란 정의상, 비탄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내가 아내를 쉽고 자연스럽게 밖으로 드러낼 수 있는 건 지금까지 그녀를 내 안에 품어왔기 때문이다. 이는 비탄의 역설이다. 만약 내가 이제껏 4년 동안 아내의 부재를 견뎌내왔다면, 그건 4년 동안 그녀의 실재를 품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내가 활발하게 머물러 있다는 점은 내가 초반에 염세적으로 단언했던 것을 반증한다. 

 

결국, 비탄 또한 어떤 면에서는 도덕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주의 끝을 찾아서
이강환 지음 / 현암사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이도 : ★★☆

 

61 ~ 62. 실제로 우리 우주는 계속해서 가속 팽창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 약 70억 년 동안은 감속 팽창을 하다 그 후 약 70억 년 동안 가속 팽창을 하고 있다. 





그래프의 모양이 두 번 휘어져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줄다리기는 최종적으로 암흑에너지의 승리로 끝났다. 우주는 영원히 가속 팽창을 할 것이고 암흑물질은 그것을 막을 힘이 없다.





가속 팽창하는 우주는 열린 우주보다 더 빠른 속도로 팽창하기 때문에 바깥으로 휜 우주인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우주는 가속 팽창하지만 기하학적으로는 편평한 우주다. 가속 팽창을 하긴 하지만 '우주 전체의 물질-에너지 밀도'는 임계 밀도와 정확하게 같다는 말이다. 


연구팀이 밝혀낸 것은 우주 가속 팽창만이 아니었다. '우주의 물질 - 에너지 밀도'가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도 알아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주의 물질 - 에너지 밀도'는 보통물질 4퍼센트, 암흑물질 24퍼센트, 암흑에너지 72퍼센트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세 가지를 합하면 우주 전체의 물질 - 에너지 밀도는 임계 밀도와 같아진다. 

그래서 우리 우주는 기하학적으로 편평하면서도 암흑에너지 때문에 가속 팽창하는 우주가 되는 것이다. 


317. 2009년 5월 플랑크라는 위성이 발사되었다. 플랑크 위성의 첫 번째 관측 결과는 2013년 3월에 발표되었다. 그 결과는 기본적으로 기존의 이론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를 통해 우주 구성 비율과 우주의 나이에 약간의 변화도 생겼다. 암흑에너지의 비율이 68.3 퍼센트로 약간 낮아졌고, 암흑물질의 비율은 26.8퍼센트, 그리고 보통물질의 비율은 4.9퍼센트로 약간 높아졌다. 


이것은 우리 우주가 가속 팽창하는 비율이 이전에 알고 있었던 것보다 약간 더 느리다는 의미가 된다. 현재 우주의 크기가 조금 더 느린 팽창으로 만들어졌으므로 우주의 나이가 이전보다 더 많다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 


플랑크 위성이 새롭게 제시한 우리 우주의 나이는 이전보다 약 1억 년 더 많아진 38억 2천만 년이다. 그래서 우주의 나이는 137억 년이 아니라 138억 년으로 수정되었다.  

 

1. 이것은 아주 건조하게 겉만 슬쩍 핥은 <우주의 끝을 찾아서>의 결론이다. 

 

위의 인용구의 짙게 표시한 부분들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보다 궁금하다면 <우주의 끝을 찾아서>의 일독을 추천해드리고 싶다. 

 

사실, 이 책은 이 내용이 전부가 아니다. 우주에 대하여 어떻게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는지 책 한 권에 걸쳐서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독자는 그저 책에 적힌 내용을 마치 영화를 감상하듯이 천천히 감상만 하기만 하면 된다.

 

2.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기 위해서 인간의 활동은 본능적으로 이어져왔다. 인간의 정복이 지구의 모든 것을 삼켰을 때, 궁금증이 지구의 밖에 있는 우주로 향했다. 관측과 실험과 증명이라는 탐구 활동은 계속 되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별과 우리가 있는 이곳의 거리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라는 고민은 세페이드 변광성과 초신성을 만나게 해주었다.

