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우 러브
캐런 매퀘스천 지음, 김진숙 옮김 / 북플라자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1.


표지의 귀여운 강아지의 모습을 보는 순간 느낄 수 있듯이 캐런 매퀘스천의 <헬로우러브>는 반려견에 관한 소설이다. 우리가 반려견에게 기대할 수 있는 정서적 안정과 사람과 동물 사이의 유대감. <헬로우러브>는 그것을 극대화하여 사랑에 관한 통속적이며 일반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7. 애니는 댄의 말을 들었다. 댄은 확신했다. 심지어 댄이 하는 말의 의미를 모두 알아듣고 있음이 분명했다. 애니는 똑똑하고 사람보다도 직관력이 뛰어나다. 애니는 잡종이다. 테리어의 쫑긋한 귀와 코, 그리고 슈나우저의 길고 밝은 색 털을 갖고 있다. 외모는 귀엽지만 성격은 강단이 있다. (중략) 애니는 댄을 올려보았다. 강렬하고도 촉촉한 애니의 눈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애니. 이 작고 귀여운 께 정서적 교감을 나눌. 그로 인하여 아마도 서로 사랑하게 될 남성과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의 마주침은 소설이 시작되는 순간 이미 이루어졌고, 운명을 만난 것 같은 기이한 예감은 이들을 감싸고 있는 상태였다.


36. 트럭 옆을 지나가는 순간 앤드리아는 운전자의 얼굴을 보았다. 마흔은 넘지 않은 듯한 잘생긴 얼굴, 넓은 이마, 곱슬거리는 어두운 머리칼. 그의 표정이 앤드리아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운전자도 앤드리아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눈이 완전히 마주치기도 전에 차는 빠르게 지나가고 말았다.


103. 댄은 그 다음에 들어온 여자가 오늘의 약속 상대이길 바랐다. 따뜻하고 매력 있는 여자였다. 늘씬한 몸매에 예쁘장한 얼굴. 베이지색 코트는 부츠 바로 위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었다. 서른 살 정도 되어 보여서 약속 상대의 나이와 맞는 것 같았지만, 생각해 보니 옷차림이 아니다.


외면과 내면이 모두 반듯한 남자 주인공 댄은 아내 크리스틴을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보냈다. 쓸쓸한 집에서 성인이 다 되어가는 딸 린지와 애니. 이렇게 셋이 함께 생활하는 댄은 애니의 전주인이었다. 외면과 내면이 반듯한 여자 주인공 앤드리아는 그녀에게 바람기 많은. 그것보다는 무엇보다 앤드리아에게 진실하지 못했던 남편 마르코와 이혼하고 홀로 지내다가 위험에 빠진 애니를 구출하고 함께 생활하면서 위안을 얻게 되는 현재의 주인이다.


댄과 린지는 어떤 남학생들에 의해서 애니를 납치당했고, 앤드리아는 그녀가 관리하는 빌라에 세들어사는 남학생들이 납치한 애니를 학대로부터 구출한다. 소설 내내 댄과 린지는 납치당한 애니를 찾아다니고, 앤드리아는 한 겨울 발코니에 묶여 오들오들 떨고 있었던 불쌍한 애니에게 사랑을 쏟는다.


이러한 각자의 생활이 소설의 전체 40챕터 가운데 20챕터씩 서로 번갈아가며 교차한다. 그리고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애니가 주인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가는 순간. 두 중년 남녀의 사랑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사랑이 본격적으로 피어오르기 전의 엇갈린 에피소드를 어떻게 즐길 것인가?하는 것은 오로지 독자들의 몫이다.


그런데 <헬로우러브>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모든 감정의 교감은 애니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애니는 애니와 감정을 교감할 수 있는 누군가는 허락했고, 또 애니를 소중한 생명체로 여기지 않았던 누군가를 사납게 거절했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두 남녀의 판단에 영향을 끼친다.  


