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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평점 :
1.
선천적인 사이코패스의 내면. 살해 장면의 섬뜩한 묘사가 압권인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을 읽던 중에. 사이코패스를 다룬 다른 작품은 어떤 작품이 있고, 어떻게 표현했는지 궁금해서 네이버에 사이코패스를 검색했다. 그랬더니 <악의 교전>을 비롯해서 몇몇 작품이 올라왔다. 그 작품 가운데 눈길을 끈 작품 하나가 바로 앤서니 버지스 작가의 <시계태엽 오렌지>였다.
2.
195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화자이자 주인공. 알렉스의 회고록 형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어린 시절의 알렉스는 패거리를 지어 다니면서 만만해 보이는 어른에게 이쁜 쩐을 갈취하고 그 돈을 유흥에다 썼다. 전에도 이런 일로 소년원을 들락거렸던 알렉스는 당시에 유행했던 밀크바에서 우유에 섞은 마약(칼)을 마시고 환각상태에 취해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고, 술집을 아지트삼아 하루를 보내곤 했다.
소설에서 '이쁜 쩐' 이라고 불리는 이 패거리의 유흥비는 그날 벌어서 그날 다 써버리는 것이 원칙이었다. 왜냐하면, 쩐이라는 것은 없을 때 훔치면 되니까 소중하지도 않았고, 그걸로 경찰한테 꼬리를 잡히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 돈을 들고 있다가 경찰에게 잡힐 바에야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할머니들에게 공짜로 술을 대접하면 경찰이 패거리를 범인으로 의심하더라도 지금까지 계속 술을 마시고 있었다고 알리바이를 만들어주기도 했던 것이다.
미성년자들에게 마약과 술을 팔면서 돈을 버는 어른들, 술값을 대신 내줬다고 그들의 범죄를 못본체 하는 어른들. 그리고 가족의 무관심 (그 외 이 소설에서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학대와 차별과 빈곤 같은 것들)은 그들이 더 큰 범죄를 저지르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언급된다. 앤서니 버지스 작가는 알렉스가 사이코패스가 된 원인으로 개인의 문제보다는 사회의 문제가 더 크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3.
알렉스 패거리의 간덩이는 어른들의 비호와 무관심 아래 점점 더 커졌다. 고삐가 풀려버린 그들의 자유로움은 폭행과 강도를 넘어서 무장강도. 집단강간. 그리고 안타깝게도 결국에는 살인으로까지 이어진다. 이 사건에서 알렉스는 동료들의 배신으로 혼자 죄를 뒤집어쓰고 사건의 무거움을 인정받아 소년원이 아닌 감옥에 14년 동안 갇히게 된다. 그가 패거리 생활을 하는 것을 제외하고, 삶의 유일한 낙이었던 음악과도 이별하게 되었다. 그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는지는 이 문장을 통해 알 수 있다.
43. 음악이 흘러나왔어. 아, 축복, 축복, 천국! 나는 천장을 향해 벌거벗고 누웠지. 베개 위에 올린 팔에 대갈통을 괴고 눈깔은 감고 천상의 기쁨에 젖어 입을 벌린 채 아름다운 음악의 흐름을 들으면서. 아, 그것은 아름다움과 화려함의 화신이었지. 트럼본은 침대 밑에서 황동색의 음을 울려대고, 대강통 뒤에서는 세 개의 트럼펫이 은색으로 불타올랐고, 문가에서는 팀파니가 내 속을 흔드는 듯 달콤한 천둥소리를 내고 있었지. 아, 기적 중의 기적이었어! 그리고 그때 희귀한 천국의 금속으로 빚은 새처럼, 아니면 완전한 무중력 상태의 우주선 안에서 흐르는 포도주처럼, 바이올린 독주가 다른 현악기들의 선율을 타고 들렸지. 다른 현악기 소리가 비단으로 만든 새장처럼 내 침대를 둘러싸더군. 그러고는 플루트와 오보에가 백금으로 만들어진 벌레처럼 아주 두껍고 달콤한 금과 은의 음악을 파고들었지. 난 그런 축복 속에 있었던 거야.
4.
소설은 몇 가지 주제를 동시에 이야기하는데. 첫째는 위에서 말했듯이 청소년들의 일탈을 막지 못하는 허술한 시대정신의 비판과 둘째는 정치인들이 죄인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것에 숨겨진 비인간적인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14년 형을 받은 알렉스에게 영국 정부는 정치범의 수용공간의 부족을 이유로 알렉스의 폭력성을 제거하는 어떤 실험을 받겠다고 사인하면 곧바로 석방시켜 주겠다고 제안한다.