 

초신성이 가진 빛의 세기는 일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질량이 큰 초신성과는 달리 '찬드라세카르의 한계'를 막 넘은 상태에서 폭발하기 때문에 폭발할 때의 질량이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는 Ia 초신성 우리에게 고정된 값을 제공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Ia 초신성이 자동으로 표준광원이 된 것은 아니다. 표준광원이라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수많은 Ia 초신성을 관측하여 초신성들이 가지고 있는 빛과 거리에 관한 경향성을 추출했고, 초신성을 가리고 있는 우주에 분포하는 먼지와 같은 변수들을 제거 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자료를 통해 조사했다. 또한 초신성의 주위에 있는 별의 성질을 통해 상대적인 자료를 추출함으로써 보다 정밀하게 실험을 진행해왔다.  

 

3. 가속 팽창

 

우주가 가속 팽창한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은하 자체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은하와 은하 사이의 빈 공간이 팽창한다는 것이다. 

 

아주 단순히 생각했을 때 가속 팽창이라함은 우리가 자동차 악셀을 힘껏 밟았을 때 잠깐 동안 느낄 수 있는 것이고, 그렇다는 말은 가속 팽창을 가능하게 하는 암흑에너지라는 것은 우주의 공간 사이에서 갑자기 형성된 정체모를 자가발전기리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공간이 열림으로써 갑자기 에너지(우주가 팽창하는 속도도 계산되었는데 우주는 1초당 71km(약 330만광년 떨어진 은하 기준) 속도로 팽창)가 발생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저절로 생겨나는 에너지. 이게 대체 무엇일까? 

 

4. 별이 죽음으로써 인간이 탄생한다.

 

 

 

이 역설은 진리다. 태양처럼 행성 중심부에 수소가 존재하는 살아있는 별은 수축을 통해 온도가 높아지고 핵분열하여 수소가 헬륨이 된다. 수소를 바깥으로 밀어낸 헬륨은 또 다시 엄청난 수축을 통해 탄소가 되고, 탄소는 네온이 되고, 네온은 산소가 되고, 산소는 규소가 되고, 규소는 융합을 통해 철이 된다.


융합이 계속 이어지다가 이 별이 질량의 한계를 견디지 못하면 이 별은 폭발한다. 그 순간 핵융합을 통해서 이렇게 사진처럼 양파껍질처럼 분류되어 있는 각 물질들은 폭발을 등에 업고 제각각 우주로 분리되어 나온다. 


이렇게 별이 마지막으로 폭발하면서 빛을 내는 것이 초신성이다. 이 순간 수십억 도의 온도까지 치솟은 초신성은 철 보다 더 무거운 원소들도 생성해낸다고 한다. 그리고 이 순간 만들어진 다양한 원소들은 우주의 공간에 퍼지게 된다. 그리고 그 원소는 오랜 시간을 떠돌다 우주의 먼지나 덩어리와 만나 새로운 행성이 되는 것이다. 


그 행성 중에서도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어진 희귀한 지구에서 또 한번 다시 없을 우연을 통해 생명체가. 그리고 그 중에서 인간도 탄생하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 - 아마존과 제프 베조스의 모든 것
브래드 스톤 지음, 야나 마키에이라 옮김 / 21세기북스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이도 : ★

 

1. 아마존은 나의 웹 생활에 그리 큰 영향력을 제공하진 않는다. 원서 제목이나 출판연도를 알아보려고 가끔 방문하는 정도? 가끔 영어로 된 서평을 해석하려고 번역기를 돌려보는 정도? 

 

그럼에도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많은 이들이 아마존의 전자책 킨들에 열광하고, 또 이 거대 기업이 한국에 진출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짧은 식견으로 아마존이 국내에 상륙한다면 해외수입상품에 마진을 붙여 판매하는 기업에게 큰 위기가 찾아오지 않을까 단순히 그리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너무 단순히 생각했던 것 같다. 아마존이 들어오면 우리나라의 온라인 시장 전체가 요동칠 것이 분명하다.

 

2. 제프 베조스라는 인물을 기억해야겠다. 

 

여러 전문가로부터 제2의 스티브 잡스로 지목된 그의 최종 목적이 정말 우주 개발에 향해 있는 것이라면 김두식 교수의 '지랄 총량 법칙'의 이론 정도로는 베조프의 욕망을 제한하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베조프는 그것을 탐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성스러운 활동으로 생각할 테니 말이다. 