251. 모든 것이 들어맞았다. 이름, 생김새, 회사까지. 놀라운 우연이다. 책이나 영화 속의 이야기였다면 너무 작위적이고 뻔하다고 비판했겠지만, 현실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장의 정석 - 어느 지식인의 책장 정리론
나루케 마코토 지음, 최미혜 옮김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


이 책은 나루케 마코토라는 이름보다 <책, 열 권을 동시에 읽어라>라는 책이 더 유명한 작가의 책장의 관리 비결을 담은 책이다. 만약, 내가 이 가가 <책, 열 권>을 쓴 작가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고, 책 열 권을 동시에 읽는 것을 즐기는 독자였다면 이 책을 더욱 환영했을 텐데. 동시에 열 권을 읽어 적이 없는 독자라 이 작가가 그 책을 쓴 작가라고 해서 그렇게 대단하다 생각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 사실보다 직관적으로 책장관리 자체에 궁금한 점이 있어서 읽기 시작했으니…. 그 이력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2.


작가 나루케 마코토에게 책장이란 단순히 책을 저장하거나 쌓아두는 곳이 아니었다. 그에게 책장이란 책장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가에 관한 정보를 담은 곳이었다. 나루케의 말에 따르면 그 정보(당신의 관심사)를 책장을 보는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했다면 좋은 책장이고, 이 정보가 몇 년째 변하지 않는 책장이라면 그 책장은 좋지 않은 책장이었다.


만약, 당신이 경제나 사회나 과학 그리고 역사 분야의 최신 트렌드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고 치자. 그렇다면 당신은 가능한 한 최근에 나온 서적들. 그중에서도 목차의 내용이 훌륭하거나 존경하는 번역가나 작가의 서적을 구입하여 책장을 채우고. 그것을 읽은 후, 승부수가 될 만한 책을 3가지 용도로 나눈 책장 중에서 '메인 책장'에 저장. 당신의 아이디어의 원천으로 삼아 꾸준히 책장을 업데이트 해야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3. 현대 사회를 살아남는 데 필수 조건은 '유익하고 신선도 높은 정보를 얻는 것'과 '얻은 정보를 활용하는 곳'이다. 예전에는 '정보를 많이 얻는 것'이 유리했을지도 모르지만, 인터넷이 보급된 지금은 누구나 쉽게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얼마나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는가, 또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책장을 편집할 수 있다면 인생을 편집할 수 있다"는 표지 문구는 이러한 저자의 생각을 잘 표현해주는 문구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굉장히 실용성을 추구한다.

  

3.


메인 책장 얘기가 나왔으니 나머지 2가지 용도의 책장도 설명해둔다. 어떤 책이든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신선한 책장' 이 나머지 두 가지 책장의 이름 가운데 하나다. 이 책장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읽고 난 후 좋다고 생각하는 책을 '메인 책장'을 옮기기 전. 당신의 손에 들어온 모든 책의 집합소다. 이 '신선한 책장'을 훑어보면 당신의 최근 관심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나머지 하나는 당신의 작업에 직접적인 효율을 줄 수 있도록 하는 '타워 책장'이다. 이 책장은 작업하는 공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놓아두는 것을 권하는데, 이 책장에서 반드시 빠지지 않는 서적 중에 명언집이 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그 이유는 명언집의 문장을 인용하거나 변형하여서 더 매끄러운 글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 책장을 꾸릴 때, 당신이 가진 모든 책을 '신선한 책장'으로 모은다. 그 이후, 읽은 책 중에 좋은 책은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분류별로 '메인 책장'에 80% 정도로 담는다. 이렇게 구성된 '메인 책장'의 책 가운데 당신이 현재 공부하고 싶은 분야의 책들은 '타워 책장'으로 옮긴다. 그 책을 참고하여 새로운 저작물을 만들어내고, 다시 '타워책장'을 해체하여 '메인 책장'으로 보낸다. 다른 주제의 책을 다시 '타워 책장'에 담는다. 그걸 반복하는 동안 '신선한 책장'과 '메인 책장'의 활발한 이동은 지속한다.


그렇게 '신선한 책장'에 들어온 책 가운데 '메인 책장'으로 보낼 책은 다시 보내고 '메인 책장'에 있었지만 좀 오래된 책은 처분하기 위한 공간으로 이동시킨다. <책장의 정석>의 책장정리 비법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4.


