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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
<룸>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는 잭이다. 그의 아빠가 7년 전, 어떤 여자를 납치해서 감금하고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남자라고 해서, 또한 그의 엄마가 누군가에 의해 알 수 없는 곳에 7년 동안 붙잡혀 성폭행당한 여자라고 해서. 그것이 잭이라는 어린 영혼의 순수함에 어떤 더러움도 묻히지 못한다. 마치 빈 서판 이론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말이다.
엠마 도노휴의 <룸>은 오로지 잭의 시선만으로 세상을 그려낸다. 왜냐하면, 그녀가 동경하는 작가인 제임스 조이스의 내면 묘사처럼 잭을 일인칭 화자로 등장시켜 잭에게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인물들처럼 잭 역시 틀을 부수고 나오는 인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엠마 도노휴의 <룸>에서는 오로지 잭의 시선만 허용한다.
가로세로 3.5미터의 방 안에서 태어난 아이인 잭은 그의 생물학적 아빠인 '올드 닉'에 의하여 바깥출입을 허락받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잭에게는 바깥이라는 의미가 모호했다. 방 한구석에 놓인 텔레비전. 그가 언어를 배우기 위해 필요한 도구였던 자그마한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것은 동화책의 환상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완전히 분리된 세계였고, 잭에게는 오로지 가로세로 3.5미터의 방이 그의 모든 세계였다.
그 좁은 공간에서 그는 태어난 날부터 엄마와 함께 생활했다. 씻고, 먹고, 앵무새 놀이를 하고, 자고. 그런 와중에 일요일마다 '올드 닉'으로부터 받는 선물이 잭에게는 행복이었고, 방 한쪽 벽면에 그어진 여러 줄의 검은 선이 잭이 성장한 증거였다. 잭으로서는 옷장에서 숫자 몇 번을 억지로 세면서 잠들어야 하는 날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누구의 간섭 없는 엄마와의 하루하루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
렇게 하루하루를 거부감없이 보냈기에. 엄마의 입에서 나온 탈출 계획를 처음 들었을 때에는 그런 안락함이 그를 저항하게 했다.
엄마를 떠나기 싫다면서 떼를 쓴다. 그러다 마침내, 잭은 용기를 낸다. 생활의 안락함과 사랑하는 엄마를 떼어두고 아무것도 모르는
바깥 세상으로의 탈출을 위한 용기 말이다. 잭에게 묻은 안락함을 버리게 한 것은 분명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 기인한 용기라고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잭이 탈출해서 엄마 말대로 경찰을 만난다면 올드 닉을 엄마에게서 떼어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던 것이다.
2.
'올드 닉'의 추격을 뿌리치고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잭. 그리고 7년 만에 강간범에게서 해방된 엄마에게 자유라는 얼굴은 쉽게 미소를 보여주지 않았다. 이 사건을 크게 보도한 사회는 아이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엄마의 선택을 두고 자식의 미래를 망치는 행위는 아니었을지 생각해 본 적 있느냐는 질문부터 던졌다.
380.
"우리의 세상이 가로세로 11피트 크기였을 때는 통제하기가 더 쉬웠어요. 지금은 정말 많은
것들이 잭을 놀라게 하죠. 하지만 난 언론이 아이를 정신박약이라든지, 야생 소년으로 부르는 게 정말... (중략) 잭은 그저 인생의
첫 다섯 해를 이상한 곳에서 지낸 것뿐이에요."
"아이가 그 시련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손상되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으시는군요."
"잭에게는 시련이 아니었어요. 그저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일 뿐이었죠. 그리고 네, 사람들은 누구나 무언가에 의해 손상되잖아요."
그들은 남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이었다. 바깥 세계의 너무나도 먼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잭과 엄마는 인간이 아니라 자신들의 지식을 뽐내거나 어떤 사례를 뒷받침할 이론적 증거에 지나지 않았다.
470.
"상징적인 층위에서 잭은 영혼을 달리기 위해 토대에 던져넣은 아동 제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좀 더 유사한 원형이 페르세우스라고 생각합니다. 감금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 나무 상자에 담긴 채 표류하다가 영웅으로 돌아온 희생양 말입니다."
"독방에서도 행복했다는 카스파 하우저의 주장은 유명하지만, 어쩌면 그는 19세기 독일 사회 자체가 좀 더 큰 독방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최소한 잭에게는 텔레비전이 있었지요." "플라톤의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로서의 문화겠지요."
대학을 너무 오래 다닌 텔레비전 속의 그들은 이 사건을 지식의 울타리에 집어넣고 즐기기만 한다. 7년 만에 밖으로 나온 잭. 그리고 특히 엄마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잭과 엄마는 잠시 떨어져 지내야 했다.
3.
믿었던 사회의 배신. 그리고 예고치 않은 엄마와의 이별. 그럼에도 상처라는 말은 쓰지 않기로 하자.
이후 엄마를 대신해서 잭을 돌보는 사람들은 그의 할머니와 삼촌과 같은 가족들이었다. (이들이 피가 섞인 가족이 아니라는 점은 인간에 대한 믿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작가의 설정이라고 여겨진다.) 잭은 그들의 배려와 사랑으로 조금씩 바깥세상에 대한 거리를 좁히고, 그들과 어
울리며 생활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후반부의 대부분은 그런 에피소드와 잭의 성장을 그려낸다. 할머니의 말대로 잭은 자기
영역을 배워가는 중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잭의 순수함이 오히려 세상의 고정관념보다 빛나는 순간도 있었다. 그래서 아래 문장을 읽는
동안 우리를 부끄럽게 하기도 했다.
305. 세상 사람들은 각각의 일을 모두 다른 방에서 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예의를 떠올렸다. 예의란 다른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게 겁날 때 하는 것이다.
460.
"명심해, 낯선 사람은 끌어안는 게 아니란다. 착한 사람이라도."
"왜?"
"그냥 안 해. 끌어안는 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렴."
"난 그 워커라는 아이를 사랑했어."
"잭, 오늘 처음 보는 아이였잖아."
어쩌면 잭의 생각과 대화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는 우리를 부끄럽게 할 수도 있다. 그와 동시에 자신에게서 우러나는 당신의 사랑이 먼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는 것. 즉, 서로 간의 거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가르침도 담고 있다.
487.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 방을 가져야 한다는 책을 대학에서 읽은 적이 있단다."
"왜?"
"그 안에서 생각을 하려고."
"난 엄마랑 같이 있는 방에서도 생각할 수 있어." "엄마는 왜 나랑 같이 있는 방에서는 생각을 못 해?"
"대부분의 시간은 할 수 있어. 하지만 가끔은 나만의 공간이 있는 것도 좋을 거야."
이
대화에 대해서. 그리고 마지막 문장인 "안녕 방아." 라는 마지막 인사를 통해 엠마 도뉴휴의 <룸>은 갇힌 영역에서의
탈출. 바깥 세계와의 대화. 타인에 대한 이해. 그리고 다시 자기 만의 방에서 신중하게 고민하는 힘.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세상과 마주설 수 있는 진정한 자신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것이 바로 <룸>에서 말하고자 하는 자유의
의미가 아닐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