 

3. 말이 나와서 말인데. 베조스가 주장하기로는 아마존은 선교사 같은 회사이지 용병 같은 회사가 아니라고 한다.

 

352. 신세계로 나아가는 선교사들은 올바른 목표를 가지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 신세계로 나아가는 용병들은 돈과 권력을 위해 일을 하며 앞을 가로막는 자들을 가차 없이 처치한다. 

 

고객에게 가장 빠른 시간, 가장 합리적인 가격으로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기업들과 경쟁하게 된다는 베조스의 의례적인 멘트는 그가 선교사 코스프레를 하기 위한 적절한 발언이다. 

 

그들은 선교사의 옷을 입고서 닷컴 경제의 승자가 되었고, 이제는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4. 아마존이라는 기업이 세상에 보여주는 사상은 확실한 기업 제국주의다. 그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투쟁심이 뛰어나고, 직관에 의존하며, 수학적인 사고방식을 지녔으며, 독선적인 마키아벨리즘을 통해서 회사를 장악하는데 성공한 CEO 제프 베조스의 성향이 그러하다. 

 

'the everything store'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유명한 대학을 졸업한 그는 우수한 직원을 골라 뽑고는 그들을 소모품 다루듯 이용하고 필요가 없을 때는 가차 없이 정리해고한다. 그리고 아마존이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또는 탐나는 먹잇감을 취하기 위해서 다른 기업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 습격했는지, 제프 베조스 자신이 올라온 사다리를 어떻게 걷어찼는지 책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최근에 읽은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에서 미국 사회의 모순을 봤는데. 책 <아마존>에는 그와 같은 모순이 없어서 좋았다. 이 책은 아마존의 잔혹한 백그라운드는 숨기고, 찬란한 현재에만 조명을 비추지 않았다. 이 책은 공룡을 탄생시킨 흑역사를 비교적 상세히 그러나 부끄럽지 않게 서술하고 있다.  

 

5. 이 책은 세상은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힘의 논리에 의해서 강자가 갑이 되고, 약자는 을이 된다. 약자가 외치는 의리는 갑에게 도움이 될 때만 인정받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철저히 무시당한다는 것을 제프 베조스는 일러주고 있다. 

 

6. <아마존>에는 미래 아마존의 세 가지 목표가 제시된다. 

 

하나는 'the everything store'라고 불리는 세상의 모든 물건을 판매할 수 있는 오프라인의 펀더멘탈(가령, FC같이 거대한 물류창고와 그 창고의 재고를 재빠르게 소진할 수 있는 물류시스템의 진화)을 창조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기업이 아니라 웹 상의 모든 거래가 아마존의 플랫폼을 통해 이루어지는 거대한 IT기업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리적인 데이터 집합소 책을 디지털로 변환하여 소비자들에게 접근하려는 꿈도 갖고 있었다.   

 

7. 이러한 모든 행위가 소비자들이 값싸게 물건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곤 하지만 그것은 경쟁자가 모두 무너지고 난 뒤에는 알 수 없게 될 일이다. 예를 들어 아마존이 자포스닷컴과 퀴드시를 무너트릴 때 썼던 가격 후려치기 작전을 통해 일시적으로 소비자가 물건을 싸게 구입했었을지 몰라도. 자포스와 퀴드시가 아마존에게 합병된 즉시. 제품 가격은 고스란히 상승했다.   

 

또한, 낮은 가격을 고집하면서 제조사와 출판사를 쥐어짜는 열악한 환경에서. 좋은 품질의 제품이 나올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8. 이런 기업이 우리나라로 진출하려고 한다. 제프 베조스의 직감이 언제까지 통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이달 2021-10-04 0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선집 3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현암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난이도 : ★

 

416. "이론이란 안경알에 낀 김과 같아서, 사실을 흐리지."


460. 나는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에서 만약 생명이라는 테이프를 다세포 동물의 초기 역사까지 되감은 다음 같은 지점에서 재생한다면 인류의 진화가 다시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고 썼다. 


469. 자연의 방식과 인간의 사회적 품위에 대한 기대 사이의 두드러진 부조화는 다윈 이래 진화와 윤리를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헉슬리의 해결책 => 자연은 역겹고, 인간 사회가 무엇을 피해야 할지 알려주는 지침의 역할 정도를 제외하면 도덕성에 대한 어떤 길잡이도 되지 못한다. 