네이버 책 문화 메인에 걸린 이 책의 소개글 일부 챕터에 작은 논쟁이 발생했다. 작가가 "베스트셀러를 읽지 않는다." 고 말한 내용(44. 베스트셀러만 가득 찬 책장은 시시하다.) 이 유난히 도드라지게 부각된 탓이었다. 이러한 의견에 반대하는 댓글 대부분이 베스트셀러의 효용성과 시대정신에 관한 논쟁이었다. 개인적으로도 베스트셀러와 일반 서적을 고의로 차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작가가 베스트셀러를 피하는 이유는 남들과는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베스트셀러의 논쟁에 대한 작가의 진정한 견해는 당신의 책장에 꽂힌 책을 모두 베스트셀러로만 채우는 것을 방지하자는 것일 테다. 즉, 베스트셀러만 읽어서는 다른 사람과 다른. 책의 표현대로라면 승부수가 될 만한 것을 얻지 못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에 베스트셀러를 읽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빨간구두당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읽으면서 '아 큰일 났다. 너무 재미가 없다. 어떡하지.'라고 느낀 책이다. 작품을 읽는 행위에 진입하는 순간, 각 단편의 아주 급격한 차이로 인하여 '마치 허공에서 발버둥 치는 기분 같다. 도대체 어디를 딛고 읽어나가야 하나.' 싶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래서 어쩔 수없이 부록으로 읽을 수 있는 무료 e-book을 다운로드 받아 이야기의 뿌리가 되는 작품에 관한 간략한 설명을 듣고 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빨간구두당>의 빨간색의 함의에 대한 빅브라더의 거부와 은밀한 욕망의 힘겨루기. <개구리 왕자 또는 맹목의 하인리히>의 하인의 눈에 보이는 주인이라는 인간의 미숙함과 불안과 당신에 대한 의심과 질투. <기슭과 노수부>의 멈추게 할 수 없는 반복된 새로운 비극. <카이사르의 순무>의 의심. <헤르메스의 붕대>의 정의감에 가려진 미처 깨닫지 못한 한 인간의 질투와 강탈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강탈. <엘제는 녹아 없어지다>의 맨스플레인. <거위지기가 본 것>의 시점 변형. <화갑소녀전>의 성냥팔이 소녀가 21세기 공장노동자가 되어 증사(집)를 얻기 위해서 일을 하다가 흡사 백혈병처럼 병에 걸려서 불타버린 성냥처럼 소멸하는 모습.  


단편마다 강렬한 이미지 한 컷은 떠오르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서 간결하지 않은 장문을 넘기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버거웠고 지루했다. 재미를 포기하더라도 날카로운 통찰을 얻을 수도 있었다면 다행이었을 텐데... 큰 인상은 받지 못했다. 


2.


이런 장치를 빌리지 않더라도 표현할 방법은 많지 않았을까?


문학동네 1월 달력에 적힌 오에 겐자부로의 한마디가 눈에 밟힌다. 

"이야기를 복잡하게 하지 않으려면 '진실'을 말하는 것이 가장 좋다."


빌려온 세상에서 하나의 알레고리로서 세상과 생각을 동시에 표현하기란 그리 녹록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3. 


<빨간 구두당>의 구병모 작가가 쓴 다른 작품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이 2015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구병모 작가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문득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과 <빨간 구두당>은 각기 다른 작품이 아닌 연속성의 작품이라는 예감이 생긴다. 아마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을 읽게 된다면 <빨간 구두당>을 다시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만족스럽지 않았던 이 책의 후기는 이쯤에서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197. "한 포기의 풀도 한 마리의 동물도 한 명의 사람도, 모두 신이 바느질한 한 벌의 옷과 같아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 중의 수많은 조각이 모여 우리라는 존재를 이룬 거예요. 그러면 신이 바늘귀에 실을 꿰었을 때 이미 각자의 본성이 결정되지 않았을까요? 결코 양보할 수도 없고 변할 수도 없는 무언가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을까요? 풀을 이루는 조각의 일부를 바꾸어 맹금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성질을 박탈한다는 것은 그 전까지 자신이 존재하던 방식을 포기하고 지금의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조각이 옮겨 간다는 뜻이에요. 신이 만들어 낸 우리가 그렇게 허술하고 가볍고 유동적인 존재일까요? 신은 우리를 완벽한 존재로 만들지 않았지만 그렇게 변덕스럽고 추한 존재로 만들지도 않았어요.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인정한다면 그건 존재의 무게를 부정하는 셈이 되어 버려요. 인간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존엄을 간과하는 것이죠. 그 순간 우리는 완벽하고 깨끗한 한 벌의 옷이 아니라 누더기가 되어 버려요.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누더기를 기웠을 리도 없을뿐더러 아가씨는 설마 자신이 누더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