111. 얘를 첫 케이스로 삼으면 되겠군. 젊은데다 대담하고 사악하니까.
루도비코 요법(112~142)이라는 이것은 조건반사를 통하여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무의식에 심어놓는 방식이었다. 게다가 이 방식은 조건반사를 더욱 강화하기 위하여 음악이나 성적인 행동, 문학과 예술(이 소설에서는 음악)을 이용하는데, 이것은 예상치 못한 빈번한 순간에 알렉스를 두려움에 노출시키게 하였다.
두려움에 젖어 서서히 갱생되어가는 알렉스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그들은 이제 알렉스를 사회로 돌려보내도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알렉스의 자유의지를 완전히 제거하는 방식이었다. 좌파 지식인의 비판대로 완전한 인격살인이라고 불릴 만했다. 더욱이 알렉스 같은 범죄자가 아닌 다른 케이스로. 가령, 정치적인 대립으로 감옥에 갇힌 억울한 사람들에게 이 실험을 행한다고 가정해볼 때, 루도비코 요법을 실행하겠다는 것은 인간의 사상적 자율성을 극한으로 제한하는 전체주의 국가로의 선언과 다름이 없었다.
183. 넌, 내 생각에도, 죄를 저질렀어. 그렇지만 그에 대한 처벌이 너무 심했어. 저들은 너를 인간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만들었어. 네겐 선택할 권리가 더 이상 없는 거지. 넌 사회에서 용납되는 행동만 하게 되었어. 착한 일만 할 수 있는 작은 기계지. 이제 똑똑히 알겠구나, 조건반사 기법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음악이나 성적인 행동, 문학과 예술,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을 주는 근원인 게 분명해.
<시계태엽 오렌지>에서는 냉전시대를 살고 있는 정치인들의 권력싸움도 소재로 삼는다. 알렉스 개인에게 벌어진 사건이 국가적인 문제로 확대되는 것이다. 루도비코 요법을 허용하려는 전체주의 우파 정치인에 대항하여 183을 말하며 187을 주장하는 좌파 정치인들도 있었다. 과거에 알렉스 패거리들에게 아내를 잃은 작가 F. 알렉산더와 그의 동지들은 알렉스의 사례를 언론에 폭로하여 루도비코 요법의 심각성을 국민들에게 알리려고 한다.
187. 넌 아주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어. 이 사악하고 교활한 현 정부가 다음 번 선거에서 다시는 복귀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야. 현 정부의 제일 큰 자랑은 지난 몇 달 동안 시행한 범죄 통제 정책이지. (...) 야만적인 어린 깡패들을 경찰로 모집한 것,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고 의지력을 갉아먹는 조건 반사 기법을 도입하는 것 말이야.
188. 저들은 자신의 아들들이 너처럼 불쌍한 희생양이 되기를 원할까? 현 정부는 무엇이 범죄인지 자의적으로 결정하고 자기들을 언짢게 만드는 사람들이면 누구든 생명력과 용기와 의지력을 빼앗아버리려고 하는가?
그러나 이 시대의 좌파들도 우파들처럼 알렉스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중하기보다는 현재의 기득권 세력에 대항하기 위한 정치적인 선전도구로 이용하려 들었다. 앤서니 버지스가 보기에 좌나 우나 정치인들은 다 똑같았다. 조지 오웰이 풍자했던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F. 알렉산더가 진실을 알아버린 탓일 수도 있겠다.
196. 음악을 그렇게 사랑했던 내가 침대에서 기어 나와서 소리를 지르면서 벽을 쿵쿵 두드렸지. "멈춰. 멈추라고, 소리를 낮춰!" 그러나 음악은 계속되었고 오히려 더 커진 것 같았지. 그래서 주먹이 붉게 피범벅이 되고 피부가 찢겨나가도록 벽을 치고 소리를 질렀어. 그래도 음악은 멈추지 않았어. 그때 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작은 침실을 뛰쳐나가서 아파트의 현관문으로 갔지만 그 뭄은 밖으로 잠겨 있었기 때문에 나갈 수가 없었지. 그러는 동안 음악 소리는 점점 커졌고, 마치 무슨 의도적인 고문 같았지.
198. 기절하기 바로 직전 난 깨달았지. 이 끔찍한 세상에서 나를 위해줄 놈이 하나 없고, 벽 너머로 들리던 음악도 나의 새 동무라는 놈들에 의해 계획된 것이며, 그런 일이 벌어진 이유가 놈들의 더럽게도 이기적이고 오만한 정치 때문이라는 사실을.