제이 굴드는 다른 해결책을 선호 => 자연이 때로는 역겹지만, 때로는 훌륭하다. 모든 행동의 사례를 제공하면서, 자연은 그 무엇도 선호하지 않고 아무런 지침도 주지 않는다. 자연의 사실은 어떤 경우에도 도덕적 인도를 하지 않는다. 


481. 투쟁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같은 종 구성원들 사이의 협동으로 나타나며. 여기서 협동은 개체의 이익으로 이어지는 가장 훌륭한 경로다. 


483. 도덕적 통찰에 이르는 지름길은 없다. 자연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관점에서 안락함이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그 무엇도 아니다. 


542. 뉴턴의 세계관에서, 신의 우주 내재성과 안정성은 자연법칙의 일반적 귀결이다. 우주는 나이가 들지도 진보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면, 그것은 빠르고 유별난 사건 때문에 발생한 것이어야 한다. 안정된 구조의 일상적인 세계에 이런 사건들이 이따금 일어나는 것이다.


544. 세상은 변화의 일반론으로 가정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545. 우리에게는 우리의 일반적인 선호, 경향, 편향이 피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 아님을 성가실 정도로 계속 일깨워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617. 우리는 시인과 정치가, 설교자와 철학자와 함께 살고 있다. 저마다 자신의 앎의 방식이 있고, 각각의 방식은 고유한 영역 내에서는 모두 타당하다. 한 가지 방식으로 모든 답을 얻기에는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흥미롭다.


653. 과학은 얻을 수 없는 궁극의 결과를 추측하는 사변이 아니다. 과학은 현재 작동하는 법칙과, 관찰과 추론에서 도출한 결과에 기반을 둔 앎의 방식이다. 


659. 인간은 누구나 오류를 저지르기 쉬우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항상 완벽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673. 우리는 이런 곤경을 견딜 수 없다. 어떻게든 위안이 되는 답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패턴을 찾는다. 순전히 임의적인 세계조차도 분명 패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676. 우리는 "유형에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 어떤 실재의 '본질'이라고 간주되는 것을 추상해내고, 그런 다음 스스로 가정한 유형과 비슷한 정도에 따라 자신의 판단을 조정하는 것이다. 

 

1. 인정하기 싫었다. 그러나 인정해야만 했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조사하는 가운데 밝혀지는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양파 같은 부조리는 인간에 대한 혐오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로 인해 자라난 실종자에 대한 죄스러움이 무의식에 깊숙하게 뿌리박혀서 나의 하루하루를 시들게 만들었다

 

2. 그럼에도 두툼한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읽었다. 이 책을 두 번 읽을 자신은 없었기에. 끝에서부터 (중심내용이 뒷부분에 많이 실려있다는 개인적인 생각) 차근차근 이 책의 핵심이 될 만한 구절을 옮겨봤다. 이쯤이면 <힘내라 브론도사우루스>에 실린 스티븐 제이 굴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 가운데. 지금 이 시점에서 내 마음을 움직인 내용을 충분히 알렸다고 본다. 

 

결국, 이 책의 핵심은 인간이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1.자신이 믿는 사실을 증명하거나 얻어내기 위해서 패턴을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내는지. 2. 어떻게 자신이 주장하는 학명을 수립하는지. (예를 들어서, 1.창조론과 진화론을 교묘하게 융합하여 신을 증명하는 이론. 왜냐하면, 신이 없다는 사실은 상상할 수조차 없기에 2. 브론토사우루스와 아파토사우루스의 학명 가운데 어떤 명칭을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에 관한 역사적인 흐름에 대해서 날카로운 관점으로서 분석하고 있었다. 

 

3. 그러나 어떻게 보면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은 제이 굴드는 인간이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을 비난하기 위해서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상황에서 그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한 변론을 덧붙임으로써. 고차원적인 시각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그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4. 아 참. 옮긴이의 상세한 설명은 매우 유용했다. 

 

160. '현재의 유용성은 역사적 기원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장치가 훌륭하게 작동한다는 것을 입증했어도, 그것이 언제 어떻게 왜 발생했는지를 밝혀낸 것은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루스트가 사랑한 작가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열 갈래의 길
유예진 지음 / 현암사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이도 : ★

 

1. 비의도적 책 읽기?