<룸>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는 잭이다. 그의 아빠가 7년 전, 어떤 여자를 납치해서 감금하고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남자라고 해서, 또한 그의 엄마가 누군가에 의해 알 수 없는 곳에 7년 동안 붙잡혀 성폭행당한 여자라고 해서. 그것이 잭이라는 어린 영혼의 순수함에 어떤 더러움도 묻히지 못한다. 마치 빈 서판 이론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말이다.  


엠마 도노휴의 <룸>은 오로지 잭의 시선만으로 세상을 그려낸다. 왜냐하면, 그녀가 동경하는 작가인 제임스 조이스의 내면 묘사처럼 잭을 일인칭 화자로 등장시켜 잭에게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인물들처럼 잭 역시 틀을 부수고 나오는 인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엠마 도노휴의 <룸>에서는 오로지 잭의 시선만 허용한다.


가로세로 3.5미터의 방 안에서 태어난 아이인 잭은 그의 생물학적 아빠인 '올드 닉'에 의하여 바깥출입을 허락받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잭에게는 바깥이라는 의미가 모호했다. 방 한구석에 놓인 텔레비전. 그가 언어를 배우기 위해 필요한 도구였던 자그마한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것은 동화책의 환상과 전혀 다를 없는 완전히 분리된 세계였고, 잭에게는 오로지 가로세로 3.5미터의 방이 그의 모든 세계였다.


그 좁은 공간에서 그는 태어난 날부터 엄마와 함께 생활했다. 씻고, 먹고, 앵무새 놀이를 하고, 자고. 그런 와중에 일요일마다 '올드 닉'으로부터 받는 선물이 잭에게는 행복이었고, 방 한쪽 벽면에 그어진 여러 줄의 검은 선이 잭이 성장한 증거였다. 잭으로서는 옷장에서 숫자 몇 번을 억지로 세면서 잠들어야 하는 날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누구의 간섭 없는 엄마와의 하루하루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 렇게 하루하루를 거부감없이 보냈기에. 엄마의 입에서 나온 탈출 계획를 처음 들었을 때에는 그런 안락함이 그를 저항하게 했다. 엄마를 떠나기 싫다면서 떼를 쓴다. 그러다 마침내, 잭은 용기를 낸다. 생활의 안락함과 사랑하는 엄마를 떼어두고 아무것도 모르는 바깥 세상으로의 탈출을 위한 용기 말이다. 잭에게 묻은 안락함을 버리게 한 것은 분명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 기인한 용기라고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잭이 탈출해서 엄마 말대로 경찰을 만난다면 올드 닉을 엄마에게서 떼어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던 것이다.


2.


'올드 닉'의 추격을 뿌리치고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잭. 그리고 7년 만에 강간범에게서 해방된 엄마에게 자유라는 얼굴은 쉽게 미소를 보여주지 않았다. 이 사건을 크게 보도한 사회는 아이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엄마의 선택을 두고 자식의 미래를 망치는 행위는 아니었을지 생각해 본 적 있느냐는 질문부터 던졌다.


380.

"우리의 세상이 가로세로 11피트 크기였을 때는 통제하기가 더 쉬웠어요. 지금은 정말 많은 것들이 잭을 놀라게 하죠. 하지만 난 언론이 아이를 정신박약이라든지, 야생 소년으로 부르는 게 정말... (중략) 잭은 그저 인생의 첫 다섯 해를 이상한 곳에서 지낸 것뿐이에요."