201. 친구, 어린 친구여, 대중들은 분노로 활활 타고 있단다. 진짜로 넌 저 오만한 악당 놈들이 재집권할 가능성을 없애버렸다. 놈들은 영원히 사라져버릴 거야. 넌 '자유'를 위해서 아주 훌륭한 일을 했지. (...) 만약 내가 죽어버렸다면 너희 정치하는 자식들에게는 훨씬 더 좋았겠지. 그렇지 않냐. 이 가식적인 배신자 동무들아.
5.
얼마 지나지 않아 우파 정치인의 대표는 병상에 누워있는 알렉스를 방문하고, 아래와 같은 덕담을 건네며 사진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우스꽝스러운 풍자를 봤을 때, 좌파 정치인들이 알렉스를 이용해서 언론에 폭로한 선제공격은 매우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우파 정치인은 루도비코 요법으로 자유의지가 제거된 알렉스를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기로 약속했고, 곧바로 치료를 시작했다. 알렉스를 위해서 국립 음반 보관소에서 음악 관련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다.
207. 나와 내가 각료로 있는 현 정부는 네가 우리를 친구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래, 친구지. 우리가 너를 원래대로 돌려놓았잖니. 넌 최고의 치료를 받고 있단다. 우리는 네게 해를 줄 생각은 전혀 없단다. (...) F. 알렉산더라는 이름의 불온한 책을 쓰는 작가가 있단다. 네 피를 보겠다고 떠들어대고 있지. 칼로 너를 찌르고 싶어서 제정신이 아니란다. 그러나 넌 지금 그 사람으로부터 안전하다. 그 자를 격리시켰으니까.
6.
알렉스는 정치인들의 다툼 덕분에 14년 형에서 2년 만에 석방되었고 게다가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알렉스는 예전처럼 다시 패거리를 모으고 의미 없는 하루를 이어간다. "자 이제 어떻게 될까?"로 시작하는 1부와 3부. 알렉스의 내면에 무언가 변화가 찾아온다. 아무 의미가 없었던 '이쁜 쩐'. 공짜 술을 대접하기 위해 식탁에 꺼내놓은 돈이 갑자기 소중하게 느껴졌고, 안정된 생활을 하는 과거 동료의 모습으로부터 올바른 삶의 고민과 자극을 받기도 한다.
알렉스는 이것을 철이 들었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이라고 고백한다. 결국, 과거의 방탕한 생활은 철이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의 삶을 회고하고, 작별을 선언했다. 세상은 구리고 더러울 수 있지만. 인간은 자연스럽게 철이 들게 마련이며. 각자 스스로 올바른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건네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222. 청춘은 가버려야만 해. 암 그렇지. 그러나 청춘이란 어떤 의미로는 짐승 같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아니, 그건 딱히 짐승이라기보다는 길거리에서 파는 쬐그만 인형과도 같은 거야. 양철과 스프링 장치로 만들어지고 바깥에 태엽 감는 손잡이가 있어 태엽을 끼리릭 끼리릭 감았다 놓으면 걸어가는 그런 인형. 일직선으로 걸어가다가 주변의 것들에 꽝꽝 부딪히지만,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청춘이라는 건 그런 쬐그만 기계 중의 하나와 같은 거야.
223. 여러분은 이 어린 동무 알렉스와 같이 고통을 느끼면서 여기저기를 다 다녔고, 하날님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놈들이 여러분의 동무 알렉스에게 집적대는 것을 보았어. 그게 다 내가 어리기 때문이었지. 그러나 이 이야기를 끝내는 지금 난 더 이상 어리지 않아. 알렉스는 어른이 되었단 말이야. 그렇고말고. 그리고 내가 지금 가는 곳은, 여러분, 여러분은 갈 수 없는 나 혼자만의 길이야. 내일도 향기로운 꽃이 피겠고, 더러운 세상이 돌아가겠고, 별과 달이 저 하늘에 떠 있을 거고, 여러분의 오랜 동무 알렉스는 홀로 짝을 찾고 있을 거야. 엄청 구리고 더러운 세상이야. 여러분, 자 이제 여러분의 동무로부터 작별 인사를. 그리고 이 이야기에 나오는 다른 놈들에게는 커다란 야유를. 엿이나 먹으라 그래.
7. 요약
알렉스는 사이코패스다. 사회의 잘못이 그를 사이코패스로 키운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살하려는 모든 행위는 거부한다.
좌파나 우파나 똑같다.
질풍노도의 청춘은 자연스럽게 지나가기 마련이다.