 

내가 봄에 얼굴만 타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시꺼멓게 타나보다. 두 분의 이웃에게 '사랑'이 붙은 책이 내가 생각한 로맨스가 아니었다며 별점 테러를 했다는 하소연을 했다. 그러면서도 또 '사랑'이 들어간 책을 잡았다. 봄을 타는 게 확실한 건지. 아니면 누군가의 의도적인 음모에 휘말려 비의도적인 책을 읽고 있는 건지... 결론은 "요즘 뜬금없이 제목에 '사랑'이 붙은 책이 나를 부른다."는 것이다. 

 

'사랑'이 들어간 이 책은 썬크림처럼 하얗고, 마시멜로처럼 달달함을 음미하는 그런 책은 아니다. 오히려 자그맣게 적혀있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열 갈래 길'이라는 부제가 이 책의 정체성에 대해서 사실적으로 설명하는 듯하다. 그런데 사실적이라는 단어는 <프루스트가 사랑한 작가들>에서는 내려놔도 좋은 개념이다. 아.. 그래서 제목이 <프루스트가 사랑한 작가들>이 된건가? 

 

(글 전체가 갈팡질팡하는 이유는 인상주의를 추구하는 프루스트 형님께 여쭈어 보면 알 수 있을듯... 

 

38. 원인부터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지각이 받아들인 순서대로 표현하는 것. 

 

34. 마르셀은 형식, 즉 감정을 표현하는 그녀 고유의 필치에 감탄. 프루스트가 강조한 문체의 중요성. '인상주의적 필치' )

 

2. 실존 작가들 

 

세비녜 부인, 장 라신, 오노레 드 발자크, 조르주 상드, 귀스타브 플로베르, 공쿠르 형제, 스테판 말라르메, 앙드레 지드. 이 작가들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작가와 이름은 같지만 엄연히 작가와 분리되는 마르셀이라는 시점 속에서 다시금 구성되는 작가의 면면이다. 동시에 책의 저자 유예진 누님께선 프루스트의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위에서 언급한 작가들의 문체나 형식을 오마주하듯이 차용하는 것들의 사례를 밝혀줌으로써 쉬운 독서로 안내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프루스트는 작가와 주인공. 더 나아가서 작가와 작품은 될 수 있으면 완벽한 상태로 구분되어야 함을 주장하지만, 마르셀 프루스트의 내면 속에서도 이 작가들은 재구성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프루스트의 흥미로운 취미. 즉, 이들의 문체를 모방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문체를 찾아냈다고 고백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의 마르셀에게도 위의 작가들은 좋든 싫든 간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

 

3. 가상의 작가

 

프루스트가 창조한 가상의 작가가 이 책에 등장한다. 프루스트는 가상의 작가 베르고트를 등장시켜서 프루스트의 문학론과 작가론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려진다고 유예진 누님께서 친절히 설명해주신다. 

 

결국, 프루스트는 "183. 베르고트는 프루스트가 뛰어난 예술가가 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명한 조건, 즉 자기만의 특색을 가지고 있는 소설가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유예진 누님께서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는 내용들이다. 

 

90. 프루스트에게 문체(=특색)는 "작가의 모든 것"이라 할 만큼 소설의 내용이나 형식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는 "화가에게는 책, 작곡가에게는 음조, 소설가에게는 문제"가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고 생각. 

 

91. 문체란 작가의 생각에 의해 변형된 현실

 

127. 프루스트에게 은유란 "문체에 유일하게 시간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을 부여할 수 있는 것"

 

4. 프루스트를 사랑한 바르트 

 

마지막으로 롤랑 바르트와 프루스트의 특수한 관계가 남았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본래 제목과 아주 잘 어울린다. 그들의 동행이 '사랑'인지 '숭배'인지 헷갈릴 정도이긴 하지만 말이다. 

 

바르트가 읽은 프루스트는 전기, 후기로 나눌 수 있다. 전기 구조주의에서의 프루스트의 소설은 226페이지와 227페이지에서 언급한대로 일정한 패턴을 가진 소설로 설명되었다. 

 

226. 바르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3막으로 된 한 편의 극으로 이해.