"아이가 그 시련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손상되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으시는군요."

"잭에게는 시련이 아니었어요. 그저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일 뿐이었죠. 그리고 네, 사람들은 누구나 무언가에 의해 손상되잖아요."


그들은 남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이었다. 바깥 세계의 너무나도 먼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잭과 엄마는 인간이 아니라 자신들의 지식을 뽐내거나 어떤 사례를 뒷받침할 이론적 증거에 지나지 않았다.


470.

"상징적인 층위에서 잭은 영혼을 달리기 위해 토대에 던져넣은 아동 제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좀 더 유사한 원형이 페르세우스라고 생각합니다. 감금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 나무 상자에 담긴 채 표류하다가 영웅으로 돌아온 희생양 말입니다."

"독방에서도 행복했다는 카스파 하우저의 주장은 유명하지만, 어쩌면 그는 19세기 독일 사회 자체가 좀 더 큰 독방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최소한 잭에게는 텔레비전이 있었지요." "플라톤의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로서의 문화겠지요."


대학을 너무 오래 다닌 텔레비전 속의 그들은 이 사건을 지식의 울타리에 집어넣고 즐기기만 한다. 7년 만에 밖으로 나온 잭. 그리고 특히 엄마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잭과 엄마는 잠시 떨어져 지내야 했다.


3.


믿었던 사회의 배신. 그리고 예고치 않은 엄마와의 이별. 그럼에도 상처라는 말은 쓰지 않기로 하자.


이후 엄마를 대신해서 잭을 돌보는 사람들은 그의 할머니와 삼촌과 같은 가족들이었다. (이들이 피가 섞인 가족이 아니라는 점은 인간에 대한 믿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작가의 설정이라고 여겨진다.) 잭은 그들의 배려와 사랑으로 조금씩 바깥세상에 대한 거리를 좁히고, 그들과 어 울리며 생활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후반부의 대부분은 그런 에피소드와 잭의 성장을 그려낸다. 할머니의 말대로 잭은 자기 영역을 배워가는 중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잭의 순수함이 오히려 세상의 고정관념보다 빛나는 순간도 있었다. 그래서 아래 문장을 읽는 동안 우리를 부끄럽게 하기도 했다.


305. 세상 사람들은 각각의 일을 모두 다른 방에서 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예의를 떠올렸다. 예의란 다른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게 겁날 때 하는 것이다.


460.

"명심해, 낯선 사람은 끌어안는 게 아니란다. 착한 사람이라도."

"왜?"

"그냥 안 해. 끌어안는 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렴."

"난 그 워커라는 아이를 사랑했어."

"잭, 오늘 처음 보는 아이였잖아."


어쩌면 잭의 생각과 대화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는 우리를 부끄럽게 할 수도 있다. 그와 동시에 자신에게서 우러나는 당신의 사랑이 먼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는 것. 즉, 서로 간의 거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가르침도 담고 있다.


487.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 방을 가져야 한다는 책을 대학에서 읽은 적이 있단다."

"왜?"

"그 안에서 생각을 하려고."

"난 엄마랑 같이 있는 방에서도 생각할 수 있어." "엄마는 왜 나랑 같이 있는 방에서는 생각을 못 해?"

"대부분의 시간은 할 수 있어. 하지만 가끔은 나만의 공간이 있는 것도 좋을 거야."


이 대화에 대해서. 그리고 마지막 문장인 "안녕 방아." 라는 마지막 인사를 통해 엠마 도뉴휴의 <룸>은 갇힌 영역에서의 탈출. 바깥 세계와의 대화. 타인에 대한 이해. 그리고 다시 자기 만의 방에서 신중하게 고민하는 힘.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세상과 마주설 수 있는 진정한 자신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것이 바로 <룸>에서 말하고자 하는 자유의 의미가 아닐까 싶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 삼궁', '찻탓캇', '01査10'. 도무지 그 뜻을 알 수 없는 주인공들의 이름처럼. 그들에게서 신념이라는 것을 도통 찾아낼 수 없었다. 누군가를 지배하고, 혼란스럽게 하는 그 자체에 속칭 오르가즘을 느꼈다. 젊은 세 사람에게는 그저 본능적인 성적 욕망과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만 있을 따름이었다. 그렇기에 이들을 부리기는 너무도 쉬웠다. 돈과 여자라는 쾌락만 제공하면 되었으니 말이다. 영화 <내부자들>의 가장 말단의 조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장강명 작가의 <댓글부대>는 소수의 댓글부대가 기득권의 정신에 반하는 의견을 쏟아내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어떤 방식으로 파괴하는지 또한 순수한 어린 친구들을 어떤 방식으로 보수화하는지도 설명한다. 더 나아가서 언론을 어떻게 바보로 만드는지도 보여준다. 음모론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한 이 작품. 물론, 이것은 소설에 불과하다. 그러나 세상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을 무시하고 지나치기엔 후회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2.


과 거에는 권력자들이 조폭의 힘을 빌어서 자신들의 이권을 유지했다면, 오늘을 이야기하는 장강명 작가의 <댓글부대>에서는 빅브라더를 꿈꾸는 자들이 인터넷 공간의 댓글부대의 힘을 빌려서 여론을 조작한다. 단순히 한 사람의 생각이 인터넷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여러 사람의 합의로 포장되어 궁극적으로는 정치적인 힘으로 재탄생한다.


여론조작? 조금 순화해서 여론몰이는 한쪽 방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수와 진보 양쪽 진영에서 모두 이루어진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그렇게 그들은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거나 현 체제를 무너뜨리려고 한다. 그래서 <댓글부대>를 <강남몽>이나 <비열한 거리>의 연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댓글부대>의 세상은 작가의 표현처럼 훨씬 빠르고 독해졌다.


그들은 병두처럼 지켜야 할 가족도. 함께 일하는 식구도 없었다. 오로지 각기 다른 3명의 타인들로서 서로 거리를 유지할 뿐이었다. '찻탓캇'혹은 '01査10'에게 현주와 병두 간의 순애보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조작한 행위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은 그들을 흥분케 했고, 그 댓가로 돈과 쾌락에 취했고, 계속 그것을 얻기 위해서 그들의 요구에 응함으로써 판을 키웠다. 


그들이 건네준 쾌락. 자신이 아닌 제공된 것에서 찾은 쾌락에서 싹튼 찻탓캇의 진심. 설사 그것이 진심이었다 하더라도 혼자만의 메아리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3.


이 소설의 주요 인물은 댓글공작을 벌이는 팀-알렙의 '삼궁', '찻탓캇', '01査10'이지만, 실세는 합포회의 우두머리인 노인과 K일보 기자 임상진의 대립이 울타리 모양으로 소설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그들은 한국정치의 오른쪽과 왼쪽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다만, 이 작품은 오른쪽과 왼쪽이 충돌하는 작품이 아니라 왼쪽의 역할은 오른쪽의 음모를 폭로하는 역할에 국한되어 있으며, 오른쪽의 역할은 빅브라더를 형상화한 노회한 회장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신념이 알렙의 멤버와 독자들을 현혹시키는 것이었. 그 신념을 토해내는 공간는 노인 소유의 비밀공간이며 룸살롱같은 곳이었다.


노인은 아랫사람인 이철수와 삼궁과 함께 어린 소녀를 끼고 술을 먹으면서, 그 소녀탐한다. 작가는 노인 말과 행위가 배치(背馳)되는 이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통해서 빅브라더의 사상을 독자로부터 거부감을 느낄 수 있도록 국가를 위하고 젊은이들을 위한다 노인의 정당성을 일정부분 박탈시키지 않았나. 작가가 일부러 그렇게 유도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서, 삼포회의 자금력을 동원한 댓글부대의 선전 문구. '나는 강하다.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라는 캠페인으로 자라난 세대가 기득권을 위협하지는 않되. 낙관적인 기운으로 열심히 돈을 벌어 당신들의 자산을 비싼값에 매입해주기를 바라는 것일테다. 아래 내용 중에 인정할 수있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147. 요즘 정치 하는 친구들은 그걸 몰라. 경제가 사회 분위기를 결정하는 게 아니야. 사회 분위기가 경제를 결정하는 거야. 집단의 힘, 군중의 마음!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믿음을 품게 되면, 주변이 다 잿더미고 쓰레기산이어도 상관없어. 인간은 강한거야.