1막은 쓰고자 하는 욕망의 발견에 관한 것. (1권 스완네 집 쪽에서)

2막은 쓸 수 없는 무기력, 무능력의 깨달음(2권~6권)

3막은 비의도적 기억의 작용으로 되찾게 된 글쓰기에 관한 소명(7권. 되찾은 시간)

 

바르트는 '욕망','좌절','부활'이라는 세 단계를 마르셀이 거친 것과 마찬가지로 프루스트 또한 이 단계를 거쳤을 거라고 믿었다. 

 

227. 프루스트 소설의 구조에서 일정한 원칙과 체계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반전의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고 분석. 

 

인물의 겉모습을 보았을 때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그 인물의 특성이 실재와는 상반되는 것을 종종 발견. 이런 반전의 요소는 몇몇 등장인물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소설의 근본적인 구조와 직접  즉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인물, 상황의 관찰 -> 가정, 추론 -> 반대 사실 확인'이라는 과정을 반복한다고 한다.

 

하지만 후기 구조주의로 넘어가면서 바르트는 스스로 이 분석들을 깨뜨리고, 각각의 독자와 작가의 텍스트의 만남을 성사시킨다. 

 

229. 1970년대 바르트의 후기 구조주의적 관점

 

<텍스트의 기쁨>은 제목이 말해 주듯 감정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요소를 끌어들이면서 새로운 비평을 시도. 바르트는 이제 프루스트를 지배하는 일정한 법칙을 발견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과 프루스트와의 관계,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삶에 프루스트가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논하는데 그것을 쓴 소설가가 아닌 그것을 읽는 독자의 개인적인 삶이 개입하는 셈.

 

독자의 경험과 관점을 통해 프루스트에 대한 우호도가 나누어질 것이고, 우호도가 극에 달하면 바르트처럼 프루스트와 바르트가 동일시되는 경지에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동일시 된다 말의 의미는 프루스트가 시간을 되찾기 위해서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는 그 과정 전체를 의미한다. 

 

5. 보너스 : 사진에 관한 생각들.

 

235. <오브비와 옵투스>(1982) 사후출간

 

바르트에게 사진은 과거의 모습을 재현함과 동시에 무슨 수를 써도 당시의 모습을 되찾을 수 없다는 모순을 안고 있다.

 

237. 바르트가 인용하는 프루스트는 사진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프루스트에게 사진은 기억을 돕는 것이 아니라 방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인물들의 과거의 사진들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사람의 과거를 마주하거나, 알고 있거나 기억하고 있는 그 사람과는 다른 모습을 마주했을 때 낯섦을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사랑하는 사람은 기계가 담은 객관적인 모습이 아니라 나의 주관적이며 파편적인 인상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멋진 해석이다. 

 

6. 그냥 또 다른 생각.

 

어렴풋하게 내가 소설을 쓴다면 이렇게 쓸 것이다. 아니면 이런 소설을 편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소개하자면 

 

1. 인간의 불완전함을 자각하지 못한 어떤 인간이 평생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과정. 그리고 그것이 밝혀졌을 때의 충격을 완충제 없이 그린 작품. 

 

2. 프루스트는 메시지나 내용과 상관없이 문체만 훌륭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사회 현실을 우월한 문체로 써내려간 (사실주의적이 아닌 인상주의적으로) 작품. 

 

3. 반전이 있는 캐릭터들.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들은 엘스티르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바다인지 하늘인지 혼동시키는 풍경처럼 독자를 당황시킨다. 교활한 것처럼 묘사된 인물이 본질적으로는 선한 사람임이 밝혀질 때혹은 그 반대일 때 독자는 놀란다.

 

프루스트의 소설은 이 조건의 많은 부분을 만족시켜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그리고 내가 블로그를 통해 나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공개하려 하지 않는 이유를 프루스트도 공감하고 있었다. 아니지. 프루스트의 견해와 통했다는 것이 맞는 건가? 


39. 예술가로서의 '나'는 사적인 '나'와 엄밀히 구분되어야 하며, 예술 작품의 진정한 가치를 판단할 때 유일한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작품 그 자체이며 작가의 삶이나 성격 등을 기준으로 삼는 전기적 비평은 마땅히 피해야 하는 함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