괴벨스가 이런 말을 했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반드시 국민들에게 낙관적 전망을 심어줘야 한다고. 우리는 전쟁중이었어. 그 지긋지긋한 가난과 싸우고 있었어.

일자무식의 농촌 출신 병사들이라도 말이야, 저기가 고지라고, 저기만 넘으면 된다고, 저걸 넘으면 넌 위대한 전사가 되는 거라고 북돋워주면 다 그걸 넘어. 자기들끼리 군가를 부르고 '조금만 참자, 버티자'고 외치면서. 그런 때 사람들은 애를 낳아. 여자들은 짧은 치마를 입고 남자들을 유혹해. 자기 미래를 낙관하니까. 하루에도 열두 시간을 일하고 돌아와도 몇 년 뒤에 보답이 더 크게 돌아올 걸 확신하면 피로가 금방 가시지. 그런 흥분이 경제도 움직이는 거야.

그런데 멍청한 놈들이 그런 열광을 불러일으킬 생각은 않고 요즘 젊은이들은 패기가 없다느니, 뭘 포기한 세대라느니 하면서 오히려 기를 꺾어놔. 아주 악질적인 사고방식이야. 조금만 부추겨주면 에베레스트도 오를 수 있는 애들한테 ' 동네 뒷산 오르는 주제에 무슨 엄살이냐'라고 비아냥거리고, '힘드니까 등산이다'라며 멸시하고. 자기들 인생 하나 성공하지 못한 종자들이, 자라나는 애들 미래를 발목 잡고 있어. 다 붙잡아서 감옥에 처넣어야 해.


152. 인간은 말이야, 생각이 바뀌지 않아. 조용필 좋아하던 사람이 늙어서 패티김을 좋아하게 되는 게 아니야. 조용필 좋아하는 사람은 조용필과 함쎄 늙어가는 거야. 우리 아버지는 백설희랑 같이 늙어갔고, 나는 신중현과 같이 늙었어


촛불 들고 나섰던 애들도 아마 바뀌지 않을 거야. 1985년부터 1995년 사이에 태어난 애들. 특히 여자애들. 난 그 애들은 아주 버렸다고 생각해. 걔들은 평생 정부 탓이나 하면서 살아갈 거야. 히피들이 추하게 늙어간 것 좀 봐. 얘들도 꼭 그렇게 될 거야. 공부도 하지 않고 남 이야기를 들어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남이 자기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소통을 안하네 어쩌네, 80년 광주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네. 그런 어리광을 늘어놓으며 평생을 살 거야. 그냥 전라도 인구가 그만큼 은었다고 보면 돼. 그걸 어쩌겠어. 트펴를 못하게 하겠어, 인터넷을 못하게 하겠어? 그냥 그렇게 가는 거지, 한동안은 그 애들이 인터넷을 쥐고 흔들겠지. 그리고 인터넷이 현실을 흔들겠지. 암흑시대가 오는 거야.


우린 그다음 세대를 공랙해야 해. 아직까지는 머리가 그렇게 굳지 않은 애들. 그 아이들의 정신이나마 건강하게 만들어야 해. 펩시 콜라가 말이야, 코카콜라랑 싸우다 싸우다 안 되서 그냥 이십 대 이상은 안 된다, 하고 백기를 들었어. 아무리 콜라 맛을 좋게 하고 비싼 모델을 고용해서 브랜드 이미지를 기깔나게 만들어봐도 스물이 넘은 사람은 설득할 수가 없었던 거야. 그래서 어른들은 포기하고 어린애들을 상대로 마케팅을 했지. 먼 미래를 내다보고, 우리도 그렇게 해야